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84
하지만 여기에는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하연은 아침 조례와 일과를 위해 바깥으로 나왔지만, 집행해야 할 이들이 나오지 않았다.
“또네.”
도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민기를 비롯한 반장들이 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뻔하다.
지각.
‘이걸로 몇 번째지? 술은 엄청 마시고.’
물론, 지각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빈도가 문제였다.
최근 들어 잦아들었다.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도 할까 말까였는데.’
신민기를 비롯한 이들이 최근 일주일에 3번 정도씩 지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각할 때마다 규칙에 따라서 벌을 받기는 받는다.
너무 늘어난 횟수가 문제일 뿐.
사람들도 이상해하는 게 당연했다. 도하연 근처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요새 너무 풀어지지 않았어?”
“원래 안 저랬는데. 너무 이상해.”
“그것뿐이 아니야. 요새 이상한 애들하고 뭉쳐 다닌 다나 봐.”
수군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드디어 신민기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해 헛기침했다.
“이거 또 늦었네요. 반성해야겠어요. 아무튼, 오늘 일과는 다른 게 아니에요. 진지 공사와 대청소입니다.
요새 들어 인원이 늘어나서 불만이 많은데 참아주셔야죠. 여기가 그나마 관리가 잘되는 편이에요. 아시죠? 우리도 지각한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조례는 마치죠.”
조례가 무난히 끝나려던 순간이다. 한 남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민기 씨! 지금, 몇 명이 오지 않았는데요. 그 사람들을 확인해봐야죠?”
“네?”
그 순간, 민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 답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남성은 약간 화가 난듯했다.
“요 며칠간, 계속 빠지거나 늦은 사람들 있지 않나요? 자꾸 그냥 넘어가는 거 같아서 말이에요.”
“흠. 누구죠? 여기에 없는 사람들이….”
신민기는 답을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름이 돌고 있는 이들.
도하연도 이미 눈치 챘다.
“그 사람들이네.”
옆에서 매니저가 고개를 돌렸다.
“그 뭐냐. 최미옥이랑 그쪽 애들이지?”
“네. 언제부터인가 패거리처럼 불리네요.”
비단 도하연과 그 남자만 지목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작은 파벌을 목격했다.
‘뭉치고 있단 건가? 여기서? 민기 오빠가 달라진 게 그 때문인가?’
이미 민기의 변화를 바로 눈치를 챈 도하연이었다.
리더인 신민기는 마이크에 헛기침했다.
“알겠습니다. 규칙에 따라 벌을 내리도록 하죠. 그러면….”
조례는 그걸로 끝이었다. 도하연은 불안 속에서 오전 진지 공사를 위해, 목장갑을 끼었다.
오늘은 수색조도 나가지 않기에 동현도 그대로 있었다.
“와! 태희는 완전히 취업했던데? 의료실에 부품 같이 들어가 있어.”
동현은 그들과 같이 안쪽에 설치된 진지를 다시 허물었다.
물자는 한정적이기에 이들이 영역을 넓히면서 필연적으로 안쪽에 구축한 진지를 사용해야 했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거지만.’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들이 확보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어? 옆 센터 사람들이네?”
도하연은 처음 보는 얼굴이 옆에서 움직이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범위가 넓어지자, 옆 피난민 센터 사람들도 같이 움직이고 있던 거다.
“어? 도하연이다!”
어디선가 소리가 나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반응에 도하연이 고개를 돌리자, 옆 피난민 센터 사람들이 달려오는 게 아니다.
도하연이 무슨 반응이겠는가.
“어…. 안녕하세요.”
옆 피난민 센터 사람들은 말로만 들었던 도하연을 보자마자 모여들었다.
“진짜 도하연이 눈앞에서 보다니?”
“실물이 더 예뻐요. 언니!”
도하연은 새삼, 쑥스러워졌다. 연예인일 때보다 조금 더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다.
사람들이 몰리자, 작업을 감독하던 관리반장이 소리쳤다.
“이봐요! 거기 갑자기 왜 몰려요? 일해요! 일!”
하지만 TV도 유희 거리도 없는 옆쪽 피난민센터 사람들에게 도하연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위문공연 온 연예인 수준이었다.
도하연은 눈치를 보았다.
“네. 여러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일단,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 되게 비싸게 구네.”
그때였다. 뒤에서 배불뚝이 사내가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거 좀 얼굴 좀 보면 어떻다고? 연예인 아니야?”
“그것도 맞는데. 우리 일하는 중이라서 할 일은 해야죠.”
“말대답하는 거 봐. 아주 싹퉁바가지가 없네. 크하하하.”
기분 나쁘게 웃는 배불뚝이가 모르는 게 있다면, 도하연은 이미 연예인으로서의 도하연을 어느 정도 버렸다는 거다.
“저기요. 아저씨. 부인하고 싸우셨어요? 뜬금없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왜 시비를 거세요.”
“허…. 미쳤구나. 아주 연예인이라고 오냐오냐 대하는 사람만 있나 보네. 얼굴만 믿고 까부나? 응?”
배불뚝이 사내가 도하연의 이마에 손을 손가락을 가져다 대려고 할 때였다.
“만지지 마세요.”
도하연이 차갑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배불뚝이 사내는 자기 동료로 보이는 남자와 같이 웃었다.
“뭐? 여기가 아직도 연예인 할 줄 알고 그래? 어찌할 건데?”
“딱히 연예인인척 한 적은 없는데요. 멋대로 연예인 취급하더니, 이제 와서 하지 말라니요? 말에 줄기 좀 제대로 잡아주실래요? 평소에 말 못한다는 소리 듣죠?”
지지 않고 되받아치자,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주 뒤지려….”
“아따, 형씨. 그만.”
배불뚝이의 분노가 날아오려는 그때였다. 동현과 매니저가 걸어왔다.
“거, 내가 듣고 있자니. 형씨 좀 혼나야 쓰겄는데? 왜 우리 하연이한테 성질이야?”
동현이 눈을 부라리며, 배불뚝이와 마주 섰다. 둘 다 장신을 자랑하는 거구.
하지만 동현의 폼에는 여유가 보였다.
“딱 봐도 여자 없어서 환장한 건, 알겠는데. 그렇게 시비를 걸어대면 여자가 오려고 해도 안 오겠네.”
“뭐라고?”
배불뚝이의 손이 움직이려는 순간, 동현이 그 팔목을 잡았다.
“아이고. 쉽게 흥분하네. 쉽게. 자자, 착하지?”
마치 어린애 다루듯 동현이 힘을 주는 순간, 배불뚝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앗!”
“형님!”
뒤에서 동료가 달려드는 순간, 매니저가 그를 막아섰다.
그리고 도하연은 그의 급소를 차버렸다.
“끄어어억!”
순식간에 사내가 쓰러지고 주변은 소란스러워졌다.
작업반장이 기어이 왔다.
“아니, 이게 뭔 일이야? 폭력 행위 엄금인데! 주모자들 나와!”
도하연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폭력 행위는 지각이나 다른 행위보다 중하다. 도하연은 간이재판장에 섰다.
‘많네?’
오늘 사고를 일으킨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같이 사고를 친 배불뚝이와 그리고 양아치같이 생긴 사내, 그리고 여자 2명 등. 많은 이들이 있었다.
‘최근 들어 늘어난 건가?’
간이재판 때를 구경하자면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다였다. 하지만 요 근래 그 수가 늘어난 편이다.
신민기는 도하연에게 다가왔다.
“하연아. 안타깝지만, 폭력 행위는 당연히 금지. 동현 씨도 알잖아요. 억울한 건 알아도 폭력은 모두 일벌백계에요.”
딱히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직접 문제를 일으킨 도하연과 동현, 그리고 매니저는 추가 작업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했다.
동현은 딱히 거부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뭐, 때렸으니 규칙에 따라 받기는 받아야지.”
의외로 순응을 잘하는 편. 도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이주일 동안 하는 거다.”
“네. 그러죠.”
도하연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한 남성이 소리 질렀다.
“이봐요! 민기 씨! 똑바로 안 해요?”
간이 재판장에서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한 사내가 울분에 찬 얼굴로 외쳤다.
“그 최미옥 패거리가 나한테 시비를 걸었어요! 아침에 조회 때 꼰질렀다고! 그래서 싸웠는데. 왜 나만 여기에 온 겁니까? 정당하게 해야죠!”
분노한 그가 외치고 있었다. 신민기는 살짝 당황해하다가 이내 배우의 모습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하지만 들려온 이야기로는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는데요?”
“누가요?”
“목격자들이요. 당신이 평소 그 사람들에게 원한이 있어 시비를 걸다가 폭력을 가했다고 하는데요?”
“나도 맞았다고요! 이 멍 안 보여요? 그리고 내가 두들겨 맞았는데! 와, 미치겠네! 그 목격자가 누구인데요? 데리고 와요!”
남자는 문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뛰고 있었다.
하지만 신민기는 그에게 벌을 부과했다. 폭력사태이니 도하연처럼, 이주간의 봉사와 추가 작업 부여.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간이 재판장에서 소란을 피우고 불복했으니, 3일 더 연장돼요. 알겠어요?”
무서운 어조로 사내를 몰아붙이는 신민기였다. 하지만 도하연은 안다. 저게 연기라는 걸.
같은 배우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민기 오빠 연기 톤이잖아.’
도하연은 거기다가 최미옥 무리 역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오전에 지각으로도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민기 오빠. 그런데 최미옥 씨. 오늘 지각해서 벌을 받았죠? 어떤 벌을 받은 거예요?”
“갑자기 왜?”
“생각해보니, 간이재판장에 우리랑 시비 붙은 옆 피난민 센터 사람도 와 있는데, 저 사람은 그냥 일방적으로 벌 받는 모양새라 서요. 지각에다가 폭력 연루면, 여기에는 와야 하지 않나요?”
도하연의 물음에 신민기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도하연에게 다가갔다.
“하연아. 나도 바보는 아니야. 주변의 상황을 충분히 판단하고 하는 거야. 알겠니?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간이재판은 이걸로 끝내자. 문제를 일으키지 마.”
신민기는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6. 무너지는 신뢰
최미옥은 사업가이다. 남편의 곁에서 접대나 인맥 유지의 비법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원초적 쾌락이 중요하지. 군대를 생각하면 돼.’
자유가 속박되고 음식도 제한이 있다. 매점이 존재하지만, 대다수는 현금이 없다.
매일같이 살벌한 감염자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걸 상기해보면, 스트레스와 피로도 극심할 것이다.
‘이걸 막아주기 위해서는 욕구를 풀어야 하는 거야. 술은 그 대표적인 경우야.’
최미옥은 센터장 백덕오를 만나며 보급품을 가져갔다.
공짜가 아니다. 명백히 돈을 지불하는 거다.
“센터장님. 요새 신수가 훤하시네?”
“허허. 요새 최 사장님 덕에 삽니다. 여기 담배도요. 이거, 다른 점령지역에 있던 슈퍼를 털어서 나온 거예요. 꼭꼭 숨겨둔 건데. 내가 최 사장님이니까 드리는 겁니다.”
“센터장님. 언제나 그렇듯, 돈은 현금으로 드릴게요. 진짜 ATM기를 발견한 건, 행운이에요.”
그녀는 센터장과 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감염자 사태에서 가진 권력은 잃었지만, 재력은 남아 있었다.
우선 막대한 재산은 변하지 않으니 ATM기나 근처에 은행 하나만 있어도 활용이 늘어난다.
‘아직은 돈의 가치가 있지. 수백, 수천 정도 밀어주면 누가 반응을 안 하겠어?’
그리고 그녀는 무엇보다 무제한 한도의 카드가 있다.
감염자 사태로 카드가 정지될 리는 만무하니, 그걸 이용해 우선 술을 산다.
‘먹고 마시는 쾌락이 최고지. 이런 곳에서. 신민기. 네깟 놈이 뭐라 하든, 결국 우리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뿐이야.’
신민기가 처음에 그들에게 냉정히 대했을 때, 다른 사람과 달리 최미옥은 한순간에 빈틈을 포착했다.
괜히 한 기업의 사장이 아니었다.
거기에 atm기의 발견으로 현금이나 사용이 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지만, 막상 돈이라는 건 무형의 힘을 발휘한다.
최미옥은 센터장에게 돈을 질러주고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을 우선으로 가져가 신민기 일행에게 바쳤다.
심지어 바로 옆 센터장과도 거래해서 물품을 이쪽으로 돌렸다.
‘남편이 예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던 게 군대에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 여기도 마찬가지야.’
그 결과 신민기 일행은 분명히 갑의 위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최미옥 일행에게 종속되고 있었다.
오늘도 담배와 술을 가지고 신민기네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분위기는 살짝 심각했다.
‘분명히 우리 건 때문에 그런 건가? 이제 와서 심각한 척 해봤자.’
최미옥은 능숙하게 술과 담배를 꺼내 들었다.
몇몇 이들이 그 담배에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해봤자, 핏덩이들의 고민.’
최미옥은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민기에게 다가갔다.
“아니, 우리 민기가 왜 이리 걱정거리를 하시나? 문제 있어?”
“최 사장님. 이게…. 요새 말이 너무 나오는데. 아무래도 봐주는 건, 한계가…. 있을 거 같아요.”
예전 신민기라면 말도 흐리지 않고 바로 말했을 거다. 이미 미안함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최미옥의 의도대로 된 거다.
최미옥은 여기서 바로 당근을 던졌다.
“그럼, 무슨 고민인지 알아. 우리 때문이지? 우리가 잘 해야 하는 데. 민폐를 끼쳤어.”
“아니에요. 일단, 무마할 수 있기는 한데….”
“벌? 받으면 되지. 뭘, 그런 거 가지고 사내자식이 고민에 빠져? 시원하게 내려.”
최미옥의 말에 신민기가 반색했다.
“그래도 됩니까?”
‘그래도 됩니까.’
갑의 처지에서 이 말이 나온 순간, 사실상 위치가 뒤바뀐 거나 다름이 없었다.
최미옥은 환하게 웃었다.
“물론이지. 우리도 성인이고 받을 건, 받아야지. 하지만 우리가 벌을 받는다면, 이렇게 담배나 술도 못 올 거 같고. 으음….”
일부러 고민하는 척 최미옥은 말을 흐렸다. 그리고 일단, 마지막이라고 담배나 술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