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44
“생각 좀 해보고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도하연은 휴대폰을 끊어버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피곤함에 찌든 몸을 이끌고 도하연은 어영부영 나왔다.
다만, 그녀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직업이기에 아예 목욕을 시원하게 하고 기초화장도 하고 나왔다.
“훨씬 상쾌해요.”
그녀는 자기 옆에 매니저에게 웃어 보였다. 매니저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작게 웃었다.
“할 건, 다하고 나왔네. 역시 하연이다.”
“언제 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오후에는 가겠죠?”
“그랬으면 오죽 좋아? 밤까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두 사람은 식당에 내려가 조식을 먹기 시작했다.
도하연은 리조또랑 푸딩을 접시에 담아 미소 지었다.
“푸딩 이거 귀엽네요. 리조또도 맛있고. 근데 두 사람이 안 보이네요?”
“자고 있겠지. 봐봐. 저녁때와 비교해서 사람이 거의 3분의 1 수준이잖아. 다들 꿈나라에서 놀고 있을 걸?”
엄청나게 피곤한 하루.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조식을 내려오는 것조차 귀찮아하고 있었다.
도하연이 열심히 밥을 먹고 있을 때, 그녀의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도하연씨죠?”
“네?”
도하연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시원한 이목구비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혹시 허달 씨에게 들으셨나요? 이도진이라고 합니다.”
“아! 네 들었어요. 여기를 지원해주신다고요.”
도하연은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젯밤 허달이 말한 재벌 3세가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거 밖에 없어서요. 아버지 따라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도하연씨는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실물로 보니, 더 미인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늘 화장을 덜 했는데, 아쉽네요!”
도하연은 특유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이도진은 싱긋 웃었다.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지만, 이미 다 먹어서요. 나중에 식사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네. 나중에 시간이 되면요. 오늘 오후쯤에 출발하나요?”
“예정은요. 빨리 해결되고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이도진은 다시 품위 있게 인사하며 그들을 떠나갔다.
매니저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재벌 3세답지 않네. 원래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거 보면 마약에 깽판 치고 다니는 게 보통이잖아.”
“다는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오후라……. 드디어 서울 땅 좀 밟네요.”
도하연은 드디어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갈 생각에 몸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조또를 마무리 지을 바로 그때였다.
쾅, 하는 거센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사람들이 일어서고 도하연도 시선을 돌렸다.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며 포성이 여러 차례 울렸다.
그리고 총성이 미약하게나마 들려오고, 포탄이 터지며 점점 이곳을 흔들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전쟁처럼 커졌고, 도하연 일행은 그 날 나갈 수가 없었다.
“교대로 쏴. 분대장들이 분대원들 잘 살펴보고!”
인천 영종도를 방어하는 연합 1사단은 고속도로 앞으로 철책을 치고 좀비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달려드는 좀비를 사격하는 식으로 물리고 있었다.
소대장, 중대장들은 중간 중간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정신 차려! 빨랑빨랑 움직여! 긴장해! 옆 사람 서로 한 번씩 살펴!”
이들은 대 감염자용 매뉴얼을 만들어 대응 중이었다.
되도록 통제 가능한 인원.
무차별 난사보다는 정확한 영점 사격.
일단 두 가지만 지켜도 이들은 저번 전투 때의 와해를 경험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김 상병은 철책 위의 진지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되게 지루하네. 좀 쓸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네.”
김 상병의 말대로 이렇게 상대하면 안전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좀비들이 철책에 달라붙어 그들을 향해 아우성치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약간 빠르게 걷는 수준이고, 철책도 제대로 못 민다.
탕, 하는 총성이 연이어 울리고 좀비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와! 머리 아니면 쓰러지지 않네.”
그러자 옆에서 분대장 강 병장이 혀를 찼다.
“들어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들이 다른 조랑 대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책 너머로 시내까지 꽉 채운 좀비 떼가 보인다.
김 상병은 혀를 찼다.
‘진짜 공포영화네.’
하지만 영화랑 현실은 다르다. 군대의 총성에 희생될 것들일 뿐.
그가 몸을 돌린 채로 한창 걸어갈 때였다.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야야! 저거 뭔데?”
“시발!”
그 순간, 규칙적이던 총성이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김상병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놀라운 것이 보였다.
갑자기 철책이 밀리고 있었다.
“어?”
놀라는 것도 잠시, 군데군데 좀비들이 몸통 박치기를 하는 게 아닌가.
뛰고 있다. 좀비 중 몇몇이 뛰어와서 철책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저거 뭔데?”
김상병의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다급하게 군인들이 몰려들었다.
“야! 저거 뛴다!”
“갑자기 뭔데? 야! 일단 대기 중인 조 다 튀어나오라 해!”
혼란. 김상병이 느끼던 지루함은 그 순간,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지루했다던 감정이 좋았을 정도로 긴장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뛰고 있다.
철책이 흔들리고 그 비좁은 틈을 그것들이 뚫고 오는 게 아닌가.
“기에에엑!”
“그에에엑!”
팔이 찢어져도 그 위를 다른 좀비가 밟으며 뚫는다.
비록 소수지만, 그의 가슴에 두려움을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콜록!”
그의 입에서 기침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강 병장이 그의 머리통을 쳤다.
“정신 놓고 다니지 마! 어서 빨리 자리 잡아!”
“…….”
김 상병은 자기가 왜 맞아야 하는지 크나큰 의문을 가졌다.
여유란 건, 상황에서 나온다. 그 어떤 사람도 눈앞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걸 보고 여유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전쟁터를 바로 옆에 두고 안심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 로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정·재계 모두 가리지 않고 말이다.
기재부 차관 정민도는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니, 왜 그러는데? 이러면 내가 욕먹잖아.”
그는 군인들에게 호통치고 있었다.
“기껏 내가 기획한 건데! 너희 계약할 때 하루 이틀 늦어지면 손해나는 거 안 배웠어? 이러면 손해잖아. 그깟 감염자를 왜 못 막는데?”
“죄송합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최 소령은 고개를 숙였다. 원래 오후에 서울로 돌아가는 게 기본 일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했다.
좀비 중에 뛰는 좀비의 난입이 발생한 거였다.
듣고 있던 최 소령은 이를 갈았다.
‘철책이 밀리고 심지어 팔이 뜯어져도 들어오는데 어떻게 하라고?’
사실, 걷는 감염자만 상대하였기에 저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
“후퇴해서 재정비하고 진격을 막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럼 빨리 처리해! 나 참. 오늘 스트레스나 풀어야겠네. 어제처럼 이상한 거 들어오면 모가지일 줄 알아!”
정민도의 시선이 역시 로비에서 서성이는 퍼플링에게로 향했다.
예상과는 다르지만, 대신, 즐길 시간은 늘었다.
최 소령은 그 모습에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개지랄을 떨어요. 애당초 우리 병력까지 차출해서 공백이 생기는데!’
본디, 저번 침입 사건은 지하 2층만 아니었더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자기들이 멋대로 부려 먹으면서 공백이 생겨 침입을 허용한 거다.
최 소령은 아무튼 다시 전진 부대 쪽에 통화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정민도는 바로 허달을 불렀다.
“나 참. 일정이 늦어졌으니, 알아서 데리고 와. 특히 도하연 있지? 비싼 척하지 말고 오라고 해.”
“아, 아니. 그전에 정 차관님 오늘 가는 거 아니었어요?”
언제나 끼 많던 허달은 공포에 질린 상태였다.
“오늘까지만 하고 가는 게…….”
“거 일정 좀 틀어질 수도 있지. 한두 번이야? 아무튼, 여자들 좀 잘 데리고 와.”
정민도는 그런 허달의 반응을 무시했다. 허달은 진땀을 흘리면서, 이도진을 가리켰다.
“그…근데 도하연 같은 경우에는 그 이도진이 호감을 느껴서 힘들 거 같습니다.”
“뭐? 그 이도진? IP그룹?”
정민도는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자기가 아무리 차관이지만, 상대는 굴지의 재벌가.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에 해당한다.
“아쉬운데.”
그의 시선이 자기 일행들과 같이 있는 도하연을 보았다. 그냥 기초화장만 한 건데도 그 미모는 가히 왜 천만 배우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상대가 이도진이다. 재벌 3세이자, 이 일정의 지원자.
심지어 서울에 가서도 추가적으로 서로 상부상조를 해야 하는 입장.
건드리기 힘든 상대다. 그는 허달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안 되나? 오늘만이라도? 그다음에 만나도 되잖아.”
“하연이한테 말은 해보겠습니다.”
허달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민도의 억지를 받아주고 처리하는 것도 자신이었다.
허달은 이윽고 휴대폰을 열심히 돌렸다. 퍼플링은 당연히 OK 사인을 보냈지만, 도하연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허달은 난감해했다.
“아무래도 안 할 거 같은데요. 여자는 그래도 많으니까 적당히 부르죠.”
“야. 허달. 장난 하냐?”
그때, 정민도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허달은 다시 식은땀을 흘렸다.
“네에?”
“누구 덕에 네가 MC도 보고 정부행사에서 잘 나가는데. 내 덕분 아니야? 근데 그냥 대강 넘어간다고? 야! 우리 기재부는 내가 말만 하면 애들이 자다가도 새벽에 달려와. 알아?”
정민도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그리고 거세게 압박을 넣었다.
“성의를 보이라고. 성의를. 요새 인기 좋다고 내 말 무시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허달이 고개를 숙였다. 분명 인기 MC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민도는 지금 도하연을 못 데려와서 탓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의. 못할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로 잘 충성하는지 보고 책망한 거다.
그런데 허달은 거기서 미달했다. 정민도는 혀를 차며 일어섰다.
“밥이나 먹어야겠네. 혼자 먹기 그런데….”
“제가 모시겠습니다.”
허달은 냉큼 움직였다. 이들이 지하 식당으로 사라졌다.
도하연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자기 옆에 이도진이 앉아 있었다.
로비에서 기다렸더니, 자연히 옆자리에 앉은 거다.
이도진은 커피 하나를 도하연에게 건네주었다.
“일정보다 늦어지네요. 원래 하루만 있다고 들었는데. 아버지한테 혼나겠어요.”
“원래 막상 일이란 게 변수가 발생해요. 저도 촬영 때, 감독님이 괴팍해서 이리저리 차질이 빚어진 적도 많으니까요.”
도하연은 순간, 자기 옆자리를 보았다. 동현과 태희가 실실 웃고 있었다.
‘아, 저 사람들 진짜….’
뭐가 좋은지 두 사람은 슬금슬금 도하연과 이도진 옆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도진은 몸을 돌려서 더 가까이 왔다.
“어때요? 서울로 가면 제가 또 도와드릴게요. 친구 분들도 다 이동시켜서요.”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너무 신세 지는 거 같아서.”
“아니에요. 대신, 식사나 한번 할까요? 이거 너무 직접적이어서 그런데.”
이도진은 멋쩍은 듯 웃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호감을 느낄 상이기는 하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네.’
도하연도 기본적으로 이도진을 괜찮게는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자기 마음속의 무언가가 꺼림칙할 뿐. 거기다가 계속 불안한 상황이 가득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4명의 여성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블링블링한! 퍼플링입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바로 퍼플링. 이들은 리더 지아를 앞세워 반갑게 인사했다.
이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아니에요. 제가 기획할 때, 정 차관님이 어찌나 불러달라고 하시는지. 정 차관님의 공이 크죠.”
리더 지아는 교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 바로 인사드려야 하는데 늦어졌어요. 죄송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아, 그러고 보니 연예인이니까 도하연씨랑 자주 만났나요?”
이도진의 말에 지아와 도하연이 시선을 마주쳤다.
도하연은 영화배우로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만나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통성명이지만.’
말 그대로 데면데면한 사이. 도하연이 입을 열기 전, 지아가 바로 팔짱을 끼었다.
“친해요. 예능에서도 봤고요.”
“하하, 네.”
도하연은 바로 배우로서 미소를 지었다.
‘안 친해도 친한 척하는 게 서로 보기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