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90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것보다 유상인은 아이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콜록.
마스크를 끼고 기침을 하는 아이. 이곳에서 기침이 무슨 의미인지는 세 살배기 아이도 안다.
박만적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사실, 지금 시간대는 다들 일하고 있어야 했다. 유상인이 멋대로 나왔기에 본 광경이었다.
박만적은 그대로 사라졌지만, 곧 몇몇 아이들이 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유상인은 아주 중요한 약점을 쥐었다. 다시 배급소에서 박만적이 또다시 개판 치면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 때였다.
“박만적씨. 솔직히 당신 밀고해서 넣을까 생각했어요.”
“뭐? 허허. 난 멀쩡한데?”
혹시 몰라 허세를 부렸지만, 이마에 긴장감이 서리고 있었다.
유상인은 웃었다.
“근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제 말뜻을 아시겠나요?”
“······이봐.”
박만적이 다급하게 어깨를 붙잡았다.
“우, 우리 아이는 바이러스 전부터 걸린 거야.”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나요?”
“벼, 병에 걸린 거지. 우리도 확신을 못 하지만 아닐 거야.”
박만적이 사정사정했다.
“그래요? 되도록 격리하고, 앞으로 조용히 지내시는 건, 어떠세요?”
“······.”
“싫으면 알아서 하시면 되죠.”
유상인이 매정하게 돌리자, 박만적이 다시 붙잡았다.
“알았네. 알았어. 제발 그것만은···.”
무법자가 한방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피난민 센터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모두들 다시 자기 일에 집중하며 지내려고 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그러지 않았다.
“시발. 저러면 안 되는데?”
강민호. 이 건들거리는 남자는 갑자기 조용히 생활하는 박만적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뭔가 수단이 필요해. 내가 다시 마음대로 해야 해.’
이대로는 자기도 피해를 보지는 않지만, 이미 얻어맞은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용해지면 건들 명분도 없다. 그런데 자기가 멋대로 하려고 하면 저쪽에서 시비를 건다.
뭔가 필요하다.
강민호는 문득 소문을 들었다. 피난민 센터장이 피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새로운 반장을 뽑는다고 말이다.
사실, 배불뚝이를 처리하려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었다. 행패 끼치는 그를 유상인을 이용해서 처리한 다음에 신임을 얻어 반장이 되는 것이 좋다. 근데 그게 날아갔다.
‘뭔가 계기가 필요해. 여기서 언제까지 명령만 받고 잡일병처럼 살 거야. 옆에는 배우놈이 대장하고 맨날 술 먹는다고 소문이 퍼졌는데.’
예전 현실에서의 화려한 삶이 그리워졌다. 완장을 차고 여자도 후리고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위기를 처리하고 신임을 얻는다.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계기가 필요했다.
강민호는 문득, 격리자 수용구역을 보았다. 동시에 유상인의 어머니가 잡혀간 것도 다시 생각났다.
‘할 수 있겠어.’
악마 같은 욕망이 스멀스멀 그의 마음속에 기어오르고 있었다.
인천 피난민 센터.
감염자들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 이곳은 단순하게 건물을 거점으로 삼는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군대가 주력으로 삼는 곳이자, 서울로 진입하는 방어를 겸한 곳이므로 사실상 도시보다는 못해도 마을 이상이라고 불러도 될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군부대도 아예 사단 급이 주둔하고 있었다.
워낙에 넓다 보니 구역별로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가령, 최전선인 A 구역은 4천 명이 넘는 일반인과 2천 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이런 구역이 무려 4곳이나 된다.
설동 일행은 이 중 A구역에 발을 내딛었다.
이곳에 온 자들은 주로 신입, 또는 죄를 저지른 자들이다.
최전선인 만큼, 툭하면 동원대고 언제 감염자가 올지 모른다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대신 보급이 원활한 장점이 있었다.
싸우는데 보급이라도 잘돼야 하지 않는가.
설동 일행은 딱히 불만 따위는 없었다. 우선 그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하고 왔다는 것에 감사할 뿐.
설동은 군인에 안내에 의해 이 A구역을 둘러보았다.
천막과 임시로 지은 가건물들이 가득하다. 앞쪽에 뒷동산 하나를 거점으로 삼는 공간.
나머지는 펜스를 치고 통제하고 있었다.
설동을 비롯한 이들은 피난민이 있는 체육관에 들어섰다.
“자자! 오늘 새로 온 피난민입니다. ‘촌장’에게 규칙을 인수하세요.”
행보관으로 보이는 이가 설동을 자기 구역으로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A4용지를 나누어주었다.
[교전수칙] [일과]거기에는 문서로 이곳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설동 말고도 남녀 무리가 여러 이곳에 왔다.
이들은 촌장이라 불리는 이곳 담당관에게 이동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60대 노인은 신설동 무리에게 말했다.
“나쁜 짓 하지 말고, 소집하면 즉각 강당 바깥으로 모일 것. 식사 시간은 용지에 적힌 대로다. 잡무는 내가 하달할 테니 잘 따르면 돼.”
“안 따르면 어떻게 되죠?”
바로 그때, 설동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동시에 노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마치 예비군 끝날 시간에 붙잡고 더 질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뭐, 해도 좋아. 다만, 통제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벌을 줄 수 있는 게 내 권한이다. 알겠나?”
“좋아요.”
설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렇게 이들은 텐트 하나를 지급 받고, 자리 잡았다.
한꺽정은 휘파람을 불었다.
“야, 근데 왜 시선이 살벌하냐?”
체육관 강당은 흔히 보듯 엄청난 넓이였다. 근데, 해변에 피서 온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가득했다.
그 시선은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또 왔어.”
“몇 명 째야. 여기 이러다가 식량도 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불만 섞인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렇다. 아직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 도 채 안 됐다.
이 감염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울분에 찬 이들이 많았다.
평온한 일상은 이미 무너졌다.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피난민 시설에 있는 것도 열 받는데, 사람이 계속 들어온다?
설동이 온 타이밍이 나쁜 거다.
“살벌하네. 이민자가 된 기분이야.”
빈성우가 그 시선을 알아채고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뭔가 일어나지 않는다.
미친놈이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야, 잠깐, 신참이야? 그러면 반장한테 인사를 해야지?”
갑자기 민소매 티를 입은 반삭의 남자가 다가왔다.
촌장이라 불리는 이가 삿대질을 했다.
“김반. 가만히 있어! 왜 자꾸 신입들한테 시비야!”
“쳇. 거, 말 좀 한다는데. 영감도 참.”
김반이라 불리는 사내는 설동 무리를 노려보았다.
“이봐. 신입이면 조용히 지내라고. 알지? 여기 사람들은 신병을 싫어해.”
그는 보란 듯이 사람들을 가리켰다. 불안한 감정과 이방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한꺽정도 이 압력에 어찌할 줄 몰랐다. 하지만, 단 한사람만은 아니었다.
바로 설동이었다.
“우린 신병이 아니야. 베테랑이지.”
“뭐?”
설동이 김반 앞으로 다가갔다. 한 성격하는 이 남자가 김반 앞에서 으르렁대었다.
“니새끼가 이곳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때, 우리는 감염자를 때려잡고 여기까지 간신히 왔어. 근데, 어디서 텃세 질이야?”
“너……. 너…….”
김반의 미간이 좁혀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을 때였다.
갑자기 김반이 꿈틀거렸다. 반사적으로 신설동도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이건 적대 행위가 아니었다. 바로 뒤에서 다부진 근육의 50대 여성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왜 시비를 걸고 그랴? 어서 물러나. 괜히 사람들 힘든데 그러지 말어~”
구수한 목소리는 할머니를 연상케 했다. 김반은 뒤로 물러났다.
“정정하시네요.”
설동은 한눈에 이 50대 여인이 운동을 꽤 했단 걸 깨달았다.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보기 드문 근육덩어리였다.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당당하다.
“허허, 자네도 너무 싸우지 마. 다들 소중한 걸 포기하고 왔자누.”
“할망구. 이제 수색은 포기해. 그래봤자, 우리만 피곤해져.”
김반이 뒤에서 외치자, 이 정정한 50대가 눈을 부라렸다. 동시에 권총 하나가 튀어나왔다.
김반은 황급히 손을 들었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할멈이 찾는 손자를 계속 수색하다가는 할망구가 위험하다 이거지.”
“말조심해. 내 손자는 죽지 않았어.”
김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여인은 권총을 집어넣었다.
설동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권총을 일반인이 들고 다녀? 대체 어떻게?’
저 근육과 행동. 할머니 같은 태도지만, 아무래도 군부대 관련 인사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튼, 소란은 그치고 이제 설동 일행은 피난민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모두 인원 파악하세요.”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강당 바깥에 나가 인원수를 점검했다.
이 건 엄청나게 중요한 행위다.
군대에서도 그렇지만, 감염자로 변하면 이 집합에 못 나오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센터장은 모두에게 전달했다.
“오늘 일과는 군인들의 수색을 돕는 일과 진지를 보강 공사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성별이나 나이 구분은 없습니다. 심한 경우만 빼놓고 전원이 나섭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평등이 뭔지를 보여주는 명령이었다.
설동 무리도 명령을 듣고, 배식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따끈한 밥이야… 튀김? 이게 먹을 수 있는 거야?”
한걱정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식판에 주어지는 국과 고기반찬을 훑었다.
따스한 김과 푸석하지 않은 야채. 정말 꿈에도 그리던 제대로 된 밥이었다.
한꺽정과 빈성우, 윤주현은 걸신들린 듯이 배식 판을 비웠다.
그나마 가정집에서 홀로 좋게 식사한 설동만이 평온하게 먹을 뿐.
이제 이다음에는 작업에 들어갔다. 수색조와 공사 조를 나누었다.
당연히 공사조가 인원이 더 많다. 직접 위험지대를 가지 않으니까.
새로 온 인원들의 배치에 놓고 행보관은 고민했다.
“처음이니까. 일단 진지 공사로 보내야겠군.”
옆에서 기다리던 한꺽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죠~ 이곳 지리도 모르는데요.”
하지만 김반이 ‘반장’ 마크를 어깨에 달고 왔다.
이건, 일정 구역의 반장이란 뜻이다.
“아니, 행보관님. 수색이 오히려 더 낫죠. 그냥 군인 근처에서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공사가 오히려 경험이 필요해요.”
“그래? 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김반은 설동 무리를 보며 씨익 웃었다. 핑계 그 자체고 그냥 엿 먹으라고 보내는 거다.
“······.”
설동은 사실, 어디로 가나 상관이 없었다. 근데 이 까닭 없는 적의는 짜증이 난다.
행보관이 사라지고 김반이 룰루랄라 하고 몸을 풀고 있었다.
설동은 그를 노려보았다.
“야, 넌 어디로 일하냐, 수색? 아니면 공사?”
“왜 친한 척이야?”
김반이 눈을 부라렸다. 신설동은 대놓고 입 꼬리를 올렸다.
“꽤 인기 없는 삶이었나 보네. 말 걸었다고 친한 척이라니. 학창시절이 예상된다.”
“시발,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신삥이 지금 나한테 덤비는 거야? 너, 우리가 여기 제일 처음 와서 고생하고 관리한 거 알아?”
“몰라. 알 필요도 없고.”
김반이 신설동의 멱살을 잡았다.
“근데 신삥새끼가 미쳐서, 말대답하지 않나. 다들 힘들어 죽겠는데 편한 데로 가려 하지 않나. 마음에 안 들어. 알겠어? 이곳에서 잘 지내려면 우리 반장들에게 고분고분한 게 좋아.”
“아, 그래?”
설동은 권력으로 자신을 비웃는 김반을 보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딱 드라마 같은 여운을 남기겠지만, 안타깝게도 설동의 성격은 다혈질에 가까웠다.
설동은 멱살을 잡은 김반의 손목을 잡았다.
무지막지한 악력에 김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 너?”
강제로 손을 펴게 된 김반.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빡!
설동의 하이킥이 바로 김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9. 능력을 보여줘라!
인천 피난민 센터에는 ‘오래된 5인’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피난민 센터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군인을 도와 이곳을 지켜낸 이들.
군대로 따지면 병장급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김반도 거기에 속했다. 괜히 반장 직책을 단 게 아니다.
그 정도로 노력했기에 얻은 직책이다. 그런데 신입에게 얻어터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김반은 길길이 날뛰었다.
“저 미친 새끼! 당장 잡아 처넣어요!”
김반은 도화지에 붉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새빨간 얼굴로 외쳤다.
이 피난민 센터에 와서 자신의 권위에 저렇게 반항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신설동은 지금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