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0
160
인연 (3)
* * *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겁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드러났다.
엘런의 질문에 라포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확 굳어 버린 것이다.
“그러네. 애초에 멘도사라는 꽃 자체를 아는 이도 드물어. 나 정도 되니까 들어 본 적은 있는 것이지, 그 위치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걸세.”
처음 이곳 서부 대륙에 올 때, 엘런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라포의 이상한 반응으로 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멘도사가 왜 필요한 것이지? 그건 극독이지 않은가. 누구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라포는 얼른 주제를 돌리려 했다.
엘런도 그 자리에서 굳이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원래 독약과 비약의 차이는 종이의 양면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성장을 위한 비약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라포는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나는 멘도사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곳으로 올 때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도 얼른 떠나 봐야겠군. 한시라도 급할 테니 말이야.”
라포는 엘런을 얼른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엘런은 순순히 나가 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수는 없지.’
동부 대륙보다 더 광활한 서부 대륙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멘도사를 찾는 일.
그것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만큼이나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연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 단서를 발견한 격이었다.
라포가 정확히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분명 멘도사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엘런에게는 작은 단서라도 멘도사에 관한 것이라면 귀중했다.
“아닙니다. 이곳에서부터 정보를 모아 가야겠습니다. 그러니 에블린 마을에서 조금만 더 머무르고자 합니다.”
“그런가? 그런데 이걸 어쩌지.”
라포는 검지를 펼쳐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나는 계속해서 손녀딸에게 먹일 약초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말이야. 우리 집에 머물게 해 주기가 조금 곤란하네.”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누가 주인도 없이 손녀딸만 있는 집에 외부인을 두겠는가.
그것은 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르신께서 찾으시는 약초는 전부 증상 완화 효과만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치료는 사제에게 받아야 하고요.”
“그렇네만…….”
“제가 미아를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라포의 눈이 동그래졌다.
약초의 전문가인 자신도 못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저 청년은 저토록 자신한단 말인가.
“내가 말했지 않은가. 이 병을 고치려면 신성력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그리고 사제님의 신성력을 받으려면 공물이 있어야 한단 말일세.”
“예. 그러니 제가 대신 공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커졌던 라포의 눈이 이제는 찢어지기 직전이 되었다.
“공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네. 자네가 산맥 너머에서 와서 잘 모르겠지만, 신의 권능을 빌리는데 필요한 공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네.”
하물며 의료 마법사에게 치료 마법을 받는 것도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기적에 가까운 신성력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엘런에게 있어서만큼은 돈은 제약 조건이 전혀 아니었다.
“제가 이래 봬도 돈은 많은 편입니다. 어르신 덕분에 산맥에서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답례로 생각해 주십시오.”
엘런의 말에 라포는 고민에 빠졌다.
곤란해질 것을 예상하여 얼른 인연을 끊고자 했던 이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도 괜찮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콜록콜록.”
그때, 그의 귓가로 미아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약효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점점 약효가 드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내성이 생기고 있는 것이겠지.’
사람의 몸은 적응을 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드는 약초라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아의 얼굴은 다시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은 이것저것 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모처럼 미아의 병을 치료할 기회가 찾아왔다. 저 청년이 무엇을 원하든 간에 그다음의 상황은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자.’
라포는 엘런이 마음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싶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네. 내 이 돈은 꼭 갚도록 하겠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바로 사제를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잠시만 기다려 주게. 사제님을 뵐 만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겠네.”
* * *
사제가 있는 신전은 에블린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서부 대륙에서 신전을 찾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어느 마을에서든 가장 고급스럽고 화려해 보이는 건물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신전이다.
에블린 마을도 매한가지였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크기의 건물이었다.
벽면이나 기둥에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글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성서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많군요.”
“신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인 만큼 항상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라네.”
라포와 엘런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신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 서부 대륙은 사실상 국경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유일신 에레네를 숭배하며 살아간다.
자신들은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고 에레네의 자식들이라 생각한다.
국가는 그저 편의상의 행정 도구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곳에서는 교국 에레네스가 대륙 전체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교황의 말을 국왕의 말보다 더 절대적으로 여기기도 했다.
사제는 바로 이 에레네스 교국에서 각 마을 단위로 파견하는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교황의 대리자로서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며 에레네의 뜻을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제들은 마을 사람들의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에 사제가 머무는 신전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야 사제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 정기예배가 있는 날이라서 더욱 그럴 걸세. 허나 걱정하지 말게나. 권능을 행사하는 일이 가장 우선시되니 말이야.”
신전의 입구에 도착하자 라포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미아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것이다.
“라포 형제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신전의 안내인으로 보이는 자가 다가오더니 얌전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입고 있는 하얀 로브가 그의 인상을 한층 더 온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에레네 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미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라포 역시 두 손을 합장하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 드디어 공물을 다 모으신 것이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안내인은 라포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사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시간이 난 사이 엘런은 신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상 낙원이라고 해도 믿겠어.’
마을 사람들은 투철한 신앙심 덕분인지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있었다.
엘런이 기억하건대 동부 대륙에서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러니 사제가 말했다고 하면 절대적이라 생각하고 따를 만도 하지.’
엘런이 조금 전 사내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 안내인이 다시 그들에게 다가왔다.
“사제님께서 이번 정기 예배 시간에 신도들 앞에서 직접 권능을 행사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포는 안내인을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엘런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정말.”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럼 곧 있을 정기 예배에서 뵙겠습니다. 아, 그쪽이 혹시 산맥 너머에서 오신 분이겠지요?”
안내인은 엘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원래 에레네 님의 자녀들끼리만 진행하는 것이지만, 라포 형제님이 데려오신 만큼 사제님도 특별히 참관을 허락하셨습니다.”
엘런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뿌듯해하며 말하는 안내인의 기분을 깰 수는 없었다.
“그런 기회를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에레네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안내인은 성호를 그으며 엘런을 축복했다.
“그럼, 가시겠습니까? 이제 곧 정기 예배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권능을 입게 될 미아 자매님은 저희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엘런과 라포는 안내인에게 미아를 넘겨주고 예배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청나군.’
신전의 외곽을 보고 일개 마을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엘런의 생각은 이곳 예배당에 들어오고서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왕성을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닌 엘런에게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이 고작 마을임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곳 사람들은 예배당에 심혈을 기울인다네. 예배당의 크기가 바로 마을의 자존심이기도 하지.”
엘런의 반응을 눈치챈 라포는 자랑이라도 하듯 설명했다.
벽면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유능한 화가가 그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다.
그것들을 꾸미고 있는 장식품들도 영주의 성이나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예, 어마어마하긴 하군요.”
그때, 사람들의 웅성거리던 소리가 단번에 멎었다.
그리고 단상에는 화려한 금색 로브를 차려입은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자가 사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빛을 반사하는 금색의 로브 덕분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는 몰랐으나, 사제에게서는 어떤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에레네 님께 기도부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오직 엘런만이 호기심에 슬며시 실눈을 떠 그들을 관찰했다.
‘마나 스캔.’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마나 스캔을 사용했더니 엘런은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의 원천인 마나가 한곳에 응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그것이 조금 더 순도 높은 마나가 되어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정화.
그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았다.
저렇게 순도 높은 마나를 계속해서 공급받으니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게 종교라는 것인가?’
종교라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던 엘런은 그 후 이어지는 예배의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기도 후로는 별다른 관심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라포 형제님이 에레네의 권능을 받을 공물을 마련해 왔습니다.”
짝짝짝.
모두가 박수를 쳤다. 에레네의 권능을 직접 보는 순간은 그리 흔치 않았기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하는 신도들도 있었다.
곧이어 미아가 제단 앞에 올려졌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만이 그녀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저희의 삶을 주관하시는 에레네이시여, 이곳에 당신의 권능을 바라는 신도가 있습니다. 부디 현세에 임하시어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화아악.
사제의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신도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엘런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지켜보았다. 치료 마법과의 차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치료 마법이 상처 부위를 치료하는 느낌이라면, 저건 그냥 시간 자체를 되돌리는 느낌이잖아?’
그 원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신성 마법을 어째서 기적이라고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제가 권능의 행사를 마쳤을 때, 미아의 몸은 완전히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와 있었다.
“오오, 미아야.”
그 모습을 본 라포는 감격에 젖은 눈으로 미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척 보기에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형제님, 다행입니다. 저도 미아의 상태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사제는 라포에게 다가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라포 역시도 고개를 숙이며 연신 감사합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미아 자매님이 권능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주신 분이 바로 저분입니까?”
사제가 엘런을 가리키며 말하자 엘런은 머쓱해하며 고개를 까닥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선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니 앞으로의 길에 에레네의 축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사제가 합장을 하며 엘런을 축복해 주었다.
“아닙니다. 저도 어르신께 도움을 받아서 그걸 갚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엘런도 그들의 인사법을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었다.
“그건 그렇고…….”
엘런이 사제에게 질문을 하려고 할 때였다.
덜컹.
예배당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직은 예배가 완전히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 문을 저토록 격하게 열었다는 말은 그만큼 급한 일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큰일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호머였다.
그는 라포의 집에서와 달리 경갑옷과 창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전형적인 경비병의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치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모,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