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55
설동은 단단히 꼬인 이불들을 타고 조금씩 1층으로 내려갔다.
‘유리창을 밟고 지탱하는 거야.’
퉁! 퉁!
유리창을 밟으며, 설동은 1층으로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이번에는 올라가는 거다.’
이제 이불 밧줄에 손을 잡고 설동은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예전 TV에 나온 레슬링 국가대표선수가 밧줄만 잡고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쉽지 않네.”
하지만 설동은 레슬링 국대가 아니었다. 바동대다가 베란다 창문을 발판 삼아서 간신히 올라오고 있었다.
“더럽게 힘드네.”
설동은 밧줄을 다시 거뒀다.
시계를 보자, 오후 5시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오래 수색은 못 하겠네.’
설동은 이제 다른 방 창문을 열었다. 옆집이 바로 보인다.
하지만 파쿠르 하는 것도 아니고 닫힌 창문을 열 수는 없었다.
설동은 옆집과 연결된 창문을 보았다. 그러다가 하나 좋은 걸 발견했다.
‘발판이 있네?’
지하 층으로 향하는 층에 물이 새지 않기 위해 받쳐놓은 일종의 간이지붕.
그 위로 창문이 보이는 게 아닌가.
“….오늘은 저기까지 할까?”
생존에 가장 중요한 건, 거점과 식량 확보.
‘어두워지기 전에 움직여라.’
역시나 생존하기 위해 위험성을 최대한 제거해야 했다.
기회가 되자, 설동은 도끼를 들고 조심히 발판 위에 섰다.
코앞에 보이는 창문. 설동은 숨을 골랐다.
‘감염자가 있으면 유도해야 해.’
“여보세요!”
설동은 다시 큰 소리를 내질렀다. 이미 차로 한바탕했지만, 헤드폰을 끼고 있던 감염자처럼, 뒤늦은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옆집인데. 아무도 없으면 들어갈 예정입니다. 대답만 하면 다른 데 갑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반응이 없다.
오히려 저 건넛집에서 유리가 깨지고 있었다.
“저런.”
설동은 웃으면서 도끼로 창문을 깨기 시작했다.
‘비슷한 구조인데?’
안을 보자 자기가 머무른 거점처럼,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조심히 안으로 진입했다.
“아무도 없어요?”
계속 소리치며 반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설동은 자신감 있게 나섰다.
‘다 도망갔나?’
피난민센터로 이동한 사람도 많았을 거다. 설동은 식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현관에 진입했다.
역시나 거실은 휑했다. 설동은 살짝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부엌을 뒤져 라면 한봉지와 냉동해놓은 고기를 발견했다.
“오래 못 가니, 이걸로 버티자.”
고기. 라면.
설동은 왠지 모르게 웃고 있었다. 홀로 남아 건조한 것만 먹다가 이런 호사스러운 요리가 나타나자, 미소가 지어졌던 거다.
게임에서 파밍을 하는 것처럼, 설동의 얼굴에 즐거움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냉장고로 향해서 문을 열자, 역시나 만인의 친구 김치와 어묵볶음이 보였다.
‘다 챙기고. 계란은 애매한데. 안 깨질라나?’
설동이 손을 뻗는 그 순간이었다. 그의 눈앞에 500mL짜리 긴 원통형 캔이 보였다.
“맥주다…….”
설동의 머릿속에 순간, 엄청난 ‘식’의 욕구가 솟아났다.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 그 어느 때보다 생각나는 맥주.
눈앞에 본 맥주에 설동은 박수를 쳤다. “그래! 이거지!”
따악, 캔을 따는 맑은소리와 함께 맥주의 향취가 올라오고 있었다.
설동의 목구멍에 피로를 씻을 청량감이 목을 통해 보급되고 있었다.
상쾌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햇빛이 설동의 눈에 보였다.
설동은 보일러가 나오는 뜨뜻한 방에서 창문에 햇빛이 새겨진 것을 보았다.
‘얼마 만이냐.’
설동은 기지개를 켰다. 방도 따뜻해서인지, 말 그대로 푹 잘 수 있었다.
설동은 곧장 화장실로 돌진해 온수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일단, 거점을 잡았기에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오늘 할 건, 주유소나 근처를 돌아보는 거야. 십시일반으로 식량을 모으면 당분간은 괜찮으니까.’
빠르게 거점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적어도 혼자서 한 달 정도는 버틸 식량과 기름 빵빵한 차.
‘주유소에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냥 공짜로 하면 돼.’
돈 걱정이 필요 없다는 게 장점 아닌 장점이었다.
어차피 감염자들이 주유소에서 열심히 영업을 할 확률이 높다.
‘편의점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무리겠지?’
털렸거나 감염자가 있을 확률이 너무 높다.
‘감염자만 있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수가 적다면 설동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었다.
슬슬 몸을 풀면서 설동은 자기 집 안방처럼 세탁기를 돌렸다.
‘…….내가 생각해도 남의 집에서 염치가 없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기 위해서는 뭐든지 이용해야 했다.
설동은 아침을 간단하게 라면으로 시작했다.
가볍고 빨리 식사를 때운 그는 본격적으로 탐험준비를 마쳤다.
휴대폰의 지도를 켜며 주변의 지리를 확인했다.
‘편의점이 주택가 가운데에 하나 있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하나.’
길이 사방으로 뚫려있어 도망치기는 편하지만 위험하기도 했다.
‘역시 차량을 이용해야겠어.’
감염자들을 낚아내려면 역시나 차량으로 끌어내는 게 제일이다.
차량의 편리함을 느끼며 설동은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이제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서 출입구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다른 게 없는지 확인한다.
‘없어. 이 근처는 일단 조용해.’
설동은 베란다를 닫고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기본적으로 가방과 도끼가 필수품이었다.
나가자마자, 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름은 3분의 1 정도 남았어. 편의점을 확인한 다음 주유소를 확인해야 해.’
설동은 봉고를 발진시켰다.
차량 몇 대가 도로 한가운데를 점유하긴 했지만, 설동에게는 문제가 안 되었다.
그냥 인도로 돌진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동차 경주하듯 도로와 인도를 번갈아가며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로 찾아들었다.
“두 블록 너머에 감염자들이 잔뜩 있네.”
12마리. 설동은 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자신에게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차량을 이용해서 죄다 끌어낼 생각이었다.
빵! 빵!
경적이 울리고 감염자들이 설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
“그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한 마리가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열 마리의 한 마리 정도는 무조건 뛰는구나.’
설동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뛰는 좀비와 봉고차의 대결.
쿵!
봉고가 흔들리면서, 눈앞에서 뛰는 좀비는 나가떨어졌다.
설동의 손이 경적을 계속 울렸다.
여기저기 유리창이 깨지고 감염자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 곳은 문만 두들기고 있었다.
사방이 감염자의 소굴. 설동은 살짝 소름 돋았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나 살인마의 징조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설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리가 깨져 기어오는 감염자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감염자를 말이다.
설동은 편의점까지 단숨에 움직였다.
‘털렸어.’
안타깝게도 편의점은 유리가 깨지고 감염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안에는 태풍이 휩쓴 것처럼 모든 걸 휩쓸었다.
‘다음으로 간다.’
굳이 여기서 용쓸 필요는 없다.
설동은 다음 편의점으로 차량을 움직였다.
뒤로는 여러 좀비가 애타게 떠나는 님을 붙잡으려 했다.
‘만약 차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들을 무시하고 다음 편의점에 도착했다.
‘사람이 있나? 물건으로 다 막았어.’
다음 끝 횡단보도 바로 옆이었는데, 감염자 4마리가 떠돌고 있었다.
설동은 볼 것도 없었다.
단숨에 액셀을 밟으며, 상대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기….”
느릿하게 움직이는 감염자들이 봉고를 봤지만 그게 끝이었다.
단숨에 두 마리가 치여 수m는 날아갔다.
“기이이!”
나머지 두 마리가 달려들었지만, 봉고가 그 정도에 무너질 리는 없었다.
설동이 바로 후진시키며 한 마리를 짓밟았다.
‘한 마리는….’
설동은 주변을 경계한 다음, 차에서 내렸다.
1:1.
‘제주도 때를 떠올리자.’
이 감염자가 달려드는 데에는 간격이 있다.
설동은 상대가 다가오는 것에 맞춰 앞으로 향했다.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설동은 자세를 낮췄다.
“기……. 그…….”
기묘한 감염자의 소리가 눈앞에 보인다. 설동은 자기가 생각한 거리가 들어온 순간, 도끼를 휘둘렀다.
동시에 감염자도 맹수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쩌억, 도끼가 정확히 머리통에 찍히고 감염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놈들은 결국 패턴이 정해져 있어. 두 팔을 벌리고 덤벼든다.’
설동은 도끼를 뽑아들고, 사방이 막힌 편의점으로 다가갔다.
거칠게 문을 두들겼다.
“안에 사람 있어요?”
“…….”
인기척이 없다. 사방을 막았다면, 사람이 안에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저기요. 사람 있어요?”
설동은 순간, 마음속으로 아무런 대답이 없기를 바랐다.
‘차라리 다 죽어있으면 편한데…. 세상이 이러니까 별생각이 다 드네.’
너무하다시피 한 이기적인 생각. 법과 질서가 무너진 세상. 최소한의 마음이라도 간직하고 싶어도 자기 목숨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설동의 마음속에 왠지 모를 안심이 가득했다.
도끼가 움직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설동이 휴지 더미를 치웠다. 그 안에는 손목을 그은 시체가 보였다.
“다행이…. 내가 뭔 소리 하는 거야.”
설동은 스스로 놀랐다. 남이 죽어 있는 걸 보고 그렇게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사는 게 우선이야.’
사람으로서 자신의 행동이 양심에 찔린다. 하지만 생존이 우선이라고 그는 이 감정을 넘겼다.
‘휴지…. 랑 물도 챙길까?’
여유가 있을 때 잔뜩 챙기는 게 낫다. 설동은 바깥으로 물병들과 휴지를 바깥에 쌓았다.
편의점은 반 정도 없지만, 그거만 충분하다.
‘통조림.’
가장 우선시하는 건, 통조림. 참치 캔, 스팸을 비롯한 오랜 기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우선으로 챙겼다.
그다음 레토르트 식품들. 설동은 식수들을 이것저것 챙기다가 문득 맥주에 시선을 보냈다.
동시에 어제 막은 맥주의 청량감이 전신을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