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3
“그래, 잘못을 사과하고 추가 작업선에서 마무리 짓지. 동의해?”
그가 재판에 나선 사람에게 묻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진욱은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지만, 추방이라는 단어까지 나오자 결국 형벌을 받아들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도하연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엄청나네.’
피난민 센터를 개척하고 규칙을 정한다. 쉬워 보이지만, 통솔력이 필요하다. 엄격함이 필요하다.
도하연의 머릿속에 규율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새겨졌다.
하지만 그런 시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 멀리서 최미옥을 비롯한 몇몇 이들의 시선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틀째가 지난 피난민 대피소. 현재 시각 밤 10시. 소등인 11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최미옥은 자기와 같은 몇몇 이들을 소집했다.
“저녁 먹고 오후 7시부터 8시까지 청소 시간. 8시부터 11시까지 자유 시간? 이게 말이나 돼요?”
육진욱 서기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살다 이런 갑갑한 생활은 처음 해봅니다. 감옥이네. 감옥. 거기다가 이놈들이 늙은이들에게 배려도 없어.”
“그러니까요. 우리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원래대로라면 눈도 못 마주칠 것들인데.”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 뒤로 빼줘야지. 신민기 그거는 왜 저리 융통성이 없는지 몰라.”
자기들이 왜 궂은일을 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일해야 하는지 분개해 하고 있었다.
최미옥은 휴대폰을 들고 정부 관계자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받지를 않는 거야! 아니, 언제는 해결된다며!”
더 열 받는 건, 그들의 뒷배를 든든히 지켜줄 정부가 감감무소식이라는 점.
심지어 정부관계자들에게 따져도 자기들도 지금, 마땅한 대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태가 예상외로 악화됐다는 거지만, 이들이 그렇게까지 넓게 보는 이들은 아니었다.
최미옥은 답답해했다.
“진짜 끝나는 거 맞아요? 여기서 오래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이 상황 자체가 끔찍해요. 내 자유가 없어요.”
“돌겠군. 서울도 이 모양인 거 보니, 정부도 어디론가 피신하지 않았겠소? 거기로 갔으면 하는데.”
“근데 연락이 안 돼요. 일부러 안 받나? 그리고 이러면 사업도 제대로 안 돼요.”
최미옥은 초조해 했다. 결국, 죽은 정민도야 알 거 아니다.
사업으로 도장까지 찍었으니까. 단지, 자기 사업체가 연락이 안 된다.
“이 사태가 예상보다 큰 듯해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일단, 우리 사업체나 정부 연락을 한 번 해보고 다시 이곳이랑 협상해보죠.”
시간은 많다. 이들은 일단 사업가의 정신으로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최선자가 죽은 지금, 내가 끝까지 살아남으면… 지분이 늘어나. 바보야? 누가 그렇게 아이돌 따위에 흥청망청 돈을 쓰래? 난 달라. 적당히 즐기고 빠지는 거라고. 어떻게든 지금만 버티면!’
정부와 연락이 되고 자기 사업체를 다시 운용 가능하다면 이곳의 분위기는 바뀔 것이다.
도하연은 이곳에 온 지 3일째에 ‘수거반’ 일을 진행했다.
“백날 진지만 쌓는 게 아니네?”
그녀는 자신의 친구 조아현과 남자친구 어성준을 보았다.
이들은 가방을 메거나 구르마라 불리는 사각대차를 끌고 있었다.
옆에서 총을 든 매니저가 말했다.
“당연하지. 여기 못해도 이백 명이 넘게 있는데, 보급만으로 유지하기가 버겁지. 게다가 물자도 평소에 비축을 해둬야 비상시에 유용하고. 여유가 있을 때, 준비를 미리 해놓는 거야.”
“와, 매니저 오빠. 군대 이야기 나오니까 활발한 거 봐.”
“이게 군대를 다녀온 자의 여유지. 덕분에 총도 우선 지급되잖아.”
매니저가 다른 곳을 보자 주변에는 조를 이루어 수색에 나서고 있었다.
이날의 하루는 바로 이 수거로 시작되었다.
수거반은 간단하다. 수색조가 감염자나 생존자를 찾으며 전진하고, 그들이 지나간 곳에 기타 물품들을 피난민 센터로 가지고 가는 일이다.
조아현의 남자친구, 어성준은 비어있는 집의 유리창을 망치로 깼다.
“조심해요. 수색한 사람들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매니저님. 부탁해요.”
깨진 유리창에 매니저가 먼저 들어갔다. 총을 앞세운 매니저는 조심히 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일부러 휴대폰 충전기 하나를 그대로 던졌다.
소리가 울리고 혹시나 싶은 감염자의 동태를 조심스럽게 파악했다.
“없다. 없어.”
그는 일부러 발을 구르고 소리를 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집 문을 열고 이제 수거반이 필요한 물품을 담는 거다.
도하연은 화장실로 직행해서 휴지를 담기 시작했다.
“샴푸랑 린스, 컨디셔너…. 화장품도 가져갈까.”
사실, 샤워하는데 꼭 필요하지는 않다.
‘아니야. 역시, 다른 게 우선이야.’
생존. 그거를 위해서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필요하다.
‘샴푸나 다른 것보다 옷이나 음식을 가져오는 게 백만 배는 나아!’
마음속으로 아주 확고하게 선언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물품을 찾아보았다.
옷가지는 아주 쉽게 구할 수가 있었는데, 피난 가거나 도망친 사람들이 집 안에 있는 수많은 옷가지를 가지고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도하연은 화장품 종류는 최소한으로 넣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맞다. 물도 중요하지?”
도하연은 빈 통을 찾았다.
‘정수기가 있으면 되도록 정수기 물. 그게 아니더라도 수돗물도.’
식수의 중요성은 수만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다. 도하연은 부엌을 뒤져 빈 통에다가 물을 담았다.
매니저는 총을 들고 다가왔다.
“고추장도 가지고 가고 싶은데. 안 되겠지?”
“여유가 되면요. 뭐든지 여유가 있어야 챙기죠.”
그렇다. 필요한 건, 물품을 몇 번이고 나를 수 있는 시간과 여유. 그래야 필수 품목 외에 것들을 챙길 수 있다.
“무겁다.”
도하연은 한껏 부풀어 오른 가방에 혀를 내둘렀다.
“오빠? 군대 가면 이런 무게를 들어요?”
“어느 정도인데?”
매니저가 가방을 슬쩍 들었다.
“이게 논산 훈련소에서 ‘가라’로 행군할 때 들던 무게야. 엄살 피우지 마.”
“네에? 가라는 또 뭐에요? 그냥 뺑끼친다는 말이에요?”
“어. 비슷해.”
매니저는 씨익 웃었다. 도하연은 무거워진 가방을 멘 체 움직였다. 대차에는 이미 옷가지와 쌀포대가 실려 있었다.
조아현은 무거운 걸 메고 주춤거리는 도하연을 쳐다보고 웃었다.
“우리 하연이 아주 고생하네? 이제 삽질만 하면 되겠다.”
“으…. 힘들어.”
이제 이들은 대차의 손잡이를 잡고 부대로 향했다.
이번 한 번이 끝이 아니다. 일과 내내 이 짓을 반복하는 거다.
도하연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이거라도 해야 해. 동현 오빠는 수색대에 지원했잖아. 태희 언니도 의료실로 갔고.’
특기가 있는 자들은 자기 특기대로 뽐낸다.
‘나는…. 생각해보니, 이런 세상에서 별다른 특기가 없네.’
아쉽지만 연예인이라는 직함은 이런 세상에서 쓸모가 없다.
‘나도 민기 오빠처럼, 저렇게 잘하면 되려나.’
같은 연예인으로서 민기는 확실히 그녀가 따라야할 좋은 선생님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오후가 들어서 조금 더 전진해 집을 수색했다.
그래 봤자, 수십m도 되지 않는 거리. 도하연은 열심히 카트로 나르기를 반복했다.
이들이 수색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으아아악!”
갑자기 비명이 들리고 도하연은 반사적으로 창문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에 어디선가 맹렬하게 뛰는 감염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서 나온 거야?”
“모두 물러나!”
매니저는 무전기를 보았다. 본디, 감염자가 나타나면 무전기로 위치 확인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무전기가 울리지 않았다.
감염자는 한 마리였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매니저가 아니다. 반대편 수거반 쪽에서 쏜 총.
하지만 맞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에 감염자가 그쪽으로 달리는 게 아닌가.
동시에 무전이 여기저기 울렸다.
[감염자 발생! 감염자 발생! 현재 위치는…]뛰어다니는 감염자. 하필 총으로 맞히기도 힘들었다.
주변의 수색팀이 기겁하고 방문을 잠갔다.
감염자가 소리가 난 팀을 쫓아 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도하연은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상황에서 해야 할 건, 무엇일까?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근접해서 총을 쏘면 적중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접근하는 걸, 누가 바라겠는가.
‘창문을 미끼로 하면 될까?’
생각이 번쩍 든 도하연은 매니저에게 말했다.
“오빠, 무전기로 창문을 미끼로 쏘라고 하세요!”
“창문?”
“네! 소리에 반응하니까. 창문을 두들기며 창문을 부수려고 할 거에요. 그사이 쏘면….”
매니저가 다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창문으로 유도한 다음에 쏘세요. 어차피 창문이 방패막이가 될 테니. 깨지기 전에 쏘면….]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무전기로 현실적인 반응이 나왔다. 도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처리해야 해. 혹시나 또 다른 감염자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그녀는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결국, 빨리 달리는 감염자잖아. 똑같아.’
처음 죽였을 때를 떠올렸다. 행태는 똑같다. 용기를 가진, 도하연이 매니저를 불렀다.
“오빠. 저 믿죠?”
“응? 그거야 당연히 믿지.”
“그럼 나와요.”
도하연은 놀란 매니저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다른 수색팀의 문 앞을 두들기는 좀비를 향했다.
“야!”
다짜고짜 외치는 도하연. 감염자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다! 이 멍청아!”
“기익!”
감염자가 뛰기 시작했다. 도하연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느꼈다.
‘위험하지 않아. 충분히 혼자라면 잡을 수 있어.’
머릿속에 계산되듯, 그녀는 가방을 두 손으로 잡았다.
“오빠, 저거 넘어지면 바로 갈겨요.”
“어? 어. 그래.”
매니저는 당황했지만, 도하연의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연이 가방을 빙빙 돌리며 상대가 가까이 온 순간, 내던졌다.
몸통? 아니다. 내던져진 가방은 다리 부근을 향해 던져졌다.
“기엑!”
달리다가 나동그라진, 감염자. 매니저는 바로 머리통을 쏴서 날려버렸다.
“휴.”
드디어 사태가 끝났다. 도하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아현과 어성준이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너 미쳤구나?”
“대단해요.”
두 사람의 반응에 도하연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피난민 센터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수거작전으로 다시 물품들을 풍부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신민기는 잘 안 먹던 삼겹살을 꺼내 들어 모두에게 대접했다.
“많이들 먹어요. 이러라고 정부에서 돼지고기를 준 거니까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업. 솔직히 말해서 살기 위해 해야 하지만 감염의 위험이 언제나 따라온다.
“여러분 모두 잘하고 있습니다. 규율이라고 무조건 딱딱한 게 아니에요. 좋은 걸 하면 그에 따른 보상도 주고, 못하면 벌을 받고. 바로 이게 철저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맨손으로 농사지었다시피 가꾼 피난민 센터였다.
지금 상당히 체계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으리라.
신민기는 그러면서, 도하연과 매니저를 불러내었다.
“여러분 주목! 오늘 아주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죠? 그런데 이 두 분이 앞장서서 감염자를 처리했어요. 얼마나 용감합니까. 모두 박수 주세요!”
포상은 바로바로 줘야 한다. 신민기는 부식 두 박스를 두 사람에게 주었다.
“하연아. 너 겁 많은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 야.”
“아니에요. 매니저 오빠도 도와주시고 그랬는데요.”
도하연은 다시금 윙크했다. 바로 TV 속 그 모습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도하연을 다시 보고 있었다.
“진짜 성격 대범하구나. 하긴, 감염자를 의자로 날리는 것부터가…”
“안 빼고 그냥 다 하는구나. 저런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야. 미래의 내 부인이다.”
“미친놈들아. 밥이나 처먹어.”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즐거워하고 있다가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돌 멤버도 하나 있지 않았나?”
“몰라. 퍼플링 걔들? 너무 조용하던데.”
구석에서는 도하연 쪽을 쳐다보는 지아가 있었다.
그녀는 달콤한 맥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먹음직스러운 삼겹살도 말이다.
지아는 쳐다보고 있었다. 신민기와 다른 이들이 도하연을 인정하고 좋아해 주고 있었다.
“도하연.”
지아는 호텔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치욕. 분노.
모든 게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도진이 다시 도하연에게 웃으며 다가가는 걸 보았다.
‘그래, 나는 더러운 걸레란 말이지?’
원망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는 자기를 원망하던 멤버들을 떠올렸다.
모든 걸 버리고 도망쳤다. 살기 위함도 있지만, 이대로는 그냥 죽을 수가 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