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69
169
친화력의 비약 (1)
엘런은 바몬의 도움으로 에레네 동산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문지기들은 바몬을 보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출입문을 열어 주었다.
원래는 사람들의 통행이 전혀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크루세이더를 포함해 사제들의 출입이 비교적 잦을 때였다.
그 덕분에 문지기들의 이목을 살 일도 없었다.
“그럼 신성력이라는 건 개개인의 특성이 담겨 있는 능력이란 말입니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소.”
성문을 향해 걸어가던 중 엘런은 신성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에레네스를 나가는 대로 곧장 서부 대륙을 뜰 생각이긴 했지만, 올비아 산맥을 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크루세이더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 그들의 능력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신성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마나와 비슷하오. 그리고 그걸 무기로 표출하는 이들이 크루세이더고, 기도로서 표출하는 이들이 신관이라 불리는 자들이오.”
동부 대륙에서 검사나 마법사가 마나를 이용하듯 이곳에서는 크루세이더나 신관이 신성력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원천인 마나는 자연에서 끌어들여서 사용하는 힘이었지만, 신성력은 오로지 신앙심만으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오러나 마법에 개인의 특성이 조금씩 담기듯 신성력도 마찬가지라오. 단, 신성력은 개개인의 신앙심이 표출되는 것이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소망이 담기기 마련이오.”
“신성력은 개인의 소망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군요.”
엘런은 케롤에서 자신의 뒤를 쫓았던 크루세이더를 떠올렸다.
분명 신성력은 마나와 다른 힘이었지만, 가까이서 사용하는 경우 그 이질성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운 만큼은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신성력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될 수 있었다.
“그럼 그들은 그 특성의 신성력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오. 기본적인 신성 마법 같은 것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소. 특성이라는 것은 그 너머의 능력을 사용할 때 나오는 것이라오.”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전투를 벌이기 전, 그자의 특성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 크루세이더나 신관들과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라는 건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엘런이 가장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치료 마법부터 시작해서 천리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라는 것은 하나같이 현재의 마법 체계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신성 마법은 성서(聖書)에 나온 전승에서 비롯되는 기적 같은 것이라오. 그러다 보니 마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오.”
바몬이 천리안에 대해 설명해 줄 때, 그 구절을 말해 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럼 신성 마법에는 한계치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까?“
“글쎄……. 아무래도 성서의 구절을 전승한 것이다 보니 그 조건을 성립시키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르오.”
“발동시키기는 어렵지만, 일단 발동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군요.”
엘런은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밀려오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들과 전투를 벌이기에 앞서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함은 틀림없었다.
엘런은 지금까지 바몬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머릿속으로 전략을 세워 갔다.
바몬도 그런 엘런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사색을 기다려 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성문에 도착하는군.”
바몬이 입을 연 것은 그들이 성문에 도착할 때쯤이 되어서였다.
“아, 제가 아무 말도 하질 못했군요. 오랜만의 재회인데 죄송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성벽을 본 엘런은 바몬을 향해 사과했다.
“덕분에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몬 님.”
“아니오. 난 진심으로 이것보다 더한 호의도 베풀 수 있소. 과거 그대에게 입은 은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오.”
서로 인사를 나눈 그들은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성문에서는 엘런이 이곳에 들어올 때와는 다른 문지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레네의 가호가 있기를. 이프루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그대에게도 은총이 내리기를. 그렇소. 동료와 함께 로샤에 가려 하오.”
바몬의 말에 문지기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누구도 성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한 한센 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크루세이더 한센이 교황님의 기도가 끝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곳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크루세이더들이나 신관들까지도 포함이라고도 덧붙이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엘런과 바몬의 표정이 굳어졌다.
“교황님의 허가까지 있으셔서 저희도 따로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며칠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몬은 자신을 향해 경례하는 문지기를 보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바몬 경, 우리도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니니 며칠 후에 다시 오도록 하는 게 어떻겠소?”
바몬을 대신해 여태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엘런이 나섰다.
“그러도록 하는 게 좋겠소.”
“두 분의 이해심에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군기가 잡혀 있는 문지기의 인사를 뒤로한 채, 그들은 다시 도심으로 돌아왔다.
“한센 경이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소.”
“한센 경이 누구입니까?”
“에레네 동산에서 나를 만난 직후 그대를 쫓아왔던 이들 중 하나였소. 그는 크루세이더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자이오.”
엘런은 수풀에 숨어 바라보았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강경한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자신이 이미 에레네 동산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젠장, 그 말도 안 되는 마법에서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군.’
엘런도 에레네교 측에서 이토록 빠른 대응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교황이 하산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성문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든가 해야만 했다.
“일단은 나의 저택으로 가시겠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엘런은 성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바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성수의 효과가 떨어지면 천리안에 노출될 것이오. 그 전에 천리안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리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겠소. 나의 저택에 성수가 더 있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문이 열릴 때 탈출하는 것이 좋겠소.”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엘런이 바몬의 옛 인연이라고 해도 그는 엄연히 에레네교의 크루세이더였다.
혹시라도 엘런을 숨겨 주기라도 했다가 발각이 된다면 어떤 곤욕을 치를지 몰랐다.
자칫하다가는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엘런은 바몬의 호의에 미안함을 느꼈다.
이미 그는 엘런이 베풀었던 과거의 호의를 갚고도 남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엘런을 돕고자 했다.
그러나 엘런은 민폐만 끼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거절하지 말아 주시오.”
“괜찮습니다. 성벽을 뛰어넘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소. 이곳의 방어벽은 에레네의 성물로 보호되고 있소. 그 어떤 방어벽보다 돌파하기 힘들 것이오.”
바몬은 엘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대가 내게 베푼 것은 그저 금화 몇 전이 다가 아니오. 나는 그 금화로 주군의 식솔들을 찾을 수 있었소. 그것이 내 인생이 바뀌게 된 계기였소. 그러니 그대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부디 내가 은혜를 갚을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 주시오.”
엘런은 곤란함에 손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바몬은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엘런!”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세를 더 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꼭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엘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몬의 표정이 환해졌다.
“고맙소. 정말.”
“제가 더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럼, 얼른 가시겠소? 내가 안내하리다.”
* * *
바몬의 저택은 엘런의 저택만큼은 아니었지만, 이프루에서는 꽤 큰 편에 속했다.
그곳에는 듀란가의 식솔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주군이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에게 충성을 보내는 모습이 진정한 기사의 본보기 같아 보였다.
엘런은 이자가 자신의 동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바몬은 엘런의 편의를 최대한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 엘런이 가장 고마웠던 것은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 만한 연구실을 제공해 준 것이다.
자신이 동부 대륙을 떠나오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해도, 엘런의 마음 한쪽에는 조급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자연의 숨결까지 손에 넣은 마당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처지는 그 조급함을 더 재촉하기만 했다.
바몬은 그런 엘런의 불안을 알아채고 지하실에 있던 자신의 수련실을 연구실로 내주었다.
덕분에 엘런은 그날부터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비약을 위한 레시피는 모두 머릿속에 있었고, 자연의 숨결을 제외한 재료도 다 챙겨 왔기에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거의 완성되어 간다.’
물론 엘런의 저택에 있는 연구실보다 시설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비약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애초에 친화력의 비약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만드는 과정 자체는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이것만 넣으면…….’
엘런은 이제 비약 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도착해 있었다.
책상에 놓인 유리병에는 에메랄드빛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엘런의 손에는 탁한 노란빛의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그 액체는 바로 멘도사에서 추출한 자연의 숨결이었다.
쪼르르.
엘런은 지체하지 않고 자연의 숨결을 흘려 넣었다.
약에서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에메랄드빛의 색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런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성공했다.”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에메랄드빛의 액체 속에서 이따금 떠오르는 기포들.
비체린의 책에서 읽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마탑에 들어가고서부터 계속 연구해 오던 고대시대 정령사의 비약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었다.
‘이제 이걸로 조금은 더 강해질 수 있겠지?’
언젠가부터 엘런은 자신을 채찍질하던 마음이 느슨해졌었다.
그러나 하메론 사건 이후로 그의 마음속에서는 다시금 불꽃이 일었다. 단 하루라도 강해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다짐 후, 첫 번째 결과물이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었다. 엘런은 긴장되는 손으로 유리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꿀꺽꿀꺽.
엘런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신비한 빛을 띠던 엘런의 목구멍을 따라 흘러 들어갔다.
엘프에게서도 인정받은 고대 정령사이자 비체린 가문의 창시자.
그가 만든 친화력의 비약이 시간을 초월해 현시대 최고의 정령사라 할 수 있는 엘런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비약이 담겨 있던 유리병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엘런의 몸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실패한 건가?’
설마 하는 생각이 가슴 속에서 싹을 틔웠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서에 맞게 약을 만들었다.
‘스승님, 제가 비약을 만들 때 잘못한 게 있었습니까?’
엘런에게는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런 건 없었다. 분명 매일 밤낮을 네가 리버와 함께 만들던 그 방식 그대로였다.
프로뱅의 확신을 받았음에도 엘런은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하나밖에 없는 멘도사를 그냥 날려 버린 것인가.’
엘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연구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쯤 엘런은 느끼지 못했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상태는 그리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마치 독에 중독된 것처럼 입술이 푸르스름했다.
‘그럴 순 없…….’
쿵.
문고리를 잡으려던 그의 몸이 아무 예고도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엘런이 보던 세상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