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6
“빨리 가고 싶기도 해. 오늘같이 위험을 감수하니까 더 많이 잡기도 했잖아. 저들도 돕겠다면 괜찮을지 몰라.”
설동은 어느새 퇴근 시간을 앞둔 직장인처럼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빨리, 최대한 빨리 피난민센터로 가고 싶군.’
그렇기에 그는 혼자서 몸을 일으켰다.
“너희는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어. 가도 내가 가면 되니까.”
설동은 가방에 라면과 냉동식품들을 담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설동을 배웅해주었다.
윤주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하여간, 은근히 성격이 급해. 근데 괜찮을지 몰라?”
빈성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뒤질 타입은 아니니까. 정 위험해지면….”
한꺽정이 그들의 등을 쳤다.
“구하러 가면 되지. 뭘 걱정해? 다들 저 녀석이나 주시하고 있어. 위험해지면 뛰쳐나가게.”
“그래. 하기로 했으면 일단 해봐야지. 주현아. 대기하자.”
빈성우는 윤주현의 어깨를 둘러주었다.
통화를 마친 신지석의 뒤로 박 부장이 혀를 찼다.
“감염자가 바글대는데 밤도 아니고. 무능하구만. 무작정 식량을 얻겠다고 하더니.”
“시비 거는 건가요?”
신지석의 눈동자에 박 부장이 움찔했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비라니? 내가 말한 거에 틀린 말이 있는가? 불확실해. 누가 저기를 뚫고 오는데. 오다가 감염자 밥이 되지. 무리한 부탁이야. 거래처가 그리 만만하나? 우리 애들을 또 위험에 몰아넣고 말이야.”
나름대로 근거는 있었다. 이들은 설동의 능력을 모른다.
거기다가 나름 설동 팀이 가는 길의 감염자를 소탕한 것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식량 좀 달라고 와달라고 하는 건, 상당히 무리한 부탁이기는 했다.
신설동이라는 특이개체만 아니라면 말이다.
신지석도 그걸 아는지,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굶었고, 어제 하루 치 식량은 끝. 하지만 거래처는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했으니까요.”
“무책임하군. 만약 실패하면 전의 계약도 엉망이 돼. 리스크가 너무 커.”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거죠.”
두 사람을 팽팽하게 맞붙었다. 다만, 신지석은 그때 그 장면을 떠올렸다.
저 4인방이 매섭게 감염자를 처리하며 나가는 걸 말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반대로 박 부장은 이 일이 실패하기를 빌었다.
‘다시 내게 권력이 넘어온다.’
미리 대립각을 세워둬야 실패했을 때, 책임을 묻고 권력을 다시 취할 수 있다.
그리고 10분 뒤, 다급한 발걸음이 들렸다.
“문 열어!”
모두의 시선이 움직이고 신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신설동은 기어이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박 부장의 노림수는 실패하고 말았다.
2. 누군가는 분노한다
설동의 가는 길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감염자들도 곳곳에 있었고, 가방도 전 보다는 무거웠으니까.
‘갈 수는 있어. 갈 수는.’
그런데도 설동이 움직이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최대한 빨리 작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저놈들도 감염자를 몰아준다면 편하지.’
그렇기에 일단 목적은 감염자 한두 마리는 무시하고 가는 거였다.
그의 발걸음이 조급해진다. 감염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저 정도면 무시할 수 있어.’
최대한 잰걸음으로 감염자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기…….”
“그….”
뒤에서는 감염자들의 합창이 그의 전방에서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감염자들의 율동이 있었다.
자칫하면 포위당할 수 있는 공포. 하지만 설동은 이미 제주도를 겪은 몸.
‘할 수 있어.’
그는 컨테이너가 보이기 시작하자, 속도를 높였다.
여러 번 경험으로 그는 처음부터 뛰면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앞선 감염자들도 자극해서 포위당한다고 생각했다.
뛰는 좀비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일부러 건 것이다. 그리고 지금, 뛸 타이밍이 다가왔다.
앞선 감염자들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는 순식간에 제쳐버리고 뛰었다.
“키에에엑!”
“캬악!”
감염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하고 설동은 컨테이너 벽에 달린 2층 계단을 타고 단숨에 올라갔다.
뒤에는 뛰는 감염자 두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문 열어!”
거칠게 문을 두들기고 컨테이너의 문이 열렸다.
설동은 단숨에 안으로 들어갔고,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약속한 대로 왔으니, 협의한 대로 이행 부탁해요.”
설동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이곳의 인원을 자세히 체크했다.
‘여자 2명에 남자 5명. 과장이라는 놈이 중간직급이라 치면 나이 많아 보이는 이가 2명. 젊은 놈이 2명. 대략 이렇게 파악되는군.’
과장이 다가왔다.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위험했군요.”
설동의 뒤로 문을 두들기는 감염자들이 보였다.
“뭐, 저건…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죠.”
그때였다. 박 부장이 나섰다.
“망했군. 이제 어떻게 하란 거야? 1층으로 출입하기에는 너무 위험이 큰데.”
투덜대는 그에게 설동의 시선이 향했다. 박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왔지만, 결국 우리가 2층으로 출입하는 루트를 잃어버렸잖아. 1층? 자칫하다가 1층은 문을 열자마자 감염자가 반기고 있을 줄 누가 아는데?”
“저 사람은 누구야?”
설동이 묻자, 신 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부장님이요. 여기서 제일 직급이 높죠.”
“아, 혹시 저 남자가 휴대전화로….”
“네네. 좀 부정적이시네요. 사실, 일단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거든요.”
신지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동이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가지고 온 도끼를 매만졌다.
“원래 이런 세상에서는 생존에 도움 되는 쪽이 리더를 해야죠.”
“뭐?”
박 부장이 반응했다. 설동은 무시하고 식량을 나눠주었다.
“밤에는 알아서 움직이시고. 아무튼, 계획부터 설명해주죠. 우리가 식량을 모아놓은 곳 옆집에 거점을 잡았…….”
“어이가 없네. 무슨 계획이야? 당장 댁이 여기서 어떻게 나갈 건데?”
박 부장이 끼어들었다. 설동은 도끼를 든 채, 다가갔다.
“아가리 닥쳐.”
“뭐?”
“진짜 도끼로 맞고 싶지 않으면 꺼져.”
“너…. 으….”
설동의 성격은 원래 그렇게 침착하거나 냉정함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엄포를 놓자, 박 부장은 다시 한 번 찌그러졌다.
“간단하게 당신들이 할 일은 일단 ‘유도’가 필요하겠네요. 혹시 여기 줄 같은 거 있어요?”
신과장이 박주식과 공달영 인턴과 함께 이전에 만든 옷걸이를 연결한 것을 가지고 왔다.
“우선, 문에 좌우로 잡고 있어 봐요. 이건, 기초적인 사냥법이니까요.”
설동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얻어낸 상대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감염자는 무조건, 전방의 상대를 주시합니다. 간혹 큰소리가 나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긴 해도 어지간히는 눈앞의 사냥감을 우선시해요. 그걸 노리는 거죠. 미끼를 앞에 두고 나머지가 처리하는 거죠. 용기만 있으면 가능해요. 당장 저 두 마리도 처리할 수 있고요. 참고로 당신들이 하는 거예요. 스스로 해야 작업이 의미가 있는 거니까.”
설동이 그렇게 말하자, 이부서 내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박주식 사원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그…. 감염자는 머리를 맞추면 무조건 죽나요?”
“네. 머리가 약점이에요. 다른 부위는 여유 있을 때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설동은 자신을 의구심 넘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인시현을 보았다.
“내용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2층 문을 개방해도 될까요? 우리는 다 초보자에게요. 적어도 옆에서 같이 해줬으면 하는데요. 만약 우리가 겁을 먹으면 그쪽도 위험하잖아요.”
“일리 있네요.”
설동은 흔쾌히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바깥에서 날뛰는 두 마리를 보았다.
“저 뛰는 감염자들은 위험하니까. 그냥 처리하고 다음 것들부터 천천히 해보죠.”
“네?”
인시현은 순간, 의아해했다.
“무슨 소리죠? 감염자 두 마리를 어떻게 처리하려고요.”
“그냥 처리한다고요. 저건 위험하니까.”
담담한 설동의 태도에 인시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뒤이어 박 부장에게 무언가 재촉 받은 강 차장이 나섰다.
“지, 지금. 어떻게 하려고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가능해요. 뭐 솔직히 당신들이 줄이라도 잡아주면 더 편해요.”
설동이 부탁하려 할 때였다. 박 부장이 나섰다.
“웃기지 마! 그러다 내 사원들 죽으면 책임질 거야? 허세 부리고 있어. 정말 자신 있으면 혼자하시지?”
신지석이 그런 부장에게 달려갔다.
“부장님! 기껏 도와주려고 온 사람한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또 뭘 망치려고.”
“망친다고? 지금 저 날뛰는 감염자를 어떻게 할 건데? 실수할지 누가 알아? 혼자서 능력을 보이라 해 봐. 그 정도 자신은 있겠지?”
부장의 시선에 설동은 당장 대가리를 찍고 싶었다.
‘능력을 보여줘라. 이거지?’
설동은 도끼를 다시 부장 앞에 내밀었다.
“잡으면 아가리 닥치고 내 말에 무조건 따라라. 알겠지?”
“뭐? 내가 왜….”
“따르지 않으면 네 모가지부터 날아갈 거야. 생각 잘해.”
“…….”
“대답!”
설동이 도끼를 든 채 다가가자, 박 부장은 몸을 움찔거렸다.
“아, 아, 알았다.”
덜덜 떠는 박 부장을 뒤로하고 설동은 결국, 혼자 잡기로 했다.
‘어차피 문 열리면 한 마리가 먼저 들어올 거야.’
머릿속에는 차곡차곡 계산되고 있었다.
감염자는 특정 행동을 한다.
이미 수십 번 본 광경이다.
그 경험을 살린다.
설동은 조심스레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는 쪽으로 몸을 돌린 그는 이제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도끼를 들었다.
“기엑!”
문 앞에 있던, 두 마리. 그중 한 마리가 설동과 눈이 마주쳤다.
열린 틈으로 들어오려는 좀비.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몸을 던진다.
그리고 설동의 도끼가 단숨에 머리통을 찍었다.
‘이 상태로!’
뒤이어 나머지 한 마리가 달려드는 걸, 자기 앞에 쓰러진 감염자 채로 밀어버렸다.
“기엑!”
감염자가 밀려 넘어지고 설동은 도끼보다 빠르게 일어나려는 감염자의 머리통을 발로 차버렸다.
“기엑!”
뒤로 나뒹구는 감염자. 그제야 도끼를 뽑은 설동이 매섭게 도끼를 내려찍었다.
불과 30초도 안 되어서 일어선 일.
설동이 피 묻은 도끼를 끌고 들어오자, 이들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신지석은 불안했다. 자꾸 부장이 어깃장을 놓는 것도 그렇고 설동 역시 기껏 데리고 왔는데 죽어버리면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동은 가볍게 해냈다. 상상 이상으로 더 대단하게 말이다.
“말도 안 돼.”
신지석은 눈앞에 감염자 두 마리를 참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박주식은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공달영도 엄지를 들었다.
“저 사람 뭐에요?”
신지석은 절로 박수가 나오는 걸 참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설동이 안에 들어오자 이들은 그야말로 개선장군 모시듯이 그에게 다가갔다.
인시현은 가장 매우 놀란 상태였다.
“대, 대단해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잡았죠?”
설동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에게 선언했다.
“이 정도면 내 능력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밥이나 먹고 작업을 해보자고.”
믿음직한 아군이 생겼다.
이제 설동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설동을 불러들인 신지석은 흐뭇했다.
‘이걸로 박 부장은 끝이다.’
그는 슬쩍 소외되어 떨어진 박 부장을 보았다.
그래도 굶길 수는 없으니 밥은 주지만, 아까까지의 기세는 사라졌다.
‘됐어. 이제 조금씩 처리만 하면 그만이야.’
식사를 마친 이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동의 지시 아래 이들은 드디어 사냥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들에게 감염자는 공포의 대상이자, 도망쳐야 하는 역병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설동이 보여준 이후로 이들은 감염자를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사냥하려고 하고 있었다.
신지석은 설동 옆에 섰다.
“제가 제일 먼저 할게요.”
“그래, 리더가 솔선수범해야지.”
설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식과 공달영이 옆에서 줄을 잡고 발목 높이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