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5
105
미끼 (5)
* * *
“크아악!”
“컥.”
“크헉.”
쾬튼과 엘런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용병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단면은 오러로 베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배리어.’
“나를 수호할지어다, 배리어.”
검풍이 휘몰아치는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엘런과 노리스는 곧바로 배리어를 펼쳤다.
“히이익!”
노리스의 옆에 붙어 있었던 덕분에 테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쾬튼은 마법진에서 나타난 사내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 같았다.
그 사내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고 등에는 바스타드 소드를 메고 있었다.
투구와 갑옷의 곡선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세밀하게 세공된 것만 보아도 제작자가 얼마나 공을 들인지 알 수 있었다. 검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어 달빛마저 베어버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갑옷과 투구, 검에서 느껴지는 치명적일 정도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이면에 보이는 끈적끈적함.
이 세트를 누가 만들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의 힘을 보여 주어라.
쾬튼이 가래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그 음성은 2가지로 들렸다.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등에 있는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드는 거로 봐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츠츠츠.
그가 들고 있는 검에 오러가 둘렸다.
하지만 그 색깔은 평소 엘런이 알고 있던 색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 같은 회백색의 오러였다.
후웅.
그가 크게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몰아치는 검풍이 엘런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크악.”
“도, 도망쳐!”
“저 미친놈은 뭐야?”
동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두 동강이 나 버리자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쳤다.
‘버틸 만하다.’
엘런은 그 정도 검풍은 쉽게 방어해 낼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사내는 엘런을 향해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엘런의 속도는 그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에게는 급속기와 이시스가 있었고, 지금까지 돌풍을 불어주던 제피로스도 복귀했다.
팟.
엘런이 급속기를 사용하여 달려 나가는 순간, 그보다 한발 앞서 엘런이 밟을 바닥이 얼어붙었다.
그는 그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뒤에서는 제피로스의 바람이 그의 등을 밀어 주었다.
그야말로 활주滑走. 엘런이 만든 궁극의 이동법이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평범한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엘런이 두 명으로 보일 정도였다.
엘런은 사내의 검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 버렸다.
그는 여유롭게 사내의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사내의 등이 무방비 상태로 훤히 드러났다.
‘플레어.’
고온의 불꽃이 사내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보통의 아머 따위는 단숨에 녹여 버릴 수 있는 온도의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의 등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만 있을 뿐이었다.
‘마법 저항이 걸려 있는 건가?’
쾬튼의 완벽을 향한 집념.
그것에 네트의 마나가 더해져 만들어진 갑옷은 이미 그 자체로 아티팩트가 되어 있었다.
후웅.
사내가 뒤늦게 몸을 돌려 엘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 검은 엘런의 잔상만을 베고 지나갔다.
팟.
‘그렇다면 아머까지 함께 부숴 주지.’
어느새 다시 사내의 뒤를 잡은 엘런이었다. 그는 스태프를 들어 사내의 등을 조준했다. 정확히는 왼쪽 등, 심장이 있는 곳이었다.
‘매직 미사일. 15중첩.’
그 속도에서 쏘아져 나오는 매직 미사일은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15개의 매직 미사일이 압축되어 있어 그 섬광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피융.
그것은 성벽에도 구멍을 낼 수 있는 위력의 매직 미사일이었다.
마법 저항력이라는 것이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엘런의 매직 미사일은 갑옷과 함께 정확히 사내의 심장이 있는 부분을 관통했다.
털썩.
사내의 두 무릎이 바닥과 닿았다. 그에게서는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나. 나를 죽여 줄 거라던 검사는 죽어 버렸는데.”
엘런이 쾬튼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크흐흐.”
“충격 때문에 실성이라도 한 거야?”
쾬튼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입가에 고인 침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어쩐지 그의 광기가 더욱 심해진 것 같았다.
후웅.
그때였다.
엘런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허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싸한 느낌이 드는 순간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가 자신을 일도양단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쩌적.
엘런은 너무나도 급했기에 계산조차 필요 없는 이시스의 힘을 사용했다.
꽁꽁 언 얼음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검로를 가로막았다.
물론 오러를 잔뜩 머금은 검은 아무리 두꺼운 얼음이라도 종잇장처럼 베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얼음을 베는 찰나의 순간이 엘런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배리어 5중첩.’
0.1초라도 지연한 덕분에 엘런은 배리어의 수식 계산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스, 디그, 파이어 랜스 5중첩.’
엘런은 3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신화시대의 마법사들이나 사용했다던 메모라이즈.
한 번에 여러 개의 마법을 사용하는 엘런의 기술은 바로 그 메모라이즈가 재현된 것 같았다.
갑자기 바닥이 미끄러지고 구덩이가 파이면서 사내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화륵.
동시에 엘런의 손에는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창 5개가 생겨나더니 하나로 합쳐졌다.
그는 그 창을 넘어지고 있는 사내의 가슴에 깊이 박아 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화염 창이 몸통에 꽂히고도 그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스승님, 봤습니까?’
-똑똑히 보았다.
엘런의 얼굴에는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회귀한 후, 그는 좀처럼 공포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엘런이 사내의 가슴에 창을 넣는 그 순간, 그는 그 갑옷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안에 아무것도 없다?’
사내의 풀 플레이트 아머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갑옷의 이음쇠 사이에는 붉은색의 선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엘런이 아는 한 그런 존재는 딱 하나였다.
‘데스 나이트구나.’
책에서만 읽어 보았던 데스 나이트였다.
소드 마스터의 시체를 네크로맨서가 되살린 것이 바로 데스 나이트였다.
그들은 죽지도 않고 고통을 모르면서도 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술자의 마나를 받아 생전보다 더 강한 능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네크로맨서들은 인신 공양을 일삼는 혈마법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녀석들이다. 거기다 데스 나이트라니……. 그를 소환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가 필요했을까. 도대체 그분은 어디까지 타락하신 거지?
프로뱅의 안타까움이 엘런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뱅의 감정에 공감해 줄 시간이 없었다.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 불사의 기사가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웅.
쾅.
‘젠장.’
특히, 엘런을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이는 검풍이었다.
제멋대로 흩날리는 검풍은 눈먼 검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 검풍은 주변의 용병들을 모두 벤 것으로 모자라 다른 곳으로 튀어 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글쎄, 싸움이 난 것 같아요.”
“또 싸움 구경이군.”
“이번에는 실력 있는 자들끼리 싸우는 것 같으니 훨씬 재밌는 것 같은데?”
한밤중에 발리체 시내에서 벌이는 전투였다.
그 소음은 자고 있는 시민들을 깨울 만큼 컸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들의 전투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나라의 부가 쌓이자 시민들은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진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자극이었다.
많은 사람이 잠깐 머물다 가는 발리체에서는 길거리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동네 불량배들의 싸움부터 기사와 기사 간의 결투까지. 이곳의 길거리 싸움은 그 내용 면에서 아주 다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들에게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움터 주위로 모인 시민들은 검풍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았다.
‘저놈의 움직임만 피하는 정도면 할 만한데.’
데스 나이트 자체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불사라고 해도 결국에는 네크로맨서가 소환한 언데드일 뿐이다. 즉, 쾬튼만 죽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쾬튼을 죽이면 그 안에 있던 네트의 영혼을 놓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엘런은 지금 주변에 배리어를 치며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느라 더 이상의 여유가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민을 보호하는 데 내가 도움을 주겠소.”
그마저도 노리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어디론가 검풍이 새어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정말 끝도 없어.’
이렇게 가다가는 엘런의 마나가 먼저 고갈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세계수 안에서 체질을 개선하고 정령술을 사용하고 그동안 드레인으로 모은 마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민간인이 죽으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지는데.’
이미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민간인이 휘말리고 말고는 그 사후 처리에 있어 훨씬 큰 문제였다.
-크하하, 과연 내가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이로다.
쾬튼은 그런 점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침을 뚝뚝 흘리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네트의 음성으로 통일되고 있었다.
-저 녀석, 점점 그분의 영혼에 침식되고 있다. 아무래도 그분도 이 상황을 노리고 저 녀석과 타협한 것 같군.
프로뱅의 말처럼 이제 쾬튼의 모습은 네트와 비슷해지고 있었다.
후우웅.
엘런이 상단을 찌르고 들어오는 데스 나이트의 검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검풍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휘잉.
제피로스가 나서 그 검풍을 막아 냈다.
그 모습을 본 데스 나이트는 갑자기 엘런과의 거리를 벌렸다.
후웅. 후웅. 후웅.
엘런의 패턴을 파악한 그는 일부러 여러 방향으로 검풍을 쏟아낸 후, 엘런에게 공격했다.
‘아뿔싸.’
엘런은 그의 공격을 피하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마법과 정령을 동원해 검풍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엘런이라도 전 방향으로 날아가는 검풍을 모두 막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그는 그 많은 검풍 중 하나와 자신의 옆구리를 향한 공격 하나를 놓쳤다.
“엄마, 저 아저씨들은 뭐야?”
“제니, 얼른 들어가려무나. 이곳은 위험…….”
그가 놓친 검풍은 호기심을 못 참고 창밖을 내다보았던 어린 소년에게로 날아갔다.
툭.
그 소년의 상체가 바닥을 굴렀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그 어머니의 비명을 뒤로한 엘런은 데스 나이트를 노려보았다.
엘런의 옆구리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후웅, 후웅.
데스 나이트는 무기질적으로 검을 올리고는 다시 한번 사방으로 검풍을 쏟아냈다.
싸움 구경이라는 것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도 그 영향권에 포함이 된다면 그것은 싸움 구경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아이 한 명이 죽자 그제야 그들은 이것이 재앙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혼란은 오히려 피해자를 늘릴 뿐이었다.
한 번에 사람들이 움직이자 그들은 서로에게 엉켜 넘어졌다.
“으아아악!”
“끄악!”
엘런이 미처 막지 못한 검풍이 그들을 덮쳤다.
그리고 엘런의 몸 곳곳에도 검상이 생겼다.
‘이래서는 몇 명의 피를 더 보게 될지 모른다.’
엘런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시민들을 지키면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시민들을 버리는 것도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아주 잠깐만이면 되겠소?”
노리스의 목소리였다. 그 역시 발리체의 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도 바르다이의 마법사요. 폐하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는 스태프를 움켜쥐며 말했다.
“내가 저 기사를 막고 있겠소. 그동안 미친 공방주를 잡아 주시오.”
원래 마법사와 기사의 1대1 결투는 마법사에게 현저히 불리했다.
엘런은 필립스 체술을 바탕으로 한 신체 능력과 무영창이 있었기에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엘런이 보기에 노리스는 데스 나이트를 상대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아주 잠시 동안 잡아 두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가능하겠소?”
“가능해야만 하겠지.”
그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 보는 이였지만, 엘런은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잠시만 부탁하겠소.”
“내 모든 마나를 써서라도 버티겠소.”
팟.
엘런이 쾬튼을 향해 활주했다.
동시에 노리스는 마법을 준비했다.
“혹한의 기운이여, 그대의 권능으로 내 앞의 있는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라. 프로즌 패터.”
또다시 검풍을 휘두르려는 데스 나이트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쩌적.
“이래 봬도 6서클의 마법인데 너무 쉽게 풀어 버리려 하는군.”
데스 나이트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몸을 털어 버리자 얼음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라면 6서클의 노리스가 상대할 만도 했겠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은 쾬튼의 걸작이었다.
갑옷의 무지막지한 마법 저항력 탓에 노리스에게는 더욱 힘든 싸움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투구가 노리스를 향했다. 목표를 정한 그는 노리스를 향해 달려갔다.
“일단 유인은 성공이군.”
콰앙.
데스 나이트의 검과 노리스의 배리어가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