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93
그리고 후회했다.
“역시……. 나 혼자 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다 나 때문이다.”
허순자의 눈길은 신설동의 찢어진 옷깃을 보았다. 그렇다. 감염자에게 물렸다고 판단한 거다.
한꺽정은 설동을 자세히 보았다. 물론, 그는 진실을 안다.
‘말할까?’
그냥 확 털어내고 싶긴 하지만, 그 뒤가 문제다. 그냥 절망상황 속에서 자기들끼리 설동의 능력을 안다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면 이다음은? 혹시 실험이라도 신설동이 받지 않을까? 작은 고민이 있었다.
그런 긴장된 상황에서 설동은 평온했다.
“찢어지고, 그런 건 어쩔 수 없어요. 좀비를 피해서 여기저기 굴렀으니까요.”
“그래.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신 못 해.”
“그러면 확신하게 해드리죠.”
설동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베테랑인 허순자도 크게 당황할 정도의 행동.
물론, 그렇다고 나체가 되는 게 아니다. 상체를 벗고 팬티만 남겨둔 설동의 몸은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더불어 상처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건, 상처죠. 제 몸에 상처가 있나요?”
“······호, 이거 보니 아주 화끈한 놈이 구만?”
허순자는 깨끗한 몸을 보고 바로 리볼버를 거뒀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다행이다. 이 할미 앞에서 죽지 마라.”
“전 안 죽습니다. 절대로.”
설동은 미소 지었다.
무사히 군대와 함께 돌아온 설동은 이 A 구역을 확인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너무 넓네.”
하지만 일반 건물도 아니고 여러 동이 합쳐진 구역이다. 온전히 파악하는 건, 무리일 정도였다.
대신, 기점이 되는 공간을 철책으로 막아놓았다.
빈성우와 윤주현은 돌아온 그들을 반기기도 전에 위치 파악에 끌려왔다.
“보통 돌아오면 쉬어야 하지 않나?”
윤주현이 투덜대었다. 하지만 이들도 사선을 넘어왔기에 절대 거부하지 않았다.
이들이 할 건, 지리와 안전 확보였다. 설동은 허순자에게 들었던 포인트제를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매일 일을 하거나 작전에 투입되면 포인트를 준다고 하더라? 그걸 모아서 여러 가지 물품을 살 수 있어.”
“이렇게 넓은 곳이면 은행은 없나? 당연히 있지 않을까?”
윤주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천에서 아무리 그래도 주변에 은행 하나가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빈성우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자금이 유통되지 않는 이상, 은행도 현금에는 한계가 있어. 여기 사람들 수천 명이 은행에서 모두 돈을 찾아가 봐라. 남아나겠어?”
“그건 그러네.”
“만약 된다면 한도가 있을 거야. 물어봐야 하는데…….”
빈성우의 말은 정답이었다. 한꺽정은 허순자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1인당 10만 원이라는데? 일단, 가져갈 수 있는 게 그 정도야.”
“째째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많이 주는 건가?”
빈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동은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가 안전할 거 같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탈출 루트랑 식량 수집은 해보자고. 당장 우리가 정차시킨 봉고의 위치는?”
“A 구역 지하 주차장.”
한꺽정이 신나게 외쳤다.
“그래. 그 봉고에 식량도 그대로 있으니…. 하지만 여유분을 더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각자 가방 하나씩 정도만.”
윤주현은 두 눈을 빛냈다.
“10만 원…. 다른 것도 사고 싶어 생필품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그러긴 힘들겠지. 살아야 하니까.”
아쉬워하는 윤주현의 모습, 빈성우는 동시에 한꺽정과 신설동을 바라보았다.
“근데, 4명이면 40만 원으로 보존식품을 사면 엄청 많이 살 수 있지 않나?”
넌지시 띄우는 여러 뜻이 담긴 말. 설동과 한꺽정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건 압박이었다.
설동은 머리를 긁었다.
“그래. 3명이서만 사둘 것만 사도 남긴 하겠다. 물품사고 남은 돈은 마음대로 하자.”
“그렇지?”
빈성우는 윤주현과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껴안으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훈훈한 광경이지만, 설동은 때때로 한꺽정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는 걸 떠올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괜찮…겠지?’
시끌벅적한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박준길, 허순자, 이필준, 신영주, 김반.
이 5명은 군부대에서 인정하는 관리자 직책의 인물들이다.
구역 내 관리자인 이필준. 전투 요원인 허순자와 박준길, 회계를 관리하는 신영주. 그리고 후방 보급 담당인 김반으로 구성되었다.
군인 지휘관 빼고 이곳에서 그들보다 높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들은 각종 회의에서 일을 집행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난 마음에 안 들어!”
김반이 거칠게 책상을 내리쳤다. 5명과 지휘관들이 모인 회의.
이곳에서 이들은 차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반은 신설동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오자마자 날 때리고 무사하다고? 그게 말이 돼? 감금해야 해요. 격리소로 보내버려요!”
그 소리에 박준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간 허순자 할머님 순찰 작업도 잘했다며? 감염자로 돌변할 애들을 구출까지 하고.”
“그래서 문제라니까? 처음부터 저렇게 나대면, 피난민센터에 분란이 찾아온다고!”
흥분한 김반이었다. 하지만 곧, 박준길의 매서운 눈초리에 진정할 수밖에 없었다.
“넌, 분명히 허순자 할머님 수색에 보내는 거로 벌을 대신한다 했고 거기에 동의했어. 이미 말했듯이 신참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고.”
“자업자득이지 뭐.”
그 옆에서는 마찬가지로 안경을 쓴 신영주가 웃고 있었다.
“보니까 처음 왔는데도 엄청났다던데. 할머님. 진짜예요?”
차분하게 녹차를 마시는 허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동이나 하는 판단이 어지간한 전투요원 보다 나아. 가면서 물어보니, 자기들도 감염자를 처리하고 계속 왔다고 하더군. 같이 온 2명이랑 같이 뭉치면 어지간한 건물 하나 점령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자신만만해.”
“설마요.”
머리를 반듯하게 깎은 이필준이 안경을 매만졌다.
“아무리 그래도 건물 하나에 감염자가 많은데. 허세에요. 허세. 그만큼 자신 있다 이거죠.”
“맞아요! 필준이 형! 바로 그거에요. 좀 한다고 건방지게!”
김반은 이필준에 다급히 동의했다. 허순자는 혀를 차고, 신영주는 미묘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이곳 사령관 강대식이 헛기침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여러분 보급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 이 피난민센터 반경에 감염자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왜 이쪽으로 오는 거죠?”
박준길은 의아해했다.
감염자에게는 자의가 없다. 그냥 근처를 돌아다니다 먹잇감을 찾으면 덤벼드는 단순한 존재일 뿐이었다.
강대식도 머리를 긁었다.
“그건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감염자들이 계속 몰려들면, 아무래도 위험하겠죠. 그리고 이건, 철수한 부대에서 나는 소문인데…. 감염자 중에 ‘기괴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기괴한 거요?”
박준길이 의문을 표하자, 강대식은 본인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흠. 일선 대원들 몇몇이 본 건데…. 거대한 감염자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일반 감염자보다….”
김반은 잠시 머릿속에 상상하다, 이내 웃었다.
“그냥 키 큰 사람이 감염자가 된 게 아니에요? 사령관님도 유머감각이 있으시네. 있어도 어차피 총에 한 방이잖아요.”
강대식도 민망한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보통 감염자보다 강하다고 하고, 총알에 맞고도 죽지 않고 도망쳤다고 전해와서요. 여러분들도 주의는 해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말도 안 되죠. 그지? 솔직히 너무 싸우니까 분간이 안 된 게 아닐까요?”
김반은 여전히 믿지 않는 눈초리였다. 박준길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조금 더 정중했을 뿐.
“그래 봤자, 총알 세례로 만들면 그 어떤 사람도 버티지 못하니까요. 그게 아니라도 폭탄으로 박살내도 되고요. 뭐가 됐든지 간에 말이죠.”
회의는 아무튼, 여러 사항에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우선, 보급 문제를 꺼내들었다. 김반은 자신이 맡는 보급 창고를 떠올렸다.
“매일 같이 소모되는 게 장난이 아니에요. 창고가 벌써 거덜 날 거 같아요. 아예 어디 한 동을 접수해서 보급을 마쳐야 해요. 정부는 언제 지원 오죠? 최근 보급이 끊긴 거 같은데요?”
강대식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파주까지 간 상황에서 대책본부를 다시 만들고 준비 중이라는 군. 시간이 더 걸릴 듯해.”
“서울도 갈 데까지 갔네요. 이거 감염자들에게 포위당하는 거 아니에요?”
“거기까지는 아닐 걸세. 서울에서 특수부대가 운용 중인데, 몇몇 구를 완전히 척살하고 되찾았더군. 안전 구역은 늘어나기는 할 거야.”
김반은 보급 담당으로서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결국, 군대는 보급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소련에 밀리고, 일본이 미국에 태평양전쟁에서 패퇴한 이유가 결정적으로 기술 이전에 보급 문제였다.
지금, 감염자들과 전쟁을 치르는 이들에게 보급이 가장 중요했다.
김반은 지도를 보았다.
“아…. 진짜, 우리 작전 구역 앞에 가면 빌딩 하나 있죠? 그 옆에 대형 마트가 있어요. 무슨 이야기인 줄 알죠?”
박준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딩을 점령하면 병력 배치를 통해 원거리에서 사격하기도 편하고, 새롭게 주거공간도 늘어난다 이거잖아? 그런데 점령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문제지? 저번에 군인 60명 보냈다고 내부에서 변하고 서로 쏴대다가 도망쳤지.”
“그래. 배짱도 있고, 담대한 애들이 해야 하지. 그런데 요즘 자기들이 담대하다고 주장하는 애들이 있네?”
김반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박준길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중요한 작업이야. 네 감정 때문에 애꿎은 희생자를 늘릴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지들이 잘한다잖아. 허순자 할멈 말처럼 이번 전투 요원보다 잘한다면 믿어볼 만 하지 않겠어?”
김반은 씨익 웃었다. 설동의 하이킥에 당한 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거다.
뻔히 아는 유치한 감정에 나머지 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단 한 사람은 빼놓고 말이다.
“해볼 테면 해보라 해.”
허순자. 한꺽정과 신설동을 경험한 이 여성은 김반의 계획에 찬성했다. 단순하게 싫어서인 김반과 다르게 능력을 인정한 거다.
“대신, 나도 같이 가지. 지리를 잘 모르잖아? 인도자가 있어야 하지.”
허순자의 말이다. 남은 사람들은 딱히 반론하지 못했다.
김반은 안색이 새파래졌다.
“제정신이야? 위험해질 수 있는데?”
“내가 어디 쉽게 당하나? 하여간, 젊은 놈이 왜 그리 패기가 없누.”
“참내. 기껏 걱정해줬는데….”
김반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결국, 회의에서 새로운 신참들을 활용하는 거로 결정이 났다.
설동 4인방이 거주하는 곳은 전형적인 학교 건물이었다.
강당과 ‘ㄷ’자 형태의 학교건물이 있는 곳.
그곳에서 이들은 오늘 인출한 돈을 가지고 물품들을 끌어모았다.
“너무 많지 않게 적당히…. 인데. 은근히 돈이 남는데?”
이들은 가방 안에 꽉 찬 식료품들을 보았다.
옷은 단 한 벌 뿐.
그만큼 식량이 중요했다. 이들은 차곡차곡 쌓은 식량을 쌓아두었다.
그때였다.
“이야, 먹을 거 많이 모아두네.”
그들의 앞에서 한 30대 사내가 다가왔다.
심민욱. 그들과 같은 교실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한 교실당 10명 정도로 들어간 이들이어서 일종의 동료라고도 할 수 있다.
빈성우가 웃으며 다가갔다.
“만약을 대비해서 모아두는 거죠. 만약에 버티기도 좋지 않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런 경우가 생길까? 거, 새로 온 김에 나누는 건 어때? 우리는 진작 다 써서 배급만 먹고 있다고.”
웃으면서 다가오는 심민욱. 빈성우는 순간, 설동의 두 눈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걸 보았다.
그는 일단, 말을 뒤로 밀었다.
“일단, 저희는 갑자기 군 작전본부실에서 불러서요. 일단 갔다 오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에이, 왜 그래? 어차피 계속 지낼 사이인데. 이사할 때 떡 돌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런데 심민욱은 뻔뻔할 정도로 가볍게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연스레 과자에 손을 뻗었다.
물론, 그 손은 설동에게 바로 막혔다.
“우리 그렇게 친한 건, 아니지 않아요? 너무 다가오시네. 예의는 지켜요.”
설동의 살벌한 눈매에 심민욱은 뒤로 물러났다.
빈성우는 여기서 자기가 해야 할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되니까….’
그는 심민욱을 돌려보내었다.
“지금 설동이가 기분이 좋지 않거든요. 이해하세요.”
“허흠.”
일단, 놀란 기색의 심민욱은 물러섰다. 설동의 반응은 확실히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한 단발의 여성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요.”
“차연아 그만해.”
심민욱은 차연이라고 불린 여성을 말렸다. 그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실례했군. 그래.”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설동 일행은 부르기 때문에 나가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꺽정은 나가면서 설동의 어깨를 잡았다.
“친구, 너무 과격한데? 살살 말해도 되잖아. 나도 막 손대려는 건, 별로였긴 했는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 며칠 동안 인사 말고 별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다가와서 친한 척하는 게? 거기다가 무례한 태도도 말이야. 뭔가 수상한데.”
윤주현은 그런 설동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음모론 적 시선 아니야? 뭔가 느낌은 있지만…. 그냥 지켜보다가 다가온 거 일수도.”
“그랬으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그 태도는 이상한데.”
갑자기 기묘했다. 딱히 방을 바꾸지 않는 이상 계속 같이 있어야 하기에 까다롭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다 아는 불편함.
설동은 그나마 진짜 군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작전본부 실로 향했다. 학교 옆의 주민센터. 그곳이 바로 군인들과 작전 회의를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허순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한꺽정이 성향대로 바로 다가갔다.
“할머님! 정정하시네요?”
“정정하다니? 나이를 생각해라! 아직 나 안 죽었다!”
허순자는 편한 표정이었다. 윤주현과 빈성우가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너희가 같이 온 애들이냐? 이 두 놈이 나랑 같이 꽤 활약해줬거든. 너희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