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57
“저도 지금 서울로 가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제발요! 우리 버리지 마세요!”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설동의 마음속이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불쌍하다.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여력이 없어.’
여유가 되면 구해주는 건, 상관없다. 근데 그는 여유가 없다.
“최소한 식량 확보와 차량이라도 구해보세요. 이 근처 감염자들이 다시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설동은 그들을 외면했다.
사실, 이대로 떠나면 살기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다.
‘나처럼 체질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차량이 있었으면 진작 도망갔겠지.’
하지만 이거 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설동의 차량이 다시 움직였다.
차량을 붙잡던 이가 넘어지고 있었다.
“아악!”
“제발요!”
애타게 애원하는 이들을 두고 설동은 달렸다. 울부짖고 구원을 요청하는 이들의 모습에 씁쓸함이 가득한 건, 당연했다.
‘차라리 욕이나 하고 난동을 부렸으면….’
설동의 마음이 훨씬 편했을 거다. 그런 놈들이라고 무시하고 가면 되니까.
하지만 저렇게 애원하는 상대들에게 설동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후우.”
설동의 봉고가 주유소로 향했다. 주유 복을 입은 감염자들이 서성였다.
“니들이 백번 더 편하지.”
설동이 액셀을 밟았다.
단숨에 한 마리가 날아가고, 감염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후진으로 다시 한 마리. 남은 두 마리 역시, 차량만 두들기다가 그대로 다리미에 다려진 옷처럼 밀려 버렸다.
“좋아.”
설동은 도끼를 들고 내렸다.
이제 주유기를 들고 봉고에 꽂았다. 아무도 없는 곳. 설동은 아까 지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경 쓰지 말자.’
그들도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설동은 그야말로 꽉꽉 채운 주유 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걱정 없겠어.’
생존을 위해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 그의 준비는 사실상 다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돌아가서 상황을 보는 거야. 서울로 가는 도로에서부터 차분히 확인하고.’
머릿속에 계획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중요했다. 설동은 하나하나 그 과제를 완수하고 있었다.
‘식량, 이동수단, 거점.’
혹시라도 이동 중에 피치 못하게 되돌아오더라도 거점에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설동은 차를 몰아, 자신의 거점에 도착했다.
‘짐을 모두 다 옮기지 말자. 어차피 차에 싣고 가야 하니까.’
냉동식품이라든가, 휴지 같은 거나 조금 올리고 딱히 보관이 쉬운 건조식품이나 레토르트 식품군은 그대로 두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고 다시 문을 닫았다.
‘일단 1차 목표는 완수.’
설동은 시간을 보았다. 오후 3시.
점심도 안 먹은 그에게 포상이 필요했다. 오늘 일정은 일단, 이걸로 마쳐야 했다.
‘내일은 조금 더 멀리 가는 길을 살펴보자.’
도로 상태만 멀쩡하면 그 상태로 서울로 향한다.
설동은 그대로 나가면서 해동해 놓은 고기를 보았다.
프라이팬으로 구워도 좋지만 에어프라이기가 있지 않은가.
‘허브솔트가 없나?’
아쉽게도 풍미를 더 해줄 허브 솔트가 없기에 설동은 그냥 후추를 뿌렸다.
에어 프라이기로 20분간 앞뒤로 한 번씩 구워내자, 맛깔난 냄새가 확 퍼졌다.
‘쌈장도 누가 안 가져가고.’
다행히 쌈장은 그대로였다. 다른 게 아니라 위급이 대피상황에 누가 쌈장을 가져가겠는가.
설동은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가위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따뜻한 흰 쌀밥에서 모락모락 한 김이 올라오며 설동의 코로 향했다.
절로 군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입안에 고기를 넣었다.
약간 바삭하게 익혀진 고기의 식감이 이빨에 부딪히며 쾌감을 선사했다.
“후우!”
뜨거운 기분이 남아 입안에서 탱탱 볼처럼 튀던 고기가 마침내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설동의 목 너머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지고 그 맛에 몸이 떨렸다.
“크으! 고기는 진짜 신의 축복이다. 단백질!”
게스트 하우스 이후로 먹지 못했던, 고기의 맛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설동은 다시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일어섰다.
“맥주!”
그렇다. 이 자리에 술이 빠지면 안 된다.
냉동실에 급속냉동 중인 맥주 하나를 꺼내었다.
살짝 미지근하지만 뭐 어떻겠는가. 설동은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와….”
맥주까지 들이켜자, 세상만사 편해진 기분이었다.
‘천국이다.’
하루의 일과가 지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동이 배시시 웃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설동은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밖에서 갑자기 거친 차량의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차?”
설동은 베란다로 향했다. 그 순간, 감염자 하나가 승용차 하나에 치여 바닥을 나뒹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두 명의 남녀가 내렸다.
“살았다. 여기는 별로 없나 봐!”
“자기야. 나 배고파. 먹을 거 없어?”
설동은 커튼 뒤로 숨었다. 괜히 얼굴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불길했다. “야! 저 차 안에 뭐야? 물건인가?”
설동의 심장이 덜컥거렸다. 그가 열심히 모은 식량 대다수가 봉고에 있었다.
‘안 돼.’
베란다를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자, 커플이 봉고차를 둘러보고 있었다.
“저거 음식 아니야?”
“꺼내 먹을까? 근데 주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설동은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가 도끼를 꺼내 들었다.
남성은 창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어차피 아무도 없겠지! 부셔서 우리가 먹자! 우와! 진짜 새옹지마라더니…. 죽을 뻔하고 이렇게 식량을 찾다니.”
이들이 창문을 두들길 때였다.
“남의 식량에 손대지 마!”
설동이 드디어 베란다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생존을 위한 준비는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가 돼가고 있었다.
설동은 분명 차량, 식량, 거점이라는 3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울로 가기 위한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자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외부인이 나타나다니.’
약탈.
드디어 베란다에 모습을 드러낸 설동의 얼굴은 복잡했다.
이 근방에 아무도 없기에 안심했지만, 누군가는 자동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희박한 확률인데. 내가 너무 안심했어.’
설동은 안이한 판단을 후회했다. 그래도 해야 할 건, 명확하다.
도끼를 든 채로 그들을 겨누었다.
“손대지 마.”
설동의 등장에 커플은 깜짝 놀라 했다.
“우와! 사람이야! 덕준아! 우리 살았어!”
여성은 남자를 보며 기뻐했다.
덕준이라 불리는 남자는 박수를 쳤다.
“이야 반갑네! 진희야. 가자!”
두 남녀는 이내 설동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설동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딜 와?”
덕준은 설동을 쳐다보다가 도끼에 시선을 돌렸다.
“이봐요! 이왕 같이 이렇게 된 거 힘을 합치죠?”
“싫다.”
설동이 거절하자, 남자는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래 봤자, 문 앞에 선 정도였다.
“아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사람이 많으면 더 좋으니까요. 감염자가 언제 올지 몰라요. 사람 한 번 구해주소.”
“알아서 생존해. 나는 나대로 생존할 테니까.”
설동은 차갑게 거절했다. 덕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덕준은 그러다가 다시 미소 지었다.
“지금 인천이 개판 쳐서 군대도 빠지는 거 알아? 피난민센터 빼고는 안전지대가 없다고? 사람이 많으면….”
“필요 없어.”
설동은 초지일관이었다. 커플의 표정이 이제는 확연히 일그러졌다.
진희가 달려왔다.
“아니, 이봐요! 너무 하시네! 우리는 지금 영종도에서 간신히 도망쳤다고요. 사람이 같이 도와주면 안 돼요?”
“안 돼. 스스로 해결해라.”
이들은 이제 화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웃기네! 진짜. 자기가 뭐 잘나서!”
“진짜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도움 하나를 안 주려고 하네.”
두 커플의 욕설에도 설동은 베란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목숨 걸고 한 거다. 너희도 알아서 찾아. 하지만 내 물건을 건드리면, 바로 죽인다. 그것만 알아둬.”
“참 내. 더럽고 치사해서 안 부탁한다.”
커플은 침을 뱉으며 떠나갔다.
설동은 그들이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약탈.
지금 설동이 가장 경계하는 거였다.
‘못해도 내일까지 버티면 돼.’
내일은 어차피 도로로 나갈 거다.
‘여유 있게 탐색하려 했더니.’
이러면 차라리 그냥 가버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저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안 하면 좋을 텐데.’
차라리 차를 타고 가줬으면 하지만 저들은 가지 않았다.
아니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거다. 이 근방에 감염자가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내가 적어도 보이는 건 처리했으니까.’
이들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설동은 그들을 예의주시했다.
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욕설이 여기까지 들리고 있었다.
“시발! 문 좀 열고 다녀라!”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커플은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영역부터는 설동도 장담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야! 튀어!”
커플은 다급하게 뛰었다. 설동의 시선에도 감염자 한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나오는 게 보였다.
“…….”
이들은 다시 자동차 쪽으로 달렸다.
설동의 마음? 단 하나였다.
‘제발 가라.’
자동차를 타고 가주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가지 않았다.
덕준은 숨을 헐떡이다 설동과 눈을 마주쳤다.
“야! 사람이 목숨이 위험한데! 편해?”
“나도 싸우다가 차지한 거야. 너희도 알아서 해라.”
“허억….”
이들은 숨을 헐떡이다가 다시 설동을 노려보았다.
곧, 둘이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다시 덕준이 설동에게 다가왔다.
“그러면 먹을 거 좀 주면 안 되나? 배가 고파 돌아가시겠어.”
“내가 왜.”
“그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설동은 기가 찼다. 자신이 서울로 가기 위한 군자금이나 다름없는 거다.
남에게 공짜로 헌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설동은 마음속으로 불안감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
‘저놈들이 극단적으로 변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