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52
152
종전 (1)
애스펀 평원에서 있었던 대규모 전면전은 엘런이 탑주를 처치하고도 한나절이 지나서야 정리되었다.
상대가 제국군이었다면 어느 정도 쫓다가 그들이 국경 근처에 다다랐을 때,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의 상대는 바로 같은 프로드의 국민이자 반란군이었다.
도망친 그들이 숨어서 재차 반란을 준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란군 전원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시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면전은 막을 내렸지만, 애스펀 평원은 전투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프로드와 제국군 사이의 전투에서도 이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렇게 많은 마법이 오갔으니 애스펀 평원이 과거의 모습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제국군이 지원군을 보내며 내전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토록 빨리 종전시킨 것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내전의 종식을 알리고 반란을 주도한 역도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반란에 참가한 병사들은 체포는 하지 말되, 따로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영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라.”
알베르토의 그 전언이 바로 프로드 내전의 종전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이 소식은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보다 훨씬 빠르게 전달되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문보다 왕실이 이겼다는 소문이 먼저 도착할 정도였다.
소식을 들은 서부 지역의 귀족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번 내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위 귀족의 대규모 숙청은 당연히 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왕과 함께 했던 자신들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뒀을 때보다도 쉽게 승작을 할 기회였다.
“내가 뭐라고 그랬는가? 엘런이 폐하께 있는 이상 무조건 왕정이 이긴다고 했지 않았는가?”
“마틴 자작님께서는 이번에 전투를 직접 이끄셨으니 백작의 작위도 노려 볼 만하겠습니다.”
“하하하, 폐하께서 내려주신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고 받아야겠지.”
“물론입니다, 하하.”
왕정파 귀족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우리도 반란군을 지원한 것은 맞으니 피해 나가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도 협박받은 게 아니오?”
“어느 국왕이 반란군의 사정까지 헤아려 처벌하겠는가?”
반면 반란군의 편을 들었던 귀족들은 하루하루 주름이 깊어졌다.
사실 그들은 그저 물자를 댔을 뿐, 직접 병사나 기사를 보낸 자들이 아니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탑주의 제안을 거절했던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애초에 반란이라는 큰 도박에 목숨을 걸 정도로 배짱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7서클 마법사의 위협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반란군에게 물자를 대는 것으로 자신의 목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바람의 칼을 없앨 수 있었다.
그런 귀족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이나 왕실로 잡혀 왔다.
공을 세울 만한 거리를 찾는 왕정파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런 자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반란군을 체포했다는 공을 세울 수도 있었고 그렇게 강한 세력이 아니라서 부담도 없었으니, 왕정파 귀족들에게는 최고의 사냥감이 아닐 수 없었다.
‘골치가 아프긴 하구나.’
알베르토의 앞에는 그렇게 체포당해서 온 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많았기에 작은 글씨로 썼음에도 한 면이 가득 찰 정도였다.
‘병력을 대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자들의 처리는 직관적이고 단순할진데.’
그런 자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목을 잘라 버리면 그만이었다. 국법이 그러했고 왕의 의지가 그러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소인배들이었다.
이들까지도 전부 똑같이 하자니 귀족의 공백이 너무나 크게 생겨 버린다.
이래서는 내전에서 승리했다고는 하나 곧바로 주변국의 위협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당장에 에다인 왕국과 제국이 쳐들어온다면 막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병력들을 이끌거나 물자를 댈 만한 귀족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로미우, 너의 생각을 듣고 싶구나.”
이번 내전을 거치며 피로도가 극에 다다른 알베르토였다.
그는 이제 왕위를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것 말고도 이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는 후계자를 확고히 해 둘 필요도 있었다.
그런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로미우는 알베르토의 모든 일을 함께하고 있었다.
“아바마마, 소자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이런 일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 얼마든지 생각해보아라.”
로미우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귀족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알베르토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정국의 공백.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그 어느 국가이든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녀석이었다.
‘그들을 우리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그의 머릿속이 곧 어느 결과에 도달했다.
“아바마마, 소자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 * *
프로드 내전이 끝난 후, 왕실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특히 국왕이 국정을 돌보는 대전에서는 매일 아침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소리,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깊은 한숨 소리, 마법사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분노 섞인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폐하, 소극적 역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일렬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귀족들이 움찔거렸다.
이제 뒤에 이어질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과인이 고민이 많았다.”
알베르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전날 밤 로미우가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그 아이도 이제 정치를 많이 배운 것 같단 말이지.’
괜히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국왕의 소양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것. 예전에는 이것이 로미우의 약점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했다.
“저들이 저지른 죄를 과인이 모르는 바 아니나,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이라는 점과 지원도 물자에만 그쳤다는 점을 참작하도록 하겠다.”
알베르토의 말을 들은 귀족들이 슬쩍 고개를 올렸다.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그들의 눈에 다시 희망이라는 것이 깃들었다.
“하여서, 저들이 가진 재산의 3할을 몰수하고 저들의 자녀를 앞으로 왕성에 신설될 왕립 귀족 아카데미에 의무적으로 보내 귀족으로서의 소양을 교육을 받는 것으로 저들에 대한 처분을 내리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십니다.”
언뜻 보기에는 무죄에 가까운 처분이었으나 왕정파 귀족들은 모두 그것에 수긍했다.
그들이 아무 말 없이 수긍한 이유는 알베르토가 가진 왕으로서의 권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족 아카데미에 자녀를 보낸다는 말은 곧 자녀가 볼모로 잡힌다는 말과도 같았다.
기사 아카데미와 마법사 아카데미를 통해 이미 이것을 시행하고 있었지만, 정치인이 되려는 귀족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도 자녀라는 족쇄를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바,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당장 목숨을 건진 귀족들에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알베르토를 향한 충성심마저 생기는 자도 있었다.
그의 모습은 자신들의 불가항력을 이해해 주는 이해심 있는 군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폐하, 신은 결코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목숨 바쳐 은혜를 갚겠습니다.”
여전히 포박된 채 대전 밖으로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알베르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릭 체들턴에 대한 처분만 남았습니다.”
“잠깐.”
알베르토는 다음 순서를 말하려는 서기의 말을 막았다.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겠다. 그자를 청문하는 과정은 꽤 길어질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에 대한 회의를 못 할 것 같군. 릭 체들턴에 대한 처분은 다음 회의에서 진행하도록 하지.”
반란 주동자 숙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후 복구 정책이었다.
복구는 하루라도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숙청을 하느라 전후 복구를 못 한다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지형적인 피해는 아웨일 성과 애스펀 평원이 유일하다시피 하니 저들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그곳으로 투입하도록 하라.”
그 후로도 많은 정책이 교환되었다.
지역에 대한 문제도 있었지만, 죽은 병사들과 그 유가족에 대한 조치나 역병에 대해 탑주가 퍼뜨린 소문을 정정하는 것도 필요했다.
당연히 회의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국무회의는 이쯤 하는 것으로 하고 다들 내일 보도록 하지.”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나서야 회의가 끝이 났다.
아직 모든 안건이 처리된 것은 아니었으나 알베르토가 종결을 선언했다.
“성은이 망극하십니다.”
귀족들 역시도 열띤 토론으로 지쳐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알베르토의 말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느껴졌다.
“베리타티 경, 경은 잠시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귀족이 빠져나갔고 가장 안쪽에 있던 엘런도 마침내 대전을 나가려고 할 때, 알베르토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그들은 곧장 국왕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드의 어버이로서 경에게 어떤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신은 프로드의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엘런의 말과는 달리 그가 지금까지 행한 업적들은 신하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역전된 전세. 그리고 덕분에 극적으로 줄어든 내전 기간.
무엇보다 현 인류 최고의 마법사를 이긴 프로드의 영웅!
알베르토는 그에게 붙여 주고 싶은 호칭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어떤 호칭으로도 그의 모든 업적을 치하할 수 없는 것은 확실했다.
“프로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마탑이 붕괴되어 버렸다.”
내전이 끝난 후, 해리포드 시내에 우뚝 솟아 있는 마탑의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그 내부는 예전의 그 활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탑주와 그밖에 반란의 주동자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출입이 무기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인은 경을 필두로 하여 마탑의 재건을 이루고자 한다.”
“그저 하명하시면 됩니다. 신이 어찌해야겠습니까?”
마법사라면 누구든 가슴 벅찰 법함에도 엘런의 반응은 차분했다.
“이번에 내전을 겪으며 폐쇄적인 마탑의 부작용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경이 데려온 흑마법사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편견을 깨달았지. 본디 지식이란 고여서는 전혀 늘어날 수 없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경과 그들이 일깨워 주었다.”
알베르토가 엘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고갯짓에는 매우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자신의 과오, 마탑의 폐단에 대한 책임감, 엘런에 대한 고마움. 그 모든 감정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이 왕국의 정점에 서 있는 자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엘런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헤맸었겠지만, 지금 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기까지 했다. 엘런 그 자신도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사이 알베르토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덥석.
그는 양손을 뻗어 엘런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일종의 부탁하는 자세였다.
결코,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 국왕이 이제 엘런을 단순히 아랫사람으로만은 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교훈을 실천하고자 과인은 새로운 마탑을 구성하려 한다. 그야말로 지식의 상아탑을 세울 생각이다. 경이 그곳의 수장이 되어 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