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3
103
미끼 (3)
* * *
“후우,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제레미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 죽어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죽여 줘야 속이 시원할까. 목이 쉬어서 더는 비명을 못 지를 정도는 만들어 줘야겠지. 아니지. 바닥을 기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빌게 해야겠군.”
혼잣말을 하면서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정상인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만족했는지 아까 전과는 달리 표정이 풀려 있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쾬튼의 컬렉션이 보였다.
컬렉션 전체가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하지만 제레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운 자체를 즐기는 것도 같았다.
‘마음을 다스릴 때는 역시 이 아이들을 봐야 하지.’
다른 귀족들은 각 제품마다 하나씩 컬렉션을 모았다.
하지만 그가 모은 것들을 보면 같은 종류의 제품도 몇 개씩 있었다. 그는 그저 쾬튼의 제품이기만 하면 무작정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 로브의 딱 떨어지는 라인이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가. 또 이 목걸이는 마치 나의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는 것 같구나.’
그는 쾬튼의 물건들을 만지며 황홀해했다.
사아악.
제레미가 그 황홀감에 파묻혀 있는 사이, 쾬튼의 제품에서는 검은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는 조금씩 제레미에게 스며들었다.
그럴수록 그의 눈은 핏발이 선 것처럼 붉어졌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 한 놈 잡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나?’
방금까지만 해도 황홀감에 빠져 있던 그의 신경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이놈들도 싹 갈아치워야겠다. 어디서 좋은 놈들 데리고 오고 이놈들은 다 죽여 버려야지.’
혼자서 킥킥 웃어 대며 비틀거리는 것이 언뜻 보면 약에 취한 사람 같았다.
똑똑.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왜소한 애송이 하나 잡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그러고도 제레미 가문의 기사라고 할 수 있느냐? 너희들은 전부 해고다!”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해고당하기는 싫다 이건가? 그런 놈들이 어떻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지? 너희들은 태도부터가 잘못되었구나.”
똑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자 제레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느냐? 안 되겠다. 내가 네놈들을 직접 죽여 주지.”
그는 벽에 걸려 있던 쾬튼의 검을 들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콰앙.
갑자기 문이 부서지면서 제레미는 거기에 깔려 버렸다.
“노크를 세 번이나 했으니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았겠지?”
“네, 네놈이 어, 어떻게……?”
벌러덩 드러누운 제레미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바로 엘런이었다.
“여기는 경비원부터 주인까지 하나같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정중하게 거래를 하러 왔을 뿐인데.”
엘런이 그의 몸에 놓여 있는 문짝을 밟으며 말했다.
“아주 재밌는 선물을 준비하셨더군. 잘 받았다.”
“히익! 그것은…….”
파삭.
엘런이 발에 힘을 주자 문짝이 부서져 버렸다.
제레미는 가슴에 전해져 오는 고통 때문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제레미는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더니 싹싹 빌기 시작했다. 조금 전, 광기가 어린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태세 전환이 아주 빠르군.”
엘런은 그의 가슴을 짓밟고 있던 발을 떼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쾬튼 제품 다 가지고 와.”
“예? 예!”
제레미는 자신의 서재에 있는 쾬튼의 제품들을 모두 모아서 엘런에게 가지고 갔다.
그가 낑낑거리면서 물건을 내려놓았다.
“이게 전부야?”
“추가로 방금 보셨던 응접실에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레미는 두려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엘런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자신은 죽을 것 같았다.
“이거 다 내가 가져갈게.”
“그, 그것은 안 됩니다.”
그는 공포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그 물건들만은 지키려 했다.
두 팔을 쭉 뻗어서 어떻게든 물건을 가리려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곧 전이가 이루어질 것 같다.
스르륵.
프로뱅의 말이 머리에서 들림과 동시에 쾬튼의 제품에서도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저건 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이가 아니라 드레인인 건가?
프로뱅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와 제레미의 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연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크크크.”
그의 웃음소리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쾬튼 공방의 제품에서 나던 불길한 기운이 그의 주변에서 피어올랐다.
연기를 모두 빨아들인 제레미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 모습은 피어 산맥의 동굴에서 보았던 흑사회의 마법사와 비슷했다.
“네놈을 죽여 주마.”
그의 붉은 눈은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엘런의 몸이 사라졌다.
그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바람과 반짝이는 서리만이 그가 움직인 궤적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퍽. 퍼억. 퍽. 퍽.
깨갱.
마을 사람들이 들개를 잡을 때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약 10분간 이어졌다.
“누가 누굴 죽여?”
“죄, 죄, 죄송합니다.”
그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있었으며, 이빨이 군데군데 빠져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과거의 엘런은 흑사회 마법사와의 싸움에서 깨나 고전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자신을 능가하는 마나량에 식은땀도 흘렸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분명, 조금 전의 제레미는 그 흑사회의 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달라진 것은 엘런이었다. 엘런은 그동안 진리의 문, 세계수, 제피로스, 이시스 등 많은 일을 겪어 왔다.
그때와 비교해서 엘런은 몇 배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제레미는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쾅.
“히이익! 살려 주십시오, 제발.”
엘런이 발을 구르자 제레미는 기겁을 했다.
“이제부터 묻는 말에 신속 정확하게 답해라.”
제레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거지?”
“어떤 거 말씀입니까?”
“쾬튼 제품에서 검은 연기 빨아들인 거. 그거 드레인 마법 같던데?”
“그것은…….”
“신속 정확이라고 했을 텐데.”
우두둑.
그가 뜸을 들이자 엘런이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그게 저도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모른다고 끝이 아닐 텐데.”
제레미의 서재는 그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정말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겁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제레미는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맹세코 저는 모릅니다. 저는 마법을 배워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에게서는 마나 서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 서클이 없다는 말은 그가 마법에 대해서 전혀 공부하지 않았단 말이기도 했다.
이참에 드레인 마법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던 엘런은 실망했다.
‘제피로스와의 소환 이후로 나도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역시 쉬운 길은 주지 않겠다는 건가.’
거저먹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해야 했다. 이제부터 엘런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길을 걸어가야 했다.
반복과 숙달.
무식한 수법이지만 한만큼 효과를 보는 방법이었다. 특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할 테니까 너는 그 기술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엘런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너는 그냥 해. 보는 건 내가 할 테니.”
그날 이후 제레미 자작은 하인들에게 폐관 수련을 한다고 전한 후 몇 주간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 * *
깡. 깡.
쇠망치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그리고 쇠망치는 빨갛게 달아오른 철을 두드린다.
치이익.
그 쇠붙이가 차가운 물에 들어가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로써 그 쇠는 더욱 강인해진다.
그를 보고 있는 대장장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는 다시 뜨거운 화로 속에 쇠붙이를 집어넣는다.
흔히 대장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장장이들은 장인 정신을 담아 쇠붙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다. 이 대장장이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대장간은 커다란 화로를 두고 있는 탓에 내부 온도가 배우 높다.
보통 대장장이들은 열을 식히기 위해 윗옷을 벗어 둔다.
그들의 몸은 반복되는 망치질 덕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한다.
담금질을 할 때마다 들리는 망치 소리와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대장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장장이는 왜소한 체격에, 땀도 전혀 흘리지 않았다.
화로가 뜨겁지도 않은지 불 속에 있는 쇠붙이를 맨손으로 꺼냈다.
처억.
작업대에다 올려놓은 쇠붙이의 형태는 검이었다.
사각사각.
그는 날카로운 송곳을 들고서 검의 옆면에다가 아주 세밀한 조각들을 새겨 넣었다. 그 실력은 웬만한 세공사보다도 정교했다.
대장장이면서 조각가, 세공사, 그리고 의류 제작자까지. 각각의 분야마다 장인이라고 불리는 자가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대장장이는 그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륙에서 그런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쾬튼 공방의 공방주 쾬튼이었다.
스스스.
그가 조각을 새겨 넣자 그에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타나더니 그 검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 검은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검보다도 매혹적이게 느껴졌다.
“후우.”
조각을 마치고 숨을 몰아쉰 쾬튼은 검을 들고 대장간의 벽면으로 갔다.
그곳에는 투구부터 갑주까지, 세상의 모든 기사가 부러워할 만한 풀 플레이트 아머가 걸려 있었다.
그곳에 자신의 검을 걸어 둔 그는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달빛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창백한 피부, 며칠이나 안 감은지 모를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거기서 나는 악취는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 했다.
무엇보다 흰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검은 눈은 네트의 모습과도 똑같았다.
“이제 거의 다 완성되어 가는 것 같구나.”
잔뜩 갈라진 목소리마저도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목소리가 향한 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쾬튼 님, 인신 공양에 쓸 재료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양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다 준비되었습니다.”
쾬튼에게 말을 하는 사람은 코나드 백작이었다.
백작이나 되는 고위 귀족이 한낱 공방의 공방주에게 극존칭을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의 눈은 누군가에게 홀린 것처럼 초점이 맞지 않았다.
“다른 것은 어떻게 되었나?”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재료만 충당하면 될 것입니다.”
쾬튼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웃고 있는 것이었지만, 도저히 웃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나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더군.”
지금까지는 그의 제품은 만드는 족족 최고가를 경신하며 경매장에서 팔려 나갔다.
그 때문에 자신의 최종목표도 잠시 미뤄둔 채 판매용 물건을 만들었다. 일단은 제품이 널리 퍼져 재료를 공급받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인기가 사그라졌다. 지금은 경매장에 쾬튼의 물건이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다.
“저도 요즘은 경매장에 출입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내 혼이 담긴 제품들인데 어째서이지? 그런 나약한 것들은 유혹을 견뎌 낼 수 없을 것인데.”
쾬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얼굴에 표정까지 굳어지니 보기에 거북했다.
“요즘 들어 쾬튼 님의 제품에서 느껴지던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여론입니다. 일설에는 쾬튼 님께서 초심을 잃었다고 하는 말도 돌고 있습니다.”
코나드는 무기질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안타까워하지도 않았고, 쾬튼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이 아는 정보를 담아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말은 제품에 내 혼이 담기지 않았다는 말이군. 내가 만들 때 담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중간에 그게 빠졌다는 말인가?”
그의 검은 눈에서 붉은 안광이 내비쳤다.
“어떤 쥐새끼의 소행인 것 같군. 코나드, 인신 공양의 재료가 끝나는 대로 내가 직접 물품 운송에 참가하겠다. 내 제품에 수작질하는 놈을 잡아 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