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34
134
결정적인 단서 (1)
* * *
쪼르륵.
초록색의 액체가 한 사내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사내의 표정이 점차 편안해졌다.
이와 더불어, 발끝에서부터 급속도로 부패하고 있던 그의 피부도 진정되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그 정도로 심각한 환자들의 수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여기, 포션이 하나 더 필요해요. 저쪽 환자분이 피를 토하고 있으니 저기부터 가 보세요.”
그 사이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의 그 여성은 척 보기에도 귀한 티가 흘렀다.
이와 반대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환자들의 진물과 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그 옷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귀티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보일, 내가 여기 들어올 때는 꼭 입을 가리고 들어오라고 했잖아요! 관리인이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세리, 한 번만 봐줘요. 급하게 전할 말이 있어서 그랬어요.”
그녀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주위가 더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래요?”
“환자 하나가 회복제에 또 거부 반응을 보였어요.”
“네? 거기가 어디죠?”
“저쪽입니다.”
그녀가 다급하게 묻자 보일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온몸을 비틀고 있는 환자 하나가 보였다.
“관리인 네 명만 도와주세요.”
그러자 건장한 남성 관리인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 환자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가만히 있어.”
“크아아악!”
“이번은 더 심한 것 같은데.”
사지가 붙잡힌 환자는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성인 남성 네 명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일단, 진정부터 시킬게요.”
촤악.
그 틈에 그녀가 그 앞에 서서 종이 하나를 찢었다.
그러자 관리인들을 들썩거리게 할 정도로 몸을 비틀어 대던 환자의 움직임이 점점 멎었다.
“…….”
이윽고 환자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후우, 이제 됐어요.”
잠시 동안 그를 더 지켜본 그녀의 말에, 그제야 관리인들도 환자의 팔다리를 놓아주었다.
환자는 언제 난동을 피웠냐는 듯 잠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세리가 없었다면 이 환자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보일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저 스크롤을 사용한 것뿐이에요.”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이곳에서 스크롤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법진을 종이의 형태로 담고 있는 스크롤.
그 귀한 것을 수십 장씩이나 들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을 환자를 위해 사용하는 모습은 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
‘세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어디서 저런 분이 오신 걸까?’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역병에 걸린 환자들을 돕겠다며 나타났다.
당시에 이곳 페링턴 지역은 아직 회복제가 충분히 조달되지 않았기에 환자의 수가 많았다. 때마침 일손 부족에 시달리던 그들은 그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녀는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의학 지식을 통해 치료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구하기 어려운 의료 마법 스크롤들을 사용하는 그녀는 마치 신이 내려준 선물 같았다.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천사라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저런 분이 아닐까?’
보일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네요.”
보일을 깨운 것은 세리의 목소리였다.
“그, 그러게 말이에요!”
곧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그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원래 회복제는 즉시 효과를 보이는데. 왜 이러는 건지, 원.”
페링턴의 환자들 중에는 왕실에서 보급하는 회복제가 잘 듣지 않는 환자가 있었다.
보통의 환자는 약을 마시는 즉시 병이 호전되지만, 이 환자들은 오히려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은 스크롤을 사용하여 진정시키고는 있지만, 스크롤이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정말 큰일이에요. 그 전에 원인을 찾아내야 할 텐데…….”
세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자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 문제의 원인을 찾을 방법을 한 가지 떠올렸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자를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그녀는 해리포드를 떠나오던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했었다.
공주라는 직위, 세르넬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녀가 이전의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맺었던 모든 인연들까지.
‘결심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하지만 이대로 저 환자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가지고 있는 스크롤의 양을 본다면 길어야 한 달 정도였다.
혹시나 그 기간 동안에 이상 반응자가 한 명 더 생긴다면 그 기간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로 떠나야겠다.’
그녀가 배운 것은 국왕의 소양으로서 배운 의학적 지식일 뿐이었지 전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수도까지 병의 정보를 온전히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스걱.
그녀는 갑자기 썩어 버린 환자의 상처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상처를 가져가서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그녀는 다섯 개의 병을 꺼내 각각 그 안에 상처나 진물을 담았다.
이 중 몇 개는 해리포드로 가는 중 완전히 부패해 버리겠지만, 몇 개는 보존될 수도 있다.
정 안된다면 그를 직접 데리고 오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보일, 저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요.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울 것 같아요. 스크롤은 두고 갈 테니 필요한 사람에게 써 주세요.”
결심이 선 세리는 곧장 움직였다.
“갑자기 어디를 간다는 거예요?”
“저 환자들을 구할 방법을 찾으러 가요. 그럼.”
그리고 세리는 곧바로 해리포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촤락.
엘런이 종이를 내던지며 책상에 엎드렸다.
그의 주위로는 수많은 종이뭉치가 널브러져 있었다.
‘매일 이런 잡다한 것들만 모이니 진전이 없지.’
왕실과 엘런이 체들턴을 향한 물밑 선전포고를 시작한 후 반년 가까이 흘렀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정보를 끌어모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후우, 이런 적은 처음이네.’
에니스에서 탈옥한 그는 지금까지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시켜 왔다.
모든 상황이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한 그대로 흘러갔다.
때때로 목숨을 건 도박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성공시켰다.
그랬던 탓일까?
그는 이번 일도 몇 개월 이내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신이 구상한 대로 흘러갔다면 지금쯤 체들턴 가문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은 줄어들 생각은커녕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자만했던 탓일까?’
아르곤을 통한 정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계획. 그 성공 공식이 체들턴 가문의 치밀함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정보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확률도 늘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차라리 이 정보만으로 그들을 압박하고 나머지 귀족들의 협력은 무력으로 저지해야 하나.’
그건 깔끔하지 않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방법이 나을 수도 있었다.
“모르겠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똑똑.
“저 카빈입니다.”
카빈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도 돼.”
카빈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엘런은 한쪽으로 종이 뭉치를 밀어 두었다.
“무슨 일이야?”
“세리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이름을 들은 엘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라 원래는 문지기 선에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런 걸 들고 있어서…….”
카빈이 꺼낸 것은 엘런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였다. 그것을 본 그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나가 볼게.”
얼마나 급했는지 엘런은 활주를 사용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대문에 도착했다.
“아, 안녕하세요?”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엘런 때문에 세리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엘런은 직접 대문을 열어 주며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문지기들은 웬 평민 여성에게 필요 이상으로 정중한 엘런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어디선가 생긴 인연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제가 드린 물건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한편, 그들은 다시 엘런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말 아무도 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더군요.”
“제가 과거에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사용했던 마법과 같은 마법이 걸린 목걸이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그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엘런의 말에 세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저번에도 말한 것이지만, 저는 이제 왕실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극존칭은 빼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도록 하지요.”
엘런은 그녀와 마주하는 자리에 앉았다.
“어쩐 일로 이곳을 찾으셨나요?”
“그렇게 매몰차게 돌아서 놓고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죄송해요.”
“아니에요.”
탁.
그녀는 조그만 유리병 몇 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제가 온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이건……?”
“역병 환자들의 상처 부위를 채집한 것이에요.”
대부분의 유리병은 이미 완전히 썩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들만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개만큼은 그나마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는 페링턴 지역에서 역병 환자들을 돕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회복제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환자들이 나왔어요.”
엘런이 고개를 갸웃했다.
역병을 치료하는 회복제라면 분명 리버와 자신이 만든 회복제일 것이다.
연구 단계에서 확실하게 분석했고 부작용 검사까지 마친 회복제였다.
그런데 그게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니. 한동안 체들턴 때문에 신경 쓰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접한 정보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어떤 반응이었죠?”
“병의 진행이 멈추는 효과는 같은데, 환자가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비틀어 댄다든가 그런 격렬한 반응을 보여요. 슬립 스크롤이 없었다면, 그들을 진정시킬 수조차 없을 만큼 심했었죠.”
엘런은 머릿속으로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만으로는 도무지 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었다.
“저도 예상되는 게 없군요.”
“역시 그러셨군요.”
세리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엘런마저 모른다고 하니, 앞길이 막막해 보였다.
“저희가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 부작용이 꼭 페링턴 지역에서만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런은 세리가 가지고 온 병을 챙겼다. 리버와 함께 이 상처를 연구해 본다면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만 이곳에 머물다 가시겠어요?”
“잘 부탁드려요.”
* * *
며칠 후, 엘런의 저택에서는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엘런 단 한 명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콰앙.
“세리, 어디 있어요?”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온 엘런은 대뜸 세리를 찾아다녔다.
“왜 그러시나요? 혹시 거부 반응의 이유를 찾으셨나요?”
엘런의 흥분한 모습을 본 세리는 당황하며 말했다.
“예, 이유를 찾았어요! 게다가 더 큰 사실도 발견했죠.”
엘런의 두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네요.”
“덕분에 반년 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풀 수가 있었어요.”
엘런의 환한 얼굴을 보니 세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환자들의 병도 고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요.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엘런은 당장이라도 출발할 것 같이 말했다.
“그 전에, 왕실만 들렀다 가도 될까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잠시 후에 뵐게요.”
세리에게 인사를 한 엘런은 곧바로 왕성으로 달려갔다.
‘체들턴, 이것만 있으면 네놈들도 이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