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2
이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는 규칙이 중요한 듯하니, 잘 지켜야죠. 최 사장님처럼 되지 않으려고요.”
“네. 여기서 잘 버텨보죠.”
서로 웃으며 헤어진 그때였다. 도하연의 예리한 감각에 무언가 불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저주하는 듯한 시선.
도하연은 고개를 돌렸다.
이 수많은 사람 중에 그 시선을 찾는 건 어려웠다.
‘내가 잘못 봤나?’
식판을 가지고 다시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그 시선이 불쾌했다.
그걸 모르는 조아현은 그녀를 툭툭 건드렸다.
“하연아. 저 사람이? 이도진이? 잘생겼다.”
“아, 좋은 사람이야. 잘 대해주고.”
“사귀지? 호감 있는 게 그냥 보인다.”
“얘는. 아직 몰라.”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좋은 사람인데….”
“왜? 생각해둔 사람이 있나 봐?”
도하연은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 년아! 장난쳐?”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도하연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정민도가 씩씩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저건, 퍼플링의 지아?’
정민도가 흥분한 대상은 바로 지아였다.
“내가 우스워? 이제 와서 내가 우스우냐고? 이게 지금 장난쳐?”
정민도가 무섭게 지아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불안한 분위기가 도하연의 가슴을 울렸다.
‘기침이라도 하면…’
그녀가 불안 불안해 할 때였다.
정민도는 지아를 발로 차며 달려들었다.
도하연이 일어서고 동현과 매니저가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 피난민센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거 잡아!”
“이번에 온 놈들 병신이 왜 이리 많아?”
곧, 신민기를 앞세운 이들이 정민도를 걷어차며 지아를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정민도는 최미옥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니들 죽고 싶어?”
하지만 대답 대신,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정민도는 삽시간에 바닥에 쓰러지고 사람들은 그를 구타했다.
엄청난 단결력으로 빠르게 사건을 정리되었다.
정민도는 재차 두들겨 맞고서 신음하고 있었다.
도하연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로 정민도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콜록.”
기침 소리가 귀에 들리고 도하연은 앉았던 의자를 손에 잡았다.
그녀는 이미 연예인으로서의 지위는 버렸다. 제주도를 겪으면서 장착된 생존 회로가 작동 중이다.
“비켜요.”
사람들을 헤치고 이제 발작을 일으키는 정민도를 향해 도하연이 의자를 내리쳤다.
사람들이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도진 앞에서 망설이던 그녀가 아니었다. 연예인 도하연이 아니라 생존자 도하연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
7. 규율
도하연의 이미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배우 그 자체였다.
밑바닥에서 성장해서 어린 나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 cf를 봐도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유명했다.
그러면서 계속 발전하는 연기까지.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어디를 가나 활력소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장난 잘 치는 사랑스러운 여동생. 혹자가 평론 중에 붙인 이미지다.
그런 도하연이 왔을 때, 사람들은 활력소가 왔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도하연이 왔대!”
“진짜? 웬일이야. 여기로 어떻게 온 거야?”
“드디어 실물을 보는구나! 지금 고백하면 가능하냐?”
“머저리 쉑!”
단순하게 생각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 스크린 속 도하연은 이곳에 없었다.
빡, 의자가 휘둘러지고 정민도는 부들거렸다.
“케엑! 커억!”
몸을 괴상하게 비틀며 혈관이 돋는 순간, 도하연의 가차 없는 스윙이 시작되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을 매섭게 의자로 후려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심지어 저 도하연이 말이다.
“우와…. 대체 저게 뭐야?”
“화끈하네.”
“내가 알던 도하연이 아니야.”
이들은 다시 시선을 정민도에게 향했다. 메마른 피부, 푸른 혈관.
감염자라는 게 드러났다.
“으헉!”
기겁하며 물러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동현과 매니저가 뛰쳐나왔다.
정민도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도하연은 의자를 내던졌다.
“감염자니까. 처리해주세요. 저 의자도 불태워야겠네요.”
안심한 듯 웃는 얼굴은 이곳에 사람들에게 신선하다 못해 말도 못할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아는 도하연은 이미 제주도에서 포기한 지 오래였다.
도하연은 그 길로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고 있었다.
물론, 군인들이 닥쳐와 바로 검염소로 향했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다.
이도진, 이 재벌 3세도 놀란 얼굴이었다. 최미옥이나 다른 고위층들은 그런 도하연을 보고 혀를 찼다.
“아주, 아주…. 되바라졌어. 어떻게 저렇게 과격하지?”
“속꺼풀이 벗겨지니 무섭네. 저런 성격이었어?”
“저런 여자는 별로지.”
그들이 한마디씩 하고 혀를 차고 있었다. 이도진은 그런 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대단한데?”
왠지 모르게 호감이 더 생긴 이도진이었다.
중랑구 피난민 센터의 하루는 규칙적이었다. 오전 7시 30분. 불침번들이 각 방을 깨운다.
“기상 시간입니다. 일어나세요.”
물론, 더 자도 된다. 진짜 군대는 아니고 민간인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일정에 맞춰야 하기에 모두는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도하연을 비롯한 이들도 기상해서 이부자리를 갰다.
“으아! 피곤해. 근데 이불을 곡 그렇게 개야 해요?”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매우 익숙한 매니저와 동현을 따라 한 거다.
두 사람은 이전보다 부쩍 친해진 듯했다.
“매니저 형씨, 각 오지게 잘 잡네.”
“군대 시절 생각나네요. 크하하하.”
이 두 사람은 척척 각을 잡고 태희와 도하연을 이끌었다.
“자자, 하연아. 일할 때를 떠올려. 지금 스케줄 맞춰서 가야지. 8시에 식사야. 빨리 준비해. 머리도 감고.”
“샴푸는 있고요?”
“내가 어제 사놨다.”
“우와. 진짜 오빠 센스가….”
도하연이 엄지를 치켜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최근에 연결한 흔적이 보였다.
대강 머리를 감고 세안을 한 그녀가 나오고 8시 10분이 되고 지하로 향했다.
조촐한 아침으로 비엔나와 미역국이 있었다.
당연히 여기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다. 최미옥도 눈치를 보고, 다른 이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었다.
9시가 되자,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 처음 온 도하연 일행은 군 간부를 따라 1층 회의실로 향했다.
거기에는 최미옥이나 다른 고위층들도 있었다.
이들은 군 간부에게 항의 중이었다.
“아니, 우리가 왜 일을 해요? 여기 쉬는 곳 아니었어요? 이봐요. 더 윗사람 불러와요. 대화가 안 통하네.”
“죄송합니다. 이건 피난민 센터에서 다른 사람들과 합의한 거라서….”
군인은 난처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이들을 빼주거나 하지 않았다.
이건 신기한 장면이었다.
도하연 일행은 의아해했다.
특히나 도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희에게 속삭였다.
“재수 없긴 해도 저 사람들 다들 한가닥 하지 않아요? 저게 되나 모르겠네요. 저도 그냥 머무르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도 신기해. 저 사람들 얼굴 봐봐. 다들 황당해.”
정말로 이곳의 분위기는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저 황당하고 기가 막힌 표정들을.
군인도 난감해 하면서도 일단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이나 여러 가지를 따져서 일을 시키니까 일단 진지 구축하는 일에 가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일은 이곳의 협약이어서 말입니다.”
사태가 이 정도 되자, 고위층들도 슬슬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군인에게 어떻게 일하는지 물어보는 이도진과 몇몇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작업복을 입은 신민기와 몇몇이 들어왔다.
“거, 신참들 빨리빨리 오세요. 뭐 하세요? 지금.”
“야! 신민기!”
최미옥과 다른 이들이 그에게 달려갔다.
“TV에 나오지 않고 싶어?”
“저게 지금 완장 차고 지랄이야?”
하지만 신민기의 손가락은 그저 바깥을 향할 뿐이었다.
“바깥에 진지를 넓히고 있으니까 하나씩 하면 돼요. 애새끼도 할 만큼 쉬워요.”
“야, 우리 무시….”
그 순간이었다. 신민기가 항의하던 사람의 입술을 부여잡았다.
“야! 열 받게 하지 마라. 지금, 여기가 너희 띵까띵까 노는 곳으로 보여? 우리가 존나 열심히 보수하고 개척하며 만들었어. 근데 나중에 들어온 주제에 뭐? 일을 안 해? 그럼 꺼져!”
“저게 미쳤나. 니가 뭔데!”
“내가 여기 대표다. 야, 넌 뭔데?”
민기는 살벌한 눈으로 자기에게 말건 이에게 다가갔다.
신민기의 살벌한 눈빛에 이들이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경고하는데, 여기서 개수작부리면 진짜 얻어맞을 수가 있어. 진짜로 아들뻘 사람들한테 얻어터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해라.”
최미옥은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아니, 이봐요! 군인. 저 사람 어떻게 해 봐요!”
하지만 군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이라면 알듯이 이건, 신민기가 꽤 신뢰를 받고 있단 증거였다.
도하연은 그런 그가 굉장히 달라 보였다.
‘저 정도로 신뢰하고 믿어준다는 건, 초기에 앞장서서 일했단 거겠지? 촬영장에서와는 다르네.’
그렇기에 사람들이 반응한다. 도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일터로 나갔다.
첫날에 온 자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 횡단보도를 기점으로 점점 진지를 넓히고 있었다.
신민기는 다른 이들과 같이 총기를 들고 수색을 나서고 있었다.
“야! 저기 감염자야!”
“총알 아껴!”
수색을 나가면서 이들은 감염자를 조금씩 소통하고 있었다.
도하연은 포대를 나르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무거워.”
그런 그녀의 곁으로 조아현이 다가왔다. 도하연은 이참에 궁금한 걸 다 물어보기로 했다.
“민기 오빠가 대장이야?”
“어.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 없는 사람들하고 체육관에서 농성했거든. 민기 오빠가 앞장서서 싸우고 그랬어. 그러다가 몇몇 군부대 사람들이 와서 서로 협력하고 건물을 더 넓힌 거지. 대단하지?”
“역시.”
괜히 군인들이 신민기를 대접해주는 게 아니었다.
동현이 그 이야기에 반색했다.
“그렇다면 또 내가 빠질 수 없네. 위험한 일에 투입해서 인지도 좀 끌어올려야겠네.”
“오빠요? 태희 언니가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내가 또 일하는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부식도 빵빵하고 대접도 좋더만. 딱 내 적성이야.”
조아현은 동현의 근육을 보고 감탄했다.
“싸움 잘하시죠?”
“어딜 가서 져본 적이 없지. 내가! 크하하하!”
“그러면 민기 오빠한테 말해서 추천해볼게요. 용감하고 싸움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랬거든요.”
“그래. 부탁해!”
얼굴에 안 어울리게 앙증맞은 미소가 보이자 도하연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태희 언니가 얼마나 오빠를 생각해주는데.”
“아, 매니저 형씨도 같이 가는데 괜찮지?”
“아니요! 우리 오빠는 안 돼요!”
도하연이 격렬하게 거부했다. 이들은 보초들 옆에서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 12시가 되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 역시, 1시에 끝나고 4시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하지만 끝나기 직전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한 4급 공무원이 반장 마크를 단 사람에게 폭행당한 거였다.
도하연 일행이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중년의 사람이 쓰러진 게 보였다.
그는 4급 서기관인 육진욱. 누워서 신음하는 그는 악다구니를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을 패고 있어!”
시선이 쏠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육진욱은 폭력이 멈추자 다급히 바닥을 기어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폭력을 휘둘러? 아니, 군인 불러와! 이거 책임을 물어야겠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기세등등했지만 그가 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후 5시에 들어온 신민기 일행이 ‘간이 재판’을 열었기 때문이다.
신민기는 대표로서 이들의 행동을 조목조목 물었다.
“그러니까 육진욱 씨. 당신이 일하지 않고 1시간 가까이 몰래 빠져나온 게 걸렸다는 거죠? 그걸 지적하는 과정에서 우준이가 때렸다는 거고.”
신민기는 곧, 모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폭력은 나쁜 거지만, 이곳은 일반 사회가 아니에요. 감염자가 우리를 위협하고, 다들 목숨 걸고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진욱 씨는 반대로 자기 일을 내팽개쳤죠. 그걸 지적하는 게 반장의 임무에요. 거기서 시비가 붙었다? 폭행? 여기는 일반 사회가 아닙니다.”
민기의 시선이 육진욱에게로 향했다.
“이 진지는 우리의 생명선이기도 해요. 그걸 내팽개치고 그걸 지적하는 사람에게 덤벼들어? 여기서 폭력은 허용돼. 정도를 벗어난 자에게 말이야. 그러면 묻지. 중요한 진지 보수를 빼먹고 적반하장으로 덤벼든 당신이 잘못일까. 아니면 그걸 지적하고 덤벼드는 당신을 때린 우준이 잘못일까?”
매서운 눈길. 육진욱은 황급히 일어섰다.
“웃기지 마. 내가 서기관인데. 지금 말이 돼? 난 폭력을 당했다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폭력이 나쁘다는 놈들이 꼭 책임을 회피하려하지. 애당초 함부로 뺑끼 친 댁 잘못이야. 그러면 벌을 뭐로 할까.”
민기의 표정이 살벌해지고 주변에서 으스대며 일어나는 게 보이자 육진욱은 진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