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4
정지희가 말하는 생존과는 달랐다.
‘나는 모든 걸 잃었어, 근데 너는 그렇게 사랑받고 즐거워한다고? 절대로 그러지 못해.’
지아가 고기만 조용히 먹고 있을 때였다. 최미옥이 두툼한 뱃살을 흔들며 다가왔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정민도랑 같이 있던 여자 맞지? 그때 호텔 지하에서 봤을 텐데?”
“무슨 일이죠?”
“쌀쌀맞긴. 같은 한 팀으로서, 이곳에서 편해지고 싶거든. 도와줄 수 있겠어?”
지아는 다시 도하연을 노려보았다. 이도진과 즐거워 보였다.
“네. 저도 원하는 게 있거든요.”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8. 자그마한 틈
신민기는 파티가 끝나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다.
그의 방은 초창기 멤버 6명이 그대로 숙식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대표이고, 대장이라도 다 똑같다. 굳이 좋은 방을 혼자 차지하지는 않는다.
“근데 한꺼번에 수십 명이 오니까 방이 부족한 걸?”
그의 최우선 고민은 확 늘어난 인원에 수용 인원이 한계에 달했다는 점이었다.
‘반대편 체육관도 인원이 다 차고 감염자가 계속 발생 중이라는데….’
인원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여러 상황이 발생한다.
상가건물이나 건물을 택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소규모로 인원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육관은 그러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가끔 서로 보고를 할 때, 유달리 감염자의 발생률이 높았다.
‘기침하는 사람은 일단 잡아가고 본다고는 하는데….’
그냥 우연히 동네로 피난 왔다가 얼떨결에 대장이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안전뿐이었다.
민기는 자기 측근들에게 새로 들어온 이들에 대한 동향을 물었다.
“개판이에요. 몇 명 빼고는 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고 해요.”
“중년 아재랑 아줌마들이 많은데. 다들 어디 한자리 하나씩 했나 봐요. 마찰만 일어나면 우리더러 ‘감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러면서 건방지데요. 갈궈서 입을 닥치게 해줬지만.”
“그 도하연 쪽은 괜찮아요. 거기 떡대 근육질 아저씨가 수색팀에 왔는데, 특전사 출신인 거 같아요. 우리보다 시가지전이나 그런 거에 능하던데요? 솔직히 도움 많이 받았어요.”
신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문제가 되는 건, 중년들 이상의 고위층. 아직 현실 파악이 덜 되었다.
“늙어서 그렇다기에는 현실 파악이 덜 된 거겠지. 여기도 영감님들 많잖아. 그분들은 안 그러는데. 아무래도 권력이 있었으니, 감염자가 나타나기 전 세상에 집착하는 거겠지.”
신민기는 이미 현실이 바뀌었음을 인지했다.
“그 사람들은 감염자랑 싸워본 적이 없나. 한 이틀 정도 싸워보면 현실로 돌아올 텐데.”
“아, 맞다. 형. 이도진 씨 있잖아요. 그 사람은 되게 의외데요. 사고 치지 않고 성실해요. 그 신 사장이라는 사람이랑 붙어있는 여자도 괜찮고요. 싹싹해요.”
앞선 이들과 달리 긍정적인 소식에 민기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갑자기 다수가 들어올수록 규율을 강하게 잡아야 해. 너희도 잘못되면 군말 없이 처벌받아. 그게 여기를 유지하는 길이다.”
민기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의 동료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똑. 똑.
바로 그때였다. 그들이 있는 문을 누군가 두들기고 있었다.
신민기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이전에 처벌받은 육진욱이었다. 민기는 그가 들고 온 술병을 보았다.
“술 한 잔 정도는 즐길 수 있지? 어떻겠나? 내가 쏠 테니, 자네들 팀원들하고 술이나 먹었으면 하는데….”
“뇌물이나 봐주기라면 안 받습니다.”
민기는 의도를 한눈에 파악했다. 하지만 육진욱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술만 마시자는 거야. 내가 설마 그런 일로 부탁할 거 같은가? 입도 뻥긋 하지 않지. 우리 쪽 사람들하고 같이 먹지? 그쪽은 어떤가?”
민기는 고개를 돌렸다.
동료들은 이미 술병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애당초 술 자체가 극히 제한된 곳이다.
매점이 있는데 돈이 있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민기 형. 보급으로 진짜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거 말고 술도 거의 없는데 단순하게 먹는 거면 괜찮지 않아요?”
“흠. 술 취해서 지각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고달픈 수색에 민기도 술이 안 당길 리가 없었다. 이상한 부탁이 껴있을까 봐 망설인 것뿐.
“좋아요. 그러면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말고 술이나 먹는 겁니다.”
“좋지. 그냥 회포나 풀자는 거야. 나도 일행들 있는데 들어가지.”
얼마 뒤, 최미옥을 필두로 사람들 두세 명이 들어왔다.
거기에 지아가 마무리를 더 했다.
“진짜 까다로우실 거 같았는데 이렇게 같이 하네요. 모두 즐겁게 마시죠!”
어딘지 모르게 싹싹한 지아와 먹지 못한 술. 이들은 단숨에 소주를 들이켰다.
다음 날, 도하연은 의외의 장면을 목도했다. 간이재판이 열렸는데, 그 대상들이 바로 신민기 주변의 최측근들이었다.
“내가 지각하지 말랬지?”
신민기가 재판장으로서 지각한 이들에게 잡무의 벌을 내리고 있었다.
도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도 상관없이 하네. 쉽지 않을 텐데.”
심지어 단순한 지각이다. 그냥 적당히 핑계를 대고 넘어갈 위치인데 벌을 준다.
‘저렇게 돌아가는 거구나.’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을 통솔하기 위한 방식이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진지 공사에 나선, 도하연이 일할 때였다.
이도진이 양복차림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연 씨. 열심히 하시네요?”
“아, 도진 씨. 그 복장은 뭐에요?”
도진은 자신의 양복을 만졌다.
“아버지가 부르시거든요. 헬기를 보낸다고 해요. 아무래도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연락이 되는 사업체들을 총동원해서 난국을 타개하려나 봐요.”
“그럼 이제 가시는 건가요?”
“음…. 그래도 다시 올 거예요. 여기도 꽤 괜찮으니 저희가 여유가 되는 데로 지원할 테니까요.”
이도진은 그러면서 도하연을 보고 망설였다. 마치 소개팅에서 화젯거리를 찾는 남자처럼 말이다.
“아, 저번에 놀랐어요. 감염된 그 정민도 씨말이죠.”
“그게…. 저도 모르겠어요. 어느새 손이 자동으로 나가더라고요. 하하, 이상해 보였어요?”
“살짝요. 근데 오히려 그래서 더 괜찮은 거 같아요. 도하연 씨 같은 스타일이 어디 보기 쉽나요?”
도진은 소위 말하는 젠틀한 남성의 표본이었다.
“저는 좋은 느낌으로 놀랐어요. 그만큼, 달라 보였거든요.”
“감사합니다.”
도하연은 이도진이 뭔가 망설인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바로 이도진에게 말했다.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괜찮아요. 저는 입이 무거운 여자거든요. 좋은 사람한테만.”
살며시 웃는 그 모습에 이도진이 결심했는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가 될지 몰라서요. 도하연 씨. 저랑 사귀시겠어요?”
“네?”
도하연은 놀란 기색을 했다. 아니, 이건 연기였다. 이도진이 실망하지 않게 말이다.
20살이나 된 처녀가 사람 감정 하나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않는가.
이미 분위기로 짐작한 거다.
‘너무 무덤덤하게 받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사귀어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겪은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좋은 사람이지.’
그렇다. 능력 있고 잘난 사람. 보통이라면 사귈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하연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럴 때는 나도 솔직해져야지.’
진실한 마음에 도하연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솔직히 사귀거나 정을 쌓은 것도 아닌데요. 이해 안 되죠? 그러니까 적어도 제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는 그 마음은 받지 못할 거 같아요. 지금 이곳도 적응해야 하고요.”
“그러면 마음이 안정되면 가능하다는 거군요.”
이도진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낫네요. 괜히 혼자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오히려 활기를 띈 미소로 이도진은 그녀에게 휴대폰이나 교환하자고 했다.
“이 정도는 되죠?”
“그 정도야 상관없어요.”
두 사람이 다시 휴대폰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감염자다!”
갑자기 어디선가 감염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진지 안쪽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고작 한 마리지만, 대다수가 지금 무기가 없다.
“기에에엑!”
감염자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도하연이나 이도진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도 없이 뛰는 감염자랑 대치한다는 건, 자살 행위였다.
신민기가 소리쳤다.
“모두 방어선 뒤로 물러나! 방패로 삼고 버텨! 수색팀 빨리 나와!”
신속했다.
그의 지시 아래에 사람들은 방어선 뒤로 달려들었다.
고작 감염자 한 마리다. 하지만 심리적 안정선을 넘어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도하연의 가슴이 다시금 거세게 요동쳤다. 그렇다, 이런 비일상의 공포가 매번 찾아오니, 그녀도 답답한 거였다.
감염자는 무작정 뛰었다.
“기에에엑!”
방어선 뒤로 움직이는 사람을 포착한 감염자가 무섭게도 그들의 근처에 왔다.
“기….”
그리고 술래잡기가 펼쳐졌다. 만약 도중에 포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필시 사람을 물었을 거다.
수색팀이 달려왔지만, 사람을 끼고 있다.
“저거! 맞춰야 하는데!”
“사람이 맞잖아!”
하지만 쏘지 않는다면, 감염자는 당장 사람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도하연은 최대한 침착하려 했다. 가방이나 뭔가가 있었다면 뭐라도 했을 거다.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백지처럼 변하고 있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의 습격.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감염자도 단번에 돌아보게 하는 소음. 거기에 이 모든 걸 처리할 남자가 나타났다.
“아가야. 이리 와라!”
그 무엇보다 안심되는 목소리. 도하연은 이 목소리를 안다. 바로, 동현. 이 떡대의 남자는 단신으로 이 감염자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이 새끼, 눈에 보이는 걸 우선시하네? 이야, 좋다. 좋아.”
감염자에게 동현이 손짓했다.
도하연, 아니 모두의 마음에 안도감이 생길 정도의 포스였다.
사람들이 동현 쪽으로 달려가고, 동현은 위풍당당하게 그들을 지나쳤다.
감염자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 할만한 공세. 하지만 동현은 그러지 않았다.
총의 개머리판을 앞에 세우고 돌진하는 감염자 앞에 놓았다.
달려드는 감염자보다 훨씬 긴, 사정거리. 동현은 마치 창으로 찌르듯 개머리판으로 감염자의 가슴팍을 쳤다.
“기엑!”
무지막지한 힘에 감염자가 엎어진 순간, 그 얼굴에 동현의 발차기가 들어갔다.
수m는 뒹구는 감염자. 동현은 그 머리를 쏴버렸다.
총성과 함께 감염자는 처리되었다.
도하연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고, 사람들이 따라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도하연은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오빠는 진짜 국밥 같은 남자예요.”
“무슨 뜻이야?”
“든든하다고요. 국밥 한 그릇 같은 남자!”
동현은 껄껄 웃었다.
사태는 진정되었다. 하지만 신민기에게는 끝이 아니었다.
“지금 어디서 왔어? 보초 서던 사람 소집 해! 누가 놓친 거야? 원래 여기 오기 전에 알려져야 하는데.”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얼마 뒤, 신민기는 보초를 게을리 한 최미옥과 다른 한 명에게 중벌을 내렸다.
신민기는 살짝 놀랐다. 중벌을 내린 지, 몇 시간도 안 돼, 최미옥이 다시 술을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휴식시간이 줄어든 걸 되돌려 달라 하는 거 아니죠? 9시까지 추가 업무 부여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공과 사를 몰라? 내가 그런 허접한 여자로 보여?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술친구는 술친구! 설마 그 일로 술도 못 먹을 정도로 우리 싫어하는 거 아니지?”
능청스러운 최미옥은 자기 벌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들이 술에 약하다는 건, 이미 파악했다.
‘중요한 건, 술을 먹는다는 거야. 그게 중요하지.’
최미옥에게는 돈이 있다. 이들은 돈이 없다. 즉, 매점에서 술 정도는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최미옥은 뻔뻔하게 들어왔다
“오늘은 맥주나 먹죠. 솔직히 우리가 잘못한 거니까. 그건 제대로 할게요.”
그저 술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행위 자체가 포석.
최미옥은 영악했다.
안주를 들고 온 육진욱과 지아가 흥을 돋웠다.
아무런 대가도 없는 술자리. 최미옥과 육진욱은 다음 날에도 찾아왔고, 이틀, 삼일이 지나도 찾아왔다.
동현은 난감한 상황에 문을 두들겼다.
“아니, 형씨들.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대장들 아니야?”
9시에 임무에 투입돼야 하는데, 수색팀의 분대장들이 안 움직인다.
동현이 문을 두들기자, 드디어 신민기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동현은 풍기는 술 냄새에 기겁했다.
“어제 술 마셨어? 빨리 가야지!”
“아, 그렇군요. 이거 참.”
신민기는 뺨을 후려치면서,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곳의 분위기는 기묘해졌다.
피난민 센터는 잘 돌아가고 있지만, 자꾸만 지각이 늘어나고 있었다.
동현은 어기적 나오는 민기와 그 동료들을 보며 한소리 했다.
“아니, 그저께도 지각하더만. 갑자기 왜 그래? 오늘 중요한 포인트로 가는 거잖아. 거기 먹으면 수거도 더 쉬울텐데.”
“요새 너무 편안해졌나 봐요. 이건 안 되겠네요. 지각한 사람들 오늘부터 30분간 추가 작업이다. 나 포함해서 제대로 하자.”
평소와 같은 공평한 벌. 평소와 같이 작업에 나서면 일과가 시작된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서 평소 같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