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5
이런 사내가 같이 있다는 거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윤주현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갈 수 있지?”
“물론이야.”
빈성우가 마주 보며 웃었다. 한꺽정은 살짝 샘이 나듯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자기의 차례라는 걸 알기에 바로 밧줄을 잡았다.
“우리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잖아. 자기 역할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거야.”
한꺽정이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서, 두 사람도 일제히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오늘은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중간 포인트’가 필요하다.
한꺽정이 피가 묻은 야구 방망이를 앞세웠다.
“그 사람들 쪽의 주차장까지 가는데 은근히 멀단 말이야. 그 사람들과 우리 빌딩의 거리를 계산하면 중간이 피신하거나 쉴 곳을 찾아야 해.”
윤주현은 활을 매만졌다.
“이제 몰이를 하기에도 거리가 은근히 멀어졌어. 중간 포인트서 감염자들을 끌고 와서 잡아야 해.”
빈성우는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그래. 이제부터 좀 달라지겠네. 진짜 탈출이 눈앞에 아른거려. 모두 힘내자.”
탈출을 위한 새로울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도끼를 든 설동이 합류하고 이들 4인방은 식량이 있는 주택 근처로 이동했다.
어차피 그동안 그들이 열심히 몰이한 덕에 가는 길은 평탄했다.
중간 거점으로 삼을 2층 주택이 보이자, 한꺽정이 대도처럼 올라가 문을 올려주자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꺽정은 다시 몰이를 시작했다.
“야! 오라고! 와! 맛있는 거준다!”
그의 외침에 한두 마리씩 감염자들이 꿈틀거렸고, 한꺽정은 다시금 열심히 달려 2층 난간을 단박에 올라왔다.
서너 마리가 몰려오고, 윤주현의 화살이 매섭게 날아가 꽂혔다.
“사장님 나이스샷!”
한꺽정이 박수를 치고 이들은 중간 거점에서 본격적인 감염자 사냥을 시작했다.
[피난민 센터의 위치는….] [김기철 연구소는 여러분들은 모십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감염자에 대한 백신을 개발 중입니다.]박 부장은 휴대폰을 매만지며, 소식을 연이어 확인했다.
‘그래, 이 사태는 끝날 거야. 끝난다고.’
부장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그걸 되찾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걸, 빌 수밖에 없는 상황.
‘신지석 이 망할 놈. 자기가 힘세다 이거냐.’
그는 잠을 설칠 정도로 분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부하들 앞에서 자존심이 짓밟혔으니까.
몸을 뒤척이면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했다.
‘식량을 구해오라고? 직접? 내가? 그건 내가 할 게 아니잖아.’
부장으로서 명령해온 몸이다. 이제 와서 무슨 작업이란 말인가.
‘감히…. 내게…. 건방진 놈!’
온몸에서 분노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뒤척이는 몸에서 핏발이 설 정도로 말이다. 그런 감정이 극한까지 들기 전, 박 부장은 숨을 토해내었다.
“후우. 후우.”
순간적으로 격정적인 감정이 가슴 아래로 추락했다.
‘지금은 아니야.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거다. 박팔식. 지금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저놈이 말하는 대로 될까? 계획이 실패한다면? 권위가 다시 사라지는 거야.’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협상한 상대들 역시 사람.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공용 주차장까지 감염자가 수십 마리가 훌쩍 넘어. 일일이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야.’
박 부장은 마음을 다스린 채, 일어섰다.
아무리 그래도 물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시발, 몰래 먹는다. 자기들이 어쩔 거야.’
그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구차함과 인내심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박 부장은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나섰다. 부장이기에 차지했던 특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라면을 찾았다.
‘가방이 어디 있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던, 부장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와 부딪쳤다.
“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간신히 형체를 알아보았다.
바로 신 과장이었다.
“부장님. 뭐 하세요? 사무실에서 나오고? 설마 남이 열심히 얻은 식량을 가지러 온 건 아니죠?”
“…….”
박 부장은 이제는 시건방지게 나오는 신 과장을 보며 이를 갈았다.
“네가 그 나이에 과장 단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널 추천한 거야. 고작 33살에 과장 다는 게 쉬운 줄 알아? 은혜도 모르고 이렇게 나온다? 잘났군. 정말 잘났어.”
“제 능력이 뛰어나서 오른 거죠. 올라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무튼, 배가 고프시면 라면은 드리죠. 대신, 이제부터 우리 모두 다 같이 해야 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빠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신 과장은 이미 승리자의 태도였다. 박 부장이 어떻게 생각하던,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박 부장은 최후의 희망을 걸었다.
“그래, 당분간은 마음대로 해 봐. 그런데 과연 일이 쉽게 돌아갈까? 저 감염자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저놈들이 어떻게 도와준단 말이야.”
“백문이 불여일견. 그것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신 과장은 미소 지었다.
라면 하나를 받아든 박 부장은 아무 말 없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설동은 기지개를 켜며, 오피스텔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중간거점에서 사냥을 시작하고 이들은 다시 빌딩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이 작업을 반복하며 신지석이 있는 곳까지 나갈 생각이었다.
‘주차장. 그래, 주차장만 어떻게든 도달하면 돼.’
인천 피난민센터가 눈앞이다.
군부대의 도움을 받으면 서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설동은 그런 기대감을 품었다.
살짝 조급함도 생겼다.
‘가기만 하면 엄마도, 아빠도, 상인이도. 모두 만날 수 있어.’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가자!”
그가 오피스텔에서 나오면 힘차게 기합을 냈다.
한꺽정과 윤주현, 빈성우가 몸을 풀었다.
윤주현은 활을 어깨에 메었다.
“내 쪽 창문에 보니까 전에 없던 좀비 두 마리가 있던데.”
“또?”
빈성우가 반응했다.
“우리가 이 주변을 몇 번 정리했는데도 어디선가 나타난단 말이지. 놈들이 이동하는 건가?”
그 자리에서만 빙빙 돈다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
하지만 가끔, 이동 거리가 예측하기 힘든 감염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프라이팬을 들고 2층에서 감염자를 유도했다.
윤주현의 화살이 꽂히고 감염자 두 마리는 쓰러졌다.
“그러면 내가 가지.”
설동은 만약을 대비해 일행보다 앞에서 서서 주변을 관찰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바로 화살들을 뽑았다.
중간 거점으로 이들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대낮이고 시야는 밝다. 하지만 감염자들도 인지능력이 좋아진다.
윤주현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진짜 아무리 안심하려고 해도 무섭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현실이라는 곳. 공포감은 아무리 감염자에 대해 면역이 생겨도 스멀스멀 기어온다.
조금만 상황이 바뀌어도 언제나 감염자는 위협. 그렇기에 가는 길에 감염자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다.
거점에 돌입한 이들은 다시 한 번, 예의 익숙한 몰이를 시작했다.
한꺽정이 신지석이 있는 컨테이너 쪽으로 소리를 치며 감염자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주현은 혀를 내둘렀다.
“너무 많아. 여기에 던질 거 있어?”
한꺽정의 뒤로 30여 마리에 가까운 감염자들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감내할 것들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그러자 설동과 빈성우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설동은 의자와 책상을 빼왔다.
“2층에서 던져서 큰 타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던지기에는 쉽사리 죽지 않을 위험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난간 아래로 팔 한짝이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가.
윤주현이 놀라 자빠지고 있었다.
“꺄악!”
설동은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감염자들이 2층을 못 올라올 텐데?’
의자를 들고 뛰어가자 거기에는 다른 감염자를 발판으로 삼고 뛰어드는 감염자가 보였다.
‘많이 몰려서 발받침이 된 건가.’
운 나쁘게도 선두에 온 감염자들이 발판이 되어 평소보다 높이 뛰어들 수 있던 거였다.
설동은 그들을 향해 의자를 내던졌다.
“키엑!”
뛰어들던 놈이 의자에 맞고 추락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죽이지 않으면 타격이 없어.’
감염자는 좀비다.
죽지 않은 이상, 위험한 무기를 들고 계속해서 덤벼오는 적.
새삼스레 느끼고 있었다.
한꺽정은 다급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오기만 해 봐.”
하지만 손만 간신히 난간에 걸칠 듯 말 듯한 이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는 힘들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지는 교착 상태. 그런데 뒤에서 기묘한 냄새가 났다.
설동이 뒤를 도는 순간, 빈성우가 책상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고 있었다.
“이건 어때? 어차피 좀비들은 불타면서도 자각이 없을 거 아니야.”
“되게 좋은 판단이기는 한데? 근데 너무 빨리 타지 않냐?”
어느새 메케한 연기가 2층을 메울 정도였다.
설동과 한꺽정이 뛰면서 다 같이 불타는 책상을 밖으로 집어 던졌다.
불타는 책상은 그래도 강력했다.
“키엑!”
“크에에엑!”
감염자들은 그들을 향해 팔을 내릴 뿐. 흩어지지 않았다.
뭉텅이로 있는 이들의 옷이 타면서 불은 빠르게 번졌고, 감염자들은 불탄 채로 그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30분 뒤, 고작 세 마리 정도의 감염자만 생존했을 뿐.
윤주현은 단숨에 화살로 그 세 마리를 쏴버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v자를 그렸다.
“해냈다! 성우야 잘했어!”
이번 감염자 퇴치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빈성우. 그의 기지에 윤주현은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달려들었다.
“커험. 흠.”
물론, 한꺽정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줬지만 말이다. 그는 쌍안경을 들고 저번에 본 그 컨테이너 쪽을 바라보았다.
“좋아. 오늘도 꽤 잡았네. 이 정도면 그래도 컨테이너 가는 길 쪽은 괜찮아진 거 아닌가?”
설동도 고개를 끄덕였다. 급작스러웠지만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 가는 길의 감염자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도 많지만.’
컨테이너에서 한 블록 정도 앞으로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지금처럼 가면 뜻밖에 빨리 될 수도 있어.’
가족이 머릿속에서 어느새 손을 잡고 있었다. 이들은 2층에 놓인 식량을 까며 잠시 배를 채웠다.
“어?”
그때였다. 설동의 휴대폰이 울리고 있는 게 아닌가.
“과장한테 전화 왔네.”
전화 대상자는 바로 과장. 설동은 베란다로 나갔다.
“여보세요? 과장님. 무슨 일이죠?”
“아시다시피. 저희가 인원이 다수잖아요. 식량을 더 가지고 올 수 있나요?”
“가능하긴 한데. 낮에 괜찮겠어요? 여기까지 감염자들이 아직 돌아다니잖아요.”
“그게 문제기는 하죠. 어떻게 안 될까요?”
“거기 무기 뭐 있어요? 한 마리씩이라도 잡으면 괜찮을 텐데.”
“경험이 다들 없어요. 도망치다가 그냥 자빠진 감염자를 치는 거 밖에. 뻔뻔한 건 아는데 와주실 수 있나요?”
설동은 잠시 한꺽정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들도 위험지대로 바로 달려가는 건,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도 너무 위험부담이 커요. 음….”
밤까지는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간의 교착상태 이후, 상대는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건 어때요? 어차피 당신들이 ‘작업’을 할 테면 도움이 필요할 거 아니에요. 우리도 도울게요. 한마디로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거죠. 잡일이든, 뭐든지 간에요.”
“지원이요? 으흠.”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당신들이 하는 것처럼 일을 배워서 할 수도 있고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거예요. 그 대신, 오늘은 한번 와주시면 합니다.”
설동은 잠시 통화를 끊고 멤버들과 상의에 들어갔다.
한꺽정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괜찮은 거 같은데. 음….”
윤주현과 빈성우는 고민 중이었다.
설동은? 당연히 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