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25
125
역병 (3)
* * *
천막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곳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이들은 저 환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몸으로 퍼진 역병은 전신을 검게 물들였다.
검은 피부 위로 올라온 물집은 숫자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물집은 곪아 터져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병은 피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도 퍼지는 것 같았다. 거무죽죽해진 그들의 입 안쪽에도 물집이 보였다.
리버는 입안이 저 정도라면 장기 쪽은 말할 것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으아어.”
“어어…….”
상태가 심한 사람들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흘러나오는 신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다.
천막 안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 냄새는 고기가 썩는 냄새보다 몇 배는 심했다. 이 코를 찌르는 냄새는 도무지 익숙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밖에 있는 이들이 이 상태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일단 발병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버리는 죽음의 역병.
그것이 지금 남서부 지역에 창궐하고 있는 역병이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그래 준다면야 고맙지, 안 그래도 이쪽 관리인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거든. 보다시피 평범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외관이 아니어서 말이야.”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방치되다시피 누워 있었다.
오가는 사람의 숫자도 거의 없었다. 밖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었던 간병인들도 이곳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돕는 것도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야 가능하다.
애초에 격리소에서 사람을 돕고 있는 것부터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 안까지 들어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감님, 바로 시작할 거지?”
엘런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빨리 도구나 좀 챙겨 봐.”
그는 이미 짐을 풀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없어 보였다.
“주위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두고 다니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저 정도로 열정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한 엘런도 리버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도구를 챙겼다.
“대충 다 챙겼으니 바로 시작하자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잔뜩 챙긴 리버가 몸을 일으켰다.
“아파도 조금 참아. 이걸 해야 너희 병을 치료할 약을 만들 수 있으니까.”
사각.
리버는 환자의 상처 부위를 찢었다. 그곳으로 진물이 한 움큼 쏟아졌다. 그는 그것을 용기에 받았다.
쩍.
이어서 그는 괴기하게 생긴 물건으로 상처를 벌렸다.
예상외로 환자가 아프지는 않았는지 별다른 소리는 내지 않았다.
이미 온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기에 이 정도는 신경 쓸 수도 없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신기한 의술을 사용하는군.”
“정통 의술을 사용하는데, 널리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저자에게 조금씩 배워 가는 중입니다.”
필립스는 생전 처음 보는 기구들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리버를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 있어? 옆에서 보조나 좀 들어.”
“알겠어.”
엘런이 그 옆에 서서 힐링으로 상처 부위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해 주었다.
그 틈에 리버가 상처 부위 내부를 확인했다.
둘은 마치 예전부터 호흡을 맞춰 온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정통 의술의 변형이라……. 정통 의술을 사용하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지금 시대에 의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마법이라는 무궁무진한 도구가 있었다.
힐링과 큐어, 그리고 그레이트 힐만 해도 거의 모든 병은 치료할 수 있었다.
시술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의술은 도구들을 이용해 상처를 찢고 봉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법은 그저 마나를 흘려보내기만 하면 됐다.
사람들이 보기 거북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 또한,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회복 기간도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돈이 있는 사람들이 의술보다 마법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물론 복합적인 병은 치료 마법으로 치료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의술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으로도 치료하기 힘든 병을 의술이 치료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물집 도려내, 이건 형태가 다르니까 따로 연구해 봐야겠어.”
하지만 저자에게서는 뭔가 다른 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이 그의 능숙한 손놀림 때문인지, 기괴한 도구들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엘런과 리버는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물집과 진물을 채집했다. 이 자료들을 통해 리버는 병을 분석할 것이다.
“마무리 좀 해 줘.”
“큐어.”
마지막으로 엘런은 치료 마법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켜 주었다.
한 명의 환자에서 병을 채집하고 마무리하기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내 버린 것이다.
그 후로도 엘런과 리버는 한참 동안이나 환자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연구할 만한 표본은 다 모은 것 같은데.”
1시간이 지나서야 리버가 몸을 일으켰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그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수, 수고했다.”
필립스는 그 시간 동안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술을 사용하는 사람을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이토록 능수능란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난 이거 가지고 원인을 연구할 거니까 네가 다른 사람들 치료하면 되겠네.”
“알겠어, 영감. 최대한 빨리 부탁할게.”
“성질은 급해 가지고 재촉은.”
표본을 다 챙긴 그는 필립스에게 다가갔다.
“이봐, 혹시 격리소에 남는 공간이 있나? 연구실로 쓰려고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넓은 곳은 없고, 간병인들 숙소로 쓰려다 남은 곳이 있긴 하다.”
“아주 좋군.”
그는 옷 위에 덧대 입은 겉옷과 얼굴을 가린 천을 벗어 화로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필립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정말, 폭풍 같은 자구나.”
지금은 용병이라고 해도, 명색이 명문가 출신이며 무인으로서도 높은 경지에 오른 필립스였다.
하지만 리버라는 자의 무심한 태도에 당황했다. 그는 국왕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을 것 같았다.
엘런도 그런 필립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저도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결과물을 가지고 올 겁니다.”
“허허.”
필립스의 허탈한 웃음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영감님이 약을 만드는 동안 저는 사람들을 치료하러 가 보겠습니다.”
“내가 안내할게.”
* * *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덕분에 고통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엘런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 하나가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몸이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이것은 병의 진행을 막았을 뿐이야. 곧 치료 방법을 찾아올 테니 조금만 버티게.”
“꼭 버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엘런에게서 멀어지는 순간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걸로 꽤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너에게 고맙군.”
엘런은 이틀에 걸쳐 격리소에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치료라고 해 봤자 치료 마법으로 병의 진행을 늦춰 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엘런이 고마울 뿐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리버 영감의 연구가 얼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해야죠.”
리버는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지 온종일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자만 믿어야겠지.”
“그런데 필립스 님은 소문에 대해 들은 적이 없습니까?”
엘런은 말을 함과 동시에 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무슨 소문 말이냐?”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전혀 아는 게 없어 보였다.
“역병의 원인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아, 어떤 녀석이 중부 대륙에 갔다 오면서 역병을 옮겼다는 거 말이냐?”
엘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소한 필립스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의심을 하며 물어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그는 이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의 반응에 당황한 건 엘런이었다.
소문에는 분명 자신의 이름도 정확히 명시되어 있었다.
필립스가 그걸 몰랐을 리가 없었다.
“제가 그 소문의 중부 대륙을 다녀온 마법사입니다.”
“애초에 소문은 잘 믿지도 않고, 네가 했으면 또 어때? 결국에는 저들을 도우려고 여기까지 온 마법사는 너밖에 없는데.”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스다운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소문처럼 제가 원인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모함이 있는 거죠. 저는 그걸 밝히러 이곳에 온 겁니다.”
“하여간, 그놈들은 변함이 없군. 네가 신경 쓰인다고 추잡한 수를 쓰고 있는 게 뻔하다.”
필립스도 과거 얼마나 많은 견제를 받아 왔던가.
그에게 정치판은 우직하고 올곧은 사람이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기형적인 곳이었다.
“절대로 변함없는 곳이더군요.”
촤악.
그때, 천막이 큰 소리를 내며 젖혔다.
“발견했다.”
엘런과 필립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영감, 뭔가 중요한 거라도 나왔어?”
그들은 기대감에 가득 찬 시선으로 리버를 바라보았다.
“이건 누가 수작질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 역병 자체도 누군가의 수작이란 말이야?”
소문이 누군가의 수작이라는 것은 엘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발병한 역병에 누군가 이때다 하고 모함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틀 동안 밤을 새워서 분석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연 발현한 병이 아닌 것 같더군.”
리버는 자신이 쓴 종이를 꺼냈다.
그곳에는 알아볼 수 없는 그림과 글씨가 빽빽이 쓰여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 주자면 베이스는 서부 대륙에서 유행했던 병이다. 전염성이 아주 강한 놈들이지. 하지만 사람을 이렇게 숯 검댕으로 만들어 버리진 않는다.”
리버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것은 피로 때문이 아니라 분노였다.
“저렇게 끔찍한 증상이 나타나도록 하는 건 마법적인 처리 때문이다. 어떤 미친놈이 서부 대륙의 역병에다가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지. 쳐 죽일 놈들.”
리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엘런이 생각했던 최악의 가정이었다.
‘나를 모함하는 것까지는 내가 받아 줄 수 있으니 상관없는데…….’
고작 정적을 견제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왕국의 국민들을 죽였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이제는 정말 갈 데까지 갔어.”
수작질을 한 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응징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영감, 고칠 수는 있겠어?”
소문처럼 자신이 옮겨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자기 자신 때문에 역병이 생긴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응징은 응징이라도 먼저 치료가 앞서야 했다.
“일단은 병의 전염성을 억제하는 약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이런 마법은 처음 보는 거라서 아직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찾지 못했다.”
리버도 마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엄연히 마법사는 아니었다.
마법을 분석할 수 있을 수준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건 내가 도와주지.”
마법 분석.
그것은 엘런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부 대륙의 역병에 걸린 마법만 파헤칠 수 있으면 리버가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럼 거기서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와. 이 순간에도 사람 한 명 죽어 나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