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1
161
인연 (4)
* * *
“몬스터들의 침공이라고?”
“그놈들이 또 몰려오고 있단 말이에요?”
“끝났어. 우린 이제 모두 끝이야.”
호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몇 명이 중얼거린 말은 순식간에 군중들 사이로 전염되었고, 이윽고 그 공포감은 행동으로 드러났다.
우르르.
사람들이 좁은 문을 향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 하면서, 조금 전까지 신성함을 상징하던 예배당 안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여기저기 넘어지는 사람이 생겼고, 부모들과 함께 온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 정숙하세요!”
그 모습을 보던 사제가 우렁차게 외쳤다.
작은 체구에 온화한 이미지였던 그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몇 초간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던 사람들이 사제의 목소리에 다시 진정된 것이다.
심지어 울고 있던 아이들마저도 울음을 그쳤다.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지금까지 엘런이 본 어떤 장군도 이토록 군중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다.
구성원 모두의 마음 깊이서 우러나오는 복종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전에도 우리의 손으로 이곳을 지켜 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함께 나선다면 에레네의 가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구심점은 바로 에레네였다.
그의 가호가 함께한다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마음은 전보다 훨씬 차분해졌다.
“전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은 모두 무기를 챙겨 방벽 앞으로 모이세요. 아이들과 노인들은 예배당으로 대피시키고 여성들은 물자를 보급하는 일을 맡아 주세요.”
사제의 명령은 상세했고, 주민들은 그의 말을 철저하게 따랐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예배당을 빠져나갔고, 밖으로 나와서부터는 신속하게 지정된 위치로 달려갔다.
그 무리에는 라포와 엘런도 끼어 있었다.
“누군가 상황을 보고해 주세요.”
사제는 끝까지 예배당에 남아 사람들을 통제했음에도 다른 주민들과 비슷하게 목책 앞에 도착했다.
“올비아 산맥에서 커다란 흙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 사내가 사제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가 최초로 몬스터의 침공을 확인한 사내였다.
“이상한 점을 느낀 저는 말을 타고 조금 더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을 올라가자 올비아 산맥으로부터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양이 땅을 한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사내는 그 광경을 설명하는 것조차 두려운 듯, 식은땀을 흘렸다.
“1차 침공 때와 매한가지군요.”
사내의 보고에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을 사제라면 실제 전투 경험이 많지도 않았을 텐데, 저토록 침착하다니.’
이 정도라면 엘런이 괜히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감을 사고 있었던 그였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외부인이 나서면 탐탁지 않게 여길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저 사제의 통제가 있다면 오히려 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라포, 저 영감 때문입니다.”
일전에 엘런을 위협했던 덩치가 그 굵은 손가락으로 라포를 가리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라포를 째려보았다.
그 눈에는 지금의 상황을 일으킨 것에 대한 원망이 잔뜩 담겨 있었다.
“저 영감이 밀너 사제님의 말씀을 따라 올비아 산맥만 드나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내가 한마디를 덧붙이자, 사람들의 시선도 훨씬 더 날카로워졌다.
라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이번에도 역시나 밀너가 나섰다.
“하지만 밀너 사제님, 사제님께서 신탁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올비아 산맥을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몬스터들이 자극받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에레네 님을 믿지 못한 저자가 결국 몬스터들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덩치만큼은 그 명에 따르지 않았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것이 분노에 가득 차 보였다. 그럴수록 라포의 고개는 더욱 밑으로 숙여졌다.
“이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조금 전 미아가 에레네의 권능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미아의 병이 나았으니 이제 라포도 그곳을 들어가 몬스터들을 자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밀너는 여전히 온화하게 말했다.
잠깐 라포를 향했던 그의 눈이 다시금 주민들에게로 옮겨졌다.
“이번만 우리가 저들을 막아 낸다면,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힘을 모아 이번 위기만 넘깁시다.”
라포를 째려보는 주민들도 조금은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지금에 와서 몬스터들을 산맥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겠다는 다짐만 되새길 뿐이었다.
“사제님, 제가 한마디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엘런이 나섰다.
아무래도 그들이 원인 자체를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라포가 그들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몬스터의 개체 수가 문제였다.
그걸 모른다면 그들은 언젠가 또 똑같은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면 라포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자명했다.
“네,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건 어떤 이상 기류로 인해 산맥 몬스터들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을 자극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문제가 있다면 그들의 개체 수가 문제입니다. 몬스터의 양이 많아지니 경쟁에서 밀린 몬스터 부족들이 연합하여 산맥 밑으로 내려왔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엘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곳에 있는 모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심지어 어떤 순간에도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밀너마저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엘런을 보고 있었다.
“에레네 님의 신탁을 어찌 한낱 인간이…….”
“불경함이 하늘을 찌르는군.”
“이러다 에레네 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런은 주민들의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당황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제님. 이 친구가 산맥 너머에서 와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잘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여태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포가 엘런의 앞으로 나섰다.
“자네, 나를 따라오게나.”
라포는 짐짓 진중한 목소리로 엘런을 데리고 군중 뒤로 빠져나갔다.
엘런도 주민들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기 때문에 라포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 정말 미친 겐가?”
무리를 빠져나온 라포가 대뜸 소리를 쳤다.
“어르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들은 이 침공의 원인을 아주 잘못 잡고 있습니다.”
엘런은 저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들은 올비아 산맥에 들어가 보질 않았으니, 현재 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수많은 몬스터 토벌을 하며 그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에블린 마을은 분명 똑같은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용병 생활을 한 것까지 치면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다녔는가.
이제는 그들의 숫자나 흔적만 보아도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사제님께서 몬스터 침공의 이유는 우리가 몬스터를 자극해서라고 말씀하셨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에레네 님의 신탁과도 같네. 그분이 사제의 입을 통해 뜻을 전파한 게지. 그러니 자네가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닐세.”
엘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포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종교라는 것이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저토록 주민들을 잘 단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전혀 잘못된 방향을 바라보게 하고 있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엘런도 선한 마음에 이들을 도와줄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들이 믿지 않겠다는데 입 아프게 떠들어 댈 필요도 없었다.
“그럼 저는 다시 목책으로 가 보겠습니다. 어르신은 연세도 있으신데 미아를 보살피시지요.”
“아닐세, 나를 뭐로 보는 겐가. 나도 저들과 함께 싸울 수 있네. 내가 빠진다면 저들은 나를 원망하며 살아갈 게야. 스람이 그랬듯 말이야.”
라포는 방금 앞장서서 자신을 비난했던 덩치를 떠올렸다.
1차 침공 때 동생을 잃었던 그는 그때부터 자신을 원수 보듯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목책 뒤에 잘 숨어 있으십시오.”
엘런으로서도 멘도사의 유일한 단서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고 멘도사에 대해 알아보겠노라고 마음먹었다.
* * *
“형제, 자매님들, 우리 에블린 마을은 지금 두 번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라포가 엘런을 데리고 나간 틈에 밀너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주민들을 통제했다.
“우리는 첫 번째 위기와 같이 에레네의 가호를 받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민들의 표정이 한층 결연해졌다.
가족을 지킨다는 책임감과 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신앙심이 합쳐져 사기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마지막 전투만을 남겨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만 막아 낸다면 에블린 마을에 다시는 이런 위기는 없을 것입니다. 에레네의 자식들이여, 모두 마음의 준비를 마치셨습니까?”
“예!”
정규 병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만큼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최후의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과 같았다.
“모두에게 에레네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밀너의 기도가 끝나자 주민들은 목책으로 올라갔다.
“저, 저건…….”
제일 먼저 목책에 올라간 주민들은 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보고 굳어 버렸다.
그것은 뒤이어 올라온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저렇게 많아?”
몬스터의 침공을 알렸던 청년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목책 너머로 새까맣게 보이는 몬스터들의 수는 충분히 마을을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키에에에.”
“취익.”
그것들이 내뱉는 포효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저건 설마?”
“미친…….”
상대가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로만 이루어져 있어도 저 정도의 숫자라면 두려움을 느낄 만했다.
그러나 사이사이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들은 주민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트롤까지 있는 건가?”
목책의 반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이는 크기의 몬스터들은 올비아 산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던 트롤이었다.
“저것들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1차 침공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토록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트롤이 나타난 지금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어…….”
마지막으로 목책에 올라온 밀너도 몬스터의 숫자를 보고는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에레네이시여, 어찌 저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입니까.”
사제인 자신마저도 순간적으로 신을 의심할 뻔했다.
그 정도로 몬스터들의 위용은 위협적이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밀너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구원자의 것 같았다.
“당신은……?”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니 그것은 바로 라포가 산맥 너머에서 데리고 온 청년이었다.
“조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입을 함부로 놀렸지요.”
“아닙니다. 에레네님 의 자녀가 아니셨으니 충분히 그렇게 말씀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저것들을 막아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밀너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대체 저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기에 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온 것인가.
“예, 힘은 좀 들겠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군요.”
엘런은 씨익 웃으면서 밀너의 말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