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47
147
전면전 (2)
아무리 길치라도 루베푸에서 그웨타까지 갈 때는 전혀 길을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시작점에서부터 잡은 방향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루베푸와 그웨타 사이에는 크기가 넓지 않은 평원 하나가 있었다.
이곳은 제국과 국경도 가깝고, 최후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그웨타보다도 밖에 있기 때문에 거주민이 아무도 없었다.
작은 키의 잔디 정도만이 식생하고 있는 이 평원은 바로 애스펀 평원이었다.
거주하는 사람은 없지만, 제국과의 교역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애스펀 평원은 평소에도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상인을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모험가, 학자들이 한 번쯤은 이곳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애스펀 평원으로 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이 평원을 지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 평원의 용도가 교역로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4만이 넘어가는 숫자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던 로미우는 그 분위기에 압도당할 것 같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그의 현재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많이도 모았구나.”
왕자 시절 전쟁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었던 알베르토 역시도 긴장이 될 정도의 규모였다.
“저희 군은 3만에 불과한데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로미우는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일당백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병력의 수에서 한참 뒤처지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저 중 3분의 1가량은 징집으로 모은 급조된 병사들이기까지 했다. 벌써부터 지레 겁을 먹은 병사들도 간간이 보였다.
“왕자님, 저희가 반드시 이겨 보이겠나이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아카드의 말에도 로미우는 여전히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리 많은 전략을 떠올려 보아도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카드 경이나 엘런에게는 그 길이 보이는 것이겠지?’
위기의 순간이면 기적을 일으키곤 하는 그들. 그들에게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로미우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곳에서 승리하고 돌아간다면 반드시 공부에 더 힘쓸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정말 많구나.’
반란군 4만 명과 왕실군 3만. 도합 7만 명의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애스펀 평원이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본디 이런 평원은 마법사들에게 가장 좋은 전장이 된다. 지형지물을 고려할 것 없이, 그저 사람들이 뭉친 곳에 마법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마법사와의 전쟁에 이골이 난 제국은 전투에 있어 웬만하면 이런 평원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프로드가 자랑하는 마법사 군단이었다.
어느 쪽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형국.
왕실군과 반란군 사이에서는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마법 전투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제국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활개를 치는 것이냐?’
‘손 빌릴 때가 없어 흑마법사의 힘을 빌리는구나.’
‘학문의 다양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것들이.’
그 싸움이 치열해진 이유는 그들이 너무나도 상반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제국군과 프로드군, 혈마법 때문에 탄압을 받았던 흑마법사와 그들을 탄압한 정통 마법사.
‘우리의 권위를 빼앗으려는 자들. 이번 기회에 네놈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지.’
‘우리를 탄압하던 놈들, 실전 경험도 없이 그저 서클 수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들에겐 보여 주는 게 제격이지.’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차별을 겪어야 했던 마법 보조사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고자 마법사.
그 모든 감정선이 애스펀 평원 한가운데서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그 사이 양쪽 수뇌부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원하는 쪽이 없었기에, 그들은 서로의 전력을 분석하며 적절한 공격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비대칭 전력은 양쪽에 2명씩 있다.’
탑주는 어느 때보다 객관적으로 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역시 소싯적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었던 베테랑이었다.
탑주가 된 후,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운용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트로이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겠지.’
트로이는 제국 내에서도 비밀리에 이곳으로 왔다.
설마 내전 지원군 중에 비대칭 전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체크 메이트를 막기 위해 아카드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결국, 움직이는 것은 엘런이겠지.’
이쪽은 킹이 부대에서 가장 강한 자이자 마탑의 탑주인 루이스 체들턴이었다.
즉 2명의 비대칭 전력이 모두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전장에서 비대칭 전력의 자유도는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였다.
‘엘런만 잘 잡고 있으면 마법 면에서나 무력 면에서나 우리의 승기가 확실하다.’
탑주는 시선을 돌려 제국군을 이끄는 트로이를 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냥개 같았다.
황제의 명령이라면 죽음이라도 불사할 그의 충성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병력을 이끌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엘런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복수심과 호승심이 장작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장 큰 손실이 우려되는 엘런과의 전투는 저들에게 맡기면 된다.’
탑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전군!”
그의 목소리는 음성증폭구를 타고 애스펀 평원 끝까지 퍼져나갔다.
“진격!”
그의 명령에 맞춰 병력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뗐다.
4만의 병력이 한 발씩 전진하는 모습은 마치 성벽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제국군과 연합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 전투 직전까지도 훈련했던 수고가 빛을 발했다.
“프로드의 아들들은 들어라.”
움직이는 성벽 같은 반란군을 보며 알베르토도 운을 띄웠다.
“하명하십시오, 프로드의 어버이시여!”
모든 병사가 일제히 대답했다.
“저들의 아집(我執)이 프로드의 역사에 과오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우리의 땅과 가족을 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패배할 수는 없다. 그대들은 나를 따라 주겠는가?”
“폐하가 가시는 길을 끝까지 보필하겠나이다.”
3만 명의 병사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당성이라는 말로 치환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왕실군이야말로 정당성을 가진 쪽이었다.
그 신념이 왕실군이 4만의 반란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군, 반란군을 진압한다!”
전진을 뜻하는 녹색기가 곳곳에 높게 올라왔다. 비로소 애스펀 평원의 대격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전투의 시작을 알렸을 때의 열기와는 달리 그들의 전투는 오히려 차가웠다.
“우측 네빌 자작의 군이 화력을 교환했습니다.”
“좌측 도터 남작의 군은 작은 피해를 입으면서 진형이 조금 어그러졌습니다.”
종으로 길게 늘어진 전선 때문에 지루한 탐색전과 가끔 있는 화력 교환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만큼 섣불리 달려들기에는 겁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끌고 있을 수는 없다. 결정해야 한다.’
왕실군 중에는 징집병도 많은 만큼 사기가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이런 장기전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선공으로 사기를 끌어 올리고 대격전에 돌입한다.’
속으로 커다란 결심을 내린 아카드는 알베르토를 보았다.
“아카드 경이 생각한 대로 하시오.”
알베르토는 설명을 듣지도 않고 허가를 내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1분 1초라도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 일제 사격 실시.”
슈우우웅.
왕실군 마법사들이 일전에 합의된 몇 곳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형형색색의 마법 세례가 반란군의 머리를 노리고 쏟아졌다.
콰앙!
당연하게도 반란군 진영에서는 방어 마법이 펼쳐졌다.
프로드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 공격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막아 냈다.
그러나 완벽하리만큼 마법을 막아낸 그들의 방어 마법일지라도 엘런의 공격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마법이 뚫고 지나간 구멍을 타고 왕실군의 마법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퍼걱.
쩌저적.
“크헉.”
“끄아아악.”
마법사들의 공격에 노출된 병사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4만의 군세 앞에서는 그렇게 심각한 타격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은 왕실군의 사기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병사들의 눈에 서리는 자신감을 확인한 아카드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비대칭 전력은 하나. 엘런이 탑주를 막고 있다면 내가 뒤에서 지원만 하더라도 충분히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카드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의미하는 적기(赤旗)가 들어 올려졌다.
“와아아아!”
“반란군 놈들을 쓸어 버려라.”
“흑마법의 위력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줘라.”
“이제는 실력도 없으면서 마법사라는 이유로 으스대는 놈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 버리자.”
그들은 저마다의 울분을 토하며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수많은 창과 검들이 부딪히며 강한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한 번의 격돌로 창두가 부러져버린 병사는 곧바로 가슴이 꿰뚫려 버렸다.
콰아앙.
그 뒤에서는 불, 물, 바람, 땅, 번개 모든 원소 마법들이 쏟아졌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 인류가 가진 서클의 총집합. 1서클부터 7서클까지 모든 마법사가 모여 있었기에 모든 마법이 한 전장에서 목격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엘런과 탑주였다. 7서클의 마법은 그것이 시전될 때 움직이는 마나의 파동만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었다.
그들의 마법이 떨어지는 곳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방어마법을 펼친다 한들 그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 정도 정리했으면 이제 탑주를 잡으러 가야겠는데.’
막 블리자드를 사용한 엘런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땅을 타고 전해져 오는 커다란 진동을 느꼈다.
콰앙.
진원지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전해지는 충격을 보면 그 위력을 짐작하기 충분했다.
‘그 영감도 처음부터 마법을 막 뿌려 대는…… 잠깐만.’
진동의 원인을 찾던 엘런은 그것이 탑주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탑주가 마법을 사용할 때 나오는 마나의 파동이 진동의 방향과는 다른 곳에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럼 저자는……?’
엘런의 머릿속에는 불길한 예상이 하나 떠올랐다.
‘제국삼성인가?’
그들이 온 것이라면 이번 전투의 양상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어느 틈에 그놈들까지 부른 거지?’
비대칭 전력이 일으키는 영향이 두 군데서 나타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아카드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일단, 저놈부터 처리한다.’
이대로 가만두다가는 저자에 의해 죽어 나가는 병력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엘런은 활주를 사용하여 전속력으로 삼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콰앙!
그의 검이 한 번 휘둘러지자 병사들은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산이라도 베어 버릴 것 같은 그 검술에 병사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놈은 언제 오는 것이냐?”
트로이가 검을 다시 한 번 들어 올렸다.
병사들은 저 검이 내리쳐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너희 같은 잔챙이는 필요 없다.”
후웅.
마침내 그의 검이 움직였다.
그의 검은 칼날은 빛마저도 집어 삼켜 버렸다.
“어디서 개새끼가 짖어 대는군.”
트로이는 그 목소리에도 여전히 검을 거두지 않았다.
터엉.
그의 검을 막아 낸 것은 반투명한 막이었다.
충격을 견뎌내지 못한 막은 곧바로 찢어 버렸다. 그러나 그 밑으로도 10개의 막이 더 있었다.
“이 정도밖에 안 됐나?”
트로이의 눈이 번뜩였다.
“네놈도 에프론처럼 되고 싶은 건가?”
“이 새끼가…….”
엘런의 말이 모두 끝나기도 전에 트로이의 검이 그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