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4
세 명의 같은 방 사람들의 입에서 기묘한 소리와 광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제주도. 힐링을 위해 온 이곳의 밤이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영화촬영 현장은 언제나 부산스럽다. 조명과 기술 팀, 감독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르기 때문이다.
“막내야! 저거 박스 치우라고 했잖아! 정신 안 차려?”
“윤미야. 왜 촬영장이 주문한 대로 세팅이 안 돼있냐!”
“의상팀 왜 엑스트라한테 의상 머리 세팅 안 해 줘? 뭐? 싸웠다고? 그걸 시발 변명이라고 해!”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주연배우 윤석훈과 도하연은 배우 전용 의자에 앉아 대본을 외우고 있었다.
차분하지만 도회적인 이미지. 마스크 자체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그에 맞춰 쭉 뻗은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현재 가장 주가를 올리는 신인 배우…. 라지만 아역 때부터 이미 유명한 연기자였다.
대부분의 아역 연기자가 잊히는 게 그만이었지만, 도하연은 아역을 계속하다가 고등학교도 가지 않고 본격적으로 배우 쪽으로 뛰어들었다.
자칫하면 인생에 크나큰 실패가 될 수 있는 선택지에서 도하연은 단역부터 차례로 구르면서, 이곳에 올라왔다.
그것이 하나하나 터지고 있었다. 덕분에 만 19세, 한국 나이 20세에 연이은 히트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본을 보고 머릿속에 자신이 할 연기를 상상하고 있었다.
다만 생각만큼, 안되는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이 사람만 없으면 집중이 잘 될 텐데.’
원래 배우가 다 같이 모여서 대본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원래 자기 매니저 차에 올라타서 쉬면서 보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나와 있었다.
딱히 열정적이거나 그런 쪽이랑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윤석훈의 욕심이었다.
“요새 왜 이렇게 시끄럽지? 하연아. 안 그래?”
그는 헛기침하며 추근거리며 도하연에게 다가왔다.
24살의 윤석훈은 아이돌 출신으로 인기가 오르고 있는 배우였다.
연기력은 나쁘지만, 예능에서도 활약할 만큼 순발력도 좋고 인맥이 좋다.
이 영화도 사실 주연으로서 의문부호가 많이 달렸을 정도다.
원래 도하연은 매니저 밴에 들어가서 쉬려 했는데, 더 맞춰보자고 윤석훈이 졸랐기 때문이다.
‘대본을 안 보잖아?’
거기에 윤석훈은 대본은 이미 집어 던진 채, 도하연이랑 이야기를 하려 했다.
“제주도는 몇 번 와 봤어?”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한 번이요.”
“그래? 고등학교는 어디로 갔을까…. 맞춰볼까? 경주! 맞지? 진짜 이제 좀 바뀌어야 한다니까?”
도하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고등학교 자퇴했어요.”
“아…. 아! 맞다! 내가 도하연 씨를 모르다니. 이게 말이나 되나. 크으.”
“네.”
상대가 어설프게 능청스러움을 연기하자, 도하연은 다시 대본에 시선을 돌렸다. 내용은 흔한 아포칼립스 재난물이었다.
도하연의 역할은 남주와 같이 제주도를 탈출하는 여정이다.
이런 태도에 윤석훈은 조바심을 냈다.
“하연아. 왜 그렇게 냉랭해?”
“네?”
“아니, 이왕 같이 대본도 읽으면서 이야기도 좀 하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도하연은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본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요?”
“하…. 참. 하연이도 잘 모르네. 너무 딱딱하니까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가자는 거지. 나, 싫어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도하연은 머릿속에 귀찮음이 가득했다. 상대는 박수를 쳤다.
“다행이네. 하연이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네. 어때, 성인인데 이따가 매니저들이랑 같이 술이라도 먹을까?”
“아니요. 술은 잘 안 먹어서요.”
도하연이 무표정으로 거부하자, 윤석훈은 다시 박수를 쳤다.
“이거 잘됐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마시면서 늘리는 거야. 사회생활에 중요한 거라고.”
“나중에 할게요.”
“에헤이…. 선배 말을 따르지 않는 거야?”
윤석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무언의 압박이 느껴질 때였다.
“하연씨! 어머니한테 전화 왔어요.”
바로 그녀의 매니저가 안경을 곧추세우면서, 다가왔다.
“아, 죄송해요. 통화 중 할게요.”
“그래.”
윤석훈은 혀를 찼다.
도하연은 가면서 매니저와 서로 윙크를 했다. 사실, 부모님의 통화는 없었다.
매니저가 눈치를 보고 끼어든 거다.
“매니저 오빠, 역시 최고예요. 진짜, 왜 저러는지 몰라.”
“진짜, 아주 흑심이 뻔히 보인다. 따지고 보면 도하연 네가 선배 아니야?”
“그렇죠. 전, 그걸 내세우기도 그렇고. 그냥 적당히 거리라도 두려고요.”
도하연과 매니저는 웃으면서 밴으로 이동했다.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쉴 때였다.
도하연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후 8시 10분]-엄마. 나 제주도에서 한 일주일 정도 촬영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첫날도 무사히!
카톡을 보내고 도하연은 인터넷에 들어가 여러 기사를 둘러보았다.
[생활 상식은 기본 시사 상식은 선택, 다 끊임없는 노력이죠]어렸을 때 좋아하던 인기 가수의 노래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에 관한 기사에 반사적으로 들어갔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녀는 악플에 생각보다 잘 버티는 편이었다.
자연스레 리플쪽을 보자, 역시나 악플이 있었다.
-도하연 개썅년이라는데 학폭 가해자라고 함
-도하연 못생기지 않음? 남들 다 예쁘다고 하는데 이해 못 함
-니 얼굴이 더 못생김 ㅅㄱ
-전, 남자인데 도하연은 땡 잡은 거 같아서 윤석훈이란 배우가 그렇게 연기력이 뛰어나서 화면을 휘어잡는데….
“남자라….”
도하연은 이 어리숙한 여학생의 지난 글을 눌렀다.
[지난 글 보기]-석훈 오빠한테 꼬리 치지 애들 졸라 많음
-우리 오빠가 씹돼지새끼인데 어떻게 할까요?
-오빠 용돈 훔쳐서 비렉스의 석훈 오빠 콘서트 갔는데 맞았어요. 그 정도로 석훈 오빠는 사랑이에요
-나 남잔데 솔직히 석훈 오빠 연기력 욕하는 것들은 영화 보는 애들은 맞나?
도하연은 피식 웃으면서 휴대폰을 건넸다.
“아하하. 재밌다. 매니저 오빠, 위에 학폭 어쩌고는 부탁해요.”
“그래, 하여간 아이돌 빠는 여자애들이란…. 루머란 루머는 다 만들어요.”
“그러다가 크면 깨끗한 척을 하죠. 여차하면 이상한 사상을 배워서 수호자인 척 하죠.”
도하연은 차 안의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최근 추세에 대한 뉴스들이 흘러나왔다.
[미국 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화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신종 바이러스로 감기 환자 급증. 전염력이 뛰어나….]“지구촌이 감기로 문제네요. 오빠. 그렇죠?”
감기가 비단 아시아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미국도, 러시아도 모두가 한결같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들었어? 조금 전에 정부가 긴급 대책으로 신종 독감에 걸린 사람들은 지정 병원으로 모이라는데?”
“진짜요?”
“그렇다니까. 우리도 조심해야지. 아…. 이런 별장이 아깝다. 아까워.”
매니저가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자, 산을 등진 산장 같은 펜션이 확 들어왔다.
3층 구조로 된 펜션 베란다는 바비큐 파티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고, 반대편에 비슷한 크기의 두 개의 펜션이 있었다.
그 사이사이는 족구장이 있고, 땔감과 매점이 존재했다.
“하연아. 먹을 거라도 사다 줄까? 펜션 매점은 500원에서 1000원씩 더 비싸더라. 참 내….”
“돈도 많은데요. 뭘. 오빠, 전 그냥 음료수나 사다 주세요. 요새 몸매관리 중이에요.”
“그래, 우리 하연이는 관리도 철저해. 진짜, 감격스럽다. 우리 소속사 연예인 중에 스스로 짬 내서 헬스랑 요가학원에 다니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매니저가 엄지를 치켜들며 나가고 나서 1분 뒤. 밴 안쪽에서 노래를 듣는 도하연은 누군가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오빠?”
매니저인 줄 안 그녀가 몸을 돌리자, 거기에는 이 영화의 대본을 쓰는 서브 작가(메인 작가를 도와 시나리오의 완성을 돕는 작가) 박윤정이 있었다.
“어라? 윤정씨. 무슨 일이에요?”
도하연은 반갑게 문을 열었다. 살짝 음침하기는 해도 성실한 그녀였다.
박윤정의 휴대폰 고리에는 윤석훈의 SD 캐릭터가 달려있었다.
“콜록.”
박윤정은 기침했다.
도하연은 밴을 가리켰다.
“추우면 안에서 대화할까요? 무슨 일에요?”
“…….랬어?”
“네?”
“왜 그랬어?”
순간, 도하연의 앞에서 박윤정의 얼굴에 살기가 드리워졌다.
그 감각은 도하연의 온몸에 소름을 만들어냈다.
“왜 그래요?”
“미친년.”
“잠시 만요. 지금 뭐라고 했죠?”
도하연의 표정이 변했다. 뜬금없이 욕을 먹기에는 그녀의 성격이 가만히 있게 두지 않았다.
“갑자기 미친년이라니, 뭔 소리에요? 이거 정식으로 항의할 거예요!”
“항의? 시발…. 미쳤네. 주변에서 오냐오냐해주니까……. 커억! 콜록.”
“미쳤어요?”
도하연은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이 사람은?’
갑자기 와서 욕을 하면서 흥분하는 이 서브 작가의 입에서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뭐에요?”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광기가 점점 거세지려는 찰나였다.
“하연아!”
그녀의 뒤로 매니저가 재빨리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박윤정은 몸을 돌렸다.
도하연은 그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디 가요? 아니, 다짜고짜 욕했으면 사과하던가요.”
“하연아 왜 그래?”
매니저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도하연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박윤정에게 달려갔다.
“이봐요!”
그렇게 어깨를 붙잡고 돌리는 찰나였다.
“만지지 마!”
다시 한 번, 소름 끼치는 분노가 터졌다. 도하연은 본능적으로 어깨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박윤정은 그렇게 이들을 벗어났다.
“하, 도하연 그 년. 철벽 치는데?”
윤석훈.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그는 세팅이 거의 끝난 촬영장을 보며 매니저랑 혀를 찼다.
“석훈아. 원래 여자 연예인들이 겉으로는 도도한 척하지 침대에서는 그냥 수줍은 양이야.”
“형도 참…. 누구한테 그런 소리해요. 제가 여자아이돌은 건들면 다 넘어오는 남자였는데. 곧 도하연이 아예 나 없으면 죽고 못 살게 만들어주죠. 술 약속이나 잡아요. 아유…. 진짜 침대에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석훈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매니저는 시계를 보았다.
“슬슬 시작하겠네. 대기하고 있을 테니, 촬영 잘해. 아! 그리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 내가 들었는데, 게스트 하우스 어디에서 미친놈이 흥분해서 칼 휘두르고 다녔다.”
“아 봤어요. 이 게스트 하우스 제일 앞 아니에요? 경찰들이 폴리스 선 치고 있던데. 여기는 꽤 떨어져 있고, 범인도 잡혔잖아요. 상관없겠죠.”
홀로 남은 석훈이 몸을 풀 때였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윤정 씨 아니야?”
그의 앞에 어느새 서브 작가 박윤정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콜록. 아…. 안녕하세요. 석훈 씨.”
“무슨 일이야?”
“제가 경고했어요.”
“뭘요?”
“도하연 그년한테 꼬리 치지 말라고요. 콜록. 컥!”
박윤정은 기침하며 웃었다. 석훈은 지금 머릿속에 잠깐 혼란이 일어났다.
‘뭐? 도하연? 꼬리 치지 말라고? 뭔 소리야? 뭐가?’
박윤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석훈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콜록. 그 미친년. 제가 막아드릴게요.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윤정씨가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오빠라니요?”
“오빠. 도하연 그거 쓰레기예요. 관심 버리면 돼요.”
순간, 윤석훈은 자신의 손에서 상상하기 힘든 악력이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놔요! 아니, 뭔 소리입니까.”
“오빠. 왜 그래요? 우리 사랑하는 사이 맞죠?”
“미쳤어요?”
석훈은 황당해서 손을 뿌리쳤다.
윤정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같아.”
“윤정 씨. 술 먹었어요? 갑자기 왜 그래요?”
“똑같아. 도하연이랑. 그년이 그렇게 좋아? 아니지? 다 그년이 잘못한 거야.”
중얼거리는 박윤정이 입을 달달 떨었다.
이빨과 이빨이 부딪치는 불쾌한 소리. 윤석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감독님! 윤정 씨가 미쳤나 봐요. 이상해요!”
“개새끼야아아아!”
그 순간, 촬영장에서 윤정의 분노가 하늘같이 치솟았다.
3. 제주도의 밤
촬영장은 난데없는 괴성에 시선이 쏠렸다. 감독 강장구와 실장 이헌성이 이변을 눈치채고 움직였다.
“윤정아 왜 그래?”
“갑자기 왜 싸우는데?”
두 사람이 다가가자, 윤석훈은 다급히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빌었다.
“아니, 실장님. 윤정 씨가 이상해요. 갑자기….”
“대체 왜 그러는데? 석훈이 또 뭔 짓 했어?”
“뭘 하다뇨? 윤정 씨랑은 지금 제대로 처음 이야기하는…. 아?”
그때였다.
윤석훈은 자기 팔목에 통증을 느꼈다.
어느새 따라온 윤정이 손톱으로 그의 팔목을 피가 나도록 잡은 게 아닌가.
“악!”
윤석훈이 다급하게 뿌리치자, 살점과 함께 윤정이 떨어져 나갔다.
누가 봐도 심할 정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작은 맹수에게 잡아 뜯긴 듯한 상처가 보이고, 이곳은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윤석훈의 이성은 폭발 직전이었다. 평소라면 대들지도 못하는 감독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 시발! 감독님. 이 여자 뭐에요? 미친년인가! 개시발! 저 오늘 촬영 못 합니다!
“진정해. 야! 얘 병원 데려다줘라.”
강장구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감독 경력 15년에 별의 별일은 겪었지만, 지금처럼 난데없는 건 처음이었다.
‘박윤정 저거 왜 저래? 미쳤어?’
그의 시선은 메인 작가 지선숙으로 향했다.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베테랑 작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듯이 선숙은 움직이고 있었다.
“선숙 누님. 어떻게 해주쇼! 뭡니까?”
“아니, 쟤가 저럴 애가 아닌데……. 윤정아. 이리 와!”
지선숙은 다급히 움직였다. 멍하니 서 있는 윤정이 몸을 돌린 순간, 그녀는 자기가 집필한 그 어떤 소설 속 소재보다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공허한 눈빛은 죽은 자와 같았고, 마치 의미 없는 하늘을 보듯,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 하지만 그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지선숙이 다음에 작품을 쓴다면 필히 집어넣을 소재.
지선숙은 심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