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5
“박윤정!”
크게 소리치자, 멍한 눈빛에 잠시나마 생기가 돌아왔다.
“아…. 아….”
기침소리가 게속해서 났다. 지선숙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요새 신종 독감이라더니, 윤정이가 지금 걸린 거 같아요.”
“이야, 요새 독감은 머리까지 이상하게 만드나 보네요.”
실장의 비아냥에 지선숙은 바로 윤정을 끌고 뒤쪽으로 움직였다.
스태프들이 구급차를 부르고, 지선숙은 자신이 아끼는 애제자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뜨거워.’
불덩이처럼 뜨겁다. 확실히 고열로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했다.
“윤정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서…. 선생님?”
멍한 눈이 아주 잠깐, 생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오빠… 어디 있어?”
“윤정아?”
지선숙이 의아한 얼굴을 하는 그 순간이었다. 윤정이 몸을 급격하게 떨고 있었다.
“아…. 오빠가…. 오빠가…. 시발. 시발…. 시발년아!”
괴성과 함께 기괴하게 목을 꺾기 시작했다. 진선숙은 제자의 기괴한 모습에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이윽고, 기괴한 움직임이 멎고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지선숙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오랜 경험이 말해주었다. ‘저건’ 아니라고 말이다.
푸른 혈관이 돋아난 박윤정의 눈이 지선숙에게로 향했다.
“윤정아?”
“크아아악!”
그 순간, 박윤정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달려들었다.
“매니저 오빠가 잘 말했으면 좋겠다.”
도하연은 행여나 머리가 시트에 닿지 않게 몸을 기대었다.
‘슬슬 촬영할 때가 아닌가? 왜 이야기가 없지?’
매니저는 방금 사건을 항의하러 갔다. 덕분에 그녀는 밴에 혼자 남아 촬영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강장구 감독은 시간관념이 엄격한 감독이다. 1분이라도 늦으면 한소리를 하는 타입. 그런데 예상 시간보다 15분이나 늦어진다?
자연이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인 그녀는 바깥의 기척을 느꼈다.
“어?”
“하연아.”
눈앞에서 익숙한 갈색 재킷이 보였다. 누구겠는가. 바로 윤석훈이 눈앞에 있었다.
“하연아. 여기 있었구나? 콜록.”
“무슨 일이죠?”
“문 좀 열어줘. 바깥이 추워.”
윤석훈은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다. 잠긴 문을 계속해서 열려 했다.
“뭐 하세요? 그쪽 밴이 있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어린 도하연이라도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라도 팬이나 기자들이 근처에 있으면 딱 먹잇감 되기 좋은 상황이었다.
더불어 일방적인 윤석훈의 행동이었다. 얼마나 예의 없고, 무책임한가.
“갑자기 왜 이래요?”
“….야.”
짜증 섞인 목소리에 도하연의 미간이 좁혀질 때, 눈앞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도하연은 화들짝 놀랐다.
“뭐, 뭐하는 거예요?”
“시발년아! 선배가…. 말하는데! 왜 안 따라? 문 열어!”
도하연은 기가 막혀서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도 마침 근처에 있지 않은가.
신고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연예계 커리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이랬다간….’
주연배우 구속이나 경찰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영화는 흐지부지될게 뻔했다.
저 강압적 태도와 별개로 자신의 커리어였다.
‘내 인생을 걸었는데.’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모든 걸 던져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여기서 불미스럽게 영화가 무산되는 건, 그녀도 바라지 않았다.
‘근데 너무 상태가 이상한데….’
물론, 그녀도 성인이고 상대의 목적이 뭔지는 잘 안다.
그러기에는 너무 ‘폭력적’이었다. 윤석훈을 곁에서 본 느낌으로는 차라리 그냥 술로 꼬시는 타입일 거다. 근데 지금처럼 달려든다?
세 살배기 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비정상.
지금 윤석훈은 명백히 비정상이었다.
‘마약하나?’
합리적인 의심으로는 당연히 마약이었다. 연예계에서 마약이 그리 떨어진 존재도 아니고, 저런 급격한 흥분과 이상함은 분명히 마약일 확률이 높았다.
“저기요. 윤석훈 씨.”
“크아아악!”
점점 흥분하기 시작한 윤석훈이 유리문을 부술 기세로 두들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을 습격하는 괴물과 닮았다.
도하연은 다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결국, 최후의 수단인 경찰을 부르기로 했다.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나며 도하연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윤석훈 씨. 그만하지 않으면…. 경찰에 전화를…….”
그때였다. 도하연의 눈앞에서 차 유리에 금이 가는 게 보였다.
깨진 유리 위로 붉은 물감이 칠해졌다. 윤석훈이 손에 피가 나도록 치고 있는 거다.
“왜, 왜 그래요?”
도하연은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휴대폰을 떨구었다.
“아.”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은 순간이었다. 중요한 순간, 실수하며 위기를 초래하는 걸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뼈가 드러난 유리조각투성이의 손이 도하연의 앞으로 당도했다.
“꺄아아악!”
도하연의 비명이 나오고 순식간에 이 공간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했다.
“도하연! 도하연…! 개년아!”
흥분한 윤석훈의 몸이 차 유리 안으로 들어오는 그때였다.
도하연의 시선에서 두꺼운 장작 하나가 내려왔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윤석훈은 바닥에 쓰러졌다.
도하연의 얼굴에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직전이었다. 쓰러진 윤석훈의 뒤로 매니저의 얼굴이 보이자, 도하연은 가슴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빠!”
“하연아. 괜찮아?”
“네. 갑자기 윤석훈 씨가.”
도하연은 입을 열려다가 매니저의 옷차림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여기저기 찢겨 있고, 티셔츠는 늘어나 있었다.
“매니저 오빠. 무슨 일이에요?”
“도망치자. 하연아. 지금 스태프들이 사람을 습격하고 있어. 다들 미쳤어.”
“네?”
바로 이 순간, 도하연은 자신이 찍고 있는 영화의 대본이 생각났다.
제주도에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제주도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 시도는 막히고 고립된다. 그게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습격?’
하지만 확신한 건, 윤석훈과 박윤정. 두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거다.
대본처럼 될 수는 없었다. 매니저가 다급히 차를 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동이 걸리고, 차량이 움직일 때였다.
매니저는 무의식중에 옆을 바라보았다. 옆을 바라보는데 다른 의미는 없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습관이니까. 하지만 매니저는 순간, 고개를 돌린 것을 후회했다.
“가… 가…”
산송장처럼 피투성이로 자신을 쳐다보는 윤석훈이 보였다.
그 시선이 주는 공포감은 그가 연기한 그 어떤 연기보다 훌륭했다.
그렇기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매니저가 액셀을 밟는 순간과 윤석이 달려드는 순간이 맞물렸다.
“ᅟᅵᆫㅁㅇㄹㄴㅁ이ㅏ;롸ᅟᅵᆷㄴ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며 부서진 차 유리를 잡고 몸을 들이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차량이 급발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너무 급하게 출발한 탓일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린 차량은 얼마안가 펜션 비탈길에서 나무와 부딪치며 구르고 말았다.
비록 단 몇 바퀴지만, 차량이 완전히 정지하고 침묵만이 존재했다.
“아…. 아파….”
도하연은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아내었다. 거꾸로 된 차 안에서 기어 나온 그녀는 실신한 매니저를 보았다.
“오빠…. 살아있어요? 매니저 오빠?”
“크윽…. 윽…….”
작은 신음. 도하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허망한 두 눈으로 그녀는 자기들이 있던 펜션을 보았다.
“아.”
거기서 그녀는 깨달았다.
윤석훈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끄아아악!”
펜션을 관통하는 처절한 비명. 거기에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지금 이곳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빠른 판단.
생존에서 여느 사람을 막론하고 제일 중요한 건, 빠른 판단력과 행동이었다.
그런 면에서 신설동은 그 조건을 충분히 갖춘 편이었다.
3명의 감염체들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정면에서 점핑 니킥으로 한 명을 때려눕히고 말이다.
순전히 사람이라는 인식이기에 할 수 있던 행동.
하지만 점점 두려움이 들고 있었다.
‘제기랄. 무슨 맷집이지?’
상대는 아무리 때려도 다시 일어선다. 흡사 좀비처럼 말이다.
신설동은 덕준과 도망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룸메이트들이 이상해진 건, 둘째 치고 다행히 뛰지는 않았다.
근거리에서 민첩하게 달려들던 것과는 달랐다.
걷는 것보다는 빠른데, 달리는 것보다는 느리다.
‘저걸 경보라고 봐야 하나?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굳이 비교하자면 경보보다 약간 더 느릿하게 달린다. 옆에서 덕준은 울상을 지었다.
“설동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미친 거 같아요.”
머릿속에서 혼란과 이성이 서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설동은 아직 이성이 이겼기에 자기들 짐이 있는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덕준 씨. 짐 챙겨요!”
“네! 네!”
이들은 자기들이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게스트 하우스 특성상 사방에 통로가 있다. 설동은 그것이 불안했다.
‘문을 잠글까? 약이라도 했어? 왜 저러는데?’
우선 판타지적인 상상을 제외하면 마약이 제일 떠올랐다.
‘좀비…는 아니겠지?’
그 다음이 판타지적인 존재, 좀비였다.
하지만 마약일 확률로 무게 추는 넘어갔다. 그게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니까.
신설동과 덕준이 게스트 하우스 a 동으로 이동할 때였다. 옆쪽의 B동 건물에서 비명이 나는 게 아닌가.
창문과 함께 여러 사람이 엉키어 떨어졌다.
“이상해.”
그렇다. 이상한 장면이다. 더 놀라운 건, 이다음이었다.
떨어진 이들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아래쪽에 깔린 이를 제외한 이들이 기묘하게 목을 꺾었다. “ㅇㄴ러ᅟᅩᆷㄴㅇ;ᅟᅵᆯ;님어;ㅣ!”
마치 아까 자신들을 습격한 것처럼. 설동은 패닉이 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짐.
탈출.
머릿속에 오로지 이 두 가지만을 넣은 채, 게스트 하우스 A동 현관문을 열었다.
“아.”
그리고 보았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게스트 하우스의 아늑함 대신, 핏물이 바닥부터 묻어있다는 걸 말이다.
게스트 하우스 a동에는 8명의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먼저 본 남미 커플과 신설동, 덕준과 만선. 그리고 동철과 선하, 미선.
이상해진 동철, 선하, 만선을 제외한 인원은 5명. 그중 한 명인 미선이 눈앞에 있었다.
“좆됐네.”
신설동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잘라진 성기를 든 미선이 보였다.
제정신이 아니다. 신설동과 덕준은 그야말로 얼음이 되어 서 있었다.
“허…. 어…….”
미연의 입가에서는 조금씩, 하얀 김이 서리고 있었다.
메마른 피부와 푸른 혈관이 몸 곳곳에 보였다.
신설동의 눈에 이제까지 본, 그 괴상한 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