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45
145
두 개의 성 (3)
* * *
“어느 틈에 여기까지?”
릭은 화들짝 놀라며 텔레포트 스크롤을 등 뒤로 숨겼다.
“그 스크롤을 당장 사용하게나! 이러다간 저 녀석에게 잡히고 말 걸세.”
베오브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는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으며 릭에게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복화술을 하는 광대 같았다.
릭은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베오브의 등 뒤로 아주 미약한 마나를 날렸다. 그의 등에 닿은 마나는 어떤 글자를 나타냈다.
-준비 시간 필요.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것 같은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런 조잡한 방법이 오히려 효과를 볼 때도 있었다.
엘런은 약한 마나 반응을 느끼고는 자신의 서클을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끌어올렸던 마나를 흩어 버렸다.
그는 설마 그런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5분.
‘무슨 스크롤 하나 사용하는 데 5분이나 걸린단 말이야?’
베오브는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었다.
공간 이동 계열 마법은 계산에 복잡성과 더불어, 계산이 하나라도 틀렸다가는 자신의 몸이 분리되어 버리는 위험한 마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서클에 이르러서야 겨우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보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마법인 텔레포트는 8서클의 마법이었다.
마법진이나 스크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6서클의 마법사 정도나 되어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마저도 긴 시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5서클에 불과한 릭이 곧바로 사용할 만한 수준의 마법이 아니었다.
아마 그가 체들턴 가문의 일원이 아니었다면 사용조차 불가능했을 수 있다.
‘젠장, 어쩔 수 없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5분만 버티면 살 수 있으니까.’
베오브는 이미 엘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비록 제일 약하다고는 하나 제국삼성(帝國三星)의 일원인 에프론을 단숨에 제압한 존재였다.
“빈츠, 협공하도록 한다.”
“예.”
릭이 보낸 메시지를 모두 이해한 그는 결정을 내렸다.
기사 빈츠 역시 총사령관의 명을 따르겠노라고 다짐했다.
챙.
꽈악.
빈츠는 검을 뽑아 들었고 베오브는 스태프를 고쳐 잡았다. 릭은 뒤에서 스크롤을 발동시킬 준비를 했다.
“이상한 수를 쓰기 전에 잡아주마. 릭.”
먼저 움직인 것은 엘런이었다.
그들이 무슨 계획을 꾸몄는지는 몰라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화륵.
그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그들에게로 날아갔다.
비교적 낮은 서클의 마법인 파이어 버스트조차도 엘런이 사용하니 6서클의 마법을 직면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게 했다.
“창공을 유영하라. 워터 스네이크.”
엘런에게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것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방어 마법을 펼친다 한들, 방어 마법이 보강되는 시간보다 자신에게 날아올 공격이 배는 넘어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상성 마법으로 시간을 끈다.’
5분이라는 시간. 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 상대가 저런 괴물이라면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었다.
폭발하는 화염과 물의 뱀이 충돌했다.
촤악.
그러나 상성에서 완벽히 앞서는 물의 뱀도 엘런의 화염 앞에서는 그저 수증기로 변할 뿐이었다.
뿌연 수증기를 뚫고 엘런의 화염이 베오브를 향해 쭉 뻗어 나갔다.
“쏟아져 내려라. 워터폴.”
쏴아아.
베오브의 앞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물은 이미 물의 뱀을 삼키며 힘을 빼앗긴 불을 간신히 진압할 수 있었다.
‘되었나?’
베오브가 한 공격은 무사히 막았다고 생각할 때였다.
한숨을 내쉬느라 잠깐 시선을 내리자 왼쪽에서부터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얼음 덩어리가 보였다.
“내가 고작 마법 하나 사용하고 기다릴 줄 알았습니까?”
엘런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옆구리를 크게 내준다면 자신은 곧바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다.
‘5분은커녕 1분도 안 되는 건가?’
쐐애액.
그때 한 형상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채앵.
그러더니 엘런의 아이스 캐논을 그대로 받아 냈다.
‘이걸 받아 내다니?’
엘런은 옆에 서 있던 빈츠가 아이스 캐논을 향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봤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자신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시스의 힘이 깃든 아이스 캐논은 고작 소드 마스터 정도가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주변의 기온이 충분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빈츠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갑옷에는 이미 하얗게 서리가 껴 있었다.
-저 녀석, 제법 기사잖아? 필사(必死)의 힘이라는 건가?
엘런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프로뱅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오러를 끌어 올리는 것.
자칫 오러가 역류해 버릴 수도 있지만, 필사를 각오한 자에게 그런 것 따위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어째서 그자들을 지키겠다는 것이오?”
엘런은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저런 자들을 지키기 위해 빈츠와 같은 기사가 목숨을 바친다.
이것이 얼마나 도리에 맞지 않은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충성을 맹세한 분께 내 생명을 맡겼다. 그분께서 이자들의 명을 따르라고 했으면 명을 따라야만 한다.”
“필사의 힘을 사용했으니 이제 기사는 할 수 없을 텐데 말이오?”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 오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주인의 몸을 망쳐 가고 있었다.
만약 운이 좋아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그는 이제 평생 오러를 운용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 것이다.
평생을 검만 잡아온 기사에게 검을 포기하는 일은 죽음보다 더한 일이었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쿠쿠쿠.
빈츠의 오러가 다시 한 번 더 한계를 돌파했다. 터져 나오는 오러가 몸 밖으로도 뻗어 나갔다.
“어쩔 수 없군요.”
엘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이 가진 7개의 서클을 모두 활성화했다.
“나도 급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라겠소.”
엘런의 양손이 허공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의 앞에서는 7서클 마법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대인용 마법으로 가장 효과적인 인페르노가 빈츠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한 점으로 집중된 화염은 빈츠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크윽.”
빈츠는 오러를 마지막 단계까지 해방한 것으로도 이 마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잔뜩 주고는 그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을 타고 흐르던 진득한 오러가 검의 경로를 따라 흩뿌려졌다.
그러나 두 번이나 중첩된 인페르노는 그의 오러막을 금방 허물어 버렸다.
“그대의 흐름을 막고 있던 막을 허무는 순간 터져 나올 것이다. 워터 블래스터.”
빈츠의 오러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베오브가 뒤에서 6서클의 마법으로 빈츠를 엄호했다.
“그쪽을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엘런은 인페르노에 이어 곧바로 소닉 버스터를 사용했다.
물론 아무런 영창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음속으로 쏘아져 나가는 바람이 베오브에게 닿는 것은 실로 눈 깜짝할 새였다.
콰앙.
공기를 찢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 여파에 휩싸인 물건들이 성벽 너머로 튕겨 날아갈 정도였다.
“에으, 억?”
베오브는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떴다.
자신도 저 물건들처럼 날아가고 있어야 정상일 텐데, 자신의 두 발은 여전히 땅을 밟고 있었다.
“빈츠?”
그 대신 자신의 앞에는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진 남자의 시체가 하나 있었다.
소닉 버스터가 터지는 순간, 빈츠는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켜 소닉 버스터를 감쌌다.
그 결과로 베오브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의 몸은 넝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젠장!”
베오브는 너덜너덜해진 그의 시체를 엘런에게 던져 버리고는 릭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을 지킨 자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엘런은 진정한 기사의 시체를 고스란히 받아 들었다.
그 시체를 조심히 내려놓은 그는 베오브의 등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윈드 블레이드.’
슈웅.
베오브는 최대한 몸을 틀어 마법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신체를 단련한 기사가 아니었던 그는 오른쪽 어깻죽지를 내줘야만 했다.
“으악!”
툭.
그러나 그는 자신의 팔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릭에게 달려갔다.
“어서 쓰란 말일세, 어서!”
절박한 베오브의 목소리를 들은 릭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5분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부우욱.
그리고 그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 버렸다.
찢어진 텔레포트 스크롤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나왔다.
여느 스크롤과 다를 바가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마법 텔레포트를 담고 있는 스크롤. 결과만큼은 확실했다.
빛에 휩싸인 릭은 지정된 위치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그 빛은 오직 릭만을 감싸 안았을 뿐이었다. 릭을 위해 시간을 벌어 주었던 베오브는 그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 이런 개새끼가!”
릭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준비한지 3분밖에 흐르지 않은 시간.
전황을 살핀 그는 절대로 5분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데려가지 않음으로써 3분 만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전개군.”
절규하고 있는 베오브의 옆에서 엘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릭이 이 내전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존재는 아니었다.
차라리 앞서 잡은 올란도가 내전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거물이었다.
엘런이 그를 잡으려고 한 것은 단지 과거의 일에 대한 복수 같은 것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그를 가지고 탑주와 협상을 벌이는 것 정도였다.
‘어차피 루베푸를 치면 릭도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마지막까지 가게 되면 반란의 주동자인 릭은 탑주와 함께 전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일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몇 주 미뤄졌을 뿐이지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선배님도 부디 원망하지 마시길. 어차피 살아 봤자 몇 주 더 살 수 있었을 겁니다.”
베오브는 자신의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고 얼른 뒤로 물러섰다.
앉은 채로 어기적어기적 몸을 내빼는 모습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살려 줄 마음은 결코 없었다.
서걱.
툭.
그의 머리는 여전히 공포에 잔뜩 물든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당신이 마지막에 살고자 행했던 짓은 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엘런은 뒤로 돌아 빈츠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끔찍한 모습의 그 시체에게 복원 마법을 사용했다.
‘명예로운 죽음에 걸맞은 예우를 해 드리리다.’
엘런은 그 시체를 들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아웨일 성 전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