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43
143
두 개의 성 (1)
왕좌에 앉아 있는 알베르토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3명의 사내.
그들은 평화롭던 프로드를 내전의 혼란으로 끌고 간 장본인들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자는 프로드 귀족의 상징인 체들턴 가문의 가주, 올란도 체들턴이었다.
“폐하, 가장 중대한 죄인 내란을 일으킨 죄목으로 폐하의 심판을 받으려는 자들입니다. 부디 지엄한 국법에 따라 이들의 잘못을 가려내 주십시오.”
그들 옆에 서 있던 엘런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알겠네.”
알베르토는 여전히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없었다.
국왕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체면이 상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전이 일어난 직후,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던가.
지금은 왕정파 귀족들이 준비한 군사들이 속속들이 수도로 몰려오고 있다고는 하나, 일주일 전만 해도 자신의 상황은 절대적 열세였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빈 적이 없는 프로드의 왕실마저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을 했던 그였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의 변수가 상황을 이토록 바꿔 놓았다.
이제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일 지경이었다.
‘베리타티 경은 신이라도 되는 것인가? 어찌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게 된 것인가.’
국왕인 자신보다 오히려 엘런이 프로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국왕.”
쩍쩍 갈라지는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알베르토는 끝없는 망상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경의 무례함이 도를 지나쳤다.”
당혹감마저 싹 몰아내버리는 분노가 들끓었다.
알베르토의 얼굴에 다시 근엄함이 찾아왔다.
“마법이야말로 신의 능력이오. 그 마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자가 신에게 가장 근접한 이겠지. 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자들이 인간의 밑에서 그들의 명령 따위를 듣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단 말이오!”
권위 의식이 뚝뚝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이것이 체들턴 가문이 마탑의 왕국을 만들고자 한 이유였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해 대는군.”
“아니, 당신은 겁이 나는 거겠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당신은 우리에게 이길 수조차 없으니까.”
“그 입 다물지 않으면 너의 목 위에 있는 그 쓸모없는 건 잘라 내 주겠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아카드가 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으으.”
“크윽.”
안드레스와 노라드는 그 진득한 살기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것은 동물의 방어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올란도는 그 본능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표독스러운 눈으로 알베르토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카드 경, 그만해도 좋소. 일단 이야기나 좀 들어 보지.”
“예, 폐하.”
아카드가 살기를 거둬들이자 그제야 안드레스와 노라드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놈들이 마법사라는 신성한 피를 지니고 태어났으니 왕을 해 보겠다, 이건가?”
그의 태도도 싸늘해졌다.
방금까지 경어를 사용해 주던 그도 이제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남아 있던 일말의 존중마저도 분노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힘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것이오. 더는 우리보다 못한 당신의 말에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소. 힘의 논리는 언제나 절대적이니까.”
왕실모욕죄만으로도 충분히 사형될 수 있는 발언들이었다.
“당신 역시 엘런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소? 그 하나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까 말이오.”
“그만.”
엘런의 이야기가 나오자 알베르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올란도를 제지했다.
“이제는 당신이 아니라 엘런에 의해 나라가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안 드시오?”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당신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소.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당신이 한 것이 아니지 않소?”
“마지막 경고다.”
알베르토 주위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의 분노는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전해졌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마법사에 대한 경외감이오. 그것은 당신 같은…….”
“아카드 경!”
댕강.
툭.
알베르토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올란도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통 백색인 대전이 붉은 피로 물들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자들이 자신의 이치 속에 파묻혀 미쳐 버렸나 보군.”
알베르토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아카드 경, 베리타티 경, 미안하지만 저들에 대한 심문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겠다. 오늘은 정상적으로 저들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예.”
엘런과 아카드의 대답을 들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대전을 나가 버렸다.
“이자들은 제가 수감시키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내가 폐하를 보필하러 가 보겠다.”
엘런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노라드와 안드레스를 데리고 지하 감옥으로 갔다.
그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옥까지 가는 길은 조용했다.
‘마법사에 대한 경외감. 강한 힘의 대한 권리. 얼빠진 소리만 해 대는군.’
엘런은 올란도가 한 말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다.’
회귀 전이나 회귀한 직후의 자신은 분명 강한 힘보다는 그 힘을 통한 지위를 가지고 싶어 했다.
남들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말에 꼼짝 못 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그 전에도 40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게 마법이 아닌 것을 알지 못했지.’
강한 힘도 힘이지만 그는 이제 이 신비하기만 한 마법의 끝은 어디일지가 그것이 궁금해졌다.
언제부턴가 마법은 탐구가 아닌 힘의 척도로 바뀌어 버렸다.
서로 지식을 주고받으며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마탑.
그 또한 이곳에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못했느냐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원래의 목적을 철저히 왜곡시켜 버린 그것은 결국 체들턴 가문이 만들어 낸 마탑에서 퍼져 나간 것이었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만든 그 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이런 무리수를 둬 버린 거지.’
올란도의 말을 듣고 알베르토가 어떤 생각을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엘런에게는 왕의 자리를 위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금 내 목표를 이루는 것만 해도 벅찬데.’
그는 그 후드를 쓴 사내를 신경 쓰는 것, 프로뱅을 위한 마도의 극한을 찾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일단은 이 전쟁부터 끝내 놓고 그다음을 생각해야겠지.’
어찌 됐든 지금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후드든 극한이든 그것은 안정을 찾은 다음의 일이다.
“충! 여기까지 죄인들을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기가 빠릿빠릿하게 들어 있는 병사의 말이 들렸다. 그것은 지하 감옥 앞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팔찌까지 채워놓았으니 그대로 집어넣으면 될 것이네. 수고하게나.”
“감사합니다.”
엘런은 그들을 병사에게 인도하고는 자신의 저택으로 방향을 틀었다.
‘올란도가 이 정도면 탑주는 더 심하겠지? 그자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얼른 끝내 버려야겠어.’
* * *
“탑주님, 제국에서 선발대가 도착했습니다.”
“내가 나가 보겠네.”
탑주는 헐레벌떡 뛰어온 포드를 지나쳐 외곽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잘 정비된 군대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고센 제국의 세력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군사력만큼은 여전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반갑소. 고센 제국의 트로이라고 하오.”
그중 제일 앞에 있던 사내가 탑주에게 다가왔다.
그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주요 부위만 철판이 덧대어져 있는 약식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소개를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소. 동부 대륙에서 고센 제국의 삼성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
제국은 결국 탑주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꽤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하메론의 압박이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프로드 마탑의 탑주 루이스라고 하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렇게 서둘러 달려와 준 제국에 감사를 표하는 바요.”
“그것은 내가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들으실 말이오. 그러니 인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해 주길 바라겠소.”
트로이의 탐탁지 않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남의 내전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따로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황태자가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내전의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이미 정권이 그에게 넘어가고 있는 탓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로서는 이 시기에 득도 없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 새로운 프로드 왕국은 절대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니까.”
탑주도 그의 마음을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넘겼다. 연합세력끼리 괜히 날을 세워 봤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후발대는 언제 도착할 예정이오.”
분명 이 정도 병력에 삼성이 온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왕 제국의 도움을 받을 거면 압도적인 화력이 되기를 원했다.
“일단 제국과 프로드의 접경지역에 있는 가용 병력은 내가 모두 데리고 왔소. 다른 병력들은 아마 일주일 내로 도착할 것이오. 그들은 선발대에 3배 정도는 되는 규모이니 모두 합류한다면 웬만한 전쟁급은 되겠군.”
트로이가 말한 규모는 제국이 주변 약소국을 점령할 때 쓰는 정도였다.
그런 병력이 프로드를 향하고 있다.
평소라면 큰일이라며 대책을 강구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가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압도적인 화력이 되겠군.’
군세를 뒤로 물리고 제국을 기다리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전술 통제권은 공이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소. 생각해 둔 것이 있소?”
“자세한 건 들어가서 이야기해 주겠소. 간단하게 말해주자면 일단은 후발대가 오기까지 대기할 예정이오.”
자잘한 전투가 많이 일어난다면 백성들의 혼란이 가중될 뿐이었다.
그것은 곧 나라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한 번에 압도적인 양으로 해리포드를 점령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곳 루베푸에 모두 모이기 전까지 방어만 한다는 말이군.”
“그렇소. 여기로 오는 길목에는 아웨일과 그웨타라는 성이 있소. 제국의 선발대가 한 곳을 맡아 주시오.”
이곳 루베푸는 트라모레와 마찬가지로 제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호시탐탐 프로드를 노리는 제국의 지휘관인 그는 이 주변 지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알겠소. 그러도록 하지.”
트로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기 부하들이 프로드의 성을 위해 쓰러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황제의 명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때려치우고 저들과 전투를 벌이고 싶기까지 했다.
“그럼 자세한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겠소?”
트로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들의 병력들 역시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 오늘은 푹 쉬어도 좋소. 숙소는 우리가 마련해 놓았소. 출정은 내일 있을 것이오.”
탑주의 눈짓을 받은 포드가 달려와 병사들을 안내했다.
“공은 이쪽으로 오시겠소?
탑주가 몇몇 지휘관들과 함께 남아 있던 트로이를 불렀다.
“엘런. 그자와 전투를 벌일 기회가 있겠소?:
긴 복도를 지나 탑주의 방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던 트로이가 물었다.
“물론이오. 피하고 싶어도 부딪히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그자의 최후는 내가 가져가도 되겠소?”
우둑.
그가 주먹을 꽉 쥐자 관절들이 괴기한 소리를 냈다.
“그자에게는 우리도 쌓인 원한이 많아서 말이오.”
트로이는 그자로 인해 제국이 몇 번의 패배를 당했는지, 몇 명의 병사가 죽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에프론을 죽여 버린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가능하겠소?”
“그게 무슨 뜻이오?”
탑주의 말에 트로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그 에프론 마저도 쉽게 제압해 버린 괴물이오.”
“공이 착각하고 있나 본데, 삼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삼성이 아니오. 에프론과 우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지.”
검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트로이는 역정을 냈다.
“그럼 잘 부탁하겠소. 그 골칫거리는 나도 당장에 없애고 싶으니.”
“그는 결단코 편히 죽지는 못할 것이오. 내 장담하지.”
그의 안구에 섬뜩한 빛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