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2
12
바이샤의 수작 (1)
던전을 나와 베르다에 도착한 엘런은 거기서 바몬과 헤어졌다.
바몬은 듀란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돈을 모을 예정이라고 했다.
바몬과 헤어진 후 엘런은 곧바로 로스로 출발했다.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엘런은 될 수 있는 대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해 서둘렀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마리아는 눈물을 떨어뜨렸고 시엔은 엘런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그의 복귀를 축하했다.
천재니 뭐니 해도 그들의 눈에는 엘런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던 것이다.
“저 사실 집에 빚이 있다는 거 우연히 들었어요.”
무사히 돌아온 기념으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엘런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니?”
마리아는 당황한 눈빛으로 시엔을 쳐다보았다.
“그때 안방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하아.”
엘런의 말에 시엔은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는 숨을 잠깐 고르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래. 네 말대로 이 아비가 무능한 탓에 빚을 지게 되었단다. 하지만 너는 신경 쓰지 말거라. 내가 진 빚이니 내가 갚을 것이고 너는 그냥 마음 편하게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만 하면 된다.”
‘이전에도 똑같은 생각이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엘런은 가슴 한편이 아려 오는 것 같았다.
툭.
“여기요.”
엘런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게…….”
엘런이 꺼내 놓은 주머니를 들여다본 시엔은 하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난 거니?”
그 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들어 있었다.
평민이 금화를 볼 일은 그리 흔하진 않았다.
하지만 시엔은 그 금화가 대륙에서 사용되는 금화와는 다른 형태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뒷면에 드래곤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앞에는 고대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고대에 사용되던 금화로,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이것은 5골드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베르다에 갔다가 우연히 던전 공략 파티에 낄 수 있었어요. 그 던전에서 나온 보상 중 일부를 받은 거예요. 이 정도면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꽈악.
시엔은 엘런을 힘껏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아비가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마법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도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 봐 망설였던 아이였다.
그런 아들이 아비의 빚을 갚겠다고 했을 때 시엔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제가 아카데미에 가 있는 동안 마음 편히 지내세요.”
* * *
며칠 후 엘런은 금화를 챙겨 바이샤의 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바이샤 님, 어떤 꼬마가 시엔의 빚을 갚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세기의 천재라고 소문이 돌던 그 녀석인가?’
부하의 말에 바이샤는 한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단 들어오라고 해.”
엘런은 바이샤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의 부하들이 엘런에게 겁을 주기 위해 잔뜩 인상을 썼지만 엘런의 눈에는 가소로워 보였다.
“저희 아버지가 바이샤 님께 빚을 진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라 해도 돈을 빌려준 자였다.
돈을 빌려준 지 꽤 오래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가족에게 어떤 피해를 준 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엘런은 굳이 건방진 태도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엔, 그 친구 1년 전쯤 아내의 병을 고쳐야 한다며 나를 찾아왔었지.”
‘어머니의 병? 그런 것이었나.’
엘런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에서 돈을 빌린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 이유를 저 녀석에게 들으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마법 치료라도 하신 걸까?’
얼마나 큰 병인지는 모르지만 빌린 돈의 액수를 보면 마법 치료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빚을 갚으려고 왔습니다.”
자신이 돌아가서 확인해 보리라 생각한 엘런은 그쯤에서 생각하는 것을 끊고 바이샤를 향해 말했다.
바이샤는 담배를 꼬나물고는 불을 붙였다.
“이자까지 쳐서 20골드다.”
‘미친. 1년 만에 갚아야 할 돈이 2배가 됐잖아. 이러니 아버지가 갚을 수가 없지.’
10골드만 해도 몇 달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보다 빠른 속도로 이자가 붙으니 시엔이 갚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엘런은 가지고 왔던 금화 주머니에서 금화 4개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금화를 받아 든 바이샤의 눈이 커졌다.
‘고대 금화잖아?’
이렇게 귀한 물건이 저 꼬마의 손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귀한 것을 가지고 있군.”
“어쩌다 얻게 되었습니다. 그럼 아버지의 빚은 청산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드르륵.
말을 마친 엘런은 의자에서 일어나 곧바로 바이샤의 사업장을 떠났다.
아무리 지금의 생에서는 저지른 죄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전 생에서 그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는 엘런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기 거북했다.
한편 엘런이 문밖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있던 바이샤는 그가 준 고대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걸 어떻게 저런 꼬마가 가지고 있는 거지?’
갑자기 그는 금화를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젠장! 이러면 더 이상 바가지를 씌울 수가 없잖아.”
바이샤는 사람들에게 적은 돈을 빌려주고 큰 이자를 떼먹는 고리대금업자였다.
그의 사업 방식은 말도 안 되는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고 돈을 빌린 지 1년이 지나도 아무런 횡포 없이 독촉장만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갚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라는 것쯤은 바이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꼬박꼬박 가지고 오던 푼돈을 받아 챙기다가 2년째부터 진정한 수금이 시작된다.
갖은 폭력과 협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위협한다. 사람들이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 버린 돈을 갚지 못하면 그때 노예시장에 팔아 버리는 것이다.
그동안 그들이 가지고 온 돈과 노예시장에서 수수료로 떼어먹는 돈을 합치면 아주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엘런이 돈을 갚아 버리는 바람에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년, 분명 큰돈이 될 년이었는데.”
바이샤는 시엔의 아내를 떠올렸다. 그 정도의 외모면 비싼 값을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샤의 분노를 알아챈 부하들은 잔뜩 긴장했다.
곧 물건들이 날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얻게 된 거냐고!”
그의 고함소리에 부하들은 몸을 움츠렸다. 그때 한 부하가 손을 들었다.
“바이샤 님, 그게……. 제가 들은 소문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바이샤는 조금 진정이 된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무슨 소문? 별것 없으면 뒈질 줄 알아라.”
“베르다를 다녀온 상인에게 들은 소식이었는데, 혹시 베르다에 있는 던전을 아십니까?”
“그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그거?”
바이샤가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말을 했다. 그의 반응에, 부하는 안심하며 말을 이어 갔다.
“예, 맞습니다. 얼마 전에 웬 용병 한 놈과 소년 한 명이 그 던전을 공략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저 엘런이라는 소년이 로스에서 사라진 시점과 일치합니다. 물론 저 애송이가 아니라 소드 익스퍼트인 테오라는 그 용병의 활약이라고 합니다. 테오는 그 후 거창한 의뢰 하나를 또 완수했다고 했습니다.”
부하의 말을 들은 바이샤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애송이 녀석 운 좋게 용병에게 빌붙었던 거군. 그 집에는 던전에서 나온 보물이 더 있을 거고. 아직까지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던전에서 나온 보물이니 양도 어마어마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