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7
117
수습 (3)
* * *
“폐하, 에다인 왕국이 아를리트에서 퇴각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전령의 소식에 대전에 돌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었다.
“탑주가 갔으니 그런 잔챙이들은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역시 프로드의 두 기둥 중 하나입니다.”
귀족들, 특히 마탑 소속 귀족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들의 말대로 프로드의 두 기둥, 대원수 아카드와 마탑의 탑주 루이즈는 제국의 삼성과 겨룰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 중 하나가 합류했으니 그곳의 승리는 보증된 것과 다름없었다.
“아바마마, 아를리트 쪽에서 에다인이 퇴각했다고는 하나, 로슈 쪽 상황을 봐야 합니다. 제국이 트라모레 평원까지 지났다면 에다인군도 전열을 가다듬고 재차 공격할 것입니다.”
이처럼 정확한 분석을 해 낸 것은 프로드의 왕녀 세르넬이었다.
“공주의 말이 옳다. 로슈의 피해 상황에 따라 이 전쟁이 이것으로 끝일지, 아니면 길어질지 정해질 것이다.”
해리포드에서 로슈와 아를리트까지의 거리는 비슷했다.
같은 시기에 정보원을 파견했으니 로슈의 정보원도 도착할 때가 되었다.
“폐하, 로슈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전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귀족들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들라 하여라.”
대전 문이 열리고 전령이 들어왔다.
귀족들의 눈과 귀는 전령의 입으로 모였다.
“폐하, 로슈의 상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로슈에서 제국군이 퇴각했습니다.”
전령은 아직도 숨이 차는지 중간중간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똑똑히 전달되었다.
“퇴각이라니?”
“퇴각이라 하였느냐?”
“우리 군이 아니라 제국군이 퇴각을 했다고?”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합류한 제국군을 막아 냈다니.
그것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전장에 에…….”
전령이 자세한 내용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폐하, 엘런 베리타티가 당도했습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전령의 말을 덮어 버렸다.
그의 목소리가 커서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이름이 다른 내용 따위는 모두 덮을 정도로 영향력 있었기 때문이다.
“엘런이 돌아왔다고?”
로미우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공석에서 평어로 말해 버릴 정도였다.
“그것이 정말인가? 어서 들라 하여라.”
알베르토도 흥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엘런이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을 했었던가.
항상 좋은 소식만을 들고 오는 그였다. 이번에도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로드의 어버이를 뵙습니다.”
“아아.”
알베르토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들어 복귀하자마자 인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신의 불충을 용서하시옵소서.”
알베르토에게 인사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서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엘런은 이런 부분에서조차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세한 보고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로슈로 쳐들어온 제국군은 반할 이상의 병력을 잃고 퇴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랜드 마스터 에프론이 전사했습니다. 아쉽게도 황세자의 신변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보고는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프로드의 영웅이 돌아왔다.”
“어디까지 활약을 해야 만족할 것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귀족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역사책에 기록될 영웅의 행보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비대칭 전력인 그랜드 마스터를 이겼다니. 그럼 베리타티 경도 7서클에 도달했단 말인가?”
로미우의 한마디가 좌중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말도 안 돼.”
“그 나이에 7서클이란 말이오?”
“7서클이 뭐 장난인가?”
프로드에서도 탑주와 하메론을 제외하고 아무도 그 경지를 이룩한 사람이 없었다.
검사로 시선을 옮겨도 아카드밖에 없었다.
그 인간 이상의 경지를 20대 초반의 청년이 이루어 냈다니.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모두 조용히 하라!”
그 웅성거림을 잠재운 것은 알베르토였다.
그 역시 엘런의 답변이 궁금했지만, 그것은 그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베리타티 경에게 직접 묻겠다. 경은 7서클의 경지를 이루었는가?”
알베르토의 물음에 대전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의 침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소리마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엘런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아아!”
엘런이 긍정하는 순간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실로 프로드의 축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초인이 무려 4명입니다. 행방이 묘연한 하메론 경을 제외해도 3명입니다. 이 정도면 제국과 충분히 겨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엘런의 호감을 조금이라도 빨리 얻으려는 귀족들이 그를 예찬했다.
‘내 안목이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구나.’
알베르토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몇 년 전, 엘런을 자신의 사람으로 둔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신뢰를 더욱 확고히 할 때였다.
“이 자리에서 경이 이룩한 경지에 맞는 호칭을 하사하겠다.”
알베르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엘런을 자신의 곁에 두겠노라고 다짐했다.
“이토록 어린 나이에 7서클, 초인의 경지에 오른 엘런 베리타티 경은 필시 프로드의 축복이다. 이에 과인은 경의 경지를 축하함과 동시에 대마법사의 칭호를 하사한다.”
원래 대마법사의 칭호를 하사할 때는 왕의 결정과 더불어 마탑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
현재 탑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게다가 엘런은 단신으로 제국군과 그랜드 마스터를 막아 낸 인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알베르토의 결정에 반감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믿어 주시는 만큼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엘런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예를 취했다.
프로드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서 최연소 대마법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두의 축하 속에서 단 한 명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평민에다 마탑의 소속도 아닌 놈이 대마법사라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뿌득.
릭의 이빨이 세차게 갈렸다. 하지만 박수 소리에 감춰졌기에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들은 이가 없었다.
* * *
엘런은 오랜만에 온 자신의 저택이 낯설게 느껴졌다.
“엘런, 그동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나 본데?”
엘런과 가빈, 카빈 형제, 그루트만이 있는 집은 항상 조용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그의 집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킨버,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네가 저택을 비운 동안 이 저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 보여서.”
그런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상단 운영 정책 문제로 다투고 집을 나와 버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곳에서 생활 중이라고 한다.
“킨버, 내가 연구실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냐?”
2층, 그루트가 있는 연구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루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매사에 정중한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거친 말투는 사용하지 않았다.
쿵쿵쿵.
화가 잔뜩 난 듯 그가 계단을 쿵쿵거리며 내려왔다.
“저자는?”
계단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언제 면도를 한 지 알 수 없는 덥수룩한 수염, 여기저기로 뻗쳐 있는 머리, 원래는 하얀색으로 추정되는 가운까지.
자기 관리와는 척진 사이 같았다.
“응? 당신이 바로 그 싸가지 없는 마법사였군.”
그자는 엘런을 보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꼈다.
‘풋.’
엘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속으로 삼켰다.
‘저 양반은 여전하군.’
엘런은 저 무례하고 다소 괴짜 같은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엘런이 용병 시절 꽤 많은 시간을 함께한 동료였던 마법 약사 리버였다.
“반갑소, 리버. 나는 엘런이라고 하오.”
“그런 격식체 따위는 집어치우시지. 나는 선천적으로 마법사 놈들을 싫어하니까 알아서 처신해. 벌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으려 하는군.”
그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엘런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누구나 처음 보는 자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대번에 기분이 나빠졌을 것이다. 특히 귀족이 들었다면 당장에 목을 쳐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런은 과거의 생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투다.
리버의 기준으로 이 정도면 매우 정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도 무제한으로 연구를 하게 지원해 준다고 하니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 덕분이기도 하지. 나를 데리러 온 그 녀석 아주 마음에 들더군.”
아마 카빈을 말하는 것이리라.
카빈에게 바로 접촉을 시도하라고 한 것도 그라면 카빈을 마음에 들어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다던 연구는 잘 하고 있어, 영감?”
엘런의 말에 그는 잠시 동안 말이 없어졌다.
그는 엘런이 잔뜩 화를 내며 호통을 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 마법사치고는 마음에 드는군.”
“고마워. 나는 예전부터 영감과 영감의 연구가 마음에 들었어.”
프로드의 영웅이자 조금 전 대마법사가 된 엘런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처럼 무례한 태도라니.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경악할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40여 년을 평민으로 살아온 엘런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덕분에 연구는 잘되고 있다. 일단 돈이 빵빵하니 이것저것 다 해 볼 수가 있더라고. 결과물을 하나 보여 주지.”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몇 개의 알약을 꺼냈다.
“감기약이라는 거다.”
“또 이상한 걸 만들었군.”
킨버는 그가 꺼낸 것을 보고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경단이었다.
저렇게 하찮아 보이는 것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호오, 벌써 이걸 만들었단 말이야?”
하지만 엘런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엘런이 살던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 시대의 감기라는 것은 평민들에게는 죽음의 병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기침으로 시작했던 감기가 종국에는 다른 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돈이 많은 자는 치료 마법을 받아 쉽게 고칠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평민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 때문에 치료마법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감기를 치료하게 해 준 약의 등장은 그들에게 축복이었다.
‘적어도 10년 후에나 만들어졌을 것이었는데.’
마정석이 충분히 공급되고 그것을 연구에 쓸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엘런이 미리 그들을 찾은 덕에 미래의 기술들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었다.
“호오, 이게 무엇인지 알겠나?”
리버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영감이 감기약이라고 했잖아. 감기를 낫게 해 주는 약이라는 거 아니야?”
“너 진짜로 마음에 드는군.”
리버는 엘런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엘런아, 적어도 돈 없어서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
엘런은 과거에 그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의 괴짜 같은 성격과 무례한 태도에도 엘런이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앞으로 다른 연구도 잘 좀 부탁해. 적어도 돈 없어서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영감?”
“크하하하하하!”
리버는 저택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너, 말하는 거 어디에 배우러 다니냐? 아주 재밌는 놈이군.”
“푸하하하.”
엘런도 그를 따라 함께 웃었다.
‘저 녀석들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건가? 왜 저렇게 잘 맞아?’
중간에 껴 있던 킨버만 난처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안 되겠어. 오늘은 파티라도 해야겠군. 킨버, 상단 식구, 아르곤 식구 다 부르자!”
엘런도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기 때문인지 기분이 매우 들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옛 친구와 재회하게 되니 흥을 주체할 수 없었다.
“뭐, 어쨌든 파티라면 항상 환영이다.”
킨버도 피식 웃으며 그에게 동참했다.
휘이잉.
제피로스도 기분이 좋았는지 저택 안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