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9
설동은 식량을 가방에 넣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그의 예민해진 감각에 뒤를 도는 순간, 어기적거리며 감염자 한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설동은 놀라서 몸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게 좌우에서 망을 봐야 할 공달영과 신지석이 있기 때문이다.
‘당한 건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설동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박수 소리를 내었다.
“기…. 그….”
한꺽정이 몸을 돌리고 이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감염자를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한 발자국씩. 상대가 돌진하는 바로 그때, 설동이 상자박스를 걷어찼다.
“기익?”
그대로 감염자가 상자에 걸려 넘어지고 설동과 한꺽정이 숙련된 솜씨로 감염자를 썰었다.
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망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했다.
그리고 문제점을 파악했다. 한꺽정이 두 사람을 가리켰다.
“어? 왜 붙어 있어?”
두 사람이 떨어져서 서로 다른 방향을 봐야 하는데, 지금은 붙어 있었다.
설동은 한숨을 쉬었다.
“신 과장님.”
“네?”
여유로운 표정의 신 과장. 설동은 화를 참았다.
“지금 감염자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요. 자칫하다가 물릴 뻔했어요.”
“…….”
신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나빠졌다.
“신 과장님. 망을 볼 거면 제대로 봐야죠. 지금, 왜 둘이 붙어 있어요.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요.”
“네. 아, 실수에요. 실수. 다음에는 안 그러겠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네네 했을 거다. 하지만 신지석은 이날 처음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꺽정의 표정이 변했다.
“아저씨. 표정이 왜 그래요? 우리 죽을 뻔했다니까.”
긴장된 공기가 흐른다. 신지석은 살짝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요새 좀 신경 쓸 게 많아서”
“참….”
한꺽정이 혀를 차고 몸을 돌렸다. 설동도 몸을 돌리고 갔지만 신지석의 얼굴에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주 잘났어. 잘났지.”
신지석은 화를 내며 컨테이너로 복귀했다. 망을 잘 보지 못하고 자기가 잘못한 건, 사실이다.
평소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 신지석은 왠지 짜증이 나고 있었다.
‘내가 잘못…. 아니, 그런데 태도가 너무하네.’
마음속에는 자기가 잘못한 사실이 생각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발 심리도 커졌다. 마치 청개구리처럼 말이다.
공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컨테이너에 복귀하자, 또 이상한 게 보았다.
바로 인시현과 장미연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단 거였다.
박주식은 그 사이에서 말리고 있었다.
“또 뭐야?”
신지석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깨달았다. 아까 받은 스트레스와 혼합되어 짜증이 곱하기로 늘어나는 상황.
“두 사람, 뭐하는 거야?”
장미연과 인시현은 씩씩대고 있었다. 신지석은 그러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강 차장을 보았다.
“아니, 차장님. 차장이면 애들 좀 관리해요. 뭐, 뜬금없이 싸워요. 지금 밖에 감염자들이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나한테 왜….”
강 차장은 소심하게 말끝을 흐렸다. 신지석은 더 화를 냈다.
“아니, 연장자면 연장자답게 관리 좀 하시라고요. 물 흘러가듯 묻혀가고 도움도 안 되고. 누구는 밖에서 욕먹어가면서 고생하는데요!”
“말이 심하네…….”
“그러면 좋게 나옵니까? 들어왔더니 두 사람은 싸우지. 연장자인 강 차장님은 넋 놓고 있지. 일 좀 해요. 일 좀!”
신지석은 강 차장에게 화를 내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틀린 말 했어요? 뭐, 싸우자고요?”
신지석이 달려들려 하자, 강 차장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에 과장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묘한 감정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인시현이 달려왔다.
“과장님. 일단, 멈추세요. 저 여자가 시비 건 거라고요. 차장님은 관계없잖아요. 왜 자꾸 그래요?”
“왜?”
“네. 욕하려면 저희나 욕하는 거지. 차장님한테 왜 그러세요?”
신지석은 인시현의 말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기분 좋은 감정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싸우지를 말든가!”
그는 화를 버럭 내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애당초 싸우지를 마!”
“저 여자가 먼저 갑자기 제 뺨을 만지면서 얕보잖아요! 내가 지 아래야?”
신지석은 인시현의 말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속 감정이 더 중요했다.
장미연이 다가왔다.
“과장님. 죄송해요. 인 사원하고 친해지고 싶었던 건데요. 물의를 끼쳤네요.”
자기에게 공손히 사과하는 그 모습에 신지석의 감정에서 다시 그 감정이 올라왔다.
인시현은 그 모습에 더 화를 냈다.
“장난쳐? 친해지는 게 갑자기 와서 멋대로 얼굴 만지고 욕하는 거야? 정신 좀….”
“아! 닥쳐!”
신지석이 다시 인시현에게 소리를 질렀다. 인시현이 놀라고, 과장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제발 좀 나 좀 편하게 해줘. 편하게! 인 사원! 그냥 좀 참아! 무작정 싸우려 들지 말라고.”
그가 소리치자, 인시현이 움찔했다.
신지석이 이곳을 둘러보자, 감히 자신에게 대드는 이가 없어졌다.
다시 기묘한 감정이 솟아났다.
‘그래, 내가 여기 리더야. 한 번 해주니 조용하잖아. 내가…….’
우월감.
통쾌함.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희열.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실마리가 드디어 잡혔다.
신지석은 자기 눈치를 보는 컨테이너 안에서 명백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이들은 3일 동안 작업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고지를 눈앞에 두었다.
설동 일행은 드디어 컨테이너 옆쪽 건물까지 왔다.
“상가 건물이라서 1층이 뻥 뚫려 있어. 2층에서 준비하자.”
설동은 죽인 감염자 시체를 계단 앞으로 쌓아놓았다.
‘여기는 너무 뻥 뚫려 있는데, 작업하기에는 여기가 최적이니….’
그는 시체를 정돈하고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그들이 여기 오기까지 죽인 감염자 수만 100이 넘을 정도다.
“아무리 감염자가 길바닥 돌멩이보다 많아도 결국에 한계는 있어.”
설동은 한꺽정의 쌍안경으로 컨테이너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공영 주차장을 보았다.
결국, 죽이고 또 죽이면 감염자도 수가 준다. 그 원칙에 따라, 이들은 드디어 눈앞에 목적지를 두었다.
한꺽정은 상가 2층에서 성미대로 흥분해서 공영 주차장을 가리켰다.
“저기서부터 애들 몰고 오면 되지?”
윤주현은 바로 그를 타박했다.
“말이 돼? 천천히. 안전하게 해야지! 또 수십 마리 몰고 올라.”
“역시, 그렇지?”
꺽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씩 당도하는 목표. 설동도 마찬가지였다.
“컨테이너도 작업을 할 테고, 우리도 작업하고. 진짜 내일이나 모레쯤 결판날 수도 있어.”
조금만 있으면 차량이 손에 들어온다. 모두가 그 기대를 한 상태였다.
설동은 휴대폰으로 과장에게 연락했다.
신호가 가고 얼마 뒤 과장의 피곤한 말투가 느껴졌다.
“여보세요?”
“신 과장님. 오늘도 작업 해야죠? 저희도 슬슬 할 테니까 같이 하자고요.”
“네…”
신 과장은 대강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몰이사냥을 시작했다.
한꺽정이 우선 공영 주차장으로 가는 블록에서 감염자들을 유도한다.
그리고 컨테이너 측에서는 그중 몇 마리를 유도해서 처리한다.
기본 골자는 갖춰져 있었다.
설동은 전화로 신 과장의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이 오지 않는데?’
서로 연락을 취하며 긴밀히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데 신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와야 했다.
설동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신 과장님. 준비 다 됐어요?”
“네. 됐습니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이없는 소리에 설동은 미간을 좁혔다.
“그쪽에서 준비가 다 되면 연락을 해야 하지 않아요? 우리가 대기하고 있잖아요.”
“아, 네. 다음부터는 연락할게요.”
무성의한 대답. 설동은 잠시 끊긴 휴대폰을 보며 분을 참았다.
‘조금만 더하면 버스가 눈앞이다. 그래, 그거면 됐지.’
설동은 한꺽정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이들이 만든 밧줄을 타고 한꺽정이 1층으로 안착하고 공영 주차장 방향으로 돌진했다.
“야! 이 새끼들아! 와라!”
한꺽정이 외치는 순간, 감염자들이 줄을 지어 뛰기 시작했다.
걷는 감염자와 뛰는 감염자. 이들이 혼합되어 경주를 펼쳤다.
이제 윤주현의 차례다. 윤주현은 뛰는 감염자를 노리고 있었다.
설동은 그러면서 컨테이너를 보았다. 컨테이너 쪽도 나와서 수를 줄여줘야 하지 않는가.
신지석이 일단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너무 앞으로 간 상태였다.
“기에에엑!”
아니나 다를까 뛰는 감염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멍청하게 뛰는 감염자가 우리 쪽으로 와야 하는데!’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다.
신지석이 혼비백산 도망치는 가운데, 다른 감염자들도 그쪽으로 몰려갔다.
빈성우가 경악했다.
“저 사람들, 어떻게 하지? 처리가 가능해?”
“젠장.”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눈앞에 적부터 처리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상가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데 수월하다.
설동이 도끼를 들고 1층 계단으로 향했다. 시체가 없는 곳에서 그는 조심히 귀를 열었다.
대부분은 그냥 창문 근처에서 있겠지만, 한두 마리 씩은 안으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기….”
“그….”
역시나 두 마리가 1층 복도로 침입한 상태였다.
설동은 도끼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두 마리가 정처 없이 배회하며 계단쪽으로 왔을 때, 이 사냥꾼은 사냥감을 향해 뛰어들었다.
제일 처음, 머리에 도끼를 맞은 채 쓰러진 감염자는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다음, 감염자는 두 팔을 앞으로 향하고 설동에게 달려들 준비를 할 때였다.
퍼억.
머리통에 도끼가 꽂혔다. 사정거리 밖에서 귀신같이 던진 도끼에 순식간에 이 주변은 정리되었다.
마치 베테랑 전사처럼 설동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끼를 뽑아들고 밖으로 향했다.
이미 10여 마리의 감염자는 모조리 화살에 쓰러진 상태였다. 그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할 것도 없이 말이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잖아.”
설동은 컨테이너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숫자가 계단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빈성우가 소리쳤다.
“꺽정아. 부탁한다.”
“와! 진짜.”
한꺽정은 결국, 2차 작업에 돌입했다.
실수. 신지석은 너무 방만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재촉하듯 자기에게 전화를 하는 설동 일행이 짜증났다.
그래서 나가는 그 순간에도 감정을 삭이지 못했다.
그래서 방심했고,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신지석은 그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인시현 왜 날 노려보고 있어? 강 차장, 뭔데 날 째려봐.’
여러 시선을 느끼며 그는 마음속에서 불쾌감이 치솟았다.
쿵쾅거리는 문이 잠잠해진 건, 설동 일행이 구원을 와준 덕이었다.
윤주현의 화살이 꽂히고 드디어 설동 네가 세 번째로 이곳을 방문했다.
장미연에게 부축 받은 신지석은 화난 설동의 얼굴을 보고 더욱 짜증이 났다.
인시현과 강 차장, 공달영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감사해요. 위험했는데.”
그 모습이 왠지 싫어지는 건, 왜일까. 신지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설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지석 씨. 서로 목숨이 걸렸어요. 제대로 안 되면 위험하다고요. 너무 앞으로 나갔어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여기서 그냥 적당히 대답만 했으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신 과장은 부하들 앞에서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시발. 좆같네.”
“뭐라고요?”
설동이 고개를 들었고, 한꺽정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저씨. 제대로 못 한 건, 당신이잖아. 왜 화를 내?”
“아, 알겠어요. 다음에 제대로 할 테니까. 나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