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3
113
성장 (1)
* * *
“어떻게 된 건지 처음부터 설명해 봐.”
분명 그 목소리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금을 울리거나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절대 거역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힘이었다.
언제든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생명을 끊어 버릴 수 있는 힘. 그것이 절대로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강제력을 지니게 했다.
“저는 수인으로서 타고난 신체 능력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었죠. 제게 죄가 있다면 그건 수인이면서 인간의 지능을 물려받았다는…….”
“잠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한마디에 굴트는 입을 다물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반항도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두근두근.
두려움으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누가 네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너의 사연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괜히 감성을 팔려고 하지 마. 안 그래도 대답만 잘하면 살려 줄 테니까.”
“죄송합니다.”
굴트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요점만 제대로 말해 봐. 확인해야 할 게 있으니까.”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가 다시 멀어지자 굴트의 심장이 진정되었다.
“반년 정도 전에 갑자기 피어 산맥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날아오더니 제가 있던 곳에 떨어졌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그 연기가 저를 덮쳤습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굴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뀌게 할 변화의 시작.
“그 후, 저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저는 더 난폭해졌고 제 몸을 제가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쾬튼의 사례와 비슷했다.
차이점이라면 쾬튼은 욕망이 없었기에 자아를 빼앗기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두 사건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확인 작업을 거치느라 시간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조금의 착오라도 생기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녀석이었기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다행히도 특이사항은 없었다.
이대로 이번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그렇다면 빼앗긴 이성을 어떻게 되찾은 거지?”
굴트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이성이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네트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기까지 했었다. 네트에게 몸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바로 ‘그’ 덕분입니다.”
“‘그’라니?”
새로운 존재의 등장.
엘런은 왠지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저는 이성을 잃고 뛰어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때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한마디에 제 이성이 돌아왔습니다.”
이성이 돌아왔다는 말은 네트의 영혼이 세력을 잃었다거나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었다.
말 한마디로 그것이 가능했다는 말은 그가 네트보다 강한 자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후드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자세히 못 봤습니다. 그는 이성을 되찾은 저에게 선물이라면서 바로 저 스태프를 주었습니다.”
굴트가 도트의 스태프를 가리켰다. 그것에 반응하듯 스태프의 검은 보석이 반짝였다.
“그리고 저를 덮쳤던 검은 연기도 저 보석에다가 봉인했지요. 그 스태프를 받은 저는 그때부터 이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네트의 영혼을 말 한마디로 제압할 수 있는 자.
전설급 아티팩트를 툭 던져 줄 수 있는 자.
그런 존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자인가?’
하지만 엘런의 머릿속에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
얼굴조차 모르는 그 남자. 네트의 영혼을 쪼개 버린 그라면 저런 행동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스태프가 가지고 싶으시면 가지셔도 됩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엘런은 약속대로 그를 풀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토록 비굴한 모습으로 애원하니 괜히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랬다가는 저 녀석, 심장 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지.’
지금까지의 행동만 보면 그것도 마냥 농담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스륵.
굴트의 몸을 옥죄고 있던 덩굴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알겠으니까, 내가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돌아가라.”
“예, 예! 정말 감사합니다.”
굴트는 문자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엘런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그는 마을로 돌아가 봤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바쿤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초원의 부족민들에게 전투에서의 도망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굴트는 자신의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부족의 다른 대전사들에게 미움을 사기까지 했다.
강한 힘을 얻은 대가였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내가 저런 곳까지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 내게는 해야 할 일도 있고.’
생각을 털어 버린 엘런은 옆에 놓여있는 도트의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스태프의 검은 보석이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쾬튼의 제품을 볼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은 이 녀석부터 빼내야겠지? 마나 드레인.’
스태프를 쥐고 있는 손에서 미약한 진동이 일었다. 그러자 보석의 검은빛이 크게 일렁거렸다.
‘이제 이 여행을 마칠 수 있겠군.’
3개로 쪼개졌던 네트의 영혼.
그 마지막 조각이 이제 엘런의 손에 들어왔다.
한 조각만으로도 세상을 얼마나 많은 위험에 빠뜨릴 뻔했는가.
이제는 그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스스스.
보석에서부터 나온 검은 연기가 엘런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마나는 혈관을 따라 엘런의 몸을 순환했다.
그의 마나가 혈관에 독기를 뿌려 댔지만 이미 내성이 생긴 엘런의 혈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나가 엘런의 마나 하트로 들어갔을 때였다.
-드디어 내 조각을 모두 맞추었다.
엘런의 머릿속에서 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송이 녀석, 그 치욕에 대해 복수를 해 주겠다.
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마지막까지 시끄럽군. 이제 갈 사람이 조용히 좀 가면 안 되겠나?’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나는…….
사르륵.
그때서야 네트는 자신의 몸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비로소 완전해졌단 말이다.
그의 절규 소리도 그의 몸처럼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단 말…….
‘그래, 완전해졌지. 내 몸속에서 말이야.’
엘런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네트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구나. 그 강대하셨던 분이, 참.
프로뱅은 자신의 우상에 대한 아쉬움으로 침울해 있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잖습니까? 저도 거저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구나. 너는 이번 여행에서 목숨을 몇 번이나 던져 댔으니. 덕분에 성장도 이루었으니 결과적으로 잘되었다고 봐야겠구나.
찌릿.
“윽.”
그 순간, 엘런의 머리가 마치 전기에 통한 것처럼 찌릿해졌다.
-왜 그러는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이게 왜 그런 건지.’
분명 눈을 뜨고 있음에도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결국 완전히 깜깜해져 버렸다.
‘이게 대체…….’
엘런은 갑자기 일어난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여러 장의 그림이 보였다. 그 양이 너무 많았기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그중 하나의 그림을 들여다본 엘런은 깜짝 놀랐다.
‘그림이 움직여?’
그것은 그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 그 자체에 동화된 것 같았다.
그림 속에서 어떤 이는 마법 체계에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엘런이 생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체계였다. 엘런은 넋을 놓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 움직이는 그림을 다 보고 났을 때, 엘런은 희미하게나마 그 체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한 사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엘런의 머리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엘런의 머리를 초과해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지능은 그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후우.”
그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시야가 밝아지며 트라키아 초원의 광경이 들어왔다.
‘방금 그건 뭐였지?’
원래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경험은 꿈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쿵. 쿵. 쿵.
지금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 규칙적인 진동이 아니었다면, 엘런 역시 방금 그것이 꿈처럼 느꼈을 것이다.
‘일곱 개다.’
일곱 개였다. 그의 마나 하트 안에 있는 고리의 개수가 일곱 개였다.
‘7서클이란 말인가.’
세계수 안에 들어갔다가 이시스의 힘을 흡수했다.
마나 드레인을 익히면서부터 본격적인 마나 수집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마나 수집법 또한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시행했다..
그 덕분에 엘런의 마나량은 이미 일곱 개의 고리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위 마법사의 성장은 마나량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깨달음.
깨달음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내려놓은 서적은 없었다.
그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조차도 정의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고위 마법사의 성장에는 이 깨달음이라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단계를 돌파했다.’
이제 프로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마법사의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전투력으로 따진다면 엘런은 일찍이 프로드의 정상에 올랐다.
마법사의 치명적인 제약 조건인 영창.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전투력을 판가름했다.
하지만 마법사라는 것은 전투라는 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언제나 진리에 복종하고 또 그것을 탐구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서클은 바로 그 진리에 얼마나 가까워졌는가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왕국에서는 현자라고도 불리는 7서클.
프로드 왕국에서는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만난 지 아직 10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7서클이라니. 이건 제자라고 불러야 할지 괴물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제는 너에 대해 두려움마저 일 지경이다.
제자의 성장을 알아챈 프로뱅은 농담을 던졌다.
‘마도의 극한. 그것을 보여 드리기로 약속했지 않습니까? 아마 이 대륙에서 저보다 스승님의 목표를 잘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오냐, 내 너만 믿고 있겠다.
그들끼리만 들을 수 있는 웃음소리가 엘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 *
“정말 가시는 겁니까?”
“은인이시여, 저희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은인의 은혜는 평생토록 지고 살아가겠습니다.”
7서클에 오른 엘런은 여행을 마치고 프로드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름 정도 들었던 호족 사람들에게 인사 정도는 하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엎드려 우는 사람까지 나타나니 자신의 선택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오신 곳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바쿤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누가 이를 보고 호족의 주술사, 트라키아 초원의 포식자, 바쿤다라고 생각하겠는가.
“너무 오래 비워 둘 수만은 없겠지.”
“그러시겠지요.”
바쿤다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같은 무리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었다.
절대로 다른 부족의 유입도 없고 유출도 없는 폐쇄적인 공동체.
이곳에서는 헤어짐이라는 것이 익숙한 감정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또 찾아오겠다.”
“항상 저희를 살펴보고 계신다고 믿겠습니다.”
더군다나 바쿤다에게 엘런은 신이었다.
그의 정체가 신이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멸망 직전에 처했던 자신의 부족을 살려준 구세주. 신보다 더욱 신 같은 존재였다.
“그건 너희 부족 마음대로 해라.”
엘런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인, 정말로 고맙다.”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두크르였다.
“나도 너희 덕분에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은인이 나에게 해 준 말 잊지 않고 있겠다. 언젠가 초원 밖으로 갈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은인이 있는 곳을 방문하겠다.”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엘런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지. 그럼 나는 가 보겠다.”
푸르르.
프로드에서부터 함께 해온 흑마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돌아가자 프로드 왕국으로.”
히이잉.
엘런이 고삐를 쥐어 들자 말은 힘차게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