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42
도하연씨가 여기에 있네요. 사진 한 번 찍죠?
“아. 네.”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고 그녀의 주변으로 블랙 건의 손길이 움직였다.
어깨, 허리. 과감히 다가온 블랙 건은 거침없었다.
도하연은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호버 핸드(매너 손)를 안하네? 좀 낫네.’
그녀에게 있어서 매너 손은 소위 말해서 자신감 결여의 상징이었다.
딱히 신경 쓰지 않는데 배려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어리숙함(또는 찌질 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근데 5명이니 너무 많네.’
면적상(?) 실질적으로 3명만 잡은 셈이지만 마치 포위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때, 리더 엑스가 속삭였다.
“도하연씨. 연예인끼리 술자리나 가질래요? 퍼플링이랑 허달 형도 대동해서요.”
“생각해 볼게요.”
도하연은 지금 쉬고 싶었다. 인천에 온 첫날은 그냥 푹 쉬면서 보내고 싶었다.
엑스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뭉치자고요. 지금, 같은 연예인이잖아요.”
“일단, 오늘은 좀 쉬려고요. 나중에 갈게요.”
도하연은 열심히 거부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봐요.”
블랙 건은 아쉬워하며 떠나갔다. 도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연예계에 있는 기분이네.”
원래대로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바깥에 좀비가 돌아다니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도하연이 머리가 지끈거린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현은 식사를 마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나 참. 그놈의 질투. 잘난 남자의 운명이지.”
가볍게 한바탕한 뒤라 그런지 불쾌한 기분이 가득했다.
태희는 방에 올라갔으니, 동현은 남자친구로서 기분을 풀기 위해 고민에 들어갔다.
‘내 자체가 선물인데. 뭘 더 할 필요 있나? 그냥 침대에서 확!’
동현은 커피를 홀짝 거리다가 마침 나오는 매니저를 보았다.
“매니저 형씨. 여자 친구랑 싸웠는데,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해요? 진짜 아이돌 가지고 좋아한 건, 지도 마찬가지였으면서. 고집이 세요.”
“전, 싸우고 헤어졌어요.”
우울한 표정의 매니저를 보고 동현은 할 말을 잃었다.
“어…. 최근?”
“사태 터지기 10일 전에요.”
“아이고머니나. 이거 어떻게 해요?”
동현은 오지랖을 발동했다.
“거, 이럴 때 남자끼리 술이나 먹어야 하지 않아요? 매점 갑시다. 이거 남자끼리의 대화가 필요하네.”
“후우…. 좀 안정되니까. 갑자기 전 여친 생각이 납니다.”
호텔에서 일상적인 광경을 봐서일까? 매니저는 울적함이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이들은 남자끼리의 대화를 위해 일단 매점에 가서 술과 안주를 사기 시작했다.
동현은 계단을 가리켰다.
“형씨. 209호실에 혼자지? 거 가서 먹읍시다. 태희가 쌍심지 키고 나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
이들이 사람이 북적이는 엘리베이터를 피하고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갈 때였다.
다다다.
다다다.
갑자기 불길한 전조가 그들의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겪은 두 사람은 경계태세를 취하며 비상계단을 볼 때였다.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기기기. 그그그.”
이 목소리가 들린 순간, 동현의 표정이 급변하고 매니저가 다급히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감염자요! 감염자!”
“지하 주차장 막힌 곳 아니야? 군대가 막고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한 충격이 하나 나타나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엄청난 속도.
지금 감염자는 뛰고 있었다.
[감염자 사태, 안전수칙만 유의하면 안심] [모두 바깥 외출을 삼가시기 바랍니다.]현재 대한민국은 전국에 감염자 통제에 실패했다.
이건 명확한 사실이다. 원래 질병 통제에 실패하면 정부가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
하물며 사람이 직접 걸리는 질병이면 더더욱.
온라인상에서는 욕이 가득했다.
-아니, 감염자들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며? 그 지랄하고도 못 막음?
-야, 소문이 도는데 이거 그냥 갑자기 걸리는 거라서 약도 없대.
-재들 치료약도 있다고 하지 않았음? 생 구라질이야
-그딴 거 말고 우리 엄마 지금 문 잠그고 갑자기 나오지 않는데 의심하는 각?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정부임
신나게 욕하는 게 대다수이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 색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정부가 무슨 탓이냐! 정부 말을 무시하고 있던 놈들 탓이지! 감염자 자체가 문제야!
-감염자 새끼들이 문제임. 솔까 어느 정부나 그럴 걸?
-야, 잠만 갑자기 웬 옹호야? 이 새끼들 또 당직자 동원하네?
-시발 감염자 자체가 문제라고 우리가 이런 꼴이 된 건! 정부 탓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내가 언뜻 듣기에는 3개월 이내에 밀 수 있다고 하던데? 솔직히 감염자들이 군대를 어떻게 이겨?
-일단, 기다려보자. 무작정 욕하지 말고 믿어보는 거야.
이렇게 서로 싸우는 중에 기묘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야야! 나, 이상한 거 봤어. 감염자들 원래 걸어 다니지 않아? 바깥에 감염자 사이로 누가 뛰는 거 같은데?
-개소리하고 있네. 감염자들은 다 초기 좀비 같음 그냥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르게 갈 뿐임 도망치는 사람이겠지.
-진짜라니까?
뛰는 감염자가 있다. 그런 사실을 누군가 전했지만, 아직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한국 고전 공포영화 중 여고괴담이라는 게 있다. 거기서 가장 유명한 점프컷 장면이 있다.
귀신이 카메라를 향해 점점 접근하는 걸 빨리 보여주는 방식인데, 지금 동현과 매니저의 눈에 그 괴담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기기! 그그그! 키이이이!”
지하 3층 계단에서 눈을 떼면 어느새 반대편, 잠시 눈을 떼면 어느새 2층, 어느새 다시 계단.
그들이 있는 지하 1층까지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침을 흘리고 눈이 뒤집힌 이 감염자는 이제까지와는 격이 다른 공포를 자아냈다.
그 담대한 동현도 침을 꿀꺽 삼켰다.
“매니저 형씨. 저거…. 방식은 똑같죠?”
매니저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귀신처럼 돌진하는 상대에게 꽂혀 있었다.
달려오는 감염자가 일순간 멈춰 섰다. 흰 눈자위가 사라진 좀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기이?”
단 한 마디로 두 사람은 공포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다.
동현은 순간, 자기 손을 보았다. 떨고 있다.
‘좀비랑 싸워온 내가?’
물리면 감염. 거기에 빠르게 움직인다?
생전 처음 맞닿은 적에게 어떻게 대처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순간, 좀비가 뛰었다. 매니저가 놀라며 뒤로 엎어졌다.
“기이?”
바로 그때, 맥주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좀비는 그것을 밟았다.
동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지금이야.’
격투기 대회에서 상대가 빈틈을 내보였을 때 받은 느낌.
엎어진 상대가 고개를 드는 순간, 동현의 두꺼운 허벅지와 종아리가 그대로 움직였다.
빡!
그가 아는 한, 가장 강하게 날린 킥. 그 한 방에 좀비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기…….”
힘이 약해진 좀비를 향해 동현은 맥주 캔을 들었다.
‘저걸 밑으로 던지면….’
아까처럼 엎어트릴 생각이었지만, 긴장한 그는 타이밍을 놓치고 좀비가 일어서기도 전에 던져버렸다.
“기?”
“시발!”
동현이 욕을 하지만 의외로 지금 상황은 서로가 가까웠다.
즉, 많이 상대해본 구도라는 거다.
“캬아!”
좀비가 민첩하게 덤비는 순간, 동현이 허리를 숙였다.
좀비의 손이 위를 지나가고, 동현의 어퍼컷이 단숨에 치솟아 올랐다.
빡!
좀비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걸로는 안 돼.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야.’
동현의 우악스러운 손이 좀비의 옷자락을 잡았다.
동현이 몸을 돌리며 양손을 앞으로 향했다.
유도에서 보는 업어 치기.
좀비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내버렸다.
머리통에 피가 줄줄 흐르는 좀비는 미약하게 움직였다.
동현은 그 위로 발을 올렸다.
“죽어 이 새끼야!”
단숨에 머리통을 박살 낸 동현은 숨을 헐떡였다.
“신체가 약해지나? 더럽게 잘 부서지네.”
매니저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고생했어요.”
“뭘요. 진짜 십년감수 했네. 술이고 뭐고 일단 쉬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들에게 휴식은 오지 않았다. 군인들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감염자가 나타났다고요?”
동현은 맥주를 주우며 군인들에게 말했다.
“네. 일단 죽였지만요. 뒤처리 좀 부탁해요. 아니, 경비가 어떻게 하기에 지하에서 좀비가 와요?”
“일단 확인하겠습니다. 두 분은 잠시만 와주시겠습니까?”
“설마 또 검사?”
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도하연이 샤워를 하고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서 잠에 빠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깨어나는 시간이 지나치게 빠를 뿐.
잠이 든 지, 한 시간 만에 그녀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응?”
“하연아. 있어?”
목소리는 태희였다. 도하연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문을 열자, 거기에 울상인 표정의 태희가 있었다.
“하연아. 안 보여.”
“뭐가요?”
“우리 동현이가 계속 안 보여. 전화도 받지 않고.”
도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머리를 매만지고, 바깥으로 나왔다.
“싸웠다고요?”
자초지종은 싸우고 태희가 먼저 왔는데, 그 뒤로 동현이 연락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도하연은 매니저를 찾았다.
“매니저 오빠! 동현 오빠 봤어요?”
“…….”
하지만 209호는 열리지 않는다. 도하연은 잠결이 취한 머리를 열심히 두들겼다.
“남자들만 없는 거 보면, 술이나 먹으러 간 게 아닐까요? 매니저 오빠도 전화를 안 받아요.”
“그렇지? 그런 거지?”
태희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진짜 요새는 무섭단 말이야. 잠시만 안 보여도 불안해.”
“그렇죠. 여기 분위기가 너무 평온해서 그렇지. 안심하면 안 돼요.”
도하연은 다시금 제주도에서의 그 공포를 상기시켰다.
결코, 안심하면 안 된다.
‘근데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거지? 여기서 사람이 모일 때가 있나?’
결국, 두 사람은 태희와 지하식당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지하 식당 한쪽을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도하연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아까 전에 없었는데?’
두 사람은 자연히 그쪽으로 갔다. 군인은 두 사람을 막아섰다.
“지금, 정비 중입니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도하연은 의아해했다.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여기를 막고요?”
“잠시 지하 주차장 점검이 있어서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군인은 그들에게 안쪽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희는 동현 이야기를 꺼냈다.
“그…. 덩치가 곰 같고, 근육질의 남자 못 봤어요? 이름은 강동현이라고 하거든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군인은 모른다 하고 있기에 이들은 다른 곳을 수색하려던 참이었다.
눈앞에 자그맣게 귀여운 인상의 여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도하연은 그게 누군지 안다.
“안녕하세요.”
“아! 도하연 씨죠? 퍼플링의 지아라고 해요.”
바로 앞서 공연한 퍼플링의 멤버, 지아였다. 그녀는 도하연을 보았다.
“도하연씨는 오늘 안 오시나요?”
“하하, 네. 오늘 푹 쉬려 했거든요. 근데 일행이 또 안 보여서…….”
도하연은 태희를 곁눈질했다. 걱정하는 빛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빨리 그들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 안타깝네요. 내일은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그런데 도하연 씨도 의외에요.”
“뭐가요?”
“하하, 다 알잖아요.”
지아의 의문 모를 소리에 도하연은 당황했다. 지아는 순간, 옆쪽의 태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분은?”
“제주도에서 만나 사람이에요. 간호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