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0
도하연의 시선이 이도진에게로 향했다. 이도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습니다. 피난민 센터는 마포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고마워요.”
도하연은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대략적인 브리핑이 끝나고, 사람들은 웅성대었다.
“마포구에 내려야 해?”
“그런데 한강 근처에 있는 곳은 다 갈 수 있는데 버틸까?”
사람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하연이 다시 대령에게 다가갔다.
“그냥 군대에서 헬기 같은 거로 중랑구까지 갈 수 없나요?”
모두이 시선이 다시 도하연에게 쏠렸다. 중령은 난색을 보였다.
“그렇지만 일일이 운용하려면 인력소모도 심하고….”
“연료나 경비등은 여기 있는 분들에게 받아내는 건 어때요? 다들 한 자리씩 하잖아요.”
도하연이 능글맞게 웃자, 몇몇 이들이 일어섰다. 거기에는 호텔 지하에서 연회를 벌이는 이도 있었다.
최미옥. 죽은 최선자의 동생이자, 유례산업의 사장, 그녀는 눈깔을 부릅떴다.
“이게 어디서 우리를 팔아?”
“같이 갈 거 아니에요? 중랑구가 그나마 체계가 더 잡혔다잖아요.”
도하연은 나이에 안 어울릴 정도로 뻔뻔했다. 이게 연기 중이라고 착각할 만큼, 얄밉게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를 이용하려 그래?”
“그러면 마포구에서 내리시면 되겠네요. 저희는 그럼 최대한 중랑구 쪽으로 붙어서 내릴게요.”
“그게 가능할 거 같아?”
최미옥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도하연은 다시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미소로 응대했다.
“제주도에서도 살아왔는데요. 뭘.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굳이 고생 안 하고 갈 수 있어요.”
“웃기지 마! 이게 완전히 미쳤네. 어디서 저런 게!”
“저한테 그런 소리 해도 돼요?”
도하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자, 최미옥의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지금 니 처지를 몰라? 대체 무슨 소리를….”
“그 호텔에서의 일. 그냥 다 풀 건데요. 안전하게 서울에 도착하고 사업을 진행하신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이게 지금 누구를 협박해?”
최미옥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곧, 미간을 좁혔다.
썩어도 기업의 대표. 사업적 감각이 없지 않다. 젊은 애들과 이 시국에 호텔에서 진탕 놀았다는 게 퍼지면 정부 측에서 사업 건에서 잘릴 수도 있다.
“아주 영악한 년이야.”
그러자 정지희와 같이 있던 중년이 일어섰다.
“어차피 사업이고 뭐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거 돈 지불하고 그나마 안전한데 가는 게 낫지. 안 그래요? 나쁘지 않잖아?”
최미옥은 그를 보았다.
“좋습니다. 신 사장님 말대로네요. 저년 말대로 하는 게 기분이 나쁘지만, 좋아. 우리도 안전한 데 가야지.”
결국은 도하연의 말대로였다. 몇몇 돈 많은 이들이 연료나 기타 비용을 지원해주고 여기 있는 인원이 움직이기로 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태희는 도하연의 볼을 건드렸다.
“아주 어린 게 배짱도 강하네. 그 사람들 다들 높은 사람들 아니었어? 잘도 그러네.”
“살기 위해서 뭔들 못하겠어요. 아…. 나도 이런 사람이 아닌데. 사회가 절 이렇게 만들었어요.”
너스레를 떠는 이 스무 살짜리가 귀여웠던지, 태희는 아주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근데, 호텔에서의 일이 뭐야? 역시 접대 건이야?”
“비슷해요. 조금 더 추악하지만요.”
태희는 놀라서 도하연을 보았다. 이 스무살 짜리 배우는 손을 저었다.
“보자마자 도망쳤어요. 증거가 없는 게 아쉽지만, 소문으로도 큰 타격을 줄 걸요? 군인들도 봤고, 여기저기서 보던 눈이 많아서 본인들도 쉽사리 거짓말이라고 못할 거예요.”
“하긴, 사업도 해야지. 이렇게 큰 전쟁 같은 게 나면, 상대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아지잖아.”
“그러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도하연은 냉정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 아직도 사업이 어쩌고 그걸 믿고 있어요. 서울을 보면 유통이나 물량을 제대로 소화할 곳이 몇 군데나 존재할까요? 상황은 더 악화할 수도 있는데.”
“하연이 너, 보기보다 시야가 넓다?”
태희의 말에 다시 동생 모드로 달라붙은 하연이었다.
“요 몇 주간 생각이 비관적으로 변했어요. 이라면 안 되는데. 근데 현실은 너무 무섭고….”
마치 아기처럼 태희의 품에 더 파고든 하연이었다.
헬기는 그러는 사이 중랑구에 진입하고 있었다. 중랑천을 따라, 이들은 피난민 센터로 보이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유상인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냥 이건 평소와 같아. 현역병 시절 기억을 떠올리듯 말이다.
그의 옆에는 강민호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유상인은 그를 깨웠다.
“이봐요. 헬기 하나가 내려와요. 반대편 건물에요.”
“음냐. 아…. 그러네. 상인 씨. 이거 그냥 보고하면 되죠?”
무전기를 든 강민호는 본부에 바로 보고했다. 그리고는 혀를 찼다.
“헬기로 온다라…. 군 관계자인가?”
“군용 헬기로 민간인 구출인가 보죠.”
상인은 다시 전방을 보고 있었다. 강민호는 그러다가 넌지시 그에게 말했다.
“어때? 우리 팸에 들어올래?”
“팸이요? 그건 또 뭐에요?”
“요새 아저씨들이 뭉쳐서 행패 부리잖아. 지들이 반장마크 달고 다른 사람 부리고. 개 같지 않아?”
“관심 없어요.”
상인은 고개를 저었고, 강민호는 한 발 물러섰다.
“잘 생각해봐. 분명 도움이 된다니까? 뭉치는 게 중요해.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그 아저씨 패거리만 없으면 내가 반장을 할 텐데. 아쉬워.”
강민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유상인은 그걸 무시한 채, 연이어 오는 헬기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대량으로 사람을 구했나? 갑자기? 그동안 없다가? 군 관계자나 아니면 돈이라도 많은 사람일지도.’
유상인의 판단은 정확했다. 반대편 피난민 센터에 헬기들이 하나둘 착륙하고 있었다.
‘설동이는 잘 오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저기에 자신의 형제이자 친구 설동이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헬기는 온종일 사람들을 태워 내렸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설동은 없었다.
6. 중랑구 피난민 센터
태희가 꿀잠을 자던 동현을 깨웠다.
“동현아. 도착했어! 저거 뭐야? 둑처럼 뭐 세운 거야?”
태희의 두 눈에 체육관과 건물 주변에 2m 넘게 쌓인 방어선이 보였다.
단순하게 군인이 지키는 게 아니었다.
콘크리트를 바른 방어벽 주변으로 20명 정도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군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말이다. 헬기는 밑에서 수신호를 보내는 군인을 따라 안전하게 착지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중랑구 피난민 센터. 그들이 머무를 안전구역이 눈앞에 보였다.
제일 첫 번째로 내린 이들은 군인의 안내로 드디어 중랑구 피난민 센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도하연은 도착하자 매니저와 같이 얼싸안았다.
“도착이다!”
고요하지만 단단하다. 이 피난민 센터의 진지를 본 순간, 그녀는 안심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사이를 두고 나누어진 두 개의 공간. 체육관과 8층짜리 건물과 상가 건물 하나를 두르고 있었다.
도하연이 온 곳은 8층 건물.
태희가 눈을 비비적거리는 남자친구 동현을 데리고 나오고 이들은 곧, 이곳의 책임자인 박 대령을 만날 수 있었다.
“사무실이 대부분이라 몇 명씩 거기로 들어가야 합니다. 대부분 건물이 다 찼거든요.”
태희는 건물 2층을 주목했다.
“동현아. 저기가 낫지?”
“뭐가 됐든 1층보다는 나아.”
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2층 중에 자리가 난 곳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2층에는 자리가 없다고 들었다.
안내해주는 군인은 상층을 권유했다.
“위층에 자리가 많습니다. 3층에는 딱 한 자리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3층의 자리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한 이들이 눈앞에 굳게 닫힌 문들이 보였다.
삭막한 곳.
도하연일행이 그렇게 느낄 때였다.
“어? 연예인이다.”
작은 소년이 복도 한쪽에서 그녀를 가리켰다.
“와! 도하연이다! 도하연!”
그 소리에 문이 하나둘 열렸다. 거기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평범한 연예인이 나타난 것처럼 도하연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에 도하연 씨도 왔어?”
“와, 진짜 예쁘다.”
“언니 사인 가능해요?”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유명세. 도하연은 멋쩍은 듯 웃다가 펜과 종이가 오자마자 프로의 정신으로 사인을 해주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공간. 그만큼 이곳이 분위기가 괜찮다는 증거였다.
‘그때 호텔 그 인간들하고 비교되네.’
도하연은 인사를 열심히 하며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괜찮네.”
그들이 들어선 방은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
문 옆에 화장실이 있고, 책상들도 다 치워진 공간.
도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게 낫네요. 호텔보다야 안 좋지만.”
매니저는 주변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안전하기만 하다면, 약간 좁은 정도야. 어차피 4명 정도야 충분히 자고도 남잖아.”
이들은 일다 창문부터 살폈다.
동현은 바깥 창문으로 아래를 살펴보았다. 밑의 층으로 뛰기에는 두려움이 드는 높이.
“그래도 최소한 2층 아래로 끈만 늘어트리면 착지할 수 있겠어. 일단 이불이 필요한데. 매니저 형씨. 같이 보급관이나 찾아가죠.”
“네. 분명히 거기서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자연스레 바깥을 나가려 하자, 도하연은 의문을 품었다.
“아직 어떤 말도 하지 않지 않았어요?”
매니저가 피식 웃었다.
“척하면 척이지.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알아.”
“그렇구나.”
“지금 여기에 모포도 없잖아. 이런 건 다 보급해준다. 알겠니?”
매니저는 동현과 같이 바깥으로 향했다. 남은 두 사람, 태희와 하연은 이 사무실 정리부터 시작했다.
“청소기가 어디 있나….”
말 그대로 물건만 치워 먼지가 날리는 더러운 곳이다.
두 사람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주변을 정리할 때였다.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하연은 매니저랑 동현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문을 두드릴 리는 없으니까.’
도하연이 문 앞으로 갔다.
“누구세요?”
“거기…. 하연이 있나요?”
문 밖에서 어디선가 들어온 목소리가 들렸다.
도하연은 문을 다급하게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단아한 느낌의 미녀가 보였다.
“아현아!”
도하연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녀의 연예계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조아현.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이 드디어 뭔지 깨달은 도하연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친구와의 만남을 기뻐했다.
도하연은 아직도 기억한다. 아직 단역이었을 무렵. 한두 줄의 대사만 죽어라 외우던 시절을 말이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매니저와 같이 무작정 대사 하나 하기 위해 엑스트라부터 시작했던 일을 말이다.
대책 없는 대기시간. 한두 마디를 하기 위해 온종일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쓸쓸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다가온 게 조아현이었다.
[심심하지? 나도 심심한데.]환하게 웃는 조아현을 보며, 도하연은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진짜, 저랑 같이 배우 생활 밑에서부터 했거든요.”
청소를 대강 마치고 조아현과 그의 남자친구를 만난 도하연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그때 기억나? 우리가 나중에 인기가 생기니까. 엄동설한에 대기시키던 감독이 자기가 키웠다고 방송에서 그러던 거? 어이가 없었어.”
“진짜 힘든 시절이었지. 그래도 너랑 이야기하니까 시간은 잘 가더라.”
조아현은 자기가 가지고 온 이온 음료와 과자를 풀었다.
“난 중랑구 근처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사람을 물어뜯더라? 놀라서 매니저와 같이 도망쳤지. 근데 매니저도 도중에….”
쓸쓸해 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 언니가 나 보호한다고 대신 물렸거든. 근데 난 다리를 다치고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 사람이 나타난 거야.”
조아현은 평범한 인상의 남성을 가리켰다.
“소개할게요. 자랑스러운 내 남친! 어성준입니다. 아주, 용감해요.”
“우와. 구해준 계기로 사귄 거야? 낭만적인데?”
도하연은 어성준을 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어성준은 부끄러워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조아현 씨가 있는 거예요.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구했어요.”
“멋있네요.”
도하연은 부러워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태희는 흐뭇하게 웃었다.
“원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 감정이 잘 통하지. 이야, 친구 분도 남자친구가 있으니 우리 하연이만 생기면 되네.”
태희의 어시스트에 조아현의 얼굴에 장난기가 서렸다.
“아니, 이 기집애가 아직도 남자친구가 없어? 어떻게 된 거야? 너 구하려는 남자가 한 트럭 아니야?”
“거기에 더러운 애들도 한 트럭.”
도하연은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물론, 이러면 분위기가 나빠지기에 그녀는 바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은 분명히 있어. 마음이 가는 사람도….”
“누군데. 우리 하연이 마음을 뺏은 사람!”
“정확히 모르겠어. 살았으면 좋겠는데.”
도하연은 역시나 게스트 하우스 시절의 남자를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 자꾸 머릿속에 남고 있었다.
태희는 그런 도하연의 어깨를 잡았다.
“한 명 더 있어요. 이도진 씨 알죠? 재벌 3세. 그 사람도 하연이한테 호감이 있어요.”
“진짜요? 그 재벌 3세가요? 대단하다. 너.”
아현이 그녀를 흔들고 도하연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분위기일까?
“아니, 그 사람도 일단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일단 살아야 하니까.”
“여기는 괜찮아. 주변 정리를 어느 정도 해놔서 위험이 적어. 이제 우리 하연이도 불침번에다가 열심히 곡괭이질 해야지?”
아현은 남자친구에게 기대며 기뻐했다.
도하연은 그 즐거운 광경에 살짝 부러움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