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6
106
미끼 (6)
* * *
팟.
활주를 사용한 엘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쾬튼의 뒤에서 나타났다.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인기척에 쾬튼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이스 스피어.’
냉기를 풀풀 날리는 날카로운 얼음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쾬튼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그 빛은 너무나 짧은 순간 다시 사라졌기에 엘런은 확인하지 못했다.
푸욱.
“크억.”
쾬튼의 입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깊게 박힌 얼음 조각을 빼내려 했지만, 얼음은 이미 근육을 파고들어 잘 빠지지 않았다.
“뭐야?”
케니프라에서 있었던 네트와의 전투나 엘프의 숲에서의 이시스를 떠올린 엘런은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언제 그가 이상한 마법을 사용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3서클의 아이스 스피어에 이렇게 당해버리니 엘런은 김이 새 버렸다.
‘이렇게 약하다면 나야 고맙지.’
쾬튼과의 전투가 길어질수록 노리스가 데스 나이트를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끝내 주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노리스가 데스 나이트를 막느라 고전하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가 넘어진 노리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스 엣지.’
그 모습을 본 엘런은 서둘러 마법을 사용했다. 네크로맨서만 사라진다면 노리스도 구할 수 있었다.
푸슉.
땅에서 솟아난 얼음 기둥들이 쾬튼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끄, 끄륵.”
온몸을 관통당한 쾬튼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툭 떨궜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이제 되었……?’
그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확인한 엘런은 데스 나이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검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스틸 스킨.’
엘런은 급하게 6서클 방어마법을 사용했다.
까앙.
철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하지만 무게까지 실린 그의 찌르기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검은 피부에 덧씌워진 강철을 뚫고 노리스의 몸에 박혔다.
팟.
엘런은 급하게 노리스를 빼냈다.
다행히 급소까지 닿지는 않았는지 숨은 쉬고 있었다.
“실패한 것이오?”
“덕분에 쾬튼을 처리할 수 있었소.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 같군.”
그를 눕혀 둔 엘런은 데스 나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 녀석 술사가 죽었는데도 어째서 움직이는 거지?’
원래 데스 나이트는 자신을 소환한 네크로맨서가 없어지면 본인도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멀쩡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쾬튼을 죽였을 때, 네트의 영혼이 빠져나왔던가?’
숙주가 죽었다면 그 안에 있던 네트의 영혼은 빠져나와야 했다.
-네가 쾬튼을 죽이기 전까지 그분의 기운이 두 군데서 모두 느껴졌다. 이제는 저 데스 나이트에게서만 느껴지는구나. 애초에 본체는 이쪽이었던 게야. 쾬튼은 분체였다.
프로뱅의 말대로라면 데스 나이트가 어째서 아직도 살아 있는지 설명이 되었다.
‘데스 나이트가 어쩐지 영민하다 했습니다.’
엘런이 알기로 데스 나이트는 생전의 능력을 전부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 자율적인 생각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데스 나이트는 쾬튼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엘런의 패턴을 분석했다.
그러고는 그것에 맞게 주변에 검풍을 날리고 엘런을 공격하는 행동을 보였다.
‘네트, 그놈은 끝까지 짜증나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군.’
엘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할 셈이냐? 저 녀석은 이제 진정으로 불멸의 기사가 되었다.
‘마지막 방법을 써야겠군요.’
-마지막 방법이라니.
그는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다시 살아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 불멸의 기사에게 쓸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 녀석을 움직이게 하는 게 바로 네트의 마나가 아닙니까?’
-추측에 따르면 그렇다. 잠깐, 너 설마?
‘맞습니다. 흡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엘런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방금 겪지 않았느냐? 너의 몸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분의 마나를 흡수했다가는 마나 하트가 붕괴하고 말 것이다.
프로뱅은 자신의 제자가 또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광경은 이시스를 봉인할 때, 한 번으로 족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금까지는 믿을 만한 자가 없어서 못 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엘런은 노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의식이 붙어 있소?”
“그렇소.”
노리스가 헐떡이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내가 저놈을 잡을 건데 그 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 확신할 수가 없소. 혹시 사후 처리를 그대에게 맡겨도 되겠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알겠소. 나한테 맡기시오.”
“고맙소.”
엘런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 언제라도 탄력을 받아 튀어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프로즌 패터. 3중첩.’
콰드득.
노리스와 같은 마법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온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허어, 믿을 수가 없군. 대체 저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자신이 쓴 것과 같은 마법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으면 저렇게 되어 버릴까?’
데스 나이트는 말 그대로 꽁꽁 얼어서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았다.
6서클의 마법을 3번이나 중첩했고 흑마법사들의 방식대로 수식을 사용했다.
게다가 이시르의 힘까지 더해지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끼기긱.
방금처럼 얼음을 털어 버리려고 했던 데스 나이트는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옷이 마찰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쩌적.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두꺼운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건 좀 놀랍군.’
그는 속도에서만 엘런에게 밀릴 뿐이었지 다른 면에서는 월등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였다.
게다가 네트의 마나로 움직이는 덕에 생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시작해야겠어.’
엘런은 재빨리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인챈트, 파이어.’
화륵.
엘런의 손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는 그 손을 데스 나이트에게 가져다 댔다. 불꽃은 점점 얼음을 파고 들어갔다.
탁.
결국에 그의 손이 데스 나이트의 갑옷에 닿았다.
쨍그랑.
그와 동시에 데스 나이트가 검에서 회백색 오러가 빛나더니 얼음이 깨져 버렸다.
‘마나 드레인.’
사아아.
그의 마나가 엘런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던 데스 나이트가 휘청거렸다.
“큭.”
엘런 역시 고통을 느꼈는지 신음이 흘러나왔다.
후웅.
그가 가까스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엘런에게 그 공격은 구분 동작으로 보일 정도로 느렸다.
공격을 쉽게 피한 엘런은 순식간에 그의 뒤를 잡았다.
사아아.
그리고 다시 그의 마나를 빨아들였다.
주르륵.
몸이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는 것인지 입가로 피가 역류했다.
마나 하트에서는 수십 개의 바늘이 동시에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엘런은 그 고통을 꾹 참으며 마나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의 몸에서 검은색 연기가 빠져나왔다.
-네놈이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군.
“드디어 나오셨군.”
엘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당기는 속도를 올렸다.
-크으윽, 네놈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네 몸이 나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의 목소리가 일그러지며 들렸다.
“그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크아아악.
결국, 엘런은 그 모든 마나를 자신의 몸으로 빨아들였다.
철컹.
더 이상 자신을 유지해 줄 마나가 없어진 갑옷은 땅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큭, 끄아악.”
엘런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보게, 왜 그러는 것이오?”
노리스도 엘런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
네트의 마나가 자신의 혈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독기를 뿌려 댔다.
그러고는 마침내 마나 하트까지도 헤집어 놓았다.
네트의 마나는 엘런의 마나와 충돌을 일으키며 마나 하트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털썩.
온몸을 부숴 버릴 것 같은 고통에 엘런의 무릎이 무너졌다. 몸부림을 치는 것 말고는 어떤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사실 지금 그의 마나 하트는 붕괴 직전의 상태였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정말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게 못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느냐? 방법이 무엇이었느냐? 얼른 그 빌어먹을 방법이라는 걸 써라.
엘런은 프로뱅의 목소리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으.”
엘런은 가까스로 의식의 끈을 유지하며 손을 허리에 가져갔다.
그는 거기서 작은 물통 하나를 꺼냈다.
찰랑.
물통 안에서는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그건 세계수의 축복? 그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세계수의 축복. 그것은 세계수의 은총을 받아 만들어진 물이었다.
세계수의 특성을 담고 있는 그 물은 세계의 법칙에 어긋난 것들을 정화할 수도 있었다.
엘런은 그 물병의 물을 숨도 쉬지 않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의 몸속으로 들어온 세계수의 축복은 혈관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네트의 독기가 헤집어 놓은 혈관에 그것이 지나가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우.”
엘런의 앓는 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엘런의 몸을 일주한 세계수의 축복은 드디어 마나 하트로 들어갔다.
그곳은 엘런의 마나와 네트의 마나가 팽팽한 경쟁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균형을 깨 버린 것은 바로 세계수의 축복이었다.
독기를 품고 있던 네트의 마나는 점차 그 세력을 잃어 갔다.
동시에 마치 원래 엘런의 마나였던 것처럼 바뀌었다.
-성공한 것이냐?
‘아직, 아닙니다.’
고통의 소용돌이가 잦아들자 엘런은 여유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후 작용이 없는 건가?’
엘런이 걱정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처음부터 네트의 영혼을 먹어치우고 세계수의 물로 정화할까 했지만, 그 후의 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가뜩이나 각국에서 주의할 인물로 찍혀 있는 엘런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낯선 타국에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꽤 믿을만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적어도 아무 죄 없는 생명이 죽는 것은 결단코 막는 인물이었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엘런이 걱정했던 사후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마나 하트에서 느껴지는 충만함만이 그를 기분 좋게 했다.
“무슨 마법인지 도대체 감도 잡히지 않는군. 내 살면서 그대 같은 이는 처음이네.”
“별말씀을.”
노리스가 몸을 일으키며 엘런을 축하했다.
엘런도 웃으면서 그의 인사를 받았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갑자기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는…….’
쿵.
엘런은 그 상태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여보시게, 왜 그러는가. 이보시게 정신을 차리게!”
노리스는 깜짝 놀라며 엘런을 부축했다.
그때, 시민들 무리가 웅성웅성했다.
“무슨 일이야?”
“발리체 치안 경비대다. 전부 비켜.”
사건이 터지고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치안 경비대가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시민들 무리를 헤집고 방금까지 전투가 벌어지던 곳으로 나왔다.
“이게 무슨 끔찍한…….”
“젠장, 싸울 거면 좀 소규모로 싸우지.”
두 명의 병사는 전투 현장을 보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정말 빨리도 오는군.”
그 말에 병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노리스가 엘런을 부축하고 서 있었다.
“발리체 치안 경비대 소속, 쟝입니다.”
노리스의 복장을 보면 누구라도 그가 마법사임을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은 곧바로 예를 차렸다.
“작은 소란이 있었네. 결과는 보다시피 작지만은 않지만.”
“혹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노리스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엘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어떻게 되면 사후 처리를 부탁한다는 그의 부탁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우리 측 부상이 심해서 말이야. 일단 이 친구를 병원으로 옮겨야겠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나를 따로 부르게.”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가 증언하기 싫다는데 한낱 경비원이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보고만 올리면 그에 대한 조사는 왕실에서 알아서 할 것이었다.
“그럼 다른 시민들을 부탁하네.”
노리스는 축 늘어진 엘런을 둘러업고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