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8
118
평화 그리고 변화 (1)
* * *
체들턴 후작가.
마도 왕국을 자처하는 프로드 왕국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마법사 가문이다.
그론리드 공작가에 이어 이인자라고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그론리드가 개국공신만 아니었다면 훨씬 전에 체들턴이 공작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까지 체들턴 가문에서 배출한 탑주의 수가 그론리드 가문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그것이 마냥 허황된 소리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론리드 가문은 모든 학파를 수용하고 능력만 있다면 양자로 삼아 가문 차원에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반해, 체들턴 가문은 정통 마법만을 추구하고 철저한 혈통주의를 고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에 마나의 축복이 있다고 믿으며 다른 이들을 배척해 왔다.
그렇게 폐쇄적이고 권위적임에도 그들은 항상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본디 사람은 강한 자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것. 실력으로 보여 주는 체들턴 가문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체들턴 가문의 저택은 가문의 명성만큼이나 거대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그곳의 지하실에서는 비밀스러운 회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평민 놈이 나대는 걸 어디까지 보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릭 체들턴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동안 그에게 당한 것이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부터 연회장까지 그는 평민 주제에 항상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다.
“저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탑주님.”
체들턴가의 가주인 올란도는 차분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소 그를 잘 알던 이라면 지금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크흠.”
마탑의 탑주 루이즈 체들턴 길게 늘어진 수염을 쓰다듬었다. 평소 그가 고민을 할 때 자주 하는 버릇이었다.
“탑주님의 말씀대로 비밀 경로를 통해 고센 제국에 정보도 팔아넘겼습니다. 그런데 엘런의 등장이라니요.”
그들이 지금 하는 말의 내용은 분명 역모였다.
혹시나 누군가 듣는다면 체들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명한 마법사 가문.
그 지하실에는 소리를 차단하고 엿보기를 방지하는 마법이 몇 겹이나 걸려 있었다.
“그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설령 돌아온다 하더라도 제국군을 단신으로 막아 버릴 줄이야.”
아를리트에서 복귀한 탑주는 제국군이 물러갔단 소리에 당황했다.
아카드가 아니라면 그를 막아 낼 수 있는 자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런이라는 놈, 우리가 상정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놈이라고 봐야겠군.”
믿었던 탑주가 해답을 내주지 않자 릭은 짜증이 났다.
하지만 마탑의 탑주이자 가문의 큰 어른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현재 마탑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엘런을 왜 미리 알아보지 못했는지, 마탑이 필요하긴 한 건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비마탑 출신의 마법사가 되겠다는 이도 있습니다.”
프로드 마탑의 권위성과 폐쇄성은 마탑의 실세인 체들턴 가문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특권을 주었다.
대신 아류 마법 학파나 마법보조사들은 철저히 배척했다.
물론 그론리드 가문에서는 마탑의 개방을 제창했다.
하지만 마법사들도 자신들만의 특권이 생기자 그론리드의 개방 정책에 호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특성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엘런의 등장으로, 굳건했던 마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면 우리가 계획하던 마탑의 왕국이 무산되고 말 것입니다.”
올란도는 걱정스러웠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계획한 마탑의 왕국. 그것이 단 한 명의 평민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니 얼른 세르넬을 국왕에 내정해야겠지.”
“그래서 제가 그 철없는 공주를 목숨 걸고 지킨 것 아닙니까? 무슨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올란도의 짜증에도 탑주는 덤덤하기만 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방법이 있지. 일단 세르넬 공주부터 만나러 가세. 그녀가 혼자서 못 하니 우리가 도와줘야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녀와 함께 말해 줄 테니.”
그들은 지하실을 나와 곧바로 왕성으로 향했다.
왕국을 뒤엎어 버릴 수 있는 이 중대한 회동은 영원히 그들 3명만 간직하게 되었다.
* * *
최연소 대마법사의 출현.
그것은 프로드 왕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그분이 고센 제국 놈들로부터 프로드를 지켜 주셨다고 하는데, 그분을 기리며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사겠네.”
“으하하, 저 친구 같은 마법보조사 출신이라고 한껏 들떴군.”
“평민의 영웅, 엘런 베리타티 님 만세!”
일개 평민이자 마법보조사 출신이었던 엘런,.
그리고 그의 영웅적인 행보와 결국에는 대마법사의 자리에 오른 것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에 충분한 소재들이었다.
일부 마법보조사들은 길거리에서 이제 마법사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며 다니기도 했다.
음유시인들은 그의 행보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드는가 하면, 여기저기에서 엘런에 대한 글과 그림이 만들어졌다.
평민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인데,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대마법사에 오르다니.”
“하메론보다도 빠른 시간이오.”
“그런 천재가 마탑의 소속이 아니라니!”
대부분의 마법사는 같은 반응이었다.
엘런에 대한 놀라움이나 그가 마탑 소속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에게 마법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오?”
“누구보다 빨리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것에는 분명 특별한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도의 극한. 그것을 그자에게서 볼 수 있다면 난 그의 제자로 들어가겠네.”
일부 마법사 중에서는 자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 또는 순수한 학문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엘런의 제자가 되겠다는 이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물론 마탑의 공식 입장은 마탑의 소속이 아닌 그에게 마법을 배우는 것은 규율을 어기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마탑은 엘런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순수한 열정을 가진 그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마탑의 감시를 피해 몰래 엘런을 따르는 학파를 만드는 자도 있을 지경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엘런 님은 따로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러지 말고 일단 한번 만나게 해 주게나. 나를 만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걸세.”
그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엘런의 저택을 지키는 문지기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엘런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이들 때문에 그들의 입장은 매우 곤란했다.
“허허, 자네 입장이 매우 곤란할 것 같군.”
창가로 비치는 그 모습을 본 레바 그론리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닙니다. 더 높은 경지를 향한 저 마음들을 잘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 받아 줄 수 없는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엘런은 겸손하게 답했다.
대마법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급격하게 바뀐 것은 없었다.
“아버님께서도 자네를 보며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하였네. 자네에게서 7서클의 벽을 뚫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계시지.”
그의 아버지인 라르트는 6서클 마스터에 불과했지만, 엄연히 프로드 왕국의 공작이었다.
하지만 남작에 불과한 엘런을 보며 배울 것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그론리드 가문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절을 아주 완곡하게 해 버리는군. 알았네, 내 그리 전하도록 하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농담일세.”
레바가 놓여 있던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그런 세세한 동작에서조차 기품이 풍겨져 나왔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자네는 나보고 마법보조사 세력을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인가?”
“그들 중에는 분명 재능 있는 자가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폐쇄적이기만 한 마탑에서는 아무런 혁신도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그론리드 가문에서도 오래도록 걱정해 오던 것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엘런의 말에 레바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가 그론리드 가문의 오랜 고민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지. 우리는 항상 마탑의 혁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어. 마탑의 성향을 움직일 만한 큰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말이야.”
짤그락.
그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축하를 하러 온 자리에서 뜻밖의 소리를 들어 당황스럽군.”
하지만 그의 가늘어진 눈가를 보면 말과는 달리 기분 좋아 보였다.
“자네의 말대로 마법보조사를 마탑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말해 보겠네. 자네 덕분에 지금처럼 적기適期도 없겠지.”
그것은 지금까지 그론리드 가문에서 몇 번 정도 시도했던 것이었지만,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마법사들은 기를 쓰고 반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엘런 덕분에 마탑에서 마법보조사의 배척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돈이 없었다는 이유로, 재능이 늦게 발현되었다는 이유로 마법사가 될 수 없었던 그들.
그들이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보여 준 최고의 예시가 바로 엘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마법사들의 반발도 거셀 걸세.”
몇백 년을 지속해 온 마법사의 특권.
그것은 마법보조사들의 희생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포기하기 싫은 자들이 많은 것도 분명했다.
“그론리드 가문과 더불어 제가 가세한다면 충분히 겨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법보조사들을 마탑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대가는 바로 엘런이 마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탑이었지만, 엄연히 프로드의 근간이 되는 기관이었다.
그것을 외부에서 해체하는 것은 마도 왕국 프로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엘런이 선택한 것은 그가 직접 마탑에 들어가 내부에서부터 바꿔 놓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자신을 뒷받침해 줄 세력이었다.
엘런을 필두로 한 마탑의 혁신 세력들.
그는 이 세력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마탑과 체들턴 가문에 대항하는 세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네의 말이 맞네. 마탑에 등장할 혁신 세력, 그 선두에 자네가 서 주게나.”
그론리드 가문 입장에서도 체들턴 가문이 독점한 마탑의 세력을 양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프로드의 영웅이 가세하기로 했다.
어쩌면 양분이 아니라 마탑의 판도를 뒤엎을 만한 세력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론리드 가문에서 새로운 마탑을 위해 이토록 힘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런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일단,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마탑으로 나와 줄 수 있겠나? 자네의 연구실을 바로 준비해 놓도록 하겠네.”
그를 마탑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였다.
게다가 대마법사의 칭호까지 가졌으니, 몇 가지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그를 당장이라도 불러들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척.
이야기를 마친 레바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네.”
“그럼 마탑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 역시 그대가 마탑으로 오는 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