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9
윤주현도 동의했다.
“성실하긴 해. 게다가 좀비한테 감염되지도 않잖아. 이점이네.”
이들은 설동의 특수한 능력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단지, 혹시나 이상한 마음을 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을 뿐.
하지만 그런 마음은 조금씩이나마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설동이 외쳤다.
“잠시만 와 봐!”
“왜?”
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비상계단 쪽에서 설동이 자기들을 부르고 있었다.
“4층 비상계단 문을 감염자가 열심히 두드리는데?”
윤주현이 보자, 정말로 4층 비상문을 감염자가 두들기고 있었다.
“좀비인가 봐.”
“감염자야.”
설동이 태클 걸듯 말하자, 윤주현도 지지 않고 답했다.
“그러니까 좀비.”
“그래, 감염자.”
잠시의 침묵. 그러다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윤주현이 어이없어서 외쳤다.
“그게 그거 아니야?”
“그렇긴 하네.”
설동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내려왔다. 감염자가 코앞에 있는 것치고는 분위기가 꽤 장난스러워진 편이다.
설동은 시체 하나를 끌고 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4층 복도까지는 청소하자.”
설동은 문으로 나오는 곳에 감염자를 내던지듯이 던졌다.
“비상계단 방화문은 잡아당기는 거니까 조금 앞에 둬야지. 나오면 걸려 넘어지는 거야.”
윤주현은 대강 계획은 알아들었다. 문제는 그 문을 누가 여느냐다.
“그걸 누가 열어. 여차하면 좀비한테 당할…. 아!”
그녀는 설동을 다시 보고 놀랐다.
누가 하긴, 누가 하겠는가. 바로 설동이 한다. 바로 설동만이 가진 이점으로 말이다. 잘못돼도 복구할 능력을 지닌 자.
빈성우는 밀대를 들고 조금 올라갔다.
“여차하면 도와주지.”
한꺽정도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섰다.
“그래, 위험한 상황이 팍 주는 느낌인데?”
“그러니까.”
빈성우는 설동이 문을 여는 걸 보고, 침을 삼켰다.
‘일반 사람은 저러지 못해. 아니,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저렇게 자기 위험을 감수하고 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설동은 한다. 그리고 덕분에 자신들은 편할 수 있었다.
“나온다!”
설동이 말을 마치자마자, 감염자 두 마리가 나오다가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한 마리는 기어이 안정적으로 문을 탈출했다.
윤주현의 화살이 날아간다. 정확히 머리통에 꽂혔고, 설동이 바로 도끼로 넘어진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요격했다.
“기엑!”
하지만 나머지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설동의 다리를 향해 입을 벌리는 감염자가 보였다.
빈성우는 단숨에 밀대로 입을 후려쳐버렸다. 뒤를 이어 한꺽정이 야구 방망이로 마무리를 지었다.
고요해진 복도. 설동은 다시 시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빈성우와 윤주현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움직였다.
설동에게 다가간 윤주현은 그의 옆에서 시체를 붙잡았다.
“혼자 너무 성실한 척하지 마. 하려면 다 같이해.”
설동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윤주현을 쳐다보았다.
뒤를 이어 빈성우도 그를 도와 시체 하나를 들었다.
“그래, 이왕 같이 갈 거같이 하자. 야! 한꺽정 너도 와!”
두 사람의 경계가 한층 누그러든 느낌이었다. 세 사람의 도움으로 설동은 조기에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1층 입구에 감염자들이 짐처럼 쌓여 있었다. 방어벽처럼 쌓은 감염자들을 뒤로하고 이들은 다시 3층에 도착했다.
한꺽정은 기뻐하면서, 음료수 캔 한 박스를 꺼내 들었다.
“이제 전리품을 확인해보자. 난, 이 음료수 박스가 최선이었다.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둬야지. 시원할 때 먹으면 캬~”
윤주현은 3층에서 찾은 헤드라이트와 충전기들을 꺼냈다.
“이걸로 우리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드디어 연락해보네.”
빈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어. 잡기물들이 다야. 신설동? 너는…. 많네.”
성우의 눈에 설동의 가방이 큼지막한 게 보였다.
“3층 사무실 창고를 뒤졌어. 보통, 여러 물품이 보관됐으니까. 과자 박스도 있고, 화장지도 많던데. 물티슈도.”
그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윤주현이다.
“물티슈라고?”
“그래. 상자 채로 있어.”
설동은 가방을 내려놓고 창고에서 가지고 온 과자와 물티슈를 던졌다.
윤주현은 누구보다도 먼저 물티슈를 챙겼다.
“진짜 세수 말고는 못했는데.”
설동은 의아해했다.
“물티슈도 세수밖에 못 하지 않아?”
“진짜 센스 없네.”
윤주현의 타박에 설동은 멍한 얼굴을 했다. 뒤를 이어 빈성우가 화장실을 가르쳐줬다.
“적어도 몸을 닦을 수 있잖아.”
“아. 그렇군.”
설동은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직 차갑지 않은 음료수였지만, 그 어떤 물보다 차갑고 달았다.
설동도 이 맛을 즐겼다.
‘이렇게 여러 명이랑 먹는 것도 오랜만이네.’
여럿이서 먹는 식사. 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설동은 오로지 혼자 식사했다.
한꺽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음료수 캔을 드는 게 아닌가.
“새로운 동료, 신설동을 위하여!”
“…….”
하지만 설동을 포함해서 아무도 들지 않았다. 민망한 상황. 윤주현이 바로 한꺽정의 다리를 꼬집었다.
“갑자기 혼자 그러지 말라고. 다시 해!”
“그, 그래.”
한꺽정은 기분에 취해 너무 나간 걸 깨닫고 의기소침했다. 빈성우는 다시 캔을 하나 한꺽정에게 던졌다.
“분위기 다시 살려서 고!”
캔 뚜껑이 경쾌하게 따지는 소리가 나고 한꺽정이 다시 손을 들었다.
“좋아. 이번에는 제대로! 우리의 새로운 동료! 신설동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가 음료수 캔을 들었다. 설동은 웃기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복잡한 광경.
하지만 여기에는 그전까지 외면해오던 타인의 따스함도 있었다.
‘나쁘지 않네.’
그래, 지금 설동은 여기에 은연중 편안함을 느꼈다.
혼자서 온갖 신경을 곤두세울 때와 다른 편안함.
설동은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확실히 식량은 부족해. 내가 가방에 넣은 것도 얼마 되지도 않고. 여기 잠자리는 어떻게 하는 거야?”
한꺽정이 사무실 내의 난로를 가리켰다.
“이거 옆에서 자야지 뭐. 매번 그랬어.”
빈성우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새벽에 서로 난로 옆에 붙으려고 부딪치고 그런다니까?”
설동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난로가 여러 개네.”
“어?”
나머지 세 사람의 눈이 그제야 초롱초롱해졌다.
“맞다! 우리 이제 2층, 3층, 다 가능하지?”
“2층에는 난로가 하나만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 박수를 쳤다.
곧장, 난로 이동 대작전이 개시 되었고 3대의 난로에 이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설동은 혹시나 싶어 보일러가 있는지, 확인했다.
“여기는 그런 것도 없나.”
한꺽정은 그런 설동을 말렸다.
“내가 확인했어. 오피스텔 종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기계실이라고 아래층에서 관리하거든? 거기는 알다시피 관리하는 사람이 이제 없어. 즉, 계속 이 상태라는 거지.”
“이제는 가능하잖아. 내가 앞장설게.”
설동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한꺽정은 갑자기 킥킥 웃었다.
“왜?”
“아니, 너무 대단해서. 쩐다고. 안 피곤해?”
“더 따뜻해질 수야 있다면야.”
설동은 도끼를 챙겼지만 빈성우가 말렸다.
“아니, 그건 내일 해도 되잖아. 당장 너무 어두워졌어. 그럴 바에 꺽정이랑 ‘밤털이’나 가.”
“그건 또 뭔데?”
“뭐긴 뭐야, 말 그대로 이 좀비 투성이 거리에서 일반 가정집을 터는 거지.”
설동은 순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감염자가 저리 넘치는데 어떻게 가정집을 터는가.
“도망치는 것도 힘들지 않아?”
그러자 빈성우는 한꺽정을 가리켰다.
“저놈이 되게 잘해. 지금까지도 주로 밤에 나가서 식량을 구해왔거든.”
설동은 이제 꺽정이라는 별명을 지닌 저 덩치를 바라보았다.
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설동이, 나랑 같이 밤털이나 가자. 너 같은 애가 있으면 든든하지. 식량도 두 배로 가지고 올 수 있겠다.”
설동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라…. 혹시 몰라. 좋은 걸 알지.’
한꺽정은 늘어지게 난로에 발을 뻗고 있었다.
설동은 아연실색했다.
눈앞에서 감염자가 어슬렁거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곳곳에 감염자들이 돌아다닌다.
[진짜 밤에는 조심히만 가면 놈들이 습격해오지 않아. 인지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확 떨어지나 봐.]밤털이를 나서는 설동은 이 대범한 행동에 경악했다.
2층에서 설동이 그런 것처럼 끈을 타고 내려간 것까지는 그럭저럭 이었다.
문제는 한꺽정이 감염자 사이를 성큼성큼 걷는 게 아닌가.
물론, 감염자가 가까워지면 마치 먹이 사냥전의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줄였다.
‘진짜 반응을 안 해.’
설동은 그냥 지나가는 감염자를 보고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니, 인천에서 처음 펜션을 찾을 때도…….’
분명 밤중에 감염자가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이렇게 감염자 사이를 돌아다니겠는가.
‘나도 무서워서 대놓고 이러지 않는데.’
한꺽정. 이름 그대로의 간덩이가 부어오르다 못해 터진 인간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근처에 2층짜리 주택을 본 한꺽정은 도움닫기 한 번으로 2층의 난간을 붙잡았다.
2층의 난간을 잡고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 이 놀라운 몸놀림에 설동은 입을 쩍 벌렸다.
‘괜히 꺽정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어.’
그야말로 도둑의 재능이 보였다. 덩치에 비해 무척 가볍게 난간을 잡고 올라간다. 설동도 해보려 했지만, 미끄러졌을 뿐.
“윽! 아파라….”
넘어진 고통에 간신히 일어서고 있는데,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기….”
“시발.”
어느새 근처로 감염자가 다가온 거다.
설동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 때문인가?’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주변의 감염자들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설동이 도끼를 들고 대비하려는 때였다.
머리 위에서 무언가 지나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감염자가 감자박스에 맞고 널브러졌다.
설동은 조심히 도끼로 목을 날렸다.
주변의 감염자들은 반응이 없다.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설동에게 한꺽정은 물건들을 조심히 건네주기 시작했다.
쌀포대에서부터, 김치 통, 밥솥, 라면과 냄비라는 괴상한 조합으로 말이다.
설동은 그것들을 받으며, 바닥에 안착시켰다.
한꺽정은 통조림과 반찬 통을 마지막으로 손을 털었다.
2층에서 또다시 난간을 잡고 여유만만하게 착지했다.
설동은 엄지를 들었다.
“당장 관아에 신고할 뻔했다.”
“오늘 네가 아주 날아다녔잖아. 이쪽도 보여줘야지.”
한꺽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은 내린 물품들을 챙겼다.
한꺽정은 라면을 우선시했다.
“냄비랑 라면 챙겨. 가벼우니까 괜찮을 거야.”
“알아. 하지만 쌀포대는 이 상태로는 힘들어. 다음에 저것만 따로 가져와야 할 거 같아. 차라리 김치 통하고 고기를 챙기는 게 나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