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23
123
역병 (1)
* * *
“또 밤을 새운 거냐? 너 그러다 몸 망가진다.”
“지금 아니면 시간이 많이 없어서 그래.”
엘런의 말에 리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으니까 적당히 아껴서 써라. 그거 많이 쓰면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한 걸 써야 하니까.”
“고마워, 영감.”
리버는 엘런에게 알약 몇 개를 건네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진통제라는 것과 근육 완화제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밤새도록 비약 연구에만 빠져 있는 엘런을 위해 리버가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지난 기간 동안, 엘런은 친화의 비약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를 거의 다 찾아냈다.
그것들은 전부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었을 뿐, 현재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자연의 숨결이라는 단 하나의 재료만큼은 유추할 수가 없었다.
‘결국, 또 되는대로 전부 다 해 봐야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자주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하곤 했다.
일단 한 번 연구실로 들어가면 3일 밤낮 동안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엘런이라도 그런 무리한 연구는 몸에 부담을 많이 주는 법이었다.
오랜만에 연구실 밖으로 나올 때면, 여기저기 근육이 뭉쳐 있고 머리는 깨질 것 같이 아팠다.
회복 마법을 쓰기 위한 계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두통이 심할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버가 선물이라면서 이 약들을 던져 주고 갔다.
그것을 먹은 엘런은 저릿저릿하던 머리가 단번에 낫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엘런은 리버가 준 약을 먹어 가며 더 오랫동안 연구실에 박혀 있을 수 있었다.
리버는 이런 것들 외에도 이런저런 약들을 많이 만들었다.
엘런은 비약 연구는 자신이 할 테니, 그에게는 다른 약들을 연구해 달라고 말한 덕이었다.
“약도 받았으니까 다시 돌아가 봐야겠어.”
“지독하군. 이러다간 나보다도 약학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겠어.”
“아직 영감의 무릎 높이도 안 될 거야.”
“말은 좋게 해 주는군. 두통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연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일단 나와라.”
엘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연구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리버도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엘런이 저렇게 열심인데 자신도 가만히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오롯이 자신만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연구실, 무한정 제공되는 실험기구와 재료.
이 모든 것을 아무 대가 없이 누릴 수 있었다.
굳이 대가를 꼽자면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고 녀석,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무엇보다 이 집의 주인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에는 어디 벼락부자 한 명이 착한 일 한번 해 보겠다고 벌이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보니 그는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식견도 넓은 것 같고, 배움에 대한 의지도 있는 것 같고.’
엘런의 나이는 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40년 이상을 바닥에서 구르며 인생을 배운 중년의 것이었다.
또 그는 대마법사라고 불릴 정도로 마법에 통달한 자였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할 약은 직접 연구하겠다며 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찾아와서 물어볼 때도 많았다. 그리고 그는 한 번 설명하면 척척 알아듣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마저 즐겁게 했다.
다다다.
지하실에서 올라와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누군가 급히 달려왔다.
“영감님, 혹시 엘런 님께서는 연구실에 들어가셨습니까?”
그는 아르곤의 수장 카빈이었다.
아직도 이마에서 흐르고 있는 땀이 그가 얼마나 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그게…….”
카빈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영감님도 병에 대해서 잘 아니까 들어 보십시오. 최근 남서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역병疫病이 점차 전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역병이라는 말에 리버의 눈 옆에 자글자글하던 주름이 쫙 펴졌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말이야?”
“이 병이 치사율이 워낙 높은 데다가 전염성까지 강해서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저주라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역병은 순식간에 남서부 지역을 집어삼켰다.
그 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피부가 괴사하여 온몸이 검게 물들어 간다.
그렇게 된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이틀 안에 목숨을 잃고 만다.
문제는 전염성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서 왕실의 위생 지원이 없긴 했다.
그걸 감안해도 그 전염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한 사람이 역병으로 죽고, 그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다른 이들도 같은 병에 걸렸다.
왕실에서도 처음에는 이따금씩 일어나는 전염병 정도로 생각했다.
그곳의 영주가 잘 처리하라는 형식적인 명령만 내려졌다. 하지만 그 병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멍청한 왕실 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평소 리버의 말투를 지적하던 카빈도 지금은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왕실에서도 일의 심각성을 느끼고 부랴부랴 조사대를 꾸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의 프로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역병에 대한 조사대를 꾸리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의학을 잡학 취급이나 하니까 이 사달이 나는 거지, 멍청한 놈들.”
보나마나 의료 마법을 쓰는 마법사나 모으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 대륙에서 의학이 잡학의 지위밖에 가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치료 마법사라는 놈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문적인 의료 지식도 없이 그저 힐링이나 큐어 정도로 모든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
물론 큐어 마법이라면 웬만한 병은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복합적인 병은 큐어로도 치료할 수 없다.
“생각보다 인원도 잘 모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그놈들이 미쳤다고 거기에 가겠냐?”
회복 마법사들은 어딜 가나 최고의 금전적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 싶어 하는 부자는 많았다. 그들은 수천 골드를 들여서라도 자신의 병을 고치려 했다.
이런 안전한 수익을 두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 지역으로 가려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보다 큰 문제면 그냥 머리만 아파질 것 같은데?”
“엘런 님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엘런이 중부 대륙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이 원인 모를 병을 가지고 옮겨 왔다는 소문이었다.
병의 발원지인 남서부 지역에서 돌고 있는 것이었는데, 역병의 전파에 따라 그 소문이 주변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엘런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왕실도 알고 있다.
왕실은 엘런의 과오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남서부 주민들은 엘런 님과 왕실에 대한 악의를 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 프로드의 영웅인가 뭔가로 불리지 않았냐? 그런 놈이 한순간에 천하의 개자식이 되다니.”
엘런은 귀족들뿐만 아니라 평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의 출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는 평민 출신의 영웅이었다.
현실에 지친 평민들에게 그는 하나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해 여론이 한 번에 돌아섰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민중이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우상보다도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누군가 구하러 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보다는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분노의 표출이 그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그런 형국에 중부 대륙에서 온 엘런이라는 그럴듯한 대상이 던져졌다.
누구의 계략인지 아니면 그저 근거 없는 소문인지는 몰라도 시기가 적절했다.
“역시나 머리 아픈 문제가 맞았어.”
리버는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자신의 머리는 연구 쪽으로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인간관계, 정치, 철학, 문학 같은 방향으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골치 아픈 질문이 던져졌다.
‘연구에 몰두하면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녀석인데.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그의 고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겠어.”
연구실에 들어간 줄 알았던 엘런이 버젓이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상황도 이해한 것 같았다.
“엘런 님.”
“한동안 연구만 하는 탓에, 정보 쪽 신경을 덜 썼더니 이런 일이 있었네.”
엘런이 비약 연구를 하면서부터 아르곤의 보고를 받는 횟수가 준 것은 사실이었다.
“아닙니다. 이건 정말 순식간에 퍼진 것이라서 따로 정보를 모을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일단 이유는 내가 조사해 봐야겠어. 정말 내가 중부 대륙에서 가져온 병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카빈은 계속 그럴 리 없다고 말했지만, 엘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혹시 영감도 같이 갈 수 있겠어?”
엘런은 그가 가기 싫다면 굳이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가 있으면 역병에 대한 조사가 훨씬 수월할 수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리버에게 목숨을 걸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하지만 리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괜한 고집 피우다가 역병에 걸리면 책임 못 진다.”
“지금 누가 누구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카빈은 그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의 생명이라고만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은 둘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었다.
“말을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바로 준비하고 나오도록 할게.”
그들은 곧바로 짐을 챙겨 프로드의 남서부, 용병도시 톤턴으로 떠났다.
* * *
용병도시 톤턴은 남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리고 그 탓에 역병의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기도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군.”
“역병이 돌 때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지.”
그 활기찬 도시가 지금은 사람 하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간간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건 중부 대륙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것 같구나.
‘그때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거침없었지만, 솔직히 지금은 조금 겁이 나긴 합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 아무리 엘런이 인간의 경지를 초월했다고 하더라도 이 병에 면역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영주부터 만나러 가야겠어. 빠른 일 처리를 위해서는 책임자부터 만나야겠지.”
“네놈 마법사라는 직책은 여기서 쓸모가 있겠네.”
그들은 곧장 톤턴 영주의 성으로 말을 몰았다.
영주의 성까지는 일자로 길이 뚫려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사람까지 없으니 그곳까지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영주의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 역시 눈을 제외한 온 얼굴을 천으로 덮고 있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경비병은 예를 갖추고 물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중함은 변함없었다.
“엘런 베리타티 남작이네. 톤턴의 영주 자말 자작을 만나려 하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엘런이라는 이름을 듣고 병사의 눈이 살의를 품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경비병이 뒤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군.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엘런도 병사의 살의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소문도 알고 있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영주 성 내부에는 역병의 치료를 위한 치료소와 격리소가 있었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피부가 괴사하여 까맣게 되어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피부에서는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참을 수 없는 악취도 올라왔다.
큰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장갑까지 끼고 있는 자들이 그들의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의료 지식이 없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런 것밖에 없었다.
“격리 조치로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영지 내 영주의 성인데, 그곳을 내주었군. 여기 영주 놈 정신머리가 제대로 된 놈이야.”
격리란, 말 그대로 다른 곳과 통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도시에서 가장 막아 놓기 좋은 곳은 바로 영주의 성이었다.
물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시민과 도시가 우선시하는 자들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격리 조치도 잘 되어 있고, 최소한의 대비책도 갖추고 있어. 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이 도시는 금방 유령 도시가 되었을 거야.”
리버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톤턴의 영주 자말은 용병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덕에 여타 귀족과는 다르게 용병들의 합리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영주였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엘런이 바로 책임자를 만나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들이 진료소를 지나쳐 내성으로 입성하기 전이었다.
끼이익.
그들이 경비원에게 말을 하기도 전에 내성의 문이 먼저 열렸다.
그러고는 문 뒤편에 서 있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게 누구신가. 프로드의 영웅께서 이곳까지는 어쩐 일로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