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41
141
올란도 체들턴 (1)
“으으.”
그 후로 3일이 지나고 나자, 노라드의 상태는 그야말로 폐인에 가까웠다.
“정말이지 적에게는 무서운 분이라니까.”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카빈은 단 3일 만에 전투 마법사를 폐인으로 만든 엘런이 두렵기까지 했다.
동료에게는 끝없는 신뢰를 보여 주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위협한 자는 문자 그대로 반쯤 죽여 놓는 사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상대는 엘런밖에 없었다.
꽈악.
카빈은 여전히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노라드의 손에 붕대를 매며 그의 표정을 확인했다.
이미 초점을 잃은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고 그의 입은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영감님, 그러니까 선택을 잘하셨어야죠.”
카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방을 나갔다.
문이 삐걱대며 닫히고, 방 안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은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했었기 때문에 그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또옥.
조금 더 길게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노라드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텅 비어 버린 것 같던 그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의 입가는 양쪽으로 쭉 찢어졌다.
입가에서는 핏물을 잔뜩 머금은 침이 떨어졌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기뻐 보였다.
‘왔다.’
그는 확신했다. 체들턴가에서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다.
텔라 숲에서 엘런의 손에 기절하기 전까지 그는 미친 듯이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를 보냈다.
체들턴가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자신이었다.
그들이 계산적인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을 잃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손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손익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는 자신이 필요했다.
‘저 정신 나간 놈한테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순간 때문이다.’
핏물을 줄줄 흘리며 히죽거리고 있는 그는 이제 광기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쏴아.
간간이 들리던 물방울 소리가 커지더니 이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린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물소리가 멈춘 곳은 노라드의 발밑이었다. 그리고 그 바닥에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구멍이 생겼다. 노라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쾅.
자연스럽게 노라드는 그 구멍으로 떨어졌다.
“노라드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무례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땅 밑에는 한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그는 노라드가 떨어지자마자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를 풀어 주었다.
“아닐세, 안드레스. 성공적으로 탈출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얼른 가세. 이곳에는 1초도 더 있기 싫으니까 말이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와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그는 새 생명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올란도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노라드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동안 복구 마법을 사용해 흔적을 없앤 안드레스였다.
“크흠, 그러지.”
그는 손가락이 세 개씩밖에 없는 손으로 뒷짐을 지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 * *
“꼴이 말이 아니군.”
올란도가 노라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것이 다 대업의 계획을 사수한 대가라고 생각하겠네.”
이에 반해, 노라드는 감격스러운 눈빛이었다.
“수고 많았네. 자네가 우리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당연하고말고. 그놈에게 말했으면 내가 이 정도로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일단 알겠네. 자네를 포함해 선발대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본대의 출정은 연기되었네. 그러다 자네의 구조요청을 보고 이렇게 구조부터 하게 되었지.”
그들은 프로드 내전이 끝나고 새로운 마탑의 왕국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 마탑의 세력을 온전히 흡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위 마법사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중요했다.
특히 노라드는 체들턴 가에 충성을 바치는 자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엘런이 돌아왔던가?”
체들턴이 가장 궁금했던 점이었다.
“그 사람도 아닌 녀석 말은 꺼내지도 말아 주게. 자네의 말대로 그놈이 돌아왔네.”
노라드는 엘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치를 떨며 대답했다.
“누구와 함께 왔던가. 마법 보조사까지는 생각했지만, 그자들만 가지고는 부족했을 텐데.”
“흑마법사였네.”
그는 불덩이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검은 마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것은 흑마법을 사용할 때나 나오는 검은 마나였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놈들 에니스에 손을 댄 모양이야.”
“흑마법사라……. 급하긴 급했나 보군.”
올란도는 역시 이자를 구하러 온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이군.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겠어.”
흑마법사는 전 대륙의 마탑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이들.
그들에게 흑마법사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마법사들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국의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명분도 만들 수 있었다. 여러모로 활용 방법이 많았다.
“나중에 대업이 끝나면 엘런 베리타티, 그 새끼만큼은 내게 넘겨주게. 이번에 받은 치욕을 몇 배는 더 잔혹하게 갚아 줘야겠네.”
올란도는 씩씩거리고 있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교양 없이 아무 데서나 욕설을 내뱉지 말게나. 일단은 이 사실을 얼른 탑주님께 전하러 가도록 하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자네를 구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야.”
“크흠, 알겠네.”
노라드가 헛기침을 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덜컹.
그들이 있던 건물의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노라드를 구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온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마법사였다. 그런 그들이 건물 주위에 아무런 장치도 해 놓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경계 마법이며 환영 마법 그리고 문에는 잠금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그랬기에 지나가는 나무꾼이 우연히 문을 여는 일 따위는 일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마법을 아무도 모르게 해제시켜 버릴 수 있는 자. 전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던가.
올란도는 순간적으로 하메론을 떠올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하메론이 아니었다.
“아마 그 말은 못 전할 겁니다. 여기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어쩌면 문 앞에 서 있는 자는 그들이 하메론보다 더 피하고 싶은 상대였을 지도 모른다.
“엘런…….”
올란도는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히익!”
노라드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미 잘려 나간 자신의 손가락에서 또다시 고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이곳까지 잘도 찾아왔군.”
“노라드 선배님이 워낙 잘 안내해 주셔서 애먹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엘런은 과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올란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노라드를 향했다. 그의 눈은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닐세! 이건 저 새끼가 우리를 이간질하려고 하는 걸세.”
“내가 욕설을 자제하라고 했지 않았나? 뒤나 밟힌 주제에 입만 살아 있는 것 같군.”
“내전도 일으킨 분들이 안에서도 또 싸우면 어떡합니까?”
그들의 싸움에 끼어든 것은 엘런이었다.
“두 분의 평화를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노라드 선배가 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티가 났을 뿐이죠.”
“그러면 내가 그런 치욕을 견디는 이유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냐?”
노라드는 엘런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올란도는 오히려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래, 자네의 실력이야 내가 잘 알고 있긴 했으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지. 그래서 이제 어쩔 텐가?”
“제가 어쩌겠습니까. 저는 그저 국법에 따라 선배님들을 내란죄로 잡아넣을 수밖에요.”
올란도가 엘런의 말에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아무리 자네라도 우리 셋과 한 번에 싸우는 것은 승리를 확신하기 힘들 텐데 말이야.”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서클이 낮은 안드레스도 5서클 마스터였다. 게다가 올란도는 7서클의 문턱에 서 있는 자였다.
엘런이 영창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세 명이 적절히 마법을 섞는다면, 그들도 영창이 없는 것과 비슷한 속도까지 낼 수 있었다.
“선배님들 세 분이라고 해도 제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버겁기는 하겠지만요. 그런데 착각하고 계시는가 봅니다.”
“무슨 말이…….”
엘런의 건방진 태도에 역정을 내려던 그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이자들은?”
갑자기 그의 경계 마법에 스무 명도 넘는 사람이 감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경계 마법을 정지시켜 둔 게 풀렸습니까? 그럼 느껴지셨겠군요. 제가 뭐 때문에 여기를 혼자 오겠습니까?”
엘런이 신호하자 열려 있던 문으로 마법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에니스에서 나온 흑마법사들이었다.
“불살라라. 플레어.”
그들을 보자마자 올란도는 지체하지 않고 선공을 가했다.
5서클의 마법을 한 단어로 사용해 버리는 것만 보아도 그가 체들턴 가문의 가주임을 알 수 있었다.
“한 줌의 생명조차 살아남지 못할 극한의 냉기가 되어 만물을 섬멸하라. 아이스 캐논.”
“저들의 사이를 누벼라. 체인 라이트닝.”
그것이 신호였다. 안드레스와 노라드도 곧바로 주문을 영창했다.
5서클의 강력한 공격 마법이 엘런들을 향해 날아갔다.
“적과 나 사이의 공간을 차단할지어다. 안티매직 쉘.”
브레디와 흑마법사들이 급하게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올란도의 마법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완벽하게는 막을 수 없었다.
안티매직 쉘이 차마 덮지 못한 공간에 서 있던 마법사들은 자신을 집어삼키는 불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한차례 폭음이 지나간 후, 그 마법사들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반투명한 막을 보고는 그것이 엘런이 한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안티매직 쉘 사이에 생긴 구멍은 총 6개. 엘런은 그 6개의 구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막아냈다.
마법사들은 말로만 듣던 침묵의 마법을 보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감사합니다.”
“정신 차리고 전투에 계속 임하세요. 브레디 님과 4명은 노라드를 막아 주세요. 나머지는 모두 안드레스를 맡아 주세요.”
엘런은 제5군에 있던 시절처럼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저놈은…….”
엘런의 시선이 올란도를 쫓았다. 올란도는 벌써 다음 마법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마지막으로 공주가 덮었던 책 한 권이 지나갔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륜 따위는 저버리는 놈들.
그런 놈들은 프로드에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 그 심판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제가 잡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엘런의 몸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