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09
109
초원의 부족 (3)
* * *
“신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냐? 너의 하찮은 손가락질에 우리 부족의 미래를 걸 셈이냐?”
두크르는 바쿤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닥치고 얼른 고개부터 조아려라.”
이해할 수는 없으나 바쿤다의 명이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족 내에서 주술사의 명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엘런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겁을 주려고 했던 것뿐이지, 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긴 저들의 눈에는 신비해 보일 수도 있으려나.’
족장의 다른 이름인 주술사.
그들이 사용하는 신비로운 주술은 족장의 권위였다.
자신들이 숭배하는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상의 법칙을 비틀어 버리는 존재.
그들이 부족민들의 경외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원주민들이 마법사들의 마법을 본다면. 특히, 엘런의 무영창의 마법을 본다면 신을 보았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다들 그쯤 하고 일어나지.”
그래도 수십 명의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노여움을 푸소서.”
바쿤다는 엘런이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하고 더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를 따라 다른 부족민들의 고개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려갔다.
“알겠으니까 그만하고 일어나. 아니면 진짜 노여워질 것 같으니까.”
그 말에 바쿤다가 주춤주춤했다. 그의 머릿속은 엘런의 말뜻을 해석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엘런의 눈을 슬쩍 보았다. 눈앞의 신은 눈빛으로 당장 일어서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부담스러우니까 일어나.”
“알겠습니다.”
바쿤다를 시작으로 부족민들이 다 함께 일어났다.
“은인, 그러니까 주술사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몸을 일으킨 두크르가 엘런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글쎄, 다들 왜 이러는 건지. 그건 너희 부족 사람들이 더 잘 알 것 같군.”
엘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두크르, 너는 어떻게 저분을 알고 있는 것이냐?”
두크르보다 먼저 질문한 것은 바쿤다였다.
“은인은 쓰러져 있는 저를 신비한 힘으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너를 치료해 주었다고? 그럼 저분께서 그 굴트의 저주를 치료했다는 말이냐?”
바쿤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졌다.
“그렇습니다. 은인은 굴트의 저주를 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정녕 가능하다는 말이냐?”
재차 확인하는 그의 어깨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미 듣고 싶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두크르의 입으로 확신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제 오른팔을 보십시오.”
그의 팔에서는 굴트의 저주를 상징하는 보랏빛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
“아아…….”
털썩.
바쿤다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한 듯 무릎을 꿇었다.
조금 전처럼 경외심과 두려움에서 꿇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간절함이었다.
“부디 그 은총을 저희 부족에도 내려 주십시오.”
그의 눈에 맺혀 있던 간절함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희 부족민들은 그 사악한 저주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어차피 나도 굴트라는 놈한테 볼일이 있었으니까 도와주지.”
네트의 조각을 모으려면 어차피 굴트의 저주라는 것을 조사해야 했다.
이 넓은 초원에서 생활할 곳도 마련할 겸 그들의 마을로 가는 것은 여러 모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바쿤다에게 그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고대시대.
태초의 마나가 가득했던 그 시대의 인류는 마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단계인지조차 의심받고 있는 9서클의 마법사가 왕국마다 서너 명씩은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를 넘어서는 단계가 존재했었다,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와 같이 꿈같은 이야기가 무성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대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 후로 약 300여 년간 인류의 역사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인류의 역사를 지워버린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부른다.
당시의 기록이 하나도 없어 암흑처럼 깜깜하다는 의미였다.
암흑기가 끝나고 다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인류 문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퇴보해 있었다.
그들은 마나의 축복을 잃어버린 채, 생존의 현장에 그대로 던져져 있었다.
트라키아 초원의 부족의 모습은 그 시대부터 거의 변화가 없었다.
실제로 엘런이 읽었던 대륙의 역사서도 이곳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추측한 것이었다.
‘살아 있는 역사의 장이로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만든 목책, 줄로 묶은 나무에 짚을 얹어 만든 투박한 집, 그곳 사람들의 조잡한 옷차림까지.
초원 밖의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후진적인 마을의 모습이었다.
‘엘프와 이들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구나.’
엘런은 엘리너스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생각을 완전히 수정했다.
엘프가 자연과 동화되어 있었다면 이들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호전적인 인성 탓에 그들의 마을까지 들어간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까 흥미롭구나.
엘런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엘런에게도 책에서만 보았던 대륙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긴 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마을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바뀌었다.
“으으.”
“어어어.”
고기 썩는 냄새가 마을 전체에 진동했다.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렸다.
그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저 몸의 반응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끔찍하군.”
“이게 전부 굴트, 그놈 때문입니다.”
빠드득.
바쿤다는 두크르가 그랬던 것처럼 굴트라는 이름에 이를 갈았다.
“주, 주술사님.”
한 남자가 한쪽 발을 질질 끌며 바쿤다에게 다가왔다.
그의 다리는 두크르의 팔처럼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진행 상태가 두크르 때보다 훨씬 심한 것 같았다.
군데군데 뚫려 있는 구멍과 덜렁거리는 살점이 그 상태를 짐작하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다리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굴트라는 놈, 정말 끔찍한 방법을 사용하는군.’
네트의 힘이 있다면 일격에 이들을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란 말인가.
그의 악취미에 엘런은 눈살을 찌푸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우리를 도와줄 분을 모시고 왔다.”
바쿤다는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참아 내고는 엘런을 돌아보았다.
“이런 자들이 부족의 절반입니다.”
“알겠어. 일단 이 사람부터 하자고.”
엘런도 그 끔찍한 광경에 얼른 치료를 시작하려 했다.
“으윽.”
엘런의 손이 다리에 닿자 남자는 고통을 호소했다.
‘마나 드레인.’
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곧 끈적거리는 검은 마나가 빠져나오더니 엘런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다리에 있던 보랏빛이 사라졌다. 덩달아 거칠던 숨소리도 진정되어 갔다.
“오오. 정말이었구나.”
바쿤다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엘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큐어.’
이어진 엘런의 치료 마법에 당장이라도 절단해야 할 것 같았던 그의 다리가 회복되었다.
“완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정을 취하면 생활할 수는 있을 거야.”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접었다 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잘라 내고 싶었던 다리였다. 그것이 이제 몸을 딛고 설 수 있는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아직도 약간 불편한 다리를 끌며 엘런에게 인사했다. 엘런이 되었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연신 고개를 숙여 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심한 순서부터 먼저 할 테니까 안내해 줘.”
“아, 이쪽입니다.”
엘런의 기적에 잠시 넋을 잃었던 바쿤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그를 안내했다.
* * *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들어올 때는 기어 들어왔던 사람이 나갈 때는 제 발로 걸어서 나간다.
전설에서나 듣던 신의神醫의 활약을 묘사할 때나 쓰이던 표현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트라키아 초원 호족의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엘런이었다.
‘힐링.’
그의 양손에 일렁이는 하얀빛이 환자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은인이시여,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옆에서 엘런을 지켜보고 있던 바쿤다가 입을 열었다.
그 커다란 사내가 20대 초반의 엘런에게 쩔쩔 매는 꼴이 우습기도 했다.
엘런이 굴트의 저주를 치료하기 시작하자 그는 또다시 엘런을 신으로 불렀다.
엘런은 치를 떨며 그 호칭을 거절했고 결국에 합의를 본 것이 은인이었다.
“뭔가?”
“불경스러울 수도 있지만, 혹시 그 권능을 저는 사용할 수 없습니까?”
감히 신의 권능을 탐하는 것이냐며 호통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물었다.
저 권능만 있다면 자신의 부족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너는 3서클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힐링은 없는 건가?”
엘런의 말대로 바쿤다는 3서클의 마법사였다. 힐링이 2서클의 마법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그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힐링이라니요?”
그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기본적인 마법 이론조차 없구나. 그러면 너희 마법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마법이라 하심은…….”
엘런은 어디서부터 설명할지 퍽 난감했다.
“너희가 쓰는 주술. 그건 어떻게 배우는 건가?”
“아, 그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말에 엘런은 당황했다.
마법에 대한 이론도 없이 무작정 마법식만을 주입시키는 것이라니. 이처럼 비효율적인 방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주술이라는 거 한번 보여 줄 수 있나?”
“예.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발랄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대답에 엘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게서 호랑이의 기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처억.
그런 그가 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기세가 단번에 바뀌었다. 엘런은 그에게서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ÆФΛɦŋяДij!”
그의 입에서는 대륙 공용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튀어나왔다.
화르륵.
그러자 불덩이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으로만 보자면 파이어볼이었다.
-무지막지하군.
프로뱅의 평가대로 그 파이어볼의 크기는 일반적인 파이어볼 5개를 합친 것보다 컸다.
콰앙.
그 거대한 불덩이는 꽤 멀리 날아갔음에도 여전히 커다랗게 보였다.
“이런 것입니다. 은인의 권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근방에서는 가장 강한 주술에 속하지요.”
그의 말에 엘런은 씨익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하늘이 나를 돕고 있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