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7
167
에레네 동산 (2)
* * *
노란색의 작은 꽃잎과 얇고 긴 줄기, 그리 키가 크지 않은 들꽃.
극소량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죽음의 꽃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스윽.
엘런은 멘도사를 더욱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이 평범한 들꽃이 멘도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다른 꽃들과 멘도사를 구분할 수 유일한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있다!’
잎사귀에 나 있는 갈색 반점.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엘런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크렌과 전투를 벌인 후 모든 위험 요소들을 감안하여 수정했던 시나리오들.
그중에서 가장 최상의 경우만 맞아떨어진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이 꽃을 얻을 수 있었다.
‘채집할 수 없으니 이 자리에서 바로 약재로 만들어야겠다.’
멘도사는 원래 자라던 땅에서 뿌리가 뽑히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말라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30분이 채 넘기 전에 완전히 사용 불가 상태가 된다.
그것은 원래 자라던 땅의 흙까지 옮겨 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그 비밀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엘런에게 그런 사실 따위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오직 이 꽃이 자연의 숨결을 만들 재료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30분이면 자연의 숨결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먼저, 꽃잎과 뿌리를 모두 빻아서 그 즙을 추출한다.’
멘도사를 이용해 자연의 숨결을 만드는 방법은 엘런의 머릿속에 완벽히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멘도사의 뿌리를 뽑았고 곧바로 꽃잎을 떼어 냈다.
한 치의 오차도 용서되지 않았기에 그는 신중하게 임했다. 이곳에 피어 있는 멘도사는 오직 한 송이였다.
혹시라도 제작 시간이 길어져 꽃을 쓸 수 없게 되거나, 만드는 방법을 잘못 실행하는 경우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 * *
그 후로도 엘런은 모든 것을 신속 정확하게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완성이다.’
이미 수백 번이고 머릿속에서 진행했던 절차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 덕분에 엘런은 시간 안에 성공적으로 자연의 숨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찰랑.
탁한 노란색의 빛을 띠는 액체가 유리병에 담겼다.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액체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 마지막 재료인 자연의 숨결이었다.
‘이대로 에레네스부터 떠야겠다.’
엘런은 자연의 숨결을 만드는 준비만 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 준비까지도 모두 한 채 서부 대륙으로 건너왔다.
비약이 있다고는 하나 자신의 몸에 녹아들기 전까지는 자신이 강해졌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 데다가 언제 어디서 하메론을 만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엘런은 이미 강해져 있어야 한다.
그랬기에 엘런은 자연의 숨결을 얻는 즉시 친화력의 비약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에레네스에서 만큼은 마음 편히 비약을 만들고 있을 수 없었다.
‘에레네스를 벗어나는 대로 비약 제작에 들어가는 거야.’
라뷔에가 준 신도증과 얼굴 변환 마법만 있다면, 이곳에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엘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연의 숨결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구웅.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울림이 느껴졌다.
지진과 같은 물리적 진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엘런의 감각적으로 느낀 일종의 위험 신호 같은 것이었다.
‘무엇인가 변했다.’
확신할 수 없었지만, 에레네 동산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평화로운 태초의 세상 같은 곳이었다면, 지금은 스산한 기운이 감돌며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 되었다.
‘얼른 이곳을 떠야겠다.’
엘런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있을 때는 몸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방향으로 달려가려 했다.
침입할 때도 경비가 가장 허술한 곳을 선택해서 들어왔다. 나갈 때도 같은 곳이 그나마 가장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앞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건가?’
아직은 멀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3명의 기운이 엘런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떤 능력을 가진지도 모르는 미지의 적과 전투를 벌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단숨에 제압할 수가 없다면, 그 후의 상황은 더욱 곤란해질 것이다.
그는 산 위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면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위쪽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엘런이 발걸음이 떨어지려는 순간, 그의 발이 멈췄다.
‘이런.’
그쪽에서도 마찬가지로 3명의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놈들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건가?’
모든 방향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스캔이나 뷰 마나 포스를 사용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려 했지만, 예상대로 불가능했다.
그저 인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마법만이 대략적인 그들의 위치를 알려 줄 뿐이었다.
‘일단은 디텍트를 이용해서 방향만 피해 다녀야겠다.’
전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다고는 해도 거리가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빠른 속도도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빈틈을 노려 빠져나갈 만했다.
타앗.
엘런은 최대한 숨기려 했던 활주를 사용했다.
그동안은 마법이 어떤 흔적을 남길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용을 최대한 억제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이내 멘도사가 있던 곳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타닥.
그리고 잠시 후, 텅 비어 있던 그곳에 2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그들은 모두 화려한 금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생각보다 실용성도 가지고 있는 것인 듯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놓친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엘런이 자연의 숨결을 만들던 자리에 선 사내가 말했다.
“아니, 아직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했다. 여전히 쫓기고 있을 테지.”
상급자로 보이는 사내도 멘도사가 있던 자리를 슥 훑어보았다.
“왜곡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아크렌이 보았다는 그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실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내의 눈빛이 서늘한 빛을 띠었다.
“감히, 허락도 없이 에레네의 동산을 침입한 죄인에게 목숨으로 그 값을 받을 것이다.”
그 사내는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엘런이 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 * *
‘제길.’
엘런은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에레네 동산을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지?’
엘런을 향해 좁혀 들어오고 있던 포위망은 좀처럼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빈틈을 찾아 그곳으로 이동하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을 가로막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인기척만 드러내며 엘런의 경로를 바꾸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의도한 방향으로 몰고 있는 건가? 아니, 나보다 속도에서 밀리는 자들이 그럴 수는 없다.’
포위망을 움직여 상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모는 것은 속도 면에서 우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엘런의 활주는 그랜드 마스터급의 검사나 되어야 쫓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이 뒤쫓고 있기는 했지만, 엘런을 앞지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엘런은 빠른 속도로 먼저 도달해 빈틈을 억지로 만들어 냈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그들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예상이 아닌 예언을 하는 존재일 것이다.
‘이건 마치 수백 명을 상대로 도주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
엘런의 속도를 뛰어넘는 포위망을 만들려면 수백 명이 양으로 몰아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엘런이 파악한 바로는 에레네 동산에 들어온 인원의 수는 그 정도나 되지 않았다.
‘내 속도를 쫓을 수 있는 사람 수백 명이 동원되었으면, 모습을 드러내고 전투를 벌였겠지. ……잠깐?’
갑자기 엘런의 머릿속을 문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탁.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엘런이 난데없이 멈췄다.
그러자 엘런을 쫓던 자들의 움직임도 함께 정지했다.
잠시 그곳에 서 있던 엘런이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그 인기척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놈들?’
그들은 엘런의 움직임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의도나 목적도 없이 그저 엘런의 움직임에 반응만 하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의심이 생긴 엘런은 곧바로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활주했다. 그 둘의 차이는 급격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30초가 흐르기도 전에 엘런은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엘런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엘런이 인기척이라 느꼈던 것은 하얀빛 알갱이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는 괜한 전투가 일어나면, 그사이 다른 지원군이 붙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직 신성력의 정체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에레네스의 실력자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좋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때문에 차라리 포위망을 유유히 뚫고 지나가 이프루에서 자취를 완벽하게 감춰 버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를 쫓고 있는 것이 고작 이런 빛 알갱이였다?’
지금까지 자신은 사람도 아닌 것에게 이토록 쫓기면서 궁지에 몰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거군.’
상대방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는 생각에 엘런의 몸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다른 인기척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방향은 모두 엘런을 향했다.
‘이번 것은 진짜인가?’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이성을 잃은 판단을 하지 않는 엘런이었다.
분노에 휩싸인 채로, 사지를 향해 달려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현재 상황을 타개할 만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다른 인기척과의 거리가 가장 먼 곳. 그곳을 향해 정면 돌파한다.’
그것이 이번과 같이 빛 알갱이일지 아니면 진짜 크루세이더일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진짜라고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여태껏, 불확실한 전투보다 전투 없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불확실한 전투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엘런에게는 지금 차오르고 있는 이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들이 진짜라면 모든 힘을 동원해서 처리해 버리겠노라고 다짐했다.
‘어디 한 놈만 걸려 봐라.’
엘런은 포위망이 가장 허술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도 그 둘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둘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고, 마주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잠깐.”
누군가 엘런을 불러 세웠다.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에레네교의 사람. 즉 적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엘런은 적이 시키는 대로 따를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몬 님?”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엘런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