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8
168
에레네 동산 (3)
“바몬 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바몬 아베크.
엘런이 하메론의 던전을 클리어할 때, 도움을 받았던 테오라는 용병이 있었다.
바몬 아베크는 바로 그 용병의 본명이었다.
“내가 더 놀랍소. 어찌 그대가…….”
바몬도 엘런을 보고 어지간히 놀란 눈치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잠깐만 내 실례를 범해도 되겠소?”
주정뱅이의 모습일 때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던 정중한 말투는 여전했다.
“아, 괜찮습니다.”
엘런의 허락에 그는 작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투명한 물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는 그 물을 엘런에게 뿌렸다.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에 온몸이 흠뻑 젖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물에 맞은 부분 역시 젖지 않았다.
“이게 무엇입…….”
“일단 이리로 따라오시오.”
엘런이 궁금증을 전부 표현하기도 전에 바몬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엘런을 데리고 옆에 있는 수풀 더미로 몸을 숨겼다.
엘런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일단은 바몬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들이 수풀에 몸을 숨긴 직후, 방금까지 그들이 있던 곳에 두 명의 남자가 도착했다.
‘저자는?’
엘런은 그들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엘런이 감지하고 있던 인기척 중에는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을 보고 있음에도 그들의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이지?”
상급자로 보이는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라졌습니다.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는데 마치 하늘로 솟아 버린 것 같습니다.”
대답을 하는 사내 역시도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나는 그게 궁금한 것이 아닌 걸 알 텐데.”
“그것이…… 저도 ‘천리안’을 사용한 후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혼돈의 씨앗을 드디어 잡겠다고 생각했건만.”
상급자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급자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하급자는 사자 앞의 토끼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허술함에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단은 주변을 더 살펴본다. 집결지에 모인 크루세이더들에게도 함께 조사하라고 해.”
“예.”
그리고 그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고요함도 잠시, 옆에 있던 수풀에서 엘런과 바몬이 걸어 나왔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이 자란 것 같소, 엘런.”
그 사내들이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한 바몬이 엘런에게 말을 건넸다.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 않습니까?”
엘런도 오랜만에 만난 바몬이 반가웠다.
“바몬 님, 이게 대체…….”
엘런의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이상한 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가 엘런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엘런은 지금 에레네교에게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얼굴 변환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마법의 효과는 과거부터 엘런이 직접 체험하여 아주 잘 알았다.
심지어 부모조차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효과는 확실했다.
물론 이곳으로 들어오던 이프루 성문 앞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몬은 그런 자신을 알아본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해도 내가 어찌 그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있겠소?”
“아니, 그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 얼굴을 변환시키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습니까?”
엘런의 물음에 바몬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애초에 마법이 걸려 있는 것조차 몰랐던 눈치인 것 같았다.
그러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눈을 떴다.
“그건 아마 ‘천리안’ 때문일 것이오.”
“‘천리안’이라니요?”
엘런을 쫓던 사내가 했던 말 중에도 천리안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엘런에게는 막연히 신성 마법의 한 종류 같은 느낌만 들었다.
“죄인을 추적할 때 사용하는 신성 마법 중의 하나라오. 이 마법에 대상이 되면 그자는 하늘 아래 숨을 곳이 없어지게 되오. 신의 눈길이 닿는 동안은 정체를 숨기는 마법 역시 모두 무효화되기도 하오.”
문자 그대로 사기적인 마법이었다.
그런 효과를 가진 마법이 있다면, 여러 제약이 따르는 추적 마법은 더는 쓸모없어지게 될 것이다.
“천리안에 걸렸다면, 그대는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오. 그대의 이동 방향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방향은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까? 제가 속도로 저들을 앞질렀지, 저들이 열어 둔 몇 가지 빈틈을 향해 달려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런의 말에 바몬은 고개를 저었다.
“천리안은 ‘죄인은 에레네의 하늘 아래 도망갈 곳이 없으며, 그의 발길은 어디든 에레네의 손바닥에 있으니 마침내 심판받을 것이리라’는 전승에서 만들어진 신성 마법이오.”
사람의 생각까지도 조정하는 마법이라니. 그런 마법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제는 마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아직 신성 마법의 특징을 잘 알지 못하는 엘런은 그 효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대가 향하려고 했던 방향에는 그대를 뒤쫓고 있는 크루세이더들이 모여 있었소.”
“아…….”
엘런은 목 뒤가 싸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을 사용하는 크루세이더들이 모여 있는 곳.
자신의 패배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곳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집결 명령을 받고 그곳에 가는 길이었소. 그러다 우연히 그대를 발견하게 된 것이오.”
그가 아니었으면,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기 전부터 에레네스 전체와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
“바몬 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천리안이 그렇게 대단한 마법이라면 저는 어떻게 거기서 벗어난 것입니까?”
바몬은 엘런에게 뿌린 물이 담겨 있던 병을 가리켰다.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오. 이것은 축복을 받은 성수인데, 이 성수를 뒤집어쓴 자는 우리와 똑같이 인식되어 천리안으로부터 흔적을 지울 수 있소. 물론 일시적일 뿐이기는 하오.”
그 덕분에 엘런을 쫓던 이들이 갑자기 그를 놓친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때인가?’
엘런은 자연의 숨결을 만들었을 때쯤 느껴졌던 작은 울림을 떠올렸다.
추측건대 바로 그때가 마법에 걸린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에레네 동산에 침입한 죄인을 쫓으라는 명령을 받았소. 그런데 그 죄인이 엘런, 그대일 줄은 몰랐소.”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엘런을 향해 바몬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바몬 님은 어째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
사실, 엘런은 동부 대륙에 있던 시절에 그를 찾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프로드 내전이 일어났을 당시 엘런이 떠올렸던 지원 세력은 비단 흑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의 생에서 그의 주 활동지였던 용병들도 고려 대상이었다. 특히, 엘런이 알고 있었던 바로는 바몬은 원래 대륙을 호령하는 용병왕이 될 존재였다.
그것을 노리고 브레다에서 그와 인연이 닿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아르곤의 정보력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바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엘런은 자신으로 인해 그의 미래가 바뀌게 된 것이리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그때는 다른 곳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도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서부 대륙으로 넘어와 기사의 갑옷을 벗고 크루세이더의 갑옷을 입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허허, 이걸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는 기르고 있던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잠깐, 고민을 하던 바몬은 생각이 정리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대에게서 받은 그 돈으로 듀란가를 재건하려고 했었소. 그게 내 주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그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그가 주정뱅이로 생활하는 동안 이미 듀란 가문은 철저히 와해되어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던 경쟁 가문에서 듀란가를 악의 축으로 매도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 타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엘런에게도 회귀와 무영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과 주변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거기까지는 이미 말고 있는 내용이다.’
숱한 노력에도 가문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그는 좌절하게 된다.
그랬던 그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용병단을 구성하고 용병왕이 된다는 것이 원래 엘런이 알고 있는 역사였다.
“그러다 그자들이 완전히 작정하고 듀란가의 식솔들을 잡겠다고 천명하고 나섰소. 더디지만 조금씩이라도 가문이 재건되고 있는 것이 그들 눈에는 못마땅해 보였겠지.”
투두둑.
바몬의 목 부분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만약 그들이 눈앞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찢어 죽일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서부 대륙으로 넘어온 것입니까?”
폭발 직전의 그를 진정시킨 것은 엘런의 질문이었다.
“그렇소. 당시 나는 도박을 해야만 했었소. 그래서 듀란가의 식솔들을 데리고 올비아 산맥을 넘었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는 것이라 위험했지만, 그대로 있어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말이오.”
그의 검술은 엘런을 만난 후에도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그 실력은 에레네스에서도 여전히 통하는 것이었다.
그 덕에 그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크루세이더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는 그대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이오?”
바몬도 어쩌다 엘런이 죄인으로 지목되어 천리안에 쫓기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저는 멘도사를 가지러 왔습니다.”
엘런의 말에 바몬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 역시 멘도사가 치명적인 독초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독초를 어째서 찾으러 온 것이오?”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몬의 기억 속에 엘런은 절대로 독초를 사용할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독초라는 비겁한 수를 이용하는 자라면 그를 구해 준 자신의 행동이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후, 엘런은 자신이 멘도사를 찾으러 오게 된 계기에 대해 바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들을수록 바몬의 표정은 점점 풀려 갔다.
자신이 알고 있던 엘런의 모습이 전혀 달라진 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걸 구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다행이오. 그렇다면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오?”
그것이 엘런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미 자신의 침입이 발각된 상황에서 원래는 정면 돌파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지의 마법인 천리안이라는 것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겠지요. 재료를 구했으니 얼른 이곳에서 빠져나가 비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엘런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신의 눈길이든 뭐든 동부 대륙으로 넘어가면 끝인 문제였다.
“내가 탈출을 도와주도록 하겠소.”
“바몬 님이 말입니까?”
“과거에 그대의 호의에 보답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제야 지킬 수 있을 것 같소.”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만 생각했던 말이었는데 바몬은 여태껏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내가 근무 교대를 하는 시간이오. 문지기들은 크루세이더들의 얼굴을 완전히 모르고 있으니 나와 함께 빠져나가면 눈치채지 못할 것이오.”
“그들이 동료일진대 저를 이렇게 도와주셔도 괜찮겠습니까?”
바몬은 원래 충성과 의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기사였다.
그런 그에게 동료를 속이는 선택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주정뱅이인 나에게 베풀어 준 호의에 비하면 별것 아니오. 나 역시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이기는 하나, 과거의 마지막 미련을 푸는 것으로 생각하겠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