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40
140
마탑 밖의 마법사 (3)
타닥.
드르륵.
왕실군 병사들이 수레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다.
시체들이 실려 있는 수레도 있었고 흙이 실려 있는 것도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엘런은 곧바로 전장 뒤처리를 시작했다. 그는 제5군에 있을 때부터 전후 처리를 가장 우선시했다.
적들에게 넘겨주는 정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법사 녀석들도 별것 아니라니까.”
“우리가 이렇게 연합해서 달려드니까 힘도 못 쓰던걸?”
“너희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그렇게 말하던 놈들이 저렇게 되니 속이 다 후련하군.”
텔라 숲의 전투는 전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왕실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반란군 중에서는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
“말은 똑바로 해라. 우리가 모인 것도 모인 거지만, 이건 다 저분 덕분이라고.”
한 마법 보조사가 수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전후 처리를 지휘하고 있는 엘런이 있었다.
“하긴, 정말 대단하셨지?”
“인간이 아닌 것 같았어.”
“전투 때 보여 주셨던 모습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었을 거야.”
“저분이 제5군에 있을 때부터 봤었는데, 그때도 굉장하셨지만, 지금은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수의 5서클 마법사와 기사가 포함된 정예군이 이토록 쉽게 전멸한 것은 엘런의 덕이 컸다.
그는 전장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던 자리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엘런이 한 번 나타났던 자리에서 사용한 마법과 정령을 포함한 공격은 10개가 넘었다.
7서클의 엘런이 쏟아내는 공격을 그들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엘런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그의 옆으로 두 명의 사내가 다가왔다.
“저자들도 이상한 마법을 쓰더군.”
“흑마법이라고 했던 것 같네.”
대륙에서 금기어와도 같은 말에 한 보조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런 님께서는 모든 학파의 마법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흑마법이라는 게 사실은 그리 나쁜 마법이 아니라고도 했네. 자네도 아까 불덩이들 보지 않았는가?”
그는 선제공격으로 사용했던 파이어볼을 떠올렸다.
분명 자신과 같은 서클이었음에도 자신보다 몇 개는 더 많은 불덩이를 소환하던 이들.
그들은 그저 그 방식이 효율적이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특히, 6서클에 오른 지 10년이 넘은 마법사를 단숨에 제압하는 브레디의 모습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흑마법사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들은 항상 두꺼운 후드를 쓰고 다니고 눈이 돌아가 있고 침을 흘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정령사도 있지 않았나?”
“그 시스토가 사용한 거 말인가?”
“그러게 시스토가 정령사인 줄 누가 알았겠나.”
엘런의 도움을 받아 정령사가 된 시스토는 당연히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전투에서 그가 눈에 띄는 무력을 보여 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이미 맥이 끊겼다고 여겨지는 정령사.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했다.
“모두들 잘해 주어서 고마워.”
엘런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시스토와 브레디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 힘도 모두 엘런 님 덕분입니다.”
시스토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위력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 그토록 길게 영창해야만 했던 주문.
이제는 정령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저주받은 재능을 원망하지 않아도 됐다.
“저희들의 공식적인 첫 성전이 대승을 거두어서 다행입니다.”
브레디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브레디 님, 누누이 말하지만 이것은 성전이 아니에요.”
엘런의 대답은 단호했다.
“저희는 그저 프로드의 국민으로서 폐하께 반란을 일으키고 이 나라에 혼란을 가지고 오는 세력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 같은 것이지요.”
반란을 막는 것.
그것이 마도 왕국 프로드에도 몇 개 없는 이동 마법진을 통해 에니스의 수감자들이 해리포드로 건너오는 조건이었다.
브레디를 비롯해 에니스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은 지금이 해방의 때라고 외쳤지만, 엘런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전이 끝난 후, 폐하께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마련해 주실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엘런이 원하는 것은 흑마법사만의 마탑이 아니었다.
결국 지식이든 권력이든 독점이 된다면 똑같은 결과가 반복이 될 뿐이었다.
그는 모든 학파를 수용하는 마탑을 생각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랜만에 밖에 나오게 되어 너무 들떴나 봅니다.”
브레디가 멋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기다린 순간이던가. 다만 엘런은 그 수위를 조절해 주고자 할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일단은 전후처리부터 신경 쓰도록 하지요. 그러려면…….”
엘런의 눈이 기절해 있는 노라드를 향했다.
“저자부터 심문해야겠군.”
시스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이 평소에 알던 엘런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만 빼고 모두에게 정중하게.’
그는 말로만 들었던 엘런의 가르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노라드는 자신에게 처할 운명도 모른 채 쓰러져 있었다.
****
“인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북부대륙 바다를 건너면 온통 얼음으로 된 섬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섬의 분위기가 어떨지 체험할 수는 있었다.
“언제까지 버티고 있을 겁니까? 제가 선배님의 얼굴에 손찌검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전설의 대륙에 부는 바람은 바로 이 목소리처럼 극한의 한기를 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딱 셋만 세겠습니다. 하나, 둘.”
“여, 여, 여기가 어디인가?”
엘런의 입술이 떨어지려는 순간, 노라드의 눈꺼풀이 먼저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마치 지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연기를 했다.
“여기가 어디인지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텔라 숲 근처 정도라고 해 두죠.”
노라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엘런은 그가 능력은 있지만 겁이 많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대에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것이 정석이었다.
“일단은 제 임의로 살려는 드렸는데, 내란죄에 해당하는 처벌이 무엇인지는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내란에 대한 처벌은 즉각 처형.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 이상도 없다는 말이었다.
“처형만은 안 되네.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말일세.”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기에는 노라드 님께서 너무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마탑의 고위 마법사이자 체들턴가의 최측근.
그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누렸던 노라드였다.
그런 그가 인제 와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하는 것은 변명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당신은 그들로부터 대가를 약속받았고 한순간의 욕심으로 그것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치러야겠지요.”
“미안하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었으니 한 번만 봐주시게.”
노라드는 구걸하다시피 엘런을 붙잡았다. 엘런은 거기서 어떤 이상한 점을 느꼈다.
‘겁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이건 마치 시간을 끄는 것 같단 말이야.’
그는 체들턴 가와 어울리는 만큼 마법사로서의 권위의식이 강했다.
그 콧대 높은 자존심을 이토록 구기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엘런은 머릿속으로 하나의 가정을 세웠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자가 이토록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시험해 봐야 알겠지. 일단은 그전까지 캐낼 수 있는 것만 챙겨 볼까?’
엘런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생명체인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무미건조하던 표정에 생기가 감돌았다.
“일단 제 권한으로 즉결 처형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됐든 프로드의 고위 마법사이니 폐하께 해명할 기회는 주도록 하겠습니다. 단, 그 후의 결과는 저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 말에 두 팔과 다리가 묶여 있던 노라드는 고개라도 꾸벅이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그럼 그전에 몇 가지 질문은 드려야겠습니다. 저도 선배님을 처형하지 않는 명분이라도 서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미안하네. 거기에 대해서는 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네.”
노라드는 엘런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렇게 선배님이 원하는 것만 가져갈 수는 없겠지요.”
스걱.
툭.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엘런은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노라드는 손가락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끄아악.”
그의 시선이 비로소 자신의 오른손에 이르렀을 때, 바닥에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저 손가락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계속 시끄럽게 하시면 하나 더 자르겠습니다.”
“헙.”
노라드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 이빨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게도 선배님을 살려 놓을 명분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서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본대는 며칠 후에 도착합니까?”
“그것은…….”
그가 잠시 뜸을 들였을 때였다.
스걱.
“끄아아악!”
이번에는 중지가 떨어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엘런의 무기질적인 눈빛이 노라드를 더 두렵게 했다.
“마, 마, 말하겠네! 말하겠다고!”
그 살인귀 같은 모습에 치가 떨린 노라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말하는 것을 막은 적은 없습니다.”
“대신 하루에 하나씩만 말하게 해 주게나. 나도 목숨을 보장받아야겠어.”
“이 상황에서 거래를 하려 하시는군.”
노라드는 혹시나 엘런의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나, 나는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네. 이건 정말이야. 그러니 분명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좋아, 그럼 하루에 하나씩으로 해 드리지요.”
엘런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노라드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댔다.
“첫 번째 질문에나 답하시죠.”
“보, 본대는 원래 3일 정도 후에 도착할 예정이네. 하지만 선발대인 우리의 연락이 없으니 그보다 더 지체되겠지.”
애초에 엘런이 이들을 노린 이유가 그것이었다.
“전군이 다 오는 겁니까?”
“정말 미안하네만, 그…… 이건 두 번째 질문 아닌가?”
“빡빡한 영감이군.”
엘른은 작게 한숨을 뱉은 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좋습니다. 약속대로 오늘은 여기까지 물어보겠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또 물어보죠.”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노라드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마법이 사라졌다.
“마법 사용을 막기 위해 팔찌 하나는 채우겠습니다. 참고로 그건 에니스의 수감자들에게 착용시키는 겁니다. 효과는 확실하겠지요.”
노라드 역시 이 팔찌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 편히 쉬시지요.”
그 말을 남긴 엘런은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 그곳에는 노라드와 그의 손가락 두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노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언뜻 보면 삶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건방진 새끼,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그리고 내 손가락을 자른 대가는 꼭 치르게 해 주마.”
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