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5
115
수습 (1)
* * *
고센 제국.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자 피어 산맥 동쪽의 패권 국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의 국력.
무武를 숭상하는 나라.
이 모든 표현이 고센 제국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영광이 고작 2~3년 사이에 이토록 떨어졌다.’
그의 말처럼 대륙 최강을 자처하던 고센 제국은 그 명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강렬하게 저항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승리를 확신했던 프로드 왕국과의 전쟁이었다.
모든 조건은 적절했고 준비도 완벽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왕국들의 추수기秋收期와 그해 유례없는 풍년.’
주변국들은 예년보다 훨씬 많은 곡식을 감당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병력을 투입해야 했다.
전쟁에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던 것이다.
그때가 기회였다.
고센 제국에게 그 풍년은 동부 대륙의 이인자, 프로드 왕국을 공격하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병력의 분산과 베르무트를 필두로 한 제국군의 트라모레 점령 계획도 완벽했다.’
주변국의 침공을 걱정할 일이 없었기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그대로 투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뛰어난 지략까지 더해졌다. 이미 부패가 즐비한 프로드 따위가 이 전쟁을 이겨 낼 수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자만 아니었더라면…….’
갑자기 등장한 마법사 한 명.
제국의 정보국에도 전혀 등록되지 않았던 무명의 마법사 하나가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베르무트의 죽음과 그 후로 거세진 프로드의 반격에 제국은 오히려 백기를 들고 말았다.
‘치욕적이다.’
고센 제국의 제3황자 알폰스 고센은 그 치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대륙을 통일하리라 마음먹었던 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형님은 원래부터 황제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 폐하까지 그렇게 될 줄이야.’
이전부터 이어진 제국의 태평성대를 잘 가꾸었던 현 황제 에밀리오 고센.
그는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패배감에 찌들어 온종일 무기력한 모습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것이 마치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이래서는 제국의 명성을 되찾을 수 없다.’
그때부터 알폰스는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1황자, 2황자는 방탕한 생활 때문에 황제가 지녀야 할 자질을 의심받고 있었다.
그때와 맞물려 알폰스는 대리청정까지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는 뛰어난 정치 감각과 타고난 카리스마,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영웅을 기다렸던 제국민들은 그의 활약에 열광했다.
‘이제 명성을 되찾을 때다.’
그렇게 결심한 알폰스는 곧바로 프로드와의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에다인 왕국에는 점령한 프로드 왕국 땅의 3분의 2를 줄 것을 약속했다.
무능한 에다인의 왕은 자신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는 제국을 얕잡아 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프로드 왕국의 3분의 2를 먹는다면 그들과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욕심과 무지 덕분에 이번 전쟁은 성공할 수 있겠군.’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었다.
가장 큰 변수라고 생각했던 신의 재능 하메론과 침묵의 마법사 엘런, 둘 다 행방이 묘연해졌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것이다.
둘 다 평민 출신의 마법사.
출신 성분을 엄격히 따지는 프로드에서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족들에게 환멸을 느낀 그들은 서부 대륙으로 떠나 버렸다는 것이 제국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하메론이 서부 대륙에서 보였다는 정보가 있었다.
엘런도 서부 대륙으로 향하는 길목인 발리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이거늘.’
어쨌든 가장 큰 변수마저 사라졌으니 자신의 승리는 확실하게만 느껴졌다.
“황세자 저하, 연설이 준비되었습니다.”
그 소리에 알폰스는 뻗어 가던 생각을 정리했다.
“올라가겠다.”
척.
단상에 올라선 그의 눈앞에는 군기가 가득 들어간 제국의 병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조금의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톡톡.
그는 음성 증폭 구슬을 두드리는 것으로 연설을 준비했다.
“프로드 왕국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한 후, 제국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음성 증폭 구슬의 도움이 없어도 그의 음성을 모든 병사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그 명예를 되찾을 때가 왔다. 제국의 백성으로서 목숨 바쳐 싸우고 명예를 쟁취해라!”
“예.”
병사들은 절도 있는 대답으로 황세자의 말에 화답했다.
“는 개소리는 집어치우겠다.”
삐이익.
어찌나 큰 목소리였는지 증폭 구슬은 그 음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너희들은 바로 이 전장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벌고 싶은가? 노비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아니면 여자를 품고 싶은가? 그렇다면 적들의 머리를 가지고 와라.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바꿔 주겠다.”
그의 목소리는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충격적인 내용. 어떤 이들은 비인간적이라며 욕을 할 수도 있을 내용.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지축을 울리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병사들 사이에서 ‘투지’라는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보통의 사람이었으면 그 열기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알폰스는 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상이다.”
그가 단상을 내려갔지만, 병사들의 함성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 * *
“원수님, 우리가 저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겨야만 하겠지. 우리가 밀리면 로슈는 물론이고 트라모레까지도 위험하다.”
제5군 원수 제트 카네로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보였다.
“적들이 로슈를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부관의 다급한 외침에도 제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엘런과 함께 이곳을 점령할 때가 생각나는군. 차라리 마법부대장일 때가 마음 편했는데 말이야.’
그가 넘겨주고 간 원수의 자리가 왠지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프로드의 신하로서 이곳을 지키는 것이 나의 숙명이다.’
먼 곳에서부터 제국군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뒤로 이는 흙먼지만 보아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공성전에서는 3배의 병력이 더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저 숫자는 현재 로슈 성에 남아있는 병사의 5배는 거뜬히 넘길 것으로 보였다.
물론 마법사들 앞에서 병사의 숫자를 논하는 것은 유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사의 숫자마저 비슷했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쉽게 운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의 준비는 완료되었는가?”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트가 무작정 그들을 막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엘런, 자네의 안목은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건가? 그 전략을 여기서 사용하게 되는군.’
엘런은 고센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은 항상 위험 지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전략관으로서 로슈의 방어를 위한 전략을 고안했다.
‘프로드가 마법사의 수는 많지만, 제국의 병력이 집결한다면 숫자는 비슷할 겁니다. 그렇다면 병력에서 앞서는 제국군을 막을 수 없겠지요. 이 전술은 마법사 가용이 힘들 때 쓸 만한 방법입니다.’
엘런에게 그 전략을 들었을 때, 놀라워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제국군이 사정권에 들어왔습니다.”
“마법 부대부터 공격을 시작하라.”
슈우우웅.
후우웅.
쩌저적.
형형색색의 마법이 제국군을 향해 날아갔다.
“마법 부대 배리어를 펼쳐라.”
콰아아앙.
직접 전투에 참여한 알폰스가 명령을 내렸다.
“마법 부대는 마법을 막는 것에만 신경 써라. 접근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예.”
이미 사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제국군이었다.
중간중간 배리어를 피해 떨어지는 마법에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프로드군의 머리를 들고 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제트님, 제국군 마법사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방어 마법 규모로 보아 최소한의 마법사를 제외한 마법 부대 전체가 투입된 것이 확실합니다.”
배리어와 마법이 충돌하면서 생긴 충격파가 로슈 성벽까지 전해졌다.
성벽에 서 있는 제트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제국의 병사들은 계속해서 진격하고 있었다.
“로슈를 탈환하자!”
“우리의 영광을 되찾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자!”
제국군의 외침조차 들려올 만큼 그 거리는 가까워졌다.
“지금이다!”
그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명령은 순식간에 성벽 아래까지 전해졌다.
“명령이 떨어졌다. 발사해버려.”
촤악.
병사들은 고정되어 있던 투석기의 밧줄을 끊었다.
후우웅.
자신을 잡고 있던 끈이 사라지자 발사대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곧바로 모든 투석기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하지만 날아가는 돌덩이는 일반적인 투석기의 돌덩이와 달랐다.
돌덩이 두 개당 하나의 커다란 천이 묶여 있었다.
펄럭펄럭.
돌덩이가 하늘로 날아가자 말려있던 천이 허공에 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옛날 동화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양탄자보다 훨씬 컸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
프로드군이 발사한 천막들이 하늘을 새빨갛게 뒤엎었다.
“뭔가 날아온다.”
“저게 뭐지?”
“대기 마법사, 저기에 마법이 걸려 있는지 검사해 보아라.”
알폰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마법사 몇 명을 대기 마법사로서 각 진영에 배치해 두었다.
그들은 주변의 상황에 맞게 적합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임무였다.
“아무런 마법적 흔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황세자의 명을 듣고 재빨리 스캔 마법을 시행한 마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저 천막일 뿐이라는 건가? 그걸 왜?”
알폰스는 고민에 빠졌다.
당장 성문 안에서 돌덩이가 쏟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천막이 날아올 것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굳이 위험한 게 아니라면 마법으로 막지 않아도 된다. 대기 마법사를 두느라 배리어가 아슬아슬하다.’
결국, 커다란 천막은 제국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천막 안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투석기의 돌덩이는 뒤에 달린 천 때문에 빠르게 날아오지 못했다. 그 느려터진 돌덩이에 맞아 죽을 제국군은 없었다.
“천천히 천막을 걷어낸다.”
천막의 효용을 굳이 꼽자면 진격 속도를 아주 조금 늦춘 것이었다.
하나당 500여 명은 덮을 수 있는 정도로 넓은 천막이었다. 그 대형 천막을 걷어 내느라 제국군의 진격이 아주 잠깐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알폰스는 프로드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아무런 이유 없는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천막 밑에 깔려 있으니 괜히 덥군.”
“나 참, 화살이나 돌덩이도 아니고 고작 천 쪼가리라니.”
“저놈들도 지레 겁먹고 항복한다는 뜻 아니야?”
천막을 걷어 낸 제국군은 자신들끼리 낄낄거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야?”
한 병사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 냄새는 천막에 잔뜩 묻어 있는 액체 때문인 것 같았다.
킁킁.
“이건 기름인데?”
냄새를 맡은 병사 하나가 말했다.
그 순간, 알폰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대기 마법사까지 모두 배리어를 펼쳐라. 조금의 불꽃도 새어 나가서는 아니 된다!”
그의 명령에 마법사들은 부랴부랴 마법을 준비했다.
“늦었어.”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트가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화르르륵.
프로드군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화염계 주문과 불화살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알폰스의 눈에 허공을 수놓은 빨간 점은 그야말로 재앙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