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21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과자 박스가 보였다.
“우와!”
동현이 다급하게 달려들어 상자를 쥐어뜯었다.
거기에 아주 멀쩡한 과자 봉지들을 보였고 3명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식량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한 식량이다. 거기에 매점에는 라면박스도 많이 남아 있었다.
고진감래.
이들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보상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30분 전, 지승준은 웬일인지 윤선과 강장구를 데리고 나갔다.
동현과 태희, 매니저는 바깥에서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하연은 침실로 나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준비는 다 했나? 네가 리더야? 통화를 자주 하는데?]리더라는 말에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리더는 아닌데. 이제 곧 갈 거 같다고 전하려고요?”
[그래? 너도 오나?]“아니요.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가고 싶은데…. 도움이라도 돼야 할 거 같아서 좀 그래요.”
[그냥 가면 되잖아?]속 편하게 말하는 상대였다. 도하연은 웃었다.
“그렇지만 저도 여러 입장이 있거든요. 굳이 따지면 상사라서…. 아!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우울하기보다는 밝아야 하는데 말이죠.”
[아직 현실 파악이 안 됐네.]목소리는 도하연의 가슴에 있던 배우라는 직업을 건드렸다.
[상사? 여기서? 까딱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곳에서?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이지. 지금 여기서 미래 걱정할 때야? 당장 죽음이 코앞인데? 굳이 말하자면 댁은 이미지 관리하는 거잖아? 지금 온다는 군대는 안 오고 지체되고 있어. 지금은 자기 살길 찾는 게 우선이야. 미래 보다가 눈앞에 적도 못 보고 죽을 수도 있잖아.]“그렇죠.”
[상사고 뭐고, 목숨 걸리면 다 똑같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 돼. 어차피 당신 선택이야. 우리도 곧 출발한다고 알려줘.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난 상담사가 아니니까 알아서 생각해.]사내는 딱히 상담사가 아니었건만, 도하연의 마음속이 살짝 풀어진 기분이었다.
도하연이 밖의 3인방에 소식을 알려주고 차량이 떠났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무도 없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물론, 말만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도하연의 기분은 조금 나아졌지만 결국 가지 못한 건 같으니까.
‘명상이라도 할까? 요가라도 배울 걸 그랬네.’
침실로 들어가 다시 도하연은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왔나 보네.’
나갔던 3인방이 들어왔다고 판단한 도하연이지만, 안타깝게도 예상은 틀렸다.
“하연아.”
문이 열리고 불쑥 지승준이 나타난 거였다.
“오셨군요. 다른 사람들은요?”
“밖에서 아직 이야기 중이지. 하…. 배고프지 않아? 나도 미치겠네.”
지승준은 이전보다 더 대담해졌다. 대놓고 도하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두르려 하는 게 아닌가.
“저기요?”
“이제 좀 친해져 봅시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그 말이 도하연의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지금 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승준과 도하연 둘 뿐이다.
지승준은 도하연의 어깨를 잡았다.
“나랑 감독님이랑 친한 거 알고 있지? 말만 하면 계속 주연으로 갈 수 있어. 천만 배우? 영화 하나 잘 되고 추락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영화가 계속 잘돼야 하는 거 아니야?”
지승준의 노골적인 손짓이 도하연의 어깨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만둬요!”
도하연은 놀라서 지승준의 손을 쳐버렸다. 지승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하연은 흠칫 놀라며 일어서려 할 때였다.
지승준이 거칠게 도하연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좋게 좋게 하려 했는데 이럴 거야? 너, 배우 생활 끝나고 싶어? 내 아는 연줄로 영화감독들 싸그리 망하게 해줄까? 매장되고 싶어? 응?”
도하연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돈 얼마든지 준다니까? 성공이 보장되어 있어! 응? 비싼 몸이야? 그것도 아니잖아!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돼. 아니, 성인이 서로 할 수도 있지. 너도 계속 성공하고 싶을 거 아니야? 나도 널 안아보고 싶고. 어때? 괜찮지? 미래를 생각해. 미래를!”
지승준의 손길이 이제 다시 도하연을 향해 움직일 때였다.
[아직 현실 파악이 안 됐네.]그녀의 머릿속에서 아래쪽 게스트 하우스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서 미래 걱정할 때야? 당장 죽음이 코앞인데?]그렇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미래 걱정하면서 자기가 두려움에 떨 이유가 있는가.
“하아.”
도하연은 숨을 한 번 내쉬며 눈을 부릅떴다. 그게 지승준에게는 허락의 신호로 보였는지, 도하연의 셔츠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래. 그래. 잘 생각…….”
“꺼져. 이 망할 놈아.”
지승준의 앞에서 도하연의 앙칼진 얼굴로 대답했다.
“어…. 크악!”
지승준은 그 순간, 하복부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미안하지만 댁 같은 사람하고는 생각도 없네요.”
“너! 지금 구조 안 되고 싶어? 내가 이 짓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지승준의 얼굴이 급격하게 분노가 서렸다. 하지만 도하연은 당당했다.
“나 하나만 뺀다고요? 지금 우리에게 휴대폰도 있는 거 알아요? 내가 그냥 인터넷 여기에 있다고 써도 난리 날 텐데요?”
“!”
지승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렇다, 지금 연락할 수단이 없던 때와는 다르다. 전원에게 휴대폰이 돌아온 상태였다.
즉, 외부와 연락할 수단은 많다. 심지어 도하연은 유명배우. 파급력이 클 거다.
“그…. 그….”
지승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속에서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미안하지만 침실에서 나가줄래요?”
“…….”
지승준은 잔뜩 겁을 먹고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물론, 여기서 진짜 이판사판으로 지승준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여기는 고립된 곳이니까. 상황을 잘 파악하자. 도하연.’
도하연도 이걸 모르지 않는다. 경찰도 오지 않고 군대도 그가 있어야 온다.
“이, 일은 비밀에 부쳐줄 테니 서로 간섭하지 말죠.”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이게 최선이었다. 상대에게 안심을 제공해서 살인 같은 최후수단을 방지하는 게 현재로써는 최선이다.
거기다 얼마 안 있으면 동현 일행도 온다.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최적의 상황을 설계한 도하연은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시바아아랄!”
얼마 뒤, 지승준의 괴성이 들렸다.
11. 절정
동현 커플과 매니저가 싱글벙글 돌아왔을 때, 이 게스트 하우스의 기묘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적막감. 그리고 어색해진 분위기.
윤선은 강장구 옆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승준은 사색으로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반긴 건, 도하연 뿐이었다.
“성공하셨어요?”
“그 까칠한 놈이 도끼질은 무지 잘하더라고요? 그래도 이쪽도 두 마리나 죽였어요!”
동현은 한껏 근육자랑을 하며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내던졌다.
“라면부터 먹죠! 밥하려면 한 시간인데 언제 다합니까!”
“이 사람들아! 지금 식량 가지고 왔는데 뭘 그리 우울해?”
동현은 내려서 쌀 포대를 집안에 던졌다.
“던져줄 테니까 알아서 정리해. 아무튼, 오늘 좀 배불리 먹겠네.”
“네.”
동현과 태희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매니저는 다르게 생각했다.
“하연아.”
“네? 오빠?”
애써 밝은 얼굴을 하는 도하연의 얼굴을 보았다.
‘몇 년을 같이 했는데…. 뭔 일이 있긴 있어.’
솔직히 도하연만 따로 두기에는 불안하기는 했다.
물론, 강장구나 윤선도 있기에 딱히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본 게 사실이었다.
근데 기묘하다.
‘그러기에는 지승준 저 새끼가 너무 조용한데?’
조용하다 못해 실망감 가득한 표정에서 뭔가 실패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잘 안 됐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당분간 따로 둘 이유는 없으니까.’
매니저 역할대로 도하연을 지켜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매니저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건, 강장구와 윤선이었다.
엮일 일 없는 두 사람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났다.
‘대체 뭐지?’
딱히 관계가 없고, 이 둘의 상황을 모르기에 그는 일단 배고픔에 라면에 더 생각을 쏟았다.
도하연은 거실에서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외선도 되게 하면 진작 군대랑 연락되지 않았을까요?”
“무리죠. 하연 씨.”
동현은 한껏 채운 배를 쓰다듬었다.
“저놈이 제 아버지 전화번호를 모르는데, 제대로 되겠어요?”
“그냥 군대에 연결하면 되잖아!”
지승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앞에 놓인 컵라면이 쓰러졌다. 국물들이 탁자에 흐르고 있었다.
“하는 짓 하고는 야, 닦아!”
동현은 걸레를 지승준에게 던졌다.
“시발, 지금 뭐하냐?”
“니가 엎었잖아. 닦으라고. 설마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개자식이!”
지승준이 벌떡 일어섰지만, 감히 동현에게 덤벼들 엄두는 나지 않았다.
동현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내가 식량 가져왔는데 최소한 그 공로는 알아줘야 하지 않아? 우리 이제 조용히 잘 지내자고 알았어?”
“….”
그렇다. 동현도 식량을 가져온 공로가 크다. 지승준은 걸레로 탁자를 닦았다.
윤선은 우울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전화기를 든 도하연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하연은 내선으로 아래쪽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뭐야?]무언가를 잔뜩 먹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도하연은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덕분에 이쪽도 잘 해결됐어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죠?”
[그렇지. 너희 쪽도 잘하던데. 이제 군대에서 총리 아들을 모시러 오면 되겠군. 내 휴대폰에는 늦게 온다고 문자를 아주 폭포수처럼 보내던데?]“네…”
도하연은 잠시 말을 흐렸다. 사실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냥 서로 일 잘 끝났다고 축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도하연은 지금, 왠지 모르게 더 대화하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말이다.
아직 어린 그녀의 호기심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대화는 더하고 싶었다.
“확실히 당신 말대로 하니까 편해지더라고요.”
[그래? 잘됐네. 이 시점에서 그냥 생존 잘하면 장땡이지. 안 그래? 아무튼, 라면 부니까 이만 끊지.]통화는 한 두 마디 더 이어지다가 끝났지만, 도하연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태희가 닭을 가지고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언니, 뭐 하세요?”
“이걸 닭도리탕으로 하려고 하는데…. 라면도 먹고 사람들이 먹을까 모르겠네. 하연 씨는 어때?”
“전, 충분해요. 원래 아이돌 준비해서 신진대사가 활발하답니다!”
도하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태희가 놀란 얼굴을 지었다.
“아이돌? 쭉 배우 생활한 거 아니였어? ”
“자퇴하기 전까지만요. 아역배우가 성인 배우로 자리 잡기 어려워서 아이돌로 인지도를 쌓으려고 가려 했죠. 도중에 무산됐지만 죽어라 춤 연습해서 삼겹살도 5인분은 혼자서도 먹어요.”
“그랬구나?”
태희가 놀란 얼굴로 6호 닭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하연 씨 때문에 두 마리를 써야겠어요. 5호 닭이 제일 작은 거니까. 이거까지 넣어서 두 마리로 끓이죠. 감자가 좀 부족하지만….”
“이 상황에서 감자가 부족한 게 무슨 상관이에요. 맛있는 음식 기대할게요!”
도하연은 생기발랄하게 태희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진짜 동현씨가 좋아하겠어요!”
“동현이는 운동만 하는 바보라서요. 진짜 제가 일일이 챙겨줘야 해요.”
“음…. 언니! 말 편하게 놓으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도하연이 태희의 허리를 감싸고 애교를 부렸다. 태희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놀고 있는 동현이 좀 불러줄래? 식탁에 식기들 준비하라고 말이야.”
“네! 명받았습니다!”
도하연은 경례 포즈를 취하고 바로 동현을 호출했다.
분명히 라면을 먹고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식탁에 이들이 전원 모였다.
오랫동안 굶었기에 고작 라면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따끈한 연기와 맛있는 냄새를 동반한 닭도리탕이 내어졌다.
강장구는 박수를 쳤다.
“캬아! 진짜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태희씨라고 했나?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매니저도 도하연도 자리에 앉아 닭도리탕의 위용에 박수를 쳤다.
식사가 시작되고 도하연은 그 누구보다 푸짐하게 살코기들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