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51
151
탑주 (3)
“이걸로 확실해졌네.”
“뭐가 말입니까?”
“솔직히 확신할 수 없었네. 내가 자네의 전투를 직접 본 적도 없었고 자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술만 써댔으니 가늠이 안 되더군. 내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엘런의 실력은 7서클이라고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그의 힘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드러난 것은 고작 무영창이나 특별한 체술 정도였다.
그 밖에 그가 정령, 흑마법, 고대어를 사용하여 엄청난 위력을 보인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탑주는 전면전에 들어가기 전에 엘런과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확한 실력을 몰랐기에 무조건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7서클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 7서클이라고 해서 단신으로 제국 삼성을 단숨에 제압하고 병력까지 물러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탑주는 당연히 엘런이 힘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도박을 걸었다. 그 기저에는 자신감도 있었다.
현 인류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
자신을 띄워 주기 위해서 붙인 별명이겠지만, 그 호칭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엘런이 아무리 힘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나보다는 약할 것이다.’
그런 생각은 엘런과 전투를 이어 갈수록 깨졌다.
자신이 가졌던 힘을 차례차례 드러내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몸에 가장 무리가 많이 가는 방전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아직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의 이동기를 묶을 수 있었고, 마법의 위력으로 캐스팅 속도 차이를 메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보다 더 성장한다면 그때는 제압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에 그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훨씬 힘든 싸움이 됐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하늘은 아직 자신의 편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를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겠네. 더 내버려 뒀다가는 나를 앞질러 버릴 것 같군.”
오싹.
마치 등골을 타고 날카로운 칼끝이 지나가는 느낌. 엘런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뒤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건가?’
현자의 경지, 마법사의 정점에 올라선 그가 모든 힘을 다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로슈의 성에 홀로 서서 몇만의 제국군을 바라볼 때도 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한 인간의 살기가 이토록 위협적이게 다가오다니.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한다면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탑주는 10년이 넘도록 프로드를 지켜온 수호자였다.
그가 쌓은 경험은 엘런이 마법 보조사 시절을 합치더라도 훨씬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마법사와의 싸움에서 그들의 능력에 비해 형편없는 경험을 비웃었다.
그러나 지금 만큼은 오히려 자신이 그런 입장이 되었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간다.’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또 기상천외한 방법이라도 막아 낼 것이다.
조커를 던지는 이상 막히면 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부터 하는 계산에 오차가 하나라도 있다가는 죽는다.’
네트의 봉인을 마친 후, 자신에게 이토록 진지하게 목숨을 내놓고 임한 전투가 있었던가.
한 치의 오차만으로 목이 떨어지는 싸움. 패배의 대가가 죽음인 전투.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투.
그 전투에 임하는 엘런은 끓어오르는 투지를 제어하며 신중해졌다.
파지짓.
탑주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감전사할 수도 있었다.
“몰아쳐라. 썬더 스톰.”
엘런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외운 주문의 서술어가 마법과 그토록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번개의 폭풍이 몰아쳤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또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엘런은 흙더미를 쌓아 올려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워터 스네이크 10개를 탑주에게 쏘아 보냈다.
탑주가 오롯이 공격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탑주가 방어 마법을 펼치면서 물의 뱀은 처참하게 터져 버렸다.
그러나 뒤에서는 아직 8마리의 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뱀들이 탑주의 사지를 노리고 들어오자 그는 전방과 후방에 방어 마법을 한 개씩 펼쳤다.
더블 캐스팅이 시행된 것이다.
이제 탑주에게는 마법적 여유가 없다는 말.
직전에 탑주가 방전을 사용하기 직전의 상황과 동일한 상황이었다.
그 틈을 본 엘런은 곧바로 움직였다.
‘가능하다.’
엘런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 이미 두 번이나 파훼당하며 더는 탑주의 고려 사항에 없을 그 기술.
츠팟.
헤이스트가 몸을 신속하게 만들었고, 마나로 강화된 근육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일으켰다.
엘런이 내딛는 발 앞에 얼음이 얼었고, 압축된 제피로스의 바람이 엘런을 밀면서 그는 초고속으로 탑주의 옆으로 돌아 들어갔다.
탑주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그 방법은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동시에 탑주는 같은 방법을 시도하는 엘런을 의심했다.
분명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방전은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기는 했지만, 약간의 빈틈조차 없는 고압전기의 방출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공격이자 동시에 방어이기도 했다.
예의 그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탑주의 몸에서 선더 스톰보다 훨씬 짙은 번개가 방출되었다.
씨익.
엘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흩어져 버린 워터 스네이크의 수분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때부터 엘런은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 버렸다.
모든 집중력을 계산에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쩌저적.
엘런의 발이 허공을 내달렸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의 발이 허공에 닿기 직전에, 이시스가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얼려 발판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땅에서 사용하던 활주를 그저 공중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훨씬 많은 계산이 필요했다.
이시스와의 정서 교류가 훨씬 깊어졌고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따로 마법을 추가해야 했다.
끊임없이 바뀌는 무게 중심 때문에 매번 계산을 따로 해야 했지만, 엘런의 두뇌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아니?’
엘런의 움직임을 완전히 쫓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방전에 닿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간 것이지?’
지금까지 방전을 사용한 적은 많이 없었지만, 사용할 때면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이곳을 돌파하지 못했다.
방출된 자신의 마나가 그의 경로를 모두 막아서기 때문이다.
즉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서는 방전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레비테이션을 사용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 속도로는 감전당하기 딱 좋았다.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엘런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즌 블레이드.’
엘런의 손에서 검 한 자루가 생겨났다.
공중으로 움직이는 활주 역시 다음번부터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꽂아 넣는다.’
마법을 날려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 따위 할 생각도 없었다.
직접 두 손으로 그의 최후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됐다.
엘런의 마나 하트에 있는 7개의 원이 요동쳤다.
그는 이 검에 모든 마나를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중첩되는 프로즌 블레이드는 이제 20중첩이 넘어갔다.
번쩍.
30중첩에 이른 얼음의 검은 순수한 마나 그 자체로 보일 정도였다.
“이걸로 너희들의 반란도, 그 끔찍한 마탑의 왕국도, 추잡한 욕심까지도 전부 끝이다.”
푸욱.
이제 자연의 단계에 이른 프로스트 블레이드가 탑주의 왼쪽 어깻죽지를 갈랐다.
완전히 절단해 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나 하트만은 손상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몸이 양단되는 고통에 탑주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얼음의 검은 피부를 파고드는 순간부터 근육을 괴사시키기 시작했다.
부우욱.
엘런은 잡고 있는 검에 힘을 더욱 가했다. 그럴수록 탑주의 표정은 절망적으로 변했다.
툭.
결국, 그의 몸은 완전히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탑주님이 쓰러지신 건가?”
주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병사들의 눈에는 1초 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눈에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감은 눈꺼풀이 전투의 결말을 가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큼은 확실히 그들의 눈으로 들어왔다.
상체가 하체와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것은 바로 탑주였다.
* * *
“마법사 5조 분산 사격을 가한다. 보조사 2조가 방어 마법 시행해.”
콰앙.
마법이 정신없이 오가고 땅 이곳저곳이 움푹 파였다.
그 구덩이 속에는 시체가 쌓여 있었고, 그 위로 검들이 금속음을 내뱉었다.
그 치열한 전장 속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바로 흑마법사의 수장 브레디였다. 그는 엘런과는 완전 반대 방향에 배치되었다.
“보병, 진격을 멈춘다.”
브레디는 주변의 전세를 보며 병력의 진격을 조절하고 있었다.
“다음 6조가…….”
아까부터 전해지던 거대한 마나의 충돌이 돌연 사라져 버렸다.
멀리서 전달되는 탓에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 규모만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애스펀 평원 전역에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을 수 있는 마나는 딱 두 명의 충돌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충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승부에 결론이 났다는 말과도 같았다.
‘엘런 님께서 승리를 거두신 건가?’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엘런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엘런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충돌이 있던 지역부터 시작되는 파란 깃발의 물결을 보며 확실해졌다.
적장을 잡았다는 의미의 색이었다.
“상대의 탑주가 쓰러졌다. 우리가 승리했다! 이곳만 밀어내면 우리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브레디의 외침은 왕실군의 투지를 자극함과 동시에 반란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공격!”
“와아아아아!”
마침내 브레디의 지역에서까지 파란 깃발이 올라오자 모든 전선이 동시에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승기를 잡으려는 의도였다.
“전부 앞으로 나가서 싸워. 후퇴하지 말란 말이다!”
그때, 반란군 사이에서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리 꺼져!”
“이제 탑주도 없는 마당에.”
“우리는 살 거다!”
반란군은 그 외침을 무시하며 뒤쪽으로 달려갔다.
“이 미개한 새끼들이!”
그 처절한 목소리는 바로 릭 체들턴이었다.
그는 탑주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탑주가 누구인가. 마법사의 정점에 군림하던 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조금 강하다고 하기로서니 평민 출신에게 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저놈은 생포한다.”
브레디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체들턴 가문의 정식 후계자.
반란이 끝난 후에도 그를 이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닥쳐.”
“너부터 죽기 싫으면 얼른 비켜라.”
릭은 두려움 때문에 공황에 빠진 그들 모두를 막을 힘이 없었다.
타앗.
병사들은 그를 밀쳐 버리고는 모두 달아나 버렸다.
그 뒤를 왕실군이 쫓았다.
“모두들 날 버리고 가지 말란 말이다.”
왕실군에게 포위되어 버린 릭은 멀어지는 반란군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릴 리도 만무했고 설령 들린다 한들 멈출 그들이 아니었다.
브레디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뒤로 돌아갔다.
“릭 체들턴, 너를 내란죄로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