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29
“험험….”
이윽고, 얼마 안 가 사람들 한두 명씩 밖으로 사라지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미묘한 움직임을 놓칠 설동이 아니었다. 오종훈을 건드리며 슬쩍 밖으로 향했다.
“근데 정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 할아버지를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는데?”
“문자라도 보내볼게요.”
오종훈이 문자를 보내었지만, 역시 답은 없었다.
이들도 집합장소는 모르기에 은밀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을 허겁지겁 쫓았다.
앞쪽에 있던 사내는 다급히 군인을 보챘다.
“우리 아버지 누군지 알지? 어서 빨리 출발해! 지금 모인 사람들만 먼저 보내라니까!
그 광경에 설동은 아까 전 여성을 떠올렸다.
[우선순위가 신분이라…. 노골적인 거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목숨 앞에서는 이기적인 게 나은 거 같아요. 이타적으로 목숨 버리는 것보다는요. 현실은 영화가 아니잖아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나쁜 사람을 죽이지만,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다 죽잖아요.]설동은 쓴웃음을 지었다. 조심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20명 정도 되는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설동은 눈알을 굴렸다. 희한하게도 지희는 보이지 않았다.
오종훈이 앞으로 나섰다.
“도하연 씨는 없나.”
“도하연 씨는 지금 출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중위로 보이는 계급 하나가 들어오며 말했다.
그는 모두의 앞에서 바깥을 가리켰다.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이 일은 절대로 비밀에 부쳐주셔야 합니다.”
“…….”
대답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단지, 암묵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설동과 오종훈이 앉아서 기다리는 그때였다. 갑자기 천막이 젖혀지고 정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어?”
“음?”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미묘하게 변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분노와 경악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거 우연이죠?”
설동은 아까보다 더한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종훈은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졌다.
“정 할아버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조용히 하지만 누가 들어도 확실한 음성으로 오종훈이 말했다.
“우리를 배신하고 혼자 갈 생각이었어요?”
“너희도 마찬가지잖나.”
정 할아버지는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너희도 지금 여기에 와 있잖아.”
“우리는 할아버지 찾느라 놓칠 뻔했어요.”
오종훈이 화를 간신 삭이며 대답하고 정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중령급 군 간부가 들어와 사람들의 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원이…. 약간 오버 됐는데? 2명이 더 많아. 이러면 차에 다 못 탄단 말이야. 이거 다시 확인해 봐.”
설동과 오종훈이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긴장감이 도는 막사 안. 설동은 스릴러 영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명단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간부 하나가 바깥으로 나가고 얼마 뒤였다.
“으아아악!”
애처로운 비명이 이곳을 강타했다.
3. 공항으로!
“나중에 받는다고 했잖아!”
박준성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계속된 치료 거부와 난폭한 행동은 이미 감염의심자로 보기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신분이었다.
장군의 아들.
군 간부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소장님이 어떻게든 데리고 오라고 하십니다!”
“저 상태로? 아무리 봐도 감염자다.”
이들은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장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게 부당한 지시라도 하급자로서는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근데 상황이 위험한데.”
여기는 공항으로 보내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그 어떤 고위층이나 자제도 검진과 소독을 하는 게 원칙이다.
하루 정도 있다가 통과한 이들을 보내려고 하는데, 박준성 같은 케이스는 심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한 간부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뭐? 그러면 어떻게 해! 일단 출발시키고 있다고? 시발!”
간부가 욕설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 간부는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항에서 의심 자가 발생하고 감염자 무리가 공항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한다.”
“뭐라고?”
간부들이 벌떡 일어났다. 이렇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검역 실시해. 지금 우리가 죽을 위기인데!”
“빨리 차 대기시키고 탈출 준비해!”
군인들이 다급히 총기를 들고 박준성이 있는 천막으로 다가갔다.
총성이 울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곧, 푸른 혈관이 돋아난 박준성의 시체가 끌려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연구원은 슬쩍 자신의 팔목을 보았다.
방역복을 뚫고 손톱자국이 찍혀 있었다. 박준성을 진료하려다가 ‘살짝’ 당한 것이다.
“손톱 정도로는 아무 일도 없겠지?”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하지만 곧, 자기 옆의 동료가 그 누구보다도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설동이 놀라서 천막 바깥을 향하자, 거기에는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연구원들이 갑자기 주변 사람을 물어뜯는 게 아닌가.
“총도 없는데.”
설동과 오종훈은 총기를 검사하면서 반납한 상태였다.
지금 눈앞에서 방역복을 입은 그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사정거리 안에서 짐승보다 더한 민첩성으로 사람을 덮치고 있었다.
탈출하려던 쪽도 다급했다.
“빨리 가요!”
“대충 껴 앉으면 2명 정도 더 탈 수 있잖아요! 다들 차 안 타봤어요?”
이들이 일치돼서 외치자, 군 간부가 다급히 이들을 끌고 차량으로 향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이 차려는 차량에 예상외의 인물들이 타 있었다.
“쟤들은 누구야?”
“군복을 입고 있는데? 아저씨. 이거 우리가 탈 차량이잖아요?”
물론,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대강 끼어 타며 순식간에 만원 지하철처럼 변하고 말았다.
설동과 오종훈은 이미 들어갈 공간도 없는 차량을 포기했다.
남은 인원은 4명. 정 할아버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설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4인용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게 아닌가.
“저 차가….”
하지만 이 차량 역시 이미 만 차였다.
“정태식 씨!”
차 안에서는 정 할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설동과 정 할아버지는 눈빛을 마주쳤다. 하지만 정 할아버지는 미련 없이 차량에 올라탔다.
“미안하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정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떠나고 말았다.
비명과 총성이 난무하는 이 검역소에서 두 사람은 멍하니 떠나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정 할아버지는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공항 내에서도 총성이 울리고 있는 거로 보아 긴급하다.
‘괜찮아. 친구 놈이 무조건 나 올 때까지 기다린다 했으니까.’
기장으로 일하는 친구를 둔 운이 여기서 트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함께 구걸하며 밥을 먹던 사이였다.
우정으로 쳐도 50년이 넘는다. 이 인연이 지금 살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때, 동네 불량배들에게 쫓길 때, 그놈이 날 구해줬지. 반대로 내가 구해주기도 했고….’
우정은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면서 점점 두터워졌다.
그렇기에 기장인 그가 위험한데도 남아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려라.’
가족을 생각하니, 배덕감이 한층 옅어졌다. 가족, 우정.
두 가지로 그는 두 사람을 외면한 걸, 참고 버티고 있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서로 돕는 거지. 의리다. 새꺄!]젊은 시절 친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버리고 간 두 사람은 나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서로 목숨을 구해줬지.’
조용해졌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고 있었다.
왜일까?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순간, 게스트 하우스부터 헤쳐 나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짧지만 강렬하다.
그들을 버리고 간다?
정 할아버지는 공항이 가까워져 올수록 추억이 떠올랐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전쟁 때 나를 보호하셨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그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내던졌다.
왜? 구하는 게 당연하니까.
‘사람이라면 말이야.’
창밖에 그것의 괴성이 들렸다. 정 할아버지는 자신의 휴대폰 화면에 보이는 손주의 사진을 보았다.
[이 할애비가 제주도에 멋진 집 하나 만들었으니 보러 오거라.] [할아버지 진짜요?]손주는 할아버지인 자신을 좋아했다. 항상 자랑하고 다녔고, 자신도 손주를 자랑하고 다녔다.
“어디에 내려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할아버지.”
그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주변의 군인들이 시선을 돌렸다.
“왜요?”
“차…. 돌릴 수 있나? 부탁하네.”
정 할아버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군인들은 아연실색했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왜요?”
“저기도 위험해요.”
당연한 반대가 이어졌다. 9부 능선을 넘은 공항길이다.
누구라도 반대한다.
정 할아버지는 장사꾼이기에 저 심리를 안다. 그만한 당근을 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네들은 어떻게 할 건가. 비행기는 타야 할 게 아닌가? 군인이라서 마지막에 타지 않아? 내가 기장한테 말해서 자네 3명도 태워주지. 기장이 우기면 무조건이야!”
정 할아버지의 제안에 군인들은 침묵했다. 그 시간은 1만 시간과도 같았다.
얼마 뒤, 차량은 급격하게 회전했다.
차량이 떠나가고, 설동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떠나간 자는 오지 않는다. 여기서 할 건?
“뛰자!”
어차피 차량으로 8분 안쪽이고, 뛰면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가만히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공항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나을 터.
이들은 달렸다.
비명과 총성이 난무하는 곳에서 말이다.
이미 차량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인 이상 차량의 뒤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존나 힘드네.”
거기에 체력은 쉽게 떨어졌다.
설동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론상 20분이고 실제로는 30분도 더 걸리겠어!’
하지만 쉴 수 없다. 어떻게든 가야만 하니까.
그렇게 차량들 사이에서 위험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아악!”
가까이서 비명이 나며 차량 한 대가 이쪽으로 돌진하는 게 아닌가.
“피해!”
설동이 오종훈을 밀고 본인도 반대편으로 몸을 던졌다.
거친 굉음과 함께 차량이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그들이 있던 자리를 맹렬하게 지나갔다.
설동은 바닥에 흙먼지를 온몸으로 맞으며 몸을 일으켰다.
옆으로 누운 차량의 문이 열렸다.
“싫어! 끄아아악!”
그 아래에서 피 묻은 손이 튀어 올랐다. 분노로 가득한 눈매로 총을 든 군인이 설동 쪽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시발.”
총구가 설동을 향하고 있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설동의 옆자리가 흔들렸다.
조준은 좋지 못한듯하다. 메말라가는 피부를 실시간으로 본 설동은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차라리 좀비라도 되면 모르지만, 아직은 흥분한 상태일 뿐이다. 즉, 위험하다.
“시발. 너 때문에 맞았어!”
탕!
다시 한 발이 설동의 옷깃을 스쳤다.
‘개자식. 빨리 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