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2
162
인연 (5)
* * *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몬스터들이 당도하면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밀너의 질문에도 엘런은 아리송한 답변을 내줄 뿐이었다. 그는 엘런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불안하기만 했다.
1차 침공 때는 우연히 들렀던 용병들이 있기라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저것들을 막아야 했다.
지원군이라고 해 봤자 엘런 하나였다.
올비아 산을 넘어온 이방인이니 제법 강할 수 있다고는 하나, 저것들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윽고, 몬스터 무리가 에블린 마을의 목책 앞까지 다가왔다.
마을 주민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목숨을 건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우리가 밀리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버릴 것이오.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문이 열려서는 안 되오.”
목책 입구의 방어를 담당하는 사내들이 호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들이 공성전에서 전략을 사용할 리가 없었다.
그것들은 그저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날려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 것이다.
목책을 튼튼하게 만든 덕에 그 정도로 쉽게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곳은 바로 문이 있는 입구였다.
입구 부분은 문을 여닫기 위해 다른 곳과 달리 커다란 경칩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몬스터들이 조금만 강하게 부딪혀도 순식간에 뚫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만약 이곳을 돌파당하기라도 한다면 그 후의 상황은 아무도 종잡을 수 없다.
굶주린 몬스터들이 닥치는 대로 마을을 휘저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척.
문 뒤에 있는 사내들은 모두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들의 굵은 팔뚝은 곧 있을 충돌을 대비해 잔뜩 긴장했다.
“보강재도 완료되었어.”
급하게 입구 뒤에 나무판을 덧대고 온 사내들이 호머를 향해 외쳤다.
두두두.
마치 수천 마리의 전투마가 마을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축을 울리는 그 소리는 바로 몬스터 대군의 발소리였다.
꿀꺽.
호머를 필두로 한 사내들은 마을에서 가장 힘이 좋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였다. 몬스터들 중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강한 근력을 가진 녀석들이 득실거렸다.
쿵쿵쿵.
특히 이 소리. 목책의 반은 될 것 같은 크기의 짐승에게서 나오는 이 발소리가 가장 두려웠다.
그 녀석들이 문을 들이박기라도 한다면 한 번에 몇 명씩은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문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에레네여, 저희는 당신이 주시는 시련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저희의 밑거름이 되어 당신을 향한 믿음을 확고히 하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목책의 가장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밀너의 기도 소리.
‘에레네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 이것만 넘기면 우리는 그분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였다.
반드시 에레네가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고 있었다.
그렇다고 밀너의 기도가 정신적으로만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기도 자체에 들어 있던 축복이 주민들에게 내려져 그들의 신체 능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두두두두.
“온다.”
발소리가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그 짐승들은 당장이라도 목책을 향해 몸뚱이를 던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몬스터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모두, 문을 있는 힘껏 밀어!”
어설프게 나무가 덧대어져 있는 문에 덩치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문을 막았다. 남은 사내들은 나가떨어지는 주민의 공간을 채우기 그들의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부딪힌다!”
호머가 악을 쓰는 순간, 사내들은 눈을 꽉 감았다.
콰앙.
천지가 뒤바뀌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소리.
그 소리는 문을 미느라 악을 쓰고 있는 사내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어떻게 된 거지?’
호머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나 주민들이 뒤로 나자빠졌거나 문이 부서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그건?’
분명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진동이 문으로 직접 전달된 것이 아니었다.
콰아앙.
또다시 진동이 일었다. 이번에는 방금보다 더 큰 진동이었다.
예상했던 충격이 전해지지 않자 사내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호머는 진원지를 알 수는 있었어도 진동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슈우우웅.
콰앙.
“키이이익!”
“쿠어어.”
그러다 무심코 올려다본 목책에서 그는 진동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저건…….”
“라포 영감이 데려온 외지인이잖아?”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는가? 저자, 아니, 저분이 하는 것 좀 보게나.”
발밑에 아무것도 없이 공중에 두둥실 떠오른 채로 스태프를 휘두르고 있는 청년은 바로 엘런이었다.
‘파이어 월.’
화르르륵.
‘파이어 버스터.’
콰아아앙.
엘런의 손짓 한 번에 붉은 불꽃이 일었고, 그것은 곧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
목책에 있던 주민들도 그저 할 말을 잃은 채, 엘런이 일으키는 기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취익.”
“키이익.”
땅에서 솟은 불꽃 때문에 길이 막힌 몬스터들 위로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졌다.
“쿠워어.”
수백 번을 베어도 멀쩡히 회복되어 버린다는 트롤이 얼음 기둥에 의해 머리통이 날아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한 것이지?”
“이렇게 쉽게 끝나는 일이었나?”
“말도 안 돼.”
주민들은 눈에 초점도 잃어버린 채, 불타고, 얼어붙고 뒤집어진 평원을 바라만 보았다.
두 시간.
엘런이 첫 마법을 사용한 후부터 평원을 가득 채운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탁.
“후우.”
바닥에 내려온 엘런은 가볍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마치 도끼질을 끝낸 나무꾼이 내쉬는 한숨 같았다.
“도대체 그건 무슨 권능입니까?”
“혹시, 에레네스에서 저희를 구하러 온 크루세이더입니까?”
“위대하신 크루세이더를 알아보지 못한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엘런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주민들은 무릎을 꿇으며 빌기 시작했다.
‘마법이라는 것에 대해 아예 모르는 건가?’
이들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처럼 떼로 몰려오는 몬스터라는 것은 마법사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저 마법을 사용하기만 하면 한 번에 최소 수십 마리의 몬스터는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 내성을 가지고 있는 오우거가 다수 포함된 것도 아니었으니, 프로드의 웬만한 마법사만 조금 모여 있어도 이 정도 공습은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럴진대, 단신으로 제국군을 막아 내는 엘런에게 이번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엘런이 자신은 크루세이더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을 때, 밀너가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물론이지요.”
엘런의 대답을 들은 밀너는 목책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목책에서 조금 떨어졌을 때쯤, 엘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한 기술을 사용하시더군요.”
앞장서서 걷고 있던 밀너가 몸을 돌렸다.
“마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곳 대륙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동부 대륙에서는 비교적 흔한 능력이지요.”
엘런의 설명에 밀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에레네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에레네가 창조한 세상은 그 자체로서 완벽합니다.”
밀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그런데 당신은 이상한 술수로 그분이 창조한 세계를 왜곡시켰습니다. 이는 실로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는 마치 경고라도 하는 듯 검지를 펼쳐 들고 말했다.
“마법이라는 건,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고 그 이치를 사용자의 생각대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갑자기 밀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민들이 있으니 제가 더 이상 티를 내지는 않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에블린 마을을 구해 주기도 한 것이니까 감사의 인사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경고했습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그것은 반드시 끔찍한 결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밀너는 엘런을 지나쳐 다시 목책으로 돌아갔다.
-저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은데.
프로뱅의 말에 엘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는군요.’
엘런은 벌써부터 이곳 서부 대륙이 지긋지긋해지는 것 같았다.
* * *
몬스터의 침공은 엘런의 활약으로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다른 마을처럼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특별한 행사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것이 예배일 줄이야.’
예배가 한참 진행 중인 신전 밖으로 나온 엘런은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전후 정리를 마친 주민들은 엘런을 위한 기도를 올리겠다며, 그를 축하 예배에 초대했다.
그들의 순수한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초대에 응하기는 했으나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는 문화였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축하 연회 자리에 참여해 보았지만, 이런 곳은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여기 사람들과는 정말 안 맞아.’
안에서 들려오는 성가(聖歌)를 들은 엘런이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주인공인데 왜 이곳에 나와 있는가?”
그는 바로 자신과 함께 신전에 갔던 라포였다.
“저는 에레네라는 분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허어, 그런 불경스러운 말은 삼가게. 나 역시도 예배 진행 중에 빠져나와 마음이 안 좋은 상황이니 말이야.”
엘런은 이미 질려버린 눈빛으로 라포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면서까지 이곳에 왜 오셨습니까?”
“그야 당연히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왔지.”
라포는 엘런의 옆에 걸터앉았다.
“자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더군. 진즉에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네.”
“뭐, 기를 쓰고 숨길 생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부러 알리고 다니기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엘런의 말에 라포는 슬며시 웃음을 보였다.
“멘도사를 찾는다고 했지? 자네는 그걸 왜 찾는 것인가?”
그 말에 엘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먼저 멘도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저의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 가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강해져야 합니다. 멘도사가 바로 그 강해짐의 열쇠입니다.”
엘런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멘도사의 단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회귀했다는 이야기 말고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호오, 자네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는 말인가? 자네보다 위에 있다면 그것은 에레네 님뿐일 거라고 생각했건만.”
“세상은 넓고 널린 게 강자 아니겠습니까?”
엘런은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어쩌면 브레디를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 엘런은 왠지 그 일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엘런의 그런 감정은 라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렇구먼. 사실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네.”
라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멘도사, 그것은 에레네스의 이프루에서 구할 수 있네.”
라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멘도사의 정확한 위치를 말해 준 것이다.
그가 무언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엘런이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엘런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되물었다.
“그렇다네. 내가 몇 년 전까지 틈틈이 관리를 하러 가던 곳이었고, 아직 주기가 바뀌지 않았으니 확실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