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1
101
미끼 (1)
* * *
‘확실히 매혹적으로 보이긴 하는군.’
엘런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것은 발리체 지하 경매장에서 무려 500골드를 주고 낙찰받은 쾬튼 공방의 찻잔이었다.
매끄럽게 떨어지는 찻잔의 곡선이 엘런의 시선을 끌었다. 광택이 나는 옆면에 약간씩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 감정은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취하고 싶은 욕망과 닮아 있었다.
-사람을 홀리는 기운이 가득하다.
프로뱅도 그곳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스캔 마법을 사용해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엘런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찻잔에 스캔 마법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피어 산맥의 몬스터 때처럼 찻잔 자체에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마법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일종의 전이라고 할 수 있겠군.
‘전이라면 네트의 영혼이 전이된다는 말인가요?’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영혼의 전이라는 것에 대한 내용을 읽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것 또한 흑마법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르륵.
그때, 찻잔에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주 마법의 현상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찻잔에 집중하게 되었다.
찻잔을 처음 보았을 때 생겼던 욕망이 다시 가슴속에서 들끓어 오를 것 같았다.
‘최면이구나.’
문득 정신을 차린 엘런은 얼른 찻잔에서 눈을 뗐다.
-최면을 통해 연결 통로를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영혼이 전이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걸로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이군요.’
그 불길한 기운은 분명 네트의 것이었다.
공방의 제품이 비정상적인 인기를 끄는 것, 소유주가 사람을 죽이는 것, 그리고 그 시체가 없어지는 것도 전부 네트와 관련된 것임이 확실해졌다.
‘쾬튼 공방의 공방주 쾬튼. 그가 네트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물건이다. 더욱 퍼지기 전에 얼른 잡아야겠어.
엘런은 먼저 그 찻잔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놓았다.
‘은근히 기분 나쁘네.’
최면에 걸릴 만큼 엘런의 정신력이 나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깐이나마 그 녀석의 최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엘런은 이 불쾌한 기분을 털어 버리려고 창문을 열었다.
휘잉.
차가운 밤공기가 엘런의 머리를 식혀 주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머리만 식혀 준 것이 아니었다.
‘또 뭐야?’
제피로스와 동화된 엘런은 바람을 통해 주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밤바람은 엘런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까지도 알려 주었다.
‘혹시나 하고 노려 본 건데. 이렇게 덥석 물어버릴 줄은 몰랐는걸.’
건물 반대편에서 자신의 방으로 다가오는 세 개의 인기척을 느끼며 엘런은 미소를 지었다.
화악.
엘런은 자신의 방에 켜져 있던 불을 꺼 버렸다. 그의 방은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다.
* * *
“이곳이 맞아?”
“확실합니다. 그 청년이 찻잔을 들고 있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고스 상단의 행수가 아니고 여기 있는 애송이에게 물건이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일이 더 수월해지겠군.”
발리체의 화려한 밤도 모두 끝이 날 정도로 늦은 시간이었다.
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앞에 보이는 여관 건물에도 몇몇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쾬튼의 물품을 낙찰받고도 이곳에 남아 있다니 무지함에도 정도가 있지.”
일부의 귀족들이 쾬튼의 물품을 빼앗기 위해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벌인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반대쪽 방도 확인하고 왔나?”
“목표물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그림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한 번에 여관의 천장까지 훌쩍 뛰어올랐다.
그렇게 높은 거리를 뛰었음에도 착지할 때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곳입니다.”
그들은 금방 엘런의 방 창문까지 도착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손짓만으로 소통했다. 리더로 보이는 그림자가 손짓하자 그중 한 명이 여관 건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두 명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엘런의 창문을 열었다.
오래된 창문이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 안에 들어온 그들은 곧장 엘런의 위치부터 파악했다.
한 그림자가 침대를 가리켰다. 그 침대에는 사람 하나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었다.
‘죽여.’
리더는 목표의 목숨을 끊어 버리라는 신호를 내렸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목표 물건을 찾았다.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푸슉.
“으힉.”
침대에 누워 있는 엘런에게 칼을 꽂아 넣은 그림자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낸 소리 중에 가장 큰 소리였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제대로 안 차려?’
쾬튼의 찻잔을 찾고 있던 리더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저렇게 초보적인 실수를 하는 후배를 따끔하게 혼내 줄 생각이었다.
부들부들.
검을 꽂은 사내는 그 자세 그대로 몸을 떨고 있었다. 리더가 보았을 때도 분명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저거 왜 저러는 거야?’
그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으헉.”
사내에게 다가간 리더도 역시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 이건 칼스?”
사내의 검이 꽂혀 있는 대상은 자신들의 목표물이 아니라 먼저 내려갔던 칼스였다.
칼스는 복도에 오가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목표물이 도망칠 수 있는 출입구를 확보하러 먼저 내려갔었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당한 것이다.’
스릉.
리더는 판단이 서자마자 칼을 뽑았다.
그리고 주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옆의 사내도 덩달아 검을 뽑았다.
“그거 내가 죽인 건 아니야. 나는 슬립 마법만 걸어놨을 뿐이거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를 죽일 의도가 충분히 보인 것 같네.”
그의 소리는 공기 중에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왼쪽에서 들린다 싶더니 점점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피잉.
리더의 눈에 푸른빛 안광이 비쳤다. 그러자 어두웠던 방 안이 대낮처럼 훤히 보였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의 정체는 찾을 수 없었다.
“비겁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비겁? 비겁은 내가 아닌 것 같은데.”
피융.
“커헉.”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옆에 있던 그림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것인지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언제……?”
탁.
당황하고 있는 리더의 앞에 엘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무슨 목적으로 온 거지?”
“네, 네놈이……!”
리더는 엘런을 향해 고함을 쳤다.
“보아하니 목적은 나의 목숨과 쾬튼의 찻잔인가?”
“네놈을 죽여 주겠다.”
츠츠츠.
그의 검에 푸른 오러가 맺혔다.
‘소드 익스퍼트 정도의 실력인가?’
그가 재빠르게 엘런에게 달려들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휘잉.
하지만 엘런은 그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렸다.
엘런이 보기에 그가 휘두르는 검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느껴졌다.
“이런.”
자신의 검이 빗나가자 그는 곧바로 몸의 방향을 바꾸며 공격을 이어 갔다.
‘정형화된 검술이다.’
그것은 분명 초식이 있는, 정형화된 검술이었다.
검법이라는 것은 각 왕국이나 가문에서도 일급 기밀로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일개 자객 따위가 그런 검술을 배울 리가 없었다.
“너 어느 가문의 기사지?”
“헛소리를 하는군.”
그의 검이 매섭게 날아들었지만, 엘런은 그것을 너무나 쉽게 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만들어 주지.”
쩌적.
엘런에게서 시작된 얼음 줄기가 순식간에 리더의 발을 얼려 버렸다.
“어느 틈에……?”
그는 단숨에 얼음을 깨고 빠져나오려 했지만, 서리의 얼음은 쉽게 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휘잉.
스걱.
곧바로 날카로운 칼바람이 그의 몸 이곳저곳을 베고 지나갔다.
그것은 윈드 커터 마법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빠른 칼날이었다.
“큭.”
순식간에 몸이 넝마가 되어 버린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인탱글.’
땅에서 나온 덩굴들이 그를 구속했다.
이제 그는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엘런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엘런의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름이 무엇이고 누가 보내서 왔는지 말할 건가?”
그는 엘런을 노려볼 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콰득.
엘런은 그의 손가락 하나를 뒤로 젖혀 버렸다.
그러자 뼈가 으스러졌는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크, 크윽.”
“이래도 대답을 안 하시겠다? 그럼.”
엘런의 손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 주위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염 인챈트를 사용한 것이다.
치이익.
“끄아아아악.”
엘런의 붉은 손이 그의 어깨에 닿자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은 점점 리더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고온 때문에 어깨의 피부가 녹아내렸다.
살이 타는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의 입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에는 독기만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삼류 자객이라면 이 정도 고통에 벌써 입을 열었을 것이고, 일류 자객이었으면 사로잡히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자는 계속 버티고만 있었다.
‘그것은 명예를 중요시 생각하는 기사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행동이지.’
엘런은 잡고 있던 손을 뗐다. 그와 동시에 살을 태우는 소름 돋는 소리도 그쳤다.
“무식한 놈이군.”
“크흐흑.”
그는 바닥에 몸을 눕히고 좌우로 구르고 있었다. 이번 것은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네가 입을 닫고 있는다고 해서 내가 못 찾을 건 아니다.”
엘런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의 몸이 엘런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어찌나 입술을 깨문 것인지 아랫입술에는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네놈의 몸, 의복, 행동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거든. 게다가 기사이기까지 하니 얼굴도 잘 알려진 편일 테고 말이야.”
엘런의 말에 리더의 눈이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이 커졌다. 그의 동공은 한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냥 서로 편하게 바른대로 부는 게 어때?”
엘런의 마지막 경고에도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제피, 알레그에게 내 말을 좀 전해 줘.”
휘잉.
엘런은 제피로스의 바람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일정 거리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담은 제피로스가 곧바로 알레그에게 날아갔다.
덜컹.
“쾬튼의 물품을 낙찰받지 못한 자들은 그 물건을 빼앗기 위해 살인도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바로 밑에 층에 있던 알레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소문을 들은 엘런은 일부러 시장을 돌아다니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온스에게 물건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자객을 사로잡는다면 알레그가 정보를 캐내 주기로 한 것이다.
“빨리 왔군.”
“고용주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와서 말이야.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군.”
“나름의 방법이 있지. 우선은 이자부터 봐 줘.”
“그래, 추가 비용을 받았으니 일부터 해야겠지.”
알레그는 덩굴에 꽁꽁 묶여 있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이 남자의 몸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셔츠의 단추며 옷매무새가 예법을 배운 이로군, 기사인가?”
그의 눈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것 같아 리더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신발에는 여러 가지 먼지가 묻어 있지만, 바짓단에 묻은 흙먼지는 발리체 서쪽의 시장가에서 묻는 모래이군. 서쪽에서 기사를 자객으로 쓸 만한 자이면서 쾬튼 물품에 관심이 많은 자.”
알레그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뜸을 들였다.
“너 제레미 자작가의 기사로군.”
“어, 어떻게……!”
처음으로 리더의 입에서 말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