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2
102
미끼 (2)
* * *
“기사라는 자가 암살과 도적질을 하다니. 명예롭지 못하군.”
리더의 얼굴에는 수치심이 떠올랐다.
“왜 그 고통 속에서도 정체를 말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부끄럽긴 했나 보구나.”
알레그가 비아냥의 수준을 더 높였다.
‘여기 녀석들은 이미지를 너무나 쉽게 바꾸는 것 같아.’
엘런은 알레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는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것이 정보 길드의 길드장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정잡배보다도 더 불량스러운 느낌을 내며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짓까지 벌이게 된 건가. 제레미 가문에서 쾬튼의 물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더니 드디어 파산이 난 건가?”
누군가 들으면 당장이라도 귀족 모독죄로 잡혀 갔을 만한 발언이었다.
엘런이 자신도 모르게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정도였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럼 왜 기사씩이나 되시는 분이 이런 짓이나 하고 다니는 건가?”
기사가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이 명예가 되었건, 주군에 대한 충성이 되었건 간에, 기사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이런 자는 고문을 해 봤자 독기만 늘어 갈 뿐이다.
괜히 고문하는 사람만 지치게 하는 유형.
그래서 알레그는 되레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가 지키려는 것 그 자체를 공략하는 것이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는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겠다.”
그의 눈에는 죽음도 불사르는 불굴의 의지가 맺혀 있었다.
“이미 암살과 도적질로 명예를 잃은 기사가 명예롭게 죽겠다니. 그거야말로 너의 하찮은 욕심이 아닌가.”
그것이 치명적이었는지 리더가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수치스러운 행동들이었다.
‘어떤 변명을 붙여도 내가 기사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건 맞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의 불타오르던 의지도 꺾여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을 보며 엘런은 몇 년 전에 보았던 고센 제국의 명장, 베르무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숨도 아끼지 않는 굳은 신념.
‘그때는 죽일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그 한을 여기서라도 풀어 줘야겠군.’
“성품은 올곧은 기사인 것 같은데 너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군.”
알레그의 뒤에 있던 엘런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따로 죽이지는 않겠다. 다만, 일을 그르치면 곤란하니 그동안은 어디 다른 곳에 격리해야겠어.”
리더의 눈빛이 흔들렸다.
왠지 이자에게 말을 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면 미쳐 가는 자신의 주군을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군의 일을 외부에 발설하는 것은 기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엘런은 리더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도 캐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제레미 가문의 기사란 걸 알아냈으면 굳이 정보를 더 얻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앞에는 발리체의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보 상인이 있었다.
“혹시 제레미 가문에 무슨 일이 있나?”
알레그에게도 기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그저 유흥거리였다. 제레미 가문의 기사라는 걸 알아낸 시점부터 자신이 생각한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알레그는 엘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거래는 거래지.”
혼자서 피식 웃음을 지은 엘런은 은화를 꺼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나름 정보를 파는 거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이게 내 밥줄이지.”
알레그는 엘런에게 받은 돈을 잽싸게 품에 넣었다.
“최근 들어 쾬튼 물품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그리고 나타나는 변화는 다른 귀족들과 마찬가지더군. 난폭해지는 성격과 늘어나는 즉결처형, 그리고 수습하지 못한 시신까지.”
리더는 알레그가 자신의 주군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자를 보아하니 고용주와 경합을 벌였던 사내가 바로 제레미 자작이었나 보군.”
지하 경매장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어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엘런은 그들이 직접 제 발로 찾아오게 했다.
“그럼 단서는 거기에 있겠고, 우리 쪽에서 미끼를 던져 줘야 하나.”
엘런은 쾬튼의 찻잔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되는 게 옳은 일일 수도.’
리더는 엘런의 성공을 은근 바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군의 광기 어린 행동.
그것을 바로 잡아 줄 사람은 바로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곳인가?’
엘런의 눈앞에는 꽤 커다란 크기의 저택이 보였다.
웬만한 국가의 자작가 저택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바르다이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돈이 많다고 하더니. 새삼 한 번 더 느끼는군.’
무역 왕국 바르다이에서는 부가 곧 미덕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은 바로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은 노력하지 못한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는 곳이다.
왕실에서는 일정 액수의 재산 규모를 넘기는 이를 귀족으로 임명한다.
그것은 부의 축적이 곧 사회적 존경의 척도인 바르다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가난한 귀족은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놈은 아까부터 여길 계속 기웃거리고 있잖아?”
“보나 마나 구걸이나 해 보겠다고 온 게으름뱅이겠지.”
저택의 경비원들은 아까부터 저택을 바라보고 있는 엘런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입고 있는 로브를 보면 마법사인 것 같은데?”
“어디서 훔쳐 온 것 아니야? 상식적으로 마법사의 얼굴이 저런 거지꼴일 리가 없잖아.”
“그런가? 그렇다면 자작님께서 보시기 전에 얼른 치워 버려야겠어.”
경비원 중 하나가 엘런에게 걸어갔다.
그러곤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창끝을 살짝 내려 그를 향하게 했다.
“어이, 여긴 너 같은 비렁뱅이들이 올 곳이 아니다.”
문 앞에 있던 경비원이 엘런을 향해 말했다.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엘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발리체에 도착해서 낮에는 관광을 다녔고 밤에는 책을 읽느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그가 3일 동안 잔 잠은 모두 합쳐 10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눈은 퀭해졌으며 눈 밑으로는 짙은 다크서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간 씻지 않은 탓에 머리는 기름져 있었다.
이미 40년을 넘게 평민으로 그중에서도 용병으로 굴러온 그였다.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엘런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홀대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제레미 자작을 만나러 왔다.”
“누가 누구를 만나? 너 같은 놈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썩 꺼져!”
말로만 이러는 정도면 엘런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창을 거꾸로 돌려 봉 부분으로 자신을 쿡 찌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우지끈.
엘런은 경비원의 창을 부숴 버렸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조차 몰랐던 경비원은 자신의 부서진 창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네까짓 것들이 다룰 수 없는 물건을 가지고 왔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엘런의 서늘한 목소리에 경비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리트, 너 뭐 하는 거냐? 조금 있으면 자작님께서 나오실 시간이라고. 그런 녀석 얼른 치워 버려!”
다른 경비원이 걸어와 엘런의 어깨를 밀치려고 했다.
우지끈.
똑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의 창도 한 번에 부러졌다.
두 동강 난 창을 들고 있는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창을 내려다보았다.
“얼른 전해라, 당신이 가지고 싶어 하던 쾬튼의 찻잔을 들고 왔다고.”
“예…… 예!”
경비원은 쾬튼의 찻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겁에 질려 저택으로 달려갔다.
‘젠장, 내가 갔어야 했는데.’
홀로 남은 경비원은 졸지에 엘런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내렸지만, 다행히 엘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사람을 데리러 갔던 리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원에게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구세주의 소리 같았다.
“이곳입니다.”
리트의 말에, 함께 온 기사는 한달음에 엘런의 앞까지 달려왔다.
“쾬튼의 찻잔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는 물품의 가치를 아는 자였기 때문에 엘런의 몰골을 포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소, 이 찻잔을 팔러 왔으니 그대의 주군에게 안내해주시오.”
“예,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엘런을 저택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척 보기에도 비싼 소파가 있었다.
그 소파에 앉은 엘런은 저절로 몸이 편안해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군을 모셔오겠습니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엘런은 응접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지독한 독기로 가득하군.
‘아무래도 저 물건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는 쾬튼의 제품들이 누구나 보라는 듯 놓여 있었다.
독기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어떻소. 정말 매혹적이지 않소?”
제레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 정도 컬렉션이면 굳이 찻잔이 필요하겠소?”
“나는 컬렉션을 모으려는 수집광이 아니오. 그저 이 쾬튼의 제품이 주는 매혹을 더 많이 느끼고 싶을 뿐이지.”
제레미가 엘런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래, 경매에서 날 이기겠다고 너무 무리한 것 같소?”
“역시 그자는 제레미 공이 맞았군.”
제레미의 미소가 더욱 비릿해졌다.
“공의 말대로 이 물건은 내가 가질 만한 물건이 아닌 것 같소. 그래서 이것이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아온 것이지. 이 물건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가야 하지 않겠소?”
엘런은 쾬튼의 찻잔이 든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매혹적인 자태가 드러나자 제레미의 눈에는 탐욕이 서렸다.
“누구나 다 실수는 하는 법이지. 그래서 내게 얼마를 원하는 거요?”
“400골드.”
제레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400골드라니, 내가 경매장에서 부른 금액보다 훨씬 높군. 이 찻잔은 쾬튼의 제품 중에서는 그리 비싼 게 아니란 걸 모르는 거요? 100골드라면 생각해 보겠소.”
제레미는 장사를 통해 귀족이 된 자였다.
그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자마자 파격적인 흥정에 들어갔다.
“나보고 5분의 1의 가격에 되팔라는 거요? 그건 너무 박하지 않소?”
제레미의 눈에 엘런은 매우 급해 보였다.
“허어, 나의 인간성에 호소하는군. 좋소, 내 200골드까지는 해 드리리다.”
“젠장, 반을 뚝 잘라서 판매해야 하는군.”
엘런의 감성적인 반응에 제레미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더는 나도 무리요. 알다시피 그리 귀한 것도 아니고 나도 많이 쳐 준 것으로 생각하오.”
엘런은 체념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겠소. 그럼 200골드에 하겠소.”
“좋은 생각이오. 내 돈을 가지고 올 테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제레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응접실을 나갔다.
그는 서둘러 나가는 탓에 뒤에 있는 엘런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점점 연기가 느는 것 같군.
‘이번에 보고 배운 게 많아서 그렇습니다.’
쾅.
응접실의 문이 세게 닫혔다. 밖에 나온 제레미의 얼굴은 나올 때와는 달리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직도 너프와 연락이 안 되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그것이…….”
“왜 어젯밤에 죽었어야 할 놈이 지금 이곳에 멀쩡히 걸어왔냐는 말이다!”
제레미는 경매가 끝나자마자 암살조를 보내 그의 뒤를 캐고 암살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밤이 지나도록 그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목표물이었던 그가 버젓이 물건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일 처리를 제대로 하는 놈이 한 명도 없군.”
그는 불만스러운 듯 벽면을 세게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삭질 않는다. 경매장에서 느꼈던 치욕을 확실하게 되갚아 줘야겠어.”
그의 눈이 검붉은 안광을 내비쳤다.
“남아 있는 녀석들 전부 투입해서 저 새끼 반 죽여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