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41
이미 지승준은 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4인방은 순간,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그 역할은 도하연이었다.
“총리님. 죄송합니다. 지승준 씨는 그….”
“아니야!”
지학선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내 아들이 죽었을 리 없잖아. 어디 고립된 거지? 응? 맞지?”
“솔직히 말하면 감염자가 됐어요.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럴 리 없어. 내 아들이……. 내 아들이란 말이다!”
지학선은 눈가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는 더 이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두 눈가에 눈물을 흘리며 비통하게 무릎을 꿇었다.
“아…. 말도 안 돼. 내 아들이…!”
충격을 먹고 뒤로 쓰러지려 하자, 태희가 반사적으로 그를 부축했다.
“동현아! 사람 좀 불러 줘!”
“알았어!”
다급히 동현이 나가고 군인들이 다급히 총리를 부축했다.
휴게실은 침묵만 가득했다.
이들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바깥으로 향했다.
도하연은 그 모습에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역시, 누군가를 잃는 건 싫네요. 죽는 것도.”
“그래, 우리 하연이도 놀랐구나.”
태희가 그런 도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매니저는 박수를 쳤다.
“자자. 모두 기운 내요. 배고프지 않아요? 매점 가서 라면이라도 사올 테니. 기다리세요.”
동현과 태희 커플은 그런 매니저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역시! 센스가…. 마침 배고팠는데.”
“그럼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매니저가 지하로 다시 향했다. 쉬지도 못하고 충격적인 장면도 목도한 이들의 배에서는 공통으로 배고픔을 요구하고 있었다.
도하연은 지친 얼굴로 다시 방에 올라갈 때였다.
“야! 우리는 왜 안 들여보내 주는 건데?”
1층 로비에서 한 남자가 군인과 몸싸움을 벌였다.
“나가!”
“아저씨. 우리도 생존자야! 왜 우리는 호텔에 들어가게 해주지 않는 건데? 공항에서 온 놈들이면 영종도 사람도 아니잖아?”
그는 끌려 나가면서 애타게 외쳤다. 도하연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 공항에서 피신 온 사람들만 온 거 아니에요?”
동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저 사람은 못 본 얼굴인데. 다른 곳에서 왔나?”
그들은 의아해하는 사이, 사내는 그대로 바깥에 내팽개쳐졌다.
의아한 것도 잠시, 그들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죠. 여기는 소위 말해서 정치인이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니까요.”
지적인 인상에 사람 좋게 생글거리는 인상.
도하연은 그녀가 공항에서 모두를 진정시킨 여자란 걸 알았다.
“그때, 그분이세요? 공항에서 사람들을 진정시키신 분?”
“아뇨. 그냥 현실을 알린 거죠. 도하연씨죠? 영화 잘 봤어요.”
여성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거 알아요? 이곳에 재벌 3세인 이도민과 아버지 이성철 회장이 와 있다는 거? 거기에 차관급 고위층도 와 있어요.”
“여기에요? 그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못 본 거 같은데.”
의외의 인물들 면면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보다 그녀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잘 아시네요?”
“네. 아버지가 열심히 정보를 전해주거든요. 저 자신도 한번 들어오는 사람을 둘러보았죠.”
정지희는 아차 했다는 듯 손을 마주쳤다.
“제 이름을 안 밝혔네요. 전, 정지희에요. 아버지인 시의원이시고요.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왔어요. 이제 서울로 다시 가려고요. 어떻게든.”
정지희의 마지막 말은 상당히 단호한 표정이었다.
도하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다 그렇죠.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쪽 분들은….”
정지희가 뒤늦게 뒤쪽의 세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다.
도하연은 차례로 그들을 소개했다.
“제 매니저인 강주현 오빠고, 이 깨가 쏟아지는 커플은 동현씨와 태희 씨. 저랑 같이 제주도에서 탈출한 사람들이에요.”
정지희는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도하연 씨가 데리고 오신 거 같네요. 원래 분리시켜놨거든요.”
동현은 그 소리에 미간을 굼틀거렸다.
“아니, 여보셔. 갑자기 뭔 소리야?”
“모르세요?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 중 일부는 다른 곳으로 갔다는 걸요.”
“뭐라고?”
“사실, 여기는 인천과 서울의 좀비를 격퇴할 때까지 임시로 부자나 유명인들이 쉬는 공간이에요. 저를 보세요. 정치인의 자제니까 온 거죠. 그게 아니라면 진작 다른 숙소에서 지냈겠죠.”
일동은 침묵했다. 정지희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려는 거잖아요?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걸 우선시해야 하는 거죠.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추하든 어떻든 살아남는 게 우선이죠.”
정지희는 이제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동현은 황당한 얼굴이었다.
“이야, 얼굴은 겁나게 청초한데 겁나게 살벌한 사고방식이네. 저 언니 무섭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청초하다고? 어지간히 반했나 봐?”
태희가 동현을 노려보았다. 이 덩치 큰 곰이 쩔쩔매는 사이 도하연은 다시 바깥을 보았다.
몇몇 이들이 군인들에게 막히고 있었다.
“나도 들어가게 해줘!”
“집에 감염자가 있어서 집에 못 들어가! 우리가 어떻게 죽여!”
“지들만 좋은 대서 보호받는 거 봐! 우리 세금으로 한 거 아니야!”
분노가 귀속을 강타했다. 도하연은 고개를 숙이고 1층으로 올라갔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절대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9. 행복회로
호텔의 식사는 정갈하고 깔끔하다. 양복을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와인을 들고 돌아다니거나 음식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에 도하연도 있었다.
‘단지 지금이랑 안 어울려서 그렇지.’
그녀는 저녁 식사시간에 주변을 빠르게 파악했다.
정지희가 말한 재벌 2, 3세가 와 있었고, 차관급이나 아들을 보러 온 정치인들도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했어?”
“진짜 네 생각하면 기도했다.”
말이 저녁 식사지, 여기는 이산가족 상봉 장소였다.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애틋한 기분도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감도 들었다.
‘이래도 돼? 감염이 걱정된다면서 부모들이 여기를 마음대로 와도?’
물론, 최소한의 검역은 거쳤겠지만 그게 의미가 없단 건,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제주도를 생각하면 최소한의 접촉이어야 해. 불안해.’
지옥을 헤쳐 나왔지만, 아직 모든 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깨작깨작 스테이크를 썰었다. 옆에서는 매니저와 동현이 큼지막하게 썬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있었다.
특히나 동현은 애인인 태희에게 스테이크를 넣어주며 닭살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우리 태희, 잘 먹네.”
“오구. 동현이 다 큰 거 봐.”
두 사람은 내내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즐거운 모습.
불안감이 가득한 도하연에게 의지할 사람이란 존재가 필요했다.
‘부모님은…. 없는 사람들이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하연은 냉정하게 고기를 썰었다.
‘그 사람은 진짜로 죽었나?’
도하연의 머릿속에는 제주도 탈출에 큰 도움이 된 아래쪽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터진 비행기에서 탈출……은 불가능하겠지만.’
생각하면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갑자기 장내에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나타났다.
말끔한 인상에 훤칠한 키. 그리고 유머감각을 갖춰, 인기 예능인으로 꼽히는 허달이었다.
“자자! 식사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제 얼굴을 보고 용서해주세요. 용서가 안 된다고요? 릴렉스~ 릴렉스, 그래도 아니라고? 그럼 꺼져~!”
자신의 전용멘트를 날리며 순식간에 식사하는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사실, 제가 여기 왜 나타났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힘들게 생환하시고, 여기서 드디어 맛있는 스테끼를 드시고 있죠. 정부는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공연도 준비했습니다. 마음 편하게 공연을 구경하시고 즐겨주시면 됩니다. 하루 정도 여기에 있다가 가실 텐데. 즐겁게 말이죠.”
도하연은 지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공연이라고 했어요?”
매니저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팔자 아주 좋네? 제주도가 꿈도 아닌데.”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공연까지 할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들을 빼고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졌다.
“퍼플링이다!”
“시발! 퍼플링이 여기 왔어?”
젊은 남성층에서 환호성이 커졌다. 동시에 이들의 앞으로 네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룹 퍼플링.
4인조 그룹으로 인기가 한창인 여성 아이돌이다.
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장내의 시선이 움직였다.
도하연은 너무 기가 막혔다.
“어차피 하루 있을 건데, 아이돌까지 불러서 공연까지? 이래도 돼요?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데?”
하지만 도하연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태희 말고 없었다.
나머지 두 사람의 시선이 퍼플링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자연스레 박수를 치고 있었고, 동현은 한 마디로 표현했다.
“와우!”
도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음식에 집중했다. 옆에서는 태희에게 조인트 까이는 동현이 고통의 신음을 내었다.
‘무슨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사실, 좀비 사태만 아니라면 별거 아닌 장면이다. 행사, 축제에 아이돌 보는 건 흔하다.
단지, 좀비 사태의 위험성을 몸소 겪고 너무 일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
그때, 그녀에게 허달이 다가왔다.
“우리 하연이도 여기 있네? 명단에서 보고 설마 했다.”
“허달 오빠. 어떻게 된 거에요? 여기까지 오시고.”
도하연은 역시나 예능에서 몇 차례 본 허달과 친숙하게 악수를 하였다.
“야야, 내가 연줄이 좀 있잖아. 여기 주관하는 기재부 차관 정민도 라고 있거든. 이 사람이 나랑 친해. 거기에 IP그룹 회장 이성철씨가 자금을 대줘서 이렇게 하는 거야.”
“진짜요? 전, 감염자 때문에 즐길 생각도 안 나는데요?”
정말로 이게 진심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비 일상을 경험한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한 행동에 괴리감을 느꼈다.
허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실, 나도 무서워. 근데 대충 돌아가는 이야기가 그냥 버티고만 있으면 좀비들을 물리칠 거라는 소문이 증권가에 싹 돌더라고. 정민도씨도 그렇게 말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파티를 열지.”
즉, 희망적인 관측을 사람들은 하고 있단 거였다.
매니저가 옆에서 듣다가 거들었다.
“거기다가 정·재계 사람들과 인맥을 넓힐 좋은 기회고요. 기획사 입장에서도 나쁠 거 없죠. 안전하기만 하다면. 퍼플링은 대형 기획사이기도 하니까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고요.”
“이야, 강 매니저. 오랜만이다?”
“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다시 악수를 하였다. 그러는 사이, 퍼플링이 물러가고 이번에는 남자 5인조 아이돌이 나왔다.
태희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블랙 건 아니야? 쟤들이 요새 뜨는….”
하지만 곧, 동현의 따가운 눈초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야말로 어디 행사에 온 기분이었다. 도하연은 갈수록 이상한 것을 느꼈다.
‘진짜 뭐하는 거야?’
허달은 그런 도하연을 보다가 다시 속삭였다.
“하연아. 여기에 젊은 재벌 3세랑 유력가 자제들이 있거든?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
“오빠. 전, 그럴 경황이 없어요. 도망치고 살았다는 거에 안도하는 게 다에요.”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부탁해. 내가 바로 주선해줄게. 내가 마! 성사시킨 커플이 몇인데. 이제 여유를 가져. 그냥 시간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허달은 그러면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뚱뚱한 외모의 귀부인이 그를 부른 거다.
“아, 또 일거리가 찾아오네. 그러면 편하게 쉬어.”
“네. 오빠도 쉬엄쉬엄 일하세요.”
도하연은 바로 인사를 하고, 허달은 떠나갔다.
고개를 돌리니, 태희와 동현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넌, 그 퍼플링인지, 하플링인지 모를 아이돌을 보고 헤벌쭉했잖아.”
“우와. 천태희. 아주 웃기네? 블랙건인지, 화이트 건인지 모를 남자 아이돌 보고 기뻐했으면서!”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식기를 반납했다.
도하연은 그나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밖에서 2차전 할 건가 봐요. 매니저 오빠.”
“저 정도는 그냥 서로 애정 싸움의 영역이지. 진짜 커플 싸움은….”
매니저의 얼굴이 수척해지고 있었다. 도하연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오빠.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그만. 더는 말하지 마.”
“네.”
매니저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직 스테이크를 덜 먹은 도하연은 마무리를 할 때쯤이었다.
“블랙건! 블랙건!”
중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블랙 건이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그렇게 인기라는 블랙건이구나.’
떠오르는 게 아니라, 이미 떠올라서 신나게 하늘을 나는 아이돌 그룹.
이들은 환호를 받으며 지나가다가 도하연과 눈이 마주쳤다.
노랑머리로 염색한 리더 엑스는 마이크를 든 채로 다가갔다.
“이야! 여러분 여기 도하연 씨도 있어요!”
“네?”
이제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던 그녀의 앞에 블랙건은 다가왔다.
자연스레 손을 내밀기에 악수가 이루어졌고, 갑자기 그들이 도하연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진짜 국민 여동생이죠? 여기 혹시 시사회장인가요? 연예인이 몇 명이야?”
“하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있었다. 도하연은 난감해 하면서도 연예인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