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6
116
수습 (2)
* * *
고센 제국의 전설 중에는 저승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중죄를 범한 자가 가게 되는 지옥이다.
그곳에 간 죄인은 활활 타는 지옥불에서 평생을 태워지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 지옥은 일상생활 속에서 죄를 저지른 자에게 종종 언급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알폰스는 그 지옥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으아아악!”
“뜨거워!”
“살려 줘, 제발!”
살과 피부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온몸에 불이 붙은 병사는 땅을 구르다 다른 병사들에게 밟혀서 죽었다.
내장까지 모두 익어 버린 시체는 입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초열지옥焦熱地獄이 세상에 재현한 것 같았다.
“적셔라, 아쿠아.”
“쏟아져 내려라, 워터폴.”
마법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 갖은 노력은 다했다.
하지만 기름이 잔뜩 둘린 곳에서는 작은 불씨도 곧바로 큰불로 이어졌다.
그들이 불을 끄는 속도보다 불이 다시 붙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엘런 님의 전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엘런이 중대장이던 시절 그의 부관이었던 다즈였다.
그는 제트를 따라 제5군의 부관이 되어 있었다.
“정말 놀랍지 않나?”
제트도 눈앞에 펼쳐진 지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곧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말이야,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일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대로라면 적의 병력은 적어도 반 토막이 날 것입니다. 적들의 사기까지 고려하면 이번 전투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다즈의 말에도 제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나올 걸세. 제국의 자랑 고센의 별이 말일세.”
후우우웅.
제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강풍이 불어왔다.
“이게 대체.”
그리고 성 밖을 바라본 다즈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녹아내린 시체와 부상당한 병사, 그리고 탄내만이 남아 있었다.
방금까지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꽃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국군의 진영에는 얇은 검을 들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주위로 생긴 마나의 소용돌이가 지금 이 상황을 연출한 자가 누구인지 말해 주고 있었다.
“저자는 누구란 말입니까?”
다즈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고센의 별, 제국의 삼성三星이라고 불리는 자. 그랜드 마스터, 에프론이다.”
애초에 북동의 로슈와 북서의 아를리트 둘 중의 한 곳을 버려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에프론이 허공에다 가볍게 선을 그었다.
힘이 담겨 있지도 않았고, 검술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콰아앙.
그리고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슈의 성벽에 커다란 검상이 생겼다.
고센 진영에 있던 불바다도 저것으로 꺼 버린 것이리라.
제트는 자신들의 패배를 직감했다. 저자가 있는 한 이곳에서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왕자님, 죄송합니다. 명에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로미우는 출정 전 제5군을 직접 찾아갔다.
그들을 버리겠다는 말을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제트는 담담하게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군인이란 그런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국왕폐하의 명이었다. 지금부터는 내 명령이다. 로슈를 버리고 도망쳐도 좋고 적에게 투항을 해도 좋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일국의 왕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로미우가 포기한 것은 로슈였지 프로드의 백성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성전에 돌입한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이곳을 수호할 것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제트는 로미우의 명을 따를 수 없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적에게 투항할 마음은 한 치도 없었다.
“예!”
그것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썩어빠진 나라라 할지라도 그곳이 곧 자신들의 고향이자 나라였다.
국가가 자신을 버릴지언정 자신들이 국가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제트는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 * *
제국군은 그 어떤 공성 기구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공성전을 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제트의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에프론, 그자의 검술 몇 번에 로슈의 거대한 성문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간 것이다.
제국군은 큰 피해 없이 뻥 뚫려 있는 성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왔다.
인간을 초월한 능력, 그것이 바로 비대칭 전력이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비슷한 실력자가 있어야만 했다.
‘목숨을 건다면 적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군.’
점점 의식의 불꽃이 꺼지려 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본분을 다했으니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음성이 멀어져 가는 제트의 의식을 붙잡았다.
‘이 목소리는?’
“이제부터 수습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형국을 혼자서 수습하겠다니, 참으로 오만방자한 소리였다.
하지만 제트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라면 그 ‘말도 안 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부탁하네, 엘런.”
피를 많이 흘린 제트는 그 상태로 의식을 잃었다.
엘런은 그에게 응급처치를 해 준 후 몸을 일으켰다.
-일단 잔챙이들부터 치워 볼까, 제피?
-알았어.
제피로스가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쩌적.
그의 손에는 이시르의 한기가 서렸다.
휘우우우웅.
제피로스가 일으킨 바람이 로슈에 몰아쳤다.
“갑자기 웬 바람이 이렇게…….”
“마법사인가?”
갑작스러운 강풍에,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이 멈추었다.
사락.
“이게 뭐지?”
제국군 하나가 자신의 뺨에 떨어진 하얀 물체를 보고 말했다.
“눈?”
이 차가운 촉감과 뺨에 닿자마자 녹아 버리는 것으로 보아 눈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 눈이라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엑?”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눈이 아니었다.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그 병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남자가 보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갈색 머리와 갈색 눈,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검푸른색의 로브와 스태프.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는 남자였다.
“서, 설마?”
“전장의 화신?”
“그자가 돌아온 건가?”
하지만 제국군들 중 몇몇은 그 남자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몇 년 전 보았던 마법사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그가 거쳐 간 자리에 서 있는 병사가 없었던 자.
“도망쳐야 한다.”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 한 병사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너무나 늦었다.
휘오오오오.
여기저기서 불어대는 강풍 속에 눈이 섞여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짓과 함께 재앙이 시작되었다.
바람에 섞인 그것은 눈이 아니라 날카로운 얼음이었다.
그리고 그 얼음 폭풍은 로슈를 휩쓸었다.
“크악!”
“억!”
전장에는 제국군과 프로드군이 뒤엉켜 있었다.
그곳을 덮친 얼음 폭풍은 어떠한 규칙성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얼음 조각들은 제국군만 골라냈다.
퍼걱.
몸 곳곳에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박혀 들어갔다.
도망치려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얼음 폭풍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펼친 배리어도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얼마 버티지 못했다.
배리어가 깨진 마법사의 결말은 병사들과 똑같았다.
곧 바닥에는 제국군의 시체가 쌓여 갔다.
“브, 브, 블리자드?”
그 얼음 폭풍은 8서클, 궁극의 얼음 계열 주문, 바로 블리자드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누가 그 궁극의 주문을 사용한단 말인가.
‘엘런이 돌아온 것인가?’
알폰스는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이 되지 않았다.
정보국에 따르면 엘런은 6서클 마스터로 추측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8서클의 마법이라니.
카앙.
에프론의 경호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온몸에 얼음이 박혀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정보국의 정보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젠장, 떠난 것이 분명했는데.’
몇 번이나 확인했다.
프로드 왕국에는 하메론도 엘런도 없었다.
발리체에서 엘런이 목격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전쟁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고센의 앞길을 막고 서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당해 줄 수는 없었다.
“에프론! 저놈을 처리해 버려라.”
“황세자 저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후웅.
에프론의 검에서 오러 다발이 쏘아졌다. 그의 것은 소드 마스터의 오러보다 훨씬 진했다.
콰아앙.
엘런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오러 다발을 쉽게 막아냈다.
“네가 바로 제국의 삼성 중 한 명, 에프론이군.”
“그렇다. 오늘 너의 목을 빼앗을 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랜드 마스터라.”
동부 대륙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고센 제국.
그것이 동부의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의 검은 제국의 축복이자 주변국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한 거야?”
엘런이 봤을 때, 에프론의 기세는 너무나 약했다.
“그런 도발은 통하지 않는다.”
검을 빼든 에프론이 엘런을 향해 도약했다. 그의 속도는 그랜드 마스터의 그것이었다.
알폰스는 그 움직임을 좇지도 못했다.
피융.
“크윽.”
처음에는 그 섬광이 에프론의 검에 서린 오러가 길게 늘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 섬광이 에프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말했잖아, 약하다고.”
엘런은 무릎을 꿇고 있는 에프론의 앞에 섰다.
그의 손끝에서는 방금의 섬광과 같은 색의 빛이 보였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앞으로 제국을 어찌할 것인가?”
에프론은 엘런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한 줄기의 바람과 자신의 몸을 통과한 섬광을 통해 그가 움직였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와 자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건 저승에서 지켜보도록.”
피융.
털썩.
제국의 삼성 중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아무런 반격도 못 한 채, 일격으로 결판이 났다.
그들의 결투를 처음부터 지켜본 알폰스는 겁을 먹었다.
‘저자는 정녕 8서클에 도달한 것인가?’
그렇다면 가능성이 없었다.
제국제일검帝國第一劍 월터도 저토록 쉽게 에프론을 제압하지 못한다.
‘고작 저 사내 한 명이 일으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그 많던 제국군 중에서 제대로 서 있는 자는 극소수였다.
나머지는 그가 일으킨 얼음 폭풍에 당했다. 그랜드 마스터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명의 사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하늘은 고센을 돕지 않는 것인가?’
이 현실성 없는 상황 속에서 알폰스는 체념했다.
“거기, 황태자.”
에프론을 처리한 엘런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너까지 죽으면 동부 대륙의 안정은 모두 깨져 버릴 테니 살려 주겠다.”
고센 제국이 세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 알폰스 덕분이었다.
그런 알폰스가 죽어 버리면 고센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동부 대륙 전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엘런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혼란스러운 정국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알폰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피잉.
“큭.”
순간적으로 수십 개의 검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서늘한 고통은 곧바로 멈추었다.
“그러니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아라. 그리고 네 가슴에 장난을 좀 쳐 놨어. 내가 정기적으로 마나를 주입해 주지 않으면, 그 파편들은 그대로 네 심장을 파고 들 거다. 일종의 보험이라고 해 두지.”
알폰스는 평생 엘런에게 목숨을 담보 잡혔다.
그는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든 생각은 살아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겪은 죽음이라는 공포는 미래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게 했다.
“퇴, 퇴각……한다.”
그의 명령에 정상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병사는 몇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