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37
137
분열 (2)
* * *
전 귀족 회의가 열리기 3일 전, 제국으로부터 한 통의 서신이 날아왔다.
2차 침공 이후로 한동안 잠잠했던 고센 제국이었기에 왕실은 의아해했다.
현재 그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왕실은 그저 친선을 위한 서신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열어 본 후로 알베르토는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전 귀족 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수도에 있는 고위 귀족들을 불러 모았다.
“폐하, 어쩐 일로 이리도 급히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역시나 귀족을 대표해서 말한 것은 그론리드 공작이 아닌 체들턴 후작이었다.
적어도 프로드에서 만큼은 이 비정상적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조금 전, 제국에서 서신이 도착했다. 과인은 이 일로 경들과 상의할 것이 있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다.”
“미천한 의견이나마 저희가 거들겠습니다.”
올란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자세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의 입꼬리는 한쪽만 올라간 채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목을 푸는 알베르토에게서는 강력한 권위가 느껴졌다.
“얼마 전, 남서부 지방을 시작으로 퍼져나갔던 역병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과인은 역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
귀족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행여나 자신들의 영지에서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지 못했다면, 알베르토의 성격상 합당한 처벌을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경들의 노력과는 달리 우리의 역병이 결국 제국까지도 건너갔다. 과인에게 온 서신은 제국이 우리에게 6만 골드의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몇몇 귀족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이미 확산을 막는 것에 실패한 이들이었다. 자신들 때문에 왕국 예산의 6푼가량을 쓰게 된 것이다.
“폐하, 그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고센 제국은 더 이상 과거의 고센이 아닙니다. 그들은 점차 쇠약해져 가고 있으며,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도 없습니다.”
세드릭의 말에 많은 귀족들이 동의했다.
더는 프로드가 주변국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어질 정도로 강대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아닙니다. 폐하, 비록 제국이 최근 들어 약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그 전투력이 여전합니다.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큰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 수가 적기는 했지만, 보상에 대해 찬성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순풍에 돛을 달 시기에 자칫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싶었다.
반대파가 많은 것에는 성장세를 탄 프로드에 대한 자신감, 자신들의 자존심 등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보상금 지급 후, 확산을 막지 못한 이들이 받을 문책이 두려워서였다.
“양쪽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과인은 제국에게 보상을 지급하고자 한다. 역병이 퍼진 것은 전적으로 프로드의 책임이 맞다. 과오를 범한 쪽에서 피해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이치에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 결정에는 알베르토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고센 제국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무시할 수만은 없는 세력이었다.
게다가 체들턴을 처리함으로써 생기는 국정의 혼란을 먼저 정리한 후, 다시 고센을 압박함으로써 보상금을 해결해 보려 했다.
무엇보다 여기서 보상금을 지급하고 며칠 후 있을 회의에서 역병의 범인으로 체들턴으로 내세운다.
그런다면 분명 그들은 지금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폐하…….”
반대파 귀족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곧바로 이어진 국왕의 말로 인해 저지되었다.
“듣기 싫다. 더는 여기에 대해 말을 삼가도록 하라.”
반대파 귀족들 중 몇몇은 그의 행동에 불만을 품었으나 그 자리에서 대놓고 반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게 되었다. 어차피 그가 귀족들을 모은 이유도 그저 보상금에 대한 반발심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며칠 후면 이 모든 반발심이 모두 체들턴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는 전 귀족 회의 때 지금까지 이어 온 지긋지긋한 권력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자 마음먹었다.
* * *
그리고 전 귀족 회의가 열리기 1일 전.
알베르토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왕실은 엘런의 영웅화를 위해 역병을 퍼뜨려 프로드와 백성의 안위를 위협했다.
그리고 그 여파가 제국까지 닿자 우리의 돈을 빼앗아 제국과의 마찰을 피하려 한다.
정작 그 주동자인 공주는 왕실이 직접 나서 납치라는 핑계를 들며 숨겨 버렸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의 집단으로서,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정치를 일삼는 왕실에 환멸을 느꼈다. 이제 우리가 지식의 수호자로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고자 한다.
체들턴가와 마탑을 필두로 한 동부 귀족들의 발표문이었다.
왕실을 심판한다. 그것은 곧 반란을 의미했다.
태평성대의 문턱에 있던 프로드가 한순간에 내전 국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저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것이지?”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을 먹은 알베르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체들턴이 이토록 저돌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바마마, 옥체를 보전하셔야 합니다.”
그 옆에 있던 로미우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로미우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전이라는 것은 원래 이토록 간단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반란을 일으키거나 참여한 자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위험도가 그렇게나 큰일인 만큼 아무리 체들턴 세력의 귀족들이라고 해도 선뜻 뜻을 모으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내전을 위한 명분은 역병을 퍼뜨린 왕실과 그로 인한 보상금 지급이었다.
그러나 명분은 명분일 뿐, 그들은 그 이전부터 내전을 위한 물밑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실은 모르고 있었지만, 체들턴은 하메론이 다녀간 직후부터 세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일부의 반대 세력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탑 내에서 체들턴은 절대적이나 다름없었다.
체들턴들은 그곳을 시작으로 자신의 세력권이라 할 수 있는 동부 지역까지 손에 넣은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퍼뜨려 놓은 각계각층의 세력들이 그들의 일을 도왔다.
지금까지는 체들턴도 반란에 대한 위험부담이 컸었기 때문에 준비만 했었을 뿐 선뜻 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고, 하메론과 그가 보낸 지원군인 제국군까지 합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국군에게는 수도 점령 후, 바로 병력을 철수시키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어떻게 한지 알 수는 없어도 하메론은 그저 너희들 때와 비슷한 방법이라고만 말했다.
이로써 체들턴가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서 해 놓았던 지금까지의 준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로미우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알베르토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놈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역으로 이용하다니.’
역병을 퍼뜨린 것은 공주가 맞았지만 그것은 체들턴의 정신 지배 마법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깊어져만 가던 그들에 대한 분노가 터진 게 아니던가.
알베르토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분노는 체들턴을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능한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강화된 왕권을 과신하고 있었구나.’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특무대를 통해 보고되고 있었다.
자신의 압박으로 반란을 준비한다면 그때 대응에 나서도 충분하다고 자만했었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지금 당장 저들을 막을만한 세력이 없었다.
지금부터 왕정파 귀족들을 소집한다 해도 저들과 시기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신권이 강한 프로드 왕국 정규군의 기형적인 구조.
모든 지휘관이 귀족이었고 배치받은 병사는 그들의 돈으로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군은 그들의 사병처럼 굳어져 있었다.
내전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분열된 군은 더 이상 군대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상위 귀족의 사병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병사들이라면 왕실 근위대와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마탑 마법사가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폐하, 일단은 왕성을 버리고 피하셔야 합니다.”
아카드는 국왕의 안위가 가장 걱정되었다.
완벽하다고 불리는 해리포드의 방어벽.
그것은 마탑의 힘, 특히 탑주의 힘이 가장 주요했다.
그런데 그 탑주가 적으로 돌아서 버렸다. 이제 이 왕성은 크기만 커서 아카드의 감각이 구석구석까지 닿기 힘든 위험한 곳이 된 것이다.
“이곳을 버린다고 했소?”
분명히 그것은 현재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 일단 목숨을 보전해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이 왕성이 눈에 밟혔다.
건국 이래로 단 한 번도 빈 적이 없던 프로드 왕국의 유산.
선대 국왕들의 강인했던 그 의지가 자신으로 인해 무너지게 생겼다. 그 사실이 알베르토를 괴롭혔다.
“하지만, 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 일단은 제 영지가 있는 서부로 가셔야 합니다. 그곳에는 폐하를 따르는 귀족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세력을 모은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정치에서 아카드는 다른 귀족들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전략에서 그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런 그는 지금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며 앞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주군은 충격에 빠져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왕자님, 페링턴 지방으로 전령을 하나 보내겠습니다. 엘런이 지금쯤이면 해리포드로 오고 있을 것이지만,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하루라도 빨리 우리에게 합류해야 합니다.”
엘런이 있다면 방어벽을 가동할 수 있다. 즉 왕성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 그가 빠진 시기에 일어난 일. 아카드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성이 아니더라도 엘런이 필요한 것은 똑같다.’
어쨌든 엘런이 있다면 충분히 큰 변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틀 후 수도에 도착하기로 한 엘런이 하루라도 더 빨리 합류하는 것이다.
“알겠네. 지금 바로 엘런에게 전령을 보내도록 하게.”
로미우도 아카드의 의중을 이해했다.
그는 곧바로 전령을 부르려 했다. 그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전령을 보낼 필요도 없고 왕성을 버릴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목소리는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엘런!”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들이 그토록 찾던 엘런이었다.
“폐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엘런은 곧바로 알베르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경이 어떻게 이곳에…….”
알베르토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전 귀족 회의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원래대로였으면 지금쯤 페링턴에서 출발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지금 4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넘어 이곳에 서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 왕실 특무대보다는 저희 아르곤의 정보력이 더 앞서게 된 것 같습니다.”
엘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전쟁, 제가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엘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음에도 회의장을 꽉 채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