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1
111
늑대들 (2)
* * *
둥둥둥.
타라락탁.
여러 종류의 타악기가 경쾌한 리듬을 연주했다.
그리고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그 리듬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와하하! 저 녀석, 술 한 통을 혼자서 비우고 있어.”
“역시 허튼이야!”
“고기 다 구워졌으니까 얼른 가져가.”
다른 사람들은 고기와 술을 마시며 이 흥겨운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성대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축제의 상석에는 호족의 족장 바쿤다가 아니라, 엘런이 앉아 있었다.
“이 고기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들다시피 하고 있는 거대한 사내가 바로 호족의 족장 바쿤다였다.
“괜찮아.”
엘런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쳐들어온 낭족을 물리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바쿤다는 마을 사람들의 회복과 승전을 축하한다며 축제를 열었다.
이곳 원주민들에게 축제는 축하의 의미도 있었지만, 동시에 신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경배의 대상은 엘런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부족민들의 눈에 엘런은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갖가지 열매와 고기를 그의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엘런은 열매만 먹을 뿐 고기에는 입을 대지 않고 있었다.
“혹시, 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바쿤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제물을 바친 것은 큰 죄악이었기에 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몬스터 고기를 아무런 밑간도 없이 가지고 오면 누구 보고 먹으란 거야?’
트라키아 초원에서 동물 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동물 고기를 사용할 때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다.
부족민들은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들을 고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명 세계에 있던 엘런은 누린내가 나고 쓴맛이 느껴지는 몬스터 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아니야, 그냥 입맛이 없는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
그렇다고 그들의 성의를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자리를 좀 피해야겠다.’
엘런은 더는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일어나자 바쿤다도 따라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는 절대 안 된다며 그를 상석에 앉혀 놓고 왔다.
저벅저벅.
엘런은 텅 비어 있는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축제를 위해 피워 놓은 불이 이곳까지는 닿지 않았기에 주위는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혼자서 이렇게 고요한 길을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어.’
그가 프로드를 떠난 지도 반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반년 동안, 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동시에 그에 따른 위험도 많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개중에는 굳이 엘런이 감수하지 않아도 됐을 위험도 있었다.
‘거창한 정의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강한 힘이 생겼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 걸 보고 있는 것은 양심에 찔린단 말이지.’
우연히 겪은 회귀와 그로 인한 얻은 많은 인연에 대한 책임감을 그런 식으로나마 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지금까지 많은 사건을 해결했다.
어쩌면 네트라는 혈마법사의 손아귀에 떨어질 뻔한 세상도 구해 내고 있다.
그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진리가 말한 그 녀석, 세계수가 말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자, 네트를 나누어 버린 사내.
여전히 의문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나와는 다른 차원의 실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들과 내가 충돌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때를 위한 준비를 해야겠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힘이 그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힘에 대한 대가. 사실 그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차원의 일에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의 자신은 그들과 비벼 볼 수라도 있을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무영창, 체술, 정령, 고대어. 뭐든지 가리지 않고 배워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했다.
‘굴트라는 놈한테 미끼는 던져 놨다. 그놈이 미끼를 물때까지 고대어 마법이나 배워야겠어.’
엘런이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뒤를 따라왔다.
“두크르, 나한테 궁금한 게 있나?”
엘런은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은인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따라 나왔다.”
두크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
“좋은 타이밍이야. 지금 내가 감성이 몰려와서 뭐든지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은인은 정말 신인가?”
첫 질문부터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프로드 왕국의 마법사다. 너희들이 말하는 신은 절대 아니야.”
“프로드 왕국?”
그들은 문명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초원 밖에 있는 왕국이다.”
“초원 밖…….”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초원 밖으로는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혹시나 호기심이 생겨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무리가 아닌 개인으로 다녔다가는 3일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초원 밖에는 은인 같은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는가?”
“그곳에서도 나는 좀 특별하지. 하지만 너희들이 말하는 주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꽤 많아.
달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나가 보고 싶다. 초원 밖이라는 곳에.”
“나오게 된다면 프로드 왕국으로 찾아와라.”
“꼭 그러도록 하지.”
두크르의 가슴 속에서는 강한 호기심과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축제를 즐기러 가 봐야겠군.”
“은인을 위해 준비한 축제이다.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
그들은 다시 축제의 불꽃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축제가 끝난 다음 날부터 엘런은 고대어 공부에 푹 빠졌다.
바쿤다가 마법을 보여 주고 나면 엘런이 그 마법을 보고 배우는 식이었다.
고대어 마법은 위력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호족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습했다.
“여기서도 보일 정도라니. 정말 두려운 분이야.”
망루에 올라가 경계를 서고 있던 부족민은 멀리서 보이는 불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륵.
연달아 터지는 불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목책 앞에서 4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뭐..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지금까지 계속 목책 밖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걸어오는 것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가 사내들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려는 순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그의 얼굴로 날아왔다.
쏴악.
검은 그림자는 부족민의 얼굴을 덮쳐 버렸다.
“으윽.”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옅은 신음만 냈다.
털썩.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의 모습은 모든 생명을 흡수당하고 말라 비틀어져 버린 미라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호랑이 놈들에게서 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깔린 말투는 바로 낭족 수인들의 것이었다.
“그놈의 짓인가?”
낭족의 주술사 굴트는 아라르를 통해 보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검푸른 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인간. 그의 모습은 자신을 찾아왔던 그 사내와 닮아 있었다.
“이참에 호랑이 놈들을 완전히 쓸어 버려 주겠다.”
쿵.
그의 스태프가 땅속 깊숙이 박혔다. 그가 손을 떼어도 스태프는 넘어지지 않았다.
콰득.
그리고 굴트는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수인족의 이빨은 인간의 것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주르륵.
그는 흘러내리는 피를 꽂혀있는 스태프의 보석에다 흘려 넣었다. 다른 수인들도 굴트의 행동을 따라 했다.
파아아악.
그들의 피를 머금은 검은 보석은 이제 핏빛을 띠고 있었다.
그 핏빛은 보석뿐만 아니라 스태프 전체로 퍼져 나갔다.
“жÐбɲöщŁлçǖ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기이잉.
스태프에서 시작된 마나의 파동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갔다. 그럴수록 파동은 검은 빛깔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검은 빛깔의 마나 덩어리는 순식간에 호족의 마을 전체를 감싸버릴//감쌀 정도로 커져 버렸다.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불투명한 흑색의 연기. 도적들이 쓴다는 독무가 바로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은인께서 또 권능을 발휘하시는 건가?”
갑자기 어두워진 마을의 모습에 부족민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곧이어, 그들을 향한 재앙이 시작되었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호족의 마을에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다녔다.
“끼이이.”
“끼아.”
검은 그림자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비명 같기도 하고 쇠가 긁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부족민들에게 그 소리는 악마의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그림자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저리 가!”
이리저리 도망치던 병사의 복부에 그림자가 달라붙었다. 그는 그것을 떼어 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꿀렁꿀렁하는 것이 뭔가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부족민의 얼굴이 핼쑥해지고 있었다.
“으으.”
“끼아아.”
그가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빌빌거리게 되자 그림자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배는 피부가 죽어 버린 것처럼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엘런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 재앙은 호족의 마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 도망 다녔지만, 사방에 널려 있는 그림자를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크크크.”
그 한가운데는 굴트와 낭족의 대전사들이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만연했다. 그는 이 장면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었다.
“저렇게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옆에 있던 대전사들도 크르릉거리며 굴트의 말에 동의했다.
“굴트, 네 이놈!”
굴트는 자신의 흥을 방해하는 녀석이 누구인지 보았다.
“두크르였나? 용케 저 녀석들을 피해 다녔구나.”
그곳에는 완전 수인화를 한 두크르가 이빨을 드러내며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인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채앵.
“네놈의 목을 물어뜯어 주마.”
손톱을 세운 두크르가 굴트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그의 돌진을 막아 세운 것은 낭족의 대전사들이었다.
“방해하지 마라.”
퍼억.
그가 휘두른 주먹이 한 전사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그의 얼굴은 처참하게 뭉개졌다.
촤악.
주먹에 맞은 전사가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두크르의 손톱은 다른 전사의 가슴을 갈라 버렸다.
순식간에 두 명의 대전사를 쓰러뜨린 두크르였다.
“과연, 호족 최강의 전사답군. 클클.”
하지만 굴탄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끼이이이.”
“크억.”
뒤에서 날아온 검은 그림자가 그의 등 뒤에 달라붙어 버렸다.
“어쨌든 이곳은 나의 구역이거든. 사방이 나의 무기들이다.”
굴트가 그를 조롱했지만, 생기가 빼앗기고 있는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잘도 나의 형제들에게.”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시야에 한 마리의 늑대가 들어왔다.
콰득.
그리고 그는 날카로운 송곳니로 그의 목을 물어 뜯어버렸다.
그의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저놈을 가만 둘 수는…….’
두크르가 의식을 잃기 바로 직전이었다.
쐐애애액.
퍼걱.
어디선가 날아온 물체가 그 늑대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